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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권력욕이 불러온 비속 살해의 현장: 일리야 레핀의 <1581년 11월 16일, 이반 그로즈니와 그의 아들 이반>
분류회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2-03-16
조회수158
첨부파일


1581년 11월 16일은 이반 뇌제(이반 그로즈니)로 잘 알려진 이반 4세가 자신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아들 이반을 때려죽인(정확하게는 그렇게 알려진)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대중들 사이에서는 <이반 그로즈니, 자신의 아들을 죽이다 (Иван Грозный убивает своего сына)>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있는 레핀의 작품이 바로 이날의 사건을 기록한 그림이다. 마치 경악스러웠던 그 날의 사건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박적으로 강요하듯이, 레핀은 자신의 작품에 사건의 날짜까지 또박또박 빠짐없이 기입하는 꼼꼼함을 발휘하면서 <1581년 11월 16일, 이반 그로즈니와 그의 아들 이반>이라는 제목을 부여했다. 
 

<1581년 11월 16일, 이반 그로즈니와 그의 아들 이반 (일리야 레핀, 1885)>
(출처: http://ilya-repin.ru/master/repin4.php)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반 4세는 3살에 부친 바실리 3세를 여의고, 7세에 모친 엘레나 글린스카야마저 주변 귀족들에 의해 독살당하는 참변을 겪으며 일찍이 고아 아닌 고아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처럼 이반 4세가 어린 나이에 부모를 모두 잃고 의지할 곳 없는 처지가 되자 귀족들은 그야말로 온갖 구박과 학대에 가까운 행동으로 어린 이반과 그의 동생을 괴롭혔고, 이때부터 이반의 마음속에 생겨난 귀족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와 불신, 권력 찬탈과 암살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불안정한 정서는 결국 ‘비속 살인’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낳게 된다.

이처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을 담은 레핀의 작품은 무엇보다도 이반 뇌제라는 인물의 광기와 회한을 담은 작품으로 해석되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폭력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황태자 이반을 죄없이 죽어간 그리스도의 형상에 빗대어 종교적인 해석도 가능하다.

실제로 레핀이 묘사한 황태자 이반이 걸친 의복은 어슴푸레하게 선홍빛이 감도는 실크 원단으로, 당시로써는 꽤 귀하고 값나가는 소재로 제작된 것이지만, 그의 관자놀이에서부터 흘러내려 왼쪽 어깨와 팔을 적신 피로 인하여, 옷감에 감도는 선홍빛은 마치 피로 얼룩진 잔흔처럼 다가오게 된다. 또한 아버지 이반과 아들 이반이 위치한 붉은 카펫은 아들 이반의 의복을 적신 선홍빛 피가 바닥으로 쏟아져 내린 뒤 마치 한 곳에 고인 듯한 형상을 연출하면서,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는 예수의 피를 받아낸 성배와도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또한 ‘두 명의 이반’을 화폭에 담아낸 레핀의 그림은 화해의 길이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세대 간의 갈등’을 표현한 작품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구세대 이반과 신세대 이반 사이의 불가피한 대립과 갈등은 결국 한 쪽의 죽음을 불러일으키고 마는데, 레핀은 황태자 이반의 손끝을 미묘하게 연출함으로써 죽음의 순간에서조차 타협할 수 없는 두 세대 간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황태자이자 아들인 이반의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지켜보며 비로소 자신이 저지른 참담한 사건을 자각하고 아들을 끌어안은 아버지 이반 뇌제와 달리, 황태자 이반은 마치 한 손으로 아버지를 밀어내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미 숨이 다해가는 시점에 인간은 뭔가를 밀어내기보다 조금이라도 뭔가를 더 움켜쥐려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 따라서 황태자 이반의 모습이 좀 더 사실적인 묘사에 가까워지려면 그의 손에서 엄지손가락이 아래쪽이 아닌 위쪽을 향해 있어야 할 것이다. 움켜쥐는 부위 역시 아버지의 팔뚝 안쪽보다는 목덜미나 어깻죽지 근처가 되어야 한층 현실감이 넘칠 것이다. 하지만 레핀은 이러한 사실적 묘사보다는 상징적 의미를 드러내는 것에 더 집착했던 것으로 보인다. 레핀은 황태작 아버지 이반 뇌제의 팔에 매달리거나 온전히 안기는 자세를 택하지 않고, 반대로 미세하게 아버지의 팔을 밀어내는 듯한 자세를 취하게 함으로써 죽음과 이별의 순간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그 접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는 두 세대 간의 갈등을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다. 마지막 순간에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아버지를 밀쳐내는 자신의 손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황태자의 모습이 애처롭게까지 느껴진다.

이렇듯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레핀의 작품을 골똘히 들여다보던 어느 날, 불현듯 고야의 <자신의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라는 작품이 레핀의 작품과 오버랩되면서 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자신의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 (프란시스코 고야, 1823)>
(출처: https://www.museodelprado.es/coleccion/obra-de-arte/saturno/18110a75-b0e7-430c-bc73-2a4d55893bd6)


고야가 말년에 작업한 <블랙 페인팅> 연작 중 하나에 속하는 <자신의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라는 작품에서 사투르누스는 아버지 우라노스의 남근을 잘라 거세한 뒤에 최고의 신으로 등극한 로마의 신으로,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로 등장하는 신이다. 자신이 스스로 아비를 죽인 것처럼, 자신의 자식들 역시 어느 날 자신을 죽여 권력을 찬탈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기라도 한 것일까? 사투르누스는 존속살해를 영원히 차단할 목적으로 이번에는 자식들이 태어나자마자 집어삼키는 비속 살해를 거듭하면서 자신의 한 줌 권력을 이어나가게 된다.

그런데 고야의 작품 속 사투르누스는 단순히 자식을 집어삼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힘없이 축 늘어진 아이의 몸통을 짓이겨 피가 유출될 정도로 두 손으로 힘껏 아이의 허리춤을 움켜쥔 채 아이의 머리를 뜯어먹고 있다. 아이의 몸통 역시 이제 막 세상에 나온 갓난아이의 몸통이라기보다는 적어도 4~5살은 됨직한 체구로 그려져 있다. 이처럼 비록 신화에서 그 모티프를 차용했지만, 신화 속에 묘사된 사투르누스의 만행을 훨씬 뛰어넘는 그로테스크하고 과장된 이미지로 그려진 고야의 사투르누스는 마치 신이 아닌 인육을 먹는 식인종과도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며 끔찍함과 혐오감을 자아낸다.

처음 이 그림을 접했을 때, ‘이건...뭐지...?’ 라는 물음표와 더불어 정말이지 뒷골이 서늘하게 달아올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처럼 솟아오르는 불쾌함을 애써 짓누르면서 이 그림에 좀 더 시선을 잡아두다 보면, 뜻밖에도 사투르누스의 기괴하고 광기 어린 표정을 뚫고 나오는 당황스러운 기색이 읽혀진다.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누지 않는다”라는 옛말도 있듯이, 사투르누스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던 노력이 어느 순간 집착으로 바뀌면서 자식을 잡아먹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자신의 입속에 자식의 머리를 들이밀고 자식의 뼈와 살이 찢겨나가는 소리와 저주스러운 촉감을 느끼고 나서야, 사투르누스는 비로소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참담한 일에 스스로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멈출 수 없는 자기 자신의 처지에 황망함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투르누스의 표정은 레핀이 묘사한 이반 뇌제의 표정과 매우 닮아있다. 

 

<1581년 11월 16일, 이반 그로즈니와 그의 아들 이반 부분도 (일리야 레핀, 1885)>


순간적으로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자신이 저지른 일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깨달은 순간, 이반 뇌제는 두려움과 당황스러움이 공존하는 푹 꺼진 눈으로 아들 이반의 머리를 부여잡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아들의 머리를 자신의 입가 근처로 끌어당기고 있는 이반 뇌제의 모습은 바로 앞서 보았던 사투르누스의 모습, 즉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매정하게 아들을 집어삼키는 비속 살해를 저지르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스스로 개탄하는 아비의 모습이 겹쳐져 보인다. 특히 눈동자가 아래로 쏠린 채 허옇게 흰자를 드러낸 이반 뇌제의 공허하고도 황망한 눈동자와 아래로 축 처진 눈썹,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흥분과 경악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숨을 몰아쉬면서 벌렁대는 커다란 콧구멍, 특히 아들의 정수리 부근에 난 검은 머리칼에 입이 가려진 이반 뇌제의 모습은 자식의 머리와 팔을 물어뜯어서 피범벅이 되고도 남았을 고야의 사투르누스 입 주위가 붉은 핏빛이 아닌 검은 색으로 표현된 것과 유사한 효과를 불러일으키면서, 마치 황제가 피로 물든 아들을 물어뜯고 집어삼키는 듯한 모양을 연상시키게 한다. 

 

<레핀과 고야 작품의 부분도 (레핀 vs 고야)>
(출처: http://ilya-repin.ru/master/repin4.php; https://www.museodelprado.es/coleccion/obra-de-arte/
saturno/18110a75-b0e7-430c-bc73-2a4d55893bd6)


고야의 <자신의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는 그의 창작 말기에 그려지고, 그의 사후에도 오랫동안 발굴되지 않다가 나중에 복원된 작품이기에, 실제로 고야가 어떤 의도로 이 작품을 그렸는지는 아직 확실한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태이다. 혹자는 프랑스가 스페인을 점령했던 19세기 초반에 고야가 자신의 목숨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프랑스에 투항하여 프랑스 궁정화가로 일하게 되면서, 조국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처지를 자책하고 후회하면서 이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그림이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또 혹자는 다시 스페인 왕정이 들어선 이후에도 여전히 국민의 삶을 돌보지 않고 국민의 혈세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해나가는 스페인 왕실에 대한 고야 자신의 실망감을 반영한 그림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조국을 배반한 것이든, 혹은 국민의 고혈을 빨아 권력을 유지하는 왕에 대한 환멸감에서 비롯된 것이든 간에 양쪽의 경우 모두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제 살을 깨무는 아이러니한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리고 레핀이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을 그리게 된 계기 역시 한편으로는 역사적 인물과 그 인물이 담긴 한 장면을 연출해 보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백성들의 고단한 삶은 뒤로 한 채 몇몇 귀족의 말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던 러시아의 불합리한 정치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 위한 마음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고야와 레핀 작품의 유사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사투르누스의 신화를 모티프로 작업한 루벤스의 동명의 작품 <자신의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 역시 비속 살해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얼핏 보기에 루벤스의 작품은 별다른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스-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미술작품과 유사한 느낌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찬찬히 뜯어보다 보면 고야의 작품보다 훨씬 더 잔인함이 살아있는 그림이라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 (피터 폴 루벤스, 1638)>


고야의 시선이 사투르누스 스스로 자신이 벌인 행위에 대해 놀라고 당황스러워하며 그럼에도 이를 멈출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황망함을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루벤스의 시선은 사투르누스가 아닌 심장을 뜯기는 아이의 모습에 더 많이 할애되고 있다. 루벤스가 그려낸 사투르누스의 눈썹과 눈은 고야와 달리 한껏 위로 치켜져 있는데, 그 모습 속에서 고통에 일그러진 채 비명을 내지르는 자신의 아기에게 일말의 동정이나 한 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은 채, 마치 흡혈귀처럼 자식의 피를 탐하는 탐욕스러움이 엿보인다. 게다가 루벤스의 작품 속 사투르누스는 마치 포대 위의 아이를 안아 올리듯 한 팔로 아이를 감싸 안고 있는데, 그의 입술이 아이의 볼이나 이마가 아닌 심장을 향하면서, 라파엘을 비롯한 여러 르네상스 화가의 작품에서 종종 마주치곤 하는 자식을 가슴에 품고 자애롭게 내려다보는 어머니의 모습이나 성모상, 혹은 자식에게 축복의 키스를 내리는 아버지의 모습 대신, 그저 피를 탐하는 야수의 모습만을 각인시키는 효과를 자아내게 된다.

이렇듯 얼핏 보기엔 붉은색으로 점철된 레핀의 그림에서, 그리고 흐트러지고 흔들리는 윤곽 처리와 더불어 광기와 공허함의 공존 속에서 자식의 인육을 물어뜯는 아비를 그린 고야의 작품 속에서 처음 느꼈던 경악스러움 대신 어느 순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아비의 상황과 탄식이 감지된다면, 비교적 차분하게 정통 회화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루벤스의 그림에서는 오히려 화폭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소리 없는 아이의 비명이 선명하게 귓전을 때리며, 권력 앞에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현실 세계의 모습이 우울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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