HK(인문한국) 사업단 홈페이지

HK(인문한국) 사업단

웹진 문화로(文化路) 내용 시작

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축구를 사랑한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분류음악
국가 러시아
날짜2022-05-17
조회수106
첨부파일


2022년 11월 21일부터 12월 18일까지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서아시아의 아랍국가 카타르에서 월드컵이 개최될 예정이다. 지난 2021년 9월 2일부터 2022년 3월 29일까지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이 진행되었고, 대한민국 대표팀은 승점 23점을 확보하며 H조 1위로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따냈다. 지난 4월 2일 국제축구연맹(FIFA)은 2022 카타르 월드컵 본선 조 추첨과 경기 스케줄을 발표했다. 대한민국은 이란, 아랍에미리트,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과 함께 A조에 배정되었다. 코로나 19가 한창인 가운데 아시아 최종예선 축구경기를 관람하여 자가 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의 피로를 해소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스포츠 경기는 관람자가 직접 경기에서 뛰지 않더라도 마치 선수가 되어 필드에서 뛰는 것 같이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러시아 작곡가 중 하나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Д. Д. Шостакович, 1906-1975)도 그가 태어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FC 제니트의 광팬으로 경기가 있을 때 마다 축구경기장을 방문하여 제니트의 경기를 직관하며 그의 축구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고 한다. 음악학자이며 현재 림스키-코르사코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 콘서바토리의 교수인 드미트리 브라긴스키(Брагинский Д. Ю.)는 2008년 ‘쇼스타코비치의 인생과 작품에서의 스포츠(Спорт в жизни и творчестве Шостаковича)’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를 근간으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저서 『쇼스타코비치와 축구(Шостакович и фотбол)』 출간하였다. 2016년 10월 2일 쇼스타코비치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여 FC 제니트는 ‘쇼스타코비치와 제니트(Шостакович и Зенит)’를 주제로 행사를 기획하여, 쇼스타코비치와 축구와의 관계를 부각시켰다. 이 글에서는 축구를 중심으로 쇼스타코비치의 인생과 작품을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2016년 쇼스타코비치 탄생 110주년 기념 행사 ‘쇼스타코비치와 제니트’>
(출처: https://fc-zenit.ru/news/date_11.09.2019/)


쇼스타코비치와 축구: 자유로의 탈출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190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1915년 9살의 나이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왕벌의 비행’이 등장하는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오페라 ‘술탄 황제 이야기’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하며, 본격적인 음악수업을 받았다. 3년 후, 그는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게 되었지만,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콘서바토리 원장 글라주노프(А.К. Глазунов, 1865-1936)는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고, 다음해 1919년 콘서바토리에 입학하여 당대의 유명한 음악가들인 슈테인베르크(М.О. Штейберг, 1883-1946), 소콜로프(Н.А. Соколов, 1859-1922) 등에게 화성학, 대위법, 관현악법, 푸가 등 전문적인 작곡수업, 그리고 1920년부터는 피아노 수업을 받으며 전문음악인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1926년 졸업작품으로 1번 교향곡을 발표하여 극찬을 받았고, 1927년 제1회 국제 쇼팽 콩쿠르에 참가하여 피아노 연주 2위, 자신이 직접 작곡한 소나타를 연주하며 명예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20대 때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젊은 작곡가로 명성을 쌓으며, 15편의 교향곡을 비롯하여 오페라, 발레음악 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남겨 20세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중에 한사람으로 꼽힌다. 그러나 화려하게만 보이는 그의 삶에도 말 못할 시련의 순간들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정부의 예술 검열이 심해지자 1936년과 1948년에 그는 공개적으로 작품에 대한 경고를 받고, 때로는 연주가 금지되기도 했다. 창작자로서 정부의 검열로 창작의 자유가 박탈되고, 작품 발표를 못하는 것은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일 것이다. 비슷한 시기인 1936년 봄부터 전 소련 축구 챔피언십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5월 22일에 정규 선수권 대회의 첫 축구경기가 개최되었다. 이런 현실에서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쇼스타코비치는 축구에 열광하기 시작하여 경기가 있을 때마다 경기장을 찾았다고 한다.
 

“소련에서 ‘찬성’뿐만 아니라 ‘반대’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경기장이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이 말은 그가 축구를 왜 좋아하는지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로, 평소에는 거의 무표정이던 그가 축구경기를 관람할 때만큼은 자신의 감정을 여실히 표현할 수 있었다. 


<1940년 작곡가 레비틴(右)과 축구경기를 보며 웃고 있는 쇼스타코비치(右 두 번째)>
(출처: https://homsk.com/bingo/shostakovich-byl-deputatom-i-bolel-za-zenit-pravda-i-vydumki-o-vydayushchimsya-sovetskom-kompozitore) 


드미트리 브라긴스키의 저서 『쇼스타코비치와 축구』는 러시아어와 영어로 출간되었는데 러시아어 부재는 자유의 영역(Территория свободы)이고, 영어 부재는 자유로의 탈출(Escape to Freedom)이다. 쇼스타코비치의 아들이며 현재 지휘자이자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막심 쇼스타코비치(М. Д. Шостакович, 1938-)는 축구는 아버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가 힘든 시기를 견뎌낼 수 있도록 그에게 큰 위안이 되었고, 그의 인생을 구원할 정도의 큰 역할을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특히 1940년대 말 특정 세력이 그를 콘서바토리 교수직에서 해고하고, 탄압하였을 때, 그는 축구에 몰두하면서 이념적 공포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균형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쇼스타코비치의 인생에서 축구는 악몽 같은 현실에서 자유로운 세상으로 탈출할 수 있게 도왔던 탈출구의 역할을 했고, 동시에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성역으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쇼스타코비치에게 축구는 ‘자유의 영역’이었고, ‘자유로의 탈출’을 도운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는 소비에트 축구와 살았고, 축구 경기장에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레닌그라드에 레닌 경기장, 디나모, 키로프 공장 경기장이 있었고, 모스크바에는 보다 많은 경기장이 있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축구경기가 있는 거의 모든 경기장을 방문했다.”

- 드미트리 브라긴스키-


<브라긴스키의 저서 『쇼스타코비치와 축구』 표지>
(출처: https://spbculture.ru/ru/press-office/novosti/6664/) 


쇼스타코비치의 발레 <황금시대>에 나타난 축구

쇼스타코비치가 1926년 20세의 나이로 교향곡 1번을 발표에 이어 교향곡 2,3번을 발표하며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1929-30년에 걸쳐 축구 발레 음악 ‘황금시대’에서 축구와 스포츠를 주제로 한 음악들을 작곡했다. 1920년대 말 국립 극장 관리국의 현대 발레 극본 공모에서 영화감독 알렉산드르 이바노프스키(А.В. Ивановский, 1881-1968)가 FC 디나모의 이름에서 따온 리브레토 ‘디나미아다(Динамиада)’가 당선되었다. 당시에 젊고 실력 있는 작곡가로 유명세를 타고 있던 축구 광팬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가 이 극본을 위한 작곡가로 위촉되어 곡을 쓰게 되었다. 원작 발레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은 서방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개최된 산업박람회 ‘황금시대’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박람회 프로그램에는 무표정한 얼굴에 키가 크고 건장한 청년들로 구성된 지역 축구클럽과 소련 축구클럽과의 축구경기가 펼쳐진다. 이 박람회 기간 동안 소련의 운동선수와 현지에서 무용수로 일하는 아름다운 아가씨 디나는 사랑에 빠진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드라마틱한 축구경기가 펼쳐지고 마침내 소련 선수들이 승리를 거두자 자본주의 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소련 축구클럽 선수들을 체포하지만, 마지막에 극적으로 풀려나게 된다.

1930년에 10월 26일 레닌그라드 국립 오페라 발레극장(현,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된 발레 ‘황금시대(Золотой век)’에는 체육 퍼레이드와 권투, 카드게임, 축구경기 장면 그리고 캉캉, 폭스트롯, 탱고 등 서유럽의 춤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부자, 작가, 소련 축구선수들의 실력을 평가하는 열혈 축구팬 등이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특히 음악 ‘흑인과 2명의 소비에트 축구선수의 춤(Танец негра и 2 советских футболистов)’과 함께 축구 경기의 모습들이 잘 드러났다. 초연당시 발레 ‘황금시대’는 청중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대부분 이 작품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을 내 놓았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무대에서 방탕한 젊은이들의 부르주아적인 삶이 펼쳐졌으나, 이것이 혐오스럽지 않고, 심지어 아름답게 묘사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쇼스타코비치의 혁신적인 음악은 비평가들에게 혼란을 주었지만, 그러한 평가가 쇼스타코비치에게 까지는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논란으로 1931년 발레 ‘황금시대’는 극장 레퍼토리에서 제외되었다. 1982년과 2006년에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 축구의 장면과 더불어 부정적인 장면들은 모두 삭제된 새로운 발레가 재창작 되어 현재의 ‘황금시대’에서 축구경기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1930년 초연된 발레 ‘황금시대’에서 축구장면>
(출처: https://eaculture.ru/dates/4436)


“축구도 교향곡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작곡가 이지만 철학자이며, 사상가로 기념비적인 음악 작품들을 창작했다. 그러나 그는 축구를 사랑하는 축구 열혈 팬으로, 그는 차이코프스키의 말을 인용해 항상 “축구도 교향곡이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사실 그는 몸이 약해 실제로 축구장에서 축구를 할 수는 없었지만, 단순히 축구관람을 즐기는 것을 넘어, 경기를 면밀히 분석하여 축구에서 공격의 발전, 현대 작곡에서 예측할 수 없는 멜로디 라인과 일치하는 즉흥 연주, 세밀하게 조정한 음악 앙상블과 일관성, 경기에서의 행동 등에서 음악적 질서와 유사성 발견하고 그의 축구에 대한 애정을 그의 작품에 잘 녹여내었다. 1930년 발레 <황금시대> 초연 프로그램에 “다양한 스포츠(복싱, 원반던지기, 테니스, 펜싱, 배구, 농구, 창던지기, 던지기 등)가 음악에 대규모 춤 작품이 결합된 것이 <중략>.. 축구다.”라고 쓴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처럼 클래식 음악과 축구는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상반된 성격의 장르로 보이지만 그 안에서 유사성을 발견하고 작품으로 발전시키는 거장의 노력과 애정에 경의를 표한다.


목록

웹진 문화로(文化路) 내용 끝

TOP

저작권 표시 및 연락처

06974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로 84 법학관(303관) 1420호 / E-mail: fsicau@cau.ac.kr / TEL: 02-820-6355 / FAX: 02-822-0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