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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소련 젊은 세대들의 해방문화, 로큰롤(Rock’n roll)의 아이콘: 빅토르 최
분류음악
국가 러시아
날짜2021-08-02
조회수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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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TVN에서 <머니게임>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코로나 19의 집단감염이 한창일 때라 이 드라마는 주목을 받지는 못했으나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직진 남 유진 한 역을 맡았던 배우 유태오는 한국의 대중들에게 배우로서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그의 최근 필모그래피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고려인 로큰롤(이하 록) 가수 빅토르 최(Виктор Цой, 1962-1990)의 젊은 시절을 그린 러시아 영화 ‘레토(Лето)’(2018)이다. 이 영화에서 유태오는 주인공 빅토르 최역을 맡았다. 심지어 그는 영화촬영을 위해 러시아에 도착해서 영화의 모든 대사가 러시아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단기간에 속성으로 러시아어를 연습하여 촬영에 임했다는 후문이 전한다. 러시아의 영화감독이자 연극연출가인 키릴 세레브렌니코프(К.С. Серебренников, 1969~ )가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작품성을 인정받아 2018년 제71회 칸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출품되어 영화음악상을 수상하였다. 빅토르 최는 당시 소련의 소수민족인 고려인이었으며, 소련정부의 규제대상이었던 록 음악을 하는 30년도 채 채우지 못한 짧은 생을 살다간 음악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노래는 그의 사후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끊임없이 불리고 있으며, 그의 삶은 다양하게 영화로 만들어져 전 세계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영화 ‘레토’의 포스터(左), 제71회 칸 영화제에 참가한 출연자들(右)>
(출처: https://ru.wikipedia.org/wiki/Лето_(фильм,_2018)(左), http://propremiere.com/archives/3621(右))


빅토르 최의 젊은 날의 초상: 영화 ‘레토(Лето)’(2018)

영화 ‘레토’는 젊은 시절의 빅토르 최와 1981년 결성되어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록그룹 “주파르크(Зоопарк)”의 리더인 마이크 나우멘코(М. Науменко, 1955-1991)와 그의 아내 나탈리아와의 미묘한 삼각관계 그리고 레닌그라드 록 클럽의 형성 과정과 빅토르 최가 속한 그룹 “키노(Кино)”의 첫 앨범 를 녹음하는 과정을 담은 1980년대 레닌그라드의 언더그라운드 록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영화이다. 영화는 무명의 가수지망생 빅토르 최와 그의 친구 레오니드가 노래 연습을 하기 위해 해변가를 전전하는 모습들과 80년대의 록스타 나우멘코가 해변가에서 친구들에 둘러싸여 노래 “레토(Лето)”를 부르는 장면과 오버랩된다. 사실 영화의 제목과 같은 이 노래 “레토”는 나우멘코가 빅토르 최에게 헌정하는 노래로 비틀즈의 “Do you want to know a secret”의 멜로디에 빅토르 최의 ‘봄(Весна)’을 패러디 하여 만들었다. 이 노래는 1982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영화적 서사에서 시간적으로 맞지 않는 장면에 등장한다. 그러나 이는 빅토르 최와 나우멘코가 서로의 음악세계를 존중했던 사실을 관객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이 노래를 이렇게 등장시킨 것이 아닐까 한다. 특히 이 영화에서는 빅토르 최와 음악적 교감을 나누며 그만의 음악적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게 조력한 나우멘코의 역할을 비중있게 다뤘다. 나우멘코 역에는 2000년에 결성된 록그룹 “즈베리(Звери)”의 리더이자 보컬인 로만 빌닉(Р. Билык, 1977~ )이 맡아 그의 음악적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영화의 진실성에 대한 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레닌그라드의 록 그룹 “아크바리움(Аквариум)”의 기타리스트이며 영화의 주인공들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보리스 그레벤쉬코프(Б. Гребенщиков, 1953~ )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읽고 그 내용이 사실과 전혀 다르다며 분개하였고, 심하게 혹평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여부를 떠나서 당시의 시대를 대변했던 소련 젊은이들의 문화가 록 음악이었고, 그러한 시대적 흐름에 빅토르 최와 마이크 나우멘코라는 록 음악가들이 활동했으며, 그들이 시간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는 주옥같은 명곡들을 남겼다는 문화현상으로는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현실은 영화화 하면서 극적으로 각색되고 미화되는 점은 관객들이 감안하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흑백의 영상과 함께 나오는 빅토르 최의 음악성은 칸 영화제에서 사운드 트랙상을 거머쥘 만 하다. 


<1980년대 빅토르 최와 마이크 나우멘코가 함께 활동하는 모습>
(출처: https://interesnyefakty.org/natalya-naumenko/)


소비에트 록 문화와 빅토르 최 그리고 그룹 “키노(Кино)”

서방세계에서 시작된 록 음악은 어떻게 소련에서 유행하게 되었을까?

1960년대 소련에 해빙기가 도래하며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서유럽과 미국의 록 음악이 유입되기 시작하였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록 음악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렇게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세계의 대표적 문화인 록 음악이 소련사회에 유입되었고, 1950년대에 소련에서 유행하던 작가주의 음악(바르드 음악)이 결합되며 소련만의 독특한 러시아 록(Русский рок)이 탄생하게 된다. 러시아 록은 영혼을 흔드는 강렬한 비트에 바르드 음악의 영향을 반영하는 듯 때로는 서정적이며 때로는 현실 비판적이고 저항적인 가사를 담았다. 소련 정부는 기본적으로 록 음악이 서방세계에서 들어왔고, 소련 정부에 대항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규제와 검열의 대상이었지만, 1980년대에 소련정부의 예술 창작에 대한 검열이 유명무실해지는 사이 이러한 러시아 록 음악 문화는 꽃을 피우며 정점을 찍게 된다. 소련의 젊은이들은 이 때 탄생한 록 그룹들이 “키노”, 그리고 “마쉬나 브레메니(Машина времени)”, “알리사(Алиса)”, “ДДТ”, “아크바리움” 등이다. “마쉬나 브레메니”는 모스크바를 대표하는 록 그룹으로 스타일면에서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는 항상 비교의 대상되었다.

빅토르 최가 활동했던 그룹 “키노”는 레닌그라드 출신의 록 그룹 “팔라타 №6(Палата №6)”과 “필리그림(Пилигрим)”에서 활동하던 베이스 빅토르 최, 기타 알렉세이 리빈(А. Рыбин, 1960~ ) 드럼 올렉 발린스키(О. Валинский, 1961~ )가 의기투합하여 하여 1981년 가을 알렉세이 톨스토이(А. Толстой, 1883~1945) 의 소설 『기술자 가린의 쌍곡선(Гиперболоид инженера Гарина)』에서 차용한 그룹명 “가린과 쌍곡선들(Гарин и гиперболоиды)”으로 레닌그라드 록-클럽에서 데뷔하였고, 1982년 “키노”로 개칭하였다. 성공적인 데뷔 이후, 당시 레닌그라드 록-클럽의 대표 겐나지 자이쩨프(Г. Зайцев, 1954~ )의 집에 그레벤쉬코프와 “아크바리움” 구성원들이 모여 “키노”의 데뷔 앨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음악 세션은 “아크바리움” 구성원들이 참여하여 스튜디오에서 녹음 된 총 13곡이 수록된 러닝타임 45분의 첫 번째 앨범 가 발매되었다. 이는 실제 드럼 대신, 드럼 소리 기계를 사용하여 녹음된 소련에서 첫 번째로 발매된 록 음악 앨범이다. 사실 그룹 “키노” 신곡은 새 앨범 발표 전에 레닌그라드 록-클럽에서 선발표되었다. “키노”의 노래는 특유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서정적인 노래로 새로운 로맨스(Новые романтики)로 불리며, 흥행성을 확인 받았다. 데뷔는 성공적이었지만, 1983년 3월 빅토르 최와 리빈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어 결국 리빈은 그룹을 떠났다. 빅토르 최는 기타리스트 유리 카스파랸(Ю. Каспарян, 1963~ ) 그리고 그룹 “아쿠아리움”의 멤버들 알렉산드르 티토프, 게오르기 구리야노프, 이고리 치호미로프 등 여러 음악가들과 작업하였다. 이 멤버들과 작업하여 1985년에 발표한 <Это не любовь>는 “키노”의 역사상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앨범으로 기록된다. 그들이 인기는 소련 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점점 많아져 1989년 말에는 소련 록 그룹으로는 최초로 일본과도 프로모션 계약체결을 완료하였다. 이렇게 인기의 정점에 있었던 “키노”는 1990년 8월 15일 교통사고로 인한 빅토르 최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해체되기에 이른다. “키노”가 9년 간 활동하면서 빅토르 최는 리더로 100곡이 넘는 주옥같은 곡들을 직접 작사·작곡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사건은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당시 소련의 젊은층 사이에서 “키노”의 영향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이를 우려한 소련 정부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극단의 조치를 취했다라는 음모설이 떠돌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 그 어디에서도 증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룹 “키노”의 데뷔 앨범 <45>>
(출처: https://ru.wikipedia.org/wiki/45_(альбом))


레닌그라드 젊은이들의 해방구, 러시아 록의 메카: 레닌그라드 록-클럽(Ленинградский рок-клуб, ЛРК)

레닌그라드 록-클럽은 1981년 3월 7일 레닌그라드 루빈슈테인 거리(ул. Рубинштейна) 13번지에 문을 연 록 음악 콘서트 기관으로 소력시기의 레닌그라드 출신의 록그룹들을 탄생시켰던 1980년대 소련의 젊은이들의 문화를 주도한 전설적인 장소이다. 실제로 1973년부터 레닌그라드 록-클럽의 합법화를 위해 노력한 결과가 4년 만에 실효를 거두게 된 것이다. 그러나 초창기에는 레닌그라드 연합 아마츄어 예술의 집(Ленинградский межсоюзный дом самодеятельного творчества, ЛМДСТ) 산하에서 콘서트를 개최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 제1회 콘서트로 “렌클럽 아마추어 음악(Ленклуб Любителей Музыки)”를 개최할 수 있었다. 이 콘서트에는 레닌그라드의 록그룹 “피크닉(Пикник)”, “로시야네(Россияне)”, “미픠(Мифы)” 등이 참가하였다. 1982년부터 공식적으로 레닌그라드 록-클럽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1983년에 빅토르 초이의 록그룹 “키노”와 더불어 “알리사”, “텔레비조르(Телевизор)”, “폽-메하니카(Поп-механика)”가 이 무대에서 데뷔하였다. 레닌그라드 록-클럽은 개관과 함께 그 소문이 러시아 전역으로 퍼져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명하던 모스크바 록-라보라토리(Московская рок-лаборатория), 스베르들로프 록-클럽(Свердловский рок-клуб)에 필적할 만한 인기를 끌어 모아 콘서트를 보기위해 소련 전역의 젊은이들이 모여들었고, 80년대 록음악의 메카로 떠오르며 소련 록 음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록-클럽의 초대 대표는 1960-70년대 소련의 히피문화를 이끌었고, 록 그룹 “ДДТ”의 디렉터였으며, 첫 번째 소련 록 잡지 “록시(Рокси)”를 창간한 겐나지 자이쩨프가 1981-82년까지 1년간 맡았다. 그 뒤를 이어 1982년부터 록클럽이 폐관한 1990년대 초까지 사회운동가이며 록 뮤지션 니콜라이 미하일로프(Н. Михайлов, 1953~ )가 맡아 레닌그라드로 대표되는 소련의 록 문화를 이끌었다.


<1986년 레닌그라드 록-클럽에서 공연하는 장면(左), 1987년경 나우멘코 공연의 관객들(右)>
(출처: https://meduza-lite.vercel.app/, 촬영: Дмитрий Конрадт)


자신만의 음악적 감수성으로 소련의 대중들에게 울림과 감동을 주고 큰 영향력을 끼친 빅토르 최는 27년이라는 짧은 생을 록 음악과 함께 열정적으로 살았다. 그의 삶은 한창 인생의 꽃을 피울 리즈 시절인 여름에 끝이 났기에 “Лето”라는 영화의 제목에 중의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닌가 한다. 빅토르 최의 음악인생은 여름처럼 짧았고, 강렬했다. 유난히도 더운 2021 여름의 한 가운데에서 사뭇 1990년 8월 빅토르 최가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현재 러시아의 록 음악계는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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