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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일리야 마쉬코프의 ‘문제적 초상화’에 관하여
분류회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1-08-02
조회수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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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 전시회가 러시아 화단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전시회를 관람하고 나온 미술평론가와 관람객들은 전시회의 명칭에 한번 놀라고, 전시회에서 마주친 작품들을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문제의 전시회 명칭은 바로 ‘다이아몬드 잭(Бубновый валет)’이었다. 당시 이 전시회에는 나탈리야 곤차로바(Н. Гончарова), 미하일 라리오노프(М. Дарионов), 표트르 콘찰롭스키(П. Кончаловский), 아리스타르흐 렌툴로프(А. Лентулов), 알렉산드르 쿠프린(А. Куприн), 일리야 마쉬코프(И. Машков) 등 러시아 초기 아방가르드를 이끄는 대다수 작가가 작품을 출품했다.

‘다이아몬드 잭’이란 다름 아닌 정치 사범의 죄수복을 의미하였기에, 범상치 않은 전시회 명칭에 이끌린 일반인들은 호기심 반, 놀라움 반의 마음으로 전시장을 방문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전시장 안에는 그들을 더 놀라게 할 그림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19세기를 풍미한 전형적인 리얼리즘 회화에 길들여져 있었던 관객들에게 ‘다이아몬드 잭’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그 자체로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쉬코프의 작품 <자화상과 표트르 콘찰롭스키키의 초상>이라는 작품은 놀라움을 뛰어넘어 관객의 분노를 자아내기에 이르렀다. 


<자화상과 표트르 콘찰롭스키의 초상 (I. 마쉬코프, 1910)>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가로 폭이 거의 3m에 달하는 거대한 그림의 중앙에는 속옷만 걸친 우람한 체격의 두 남성이 자리하고 있다. 차라리 속옷만 걸쳤으면 그나마 좀 나아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필 두 남성이 발목을 넘어 종아리 중간까지 한껏 치켜올린 검은 장화가 마치 신발이 아닌 양말처럼 보이면서 어딘지 모를 ‘변태스러움’이 느껴지고, 이로 인해 관람객의 시야를 꽤나 불편하게 만든다.

두 인물의 몸만 놓고 보면 누가 봐도 운동선수임이 분명한 듯 한데, 정작 이들 두 인물이 두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악기와 악보이다. 다소 과장스러울 정도로 튀어나온 울룩불룩한 근육질 팔뚝에 어울린다고 보기엔 상당히 어색한 바이올린을 꽤나 익숙한 듯 들고 있는 인물은 바로 일리야 마쉬코프 본인이다. 그리고 그의 오른편에 앉아있는 검게 그을린 아랍풍의 남성으로 묘사된 인물이 그의 동료이자 예술적 동지인 표트르 콘찰롭스키이다. 


<표트르 콘찰롭스키 (1950년대 초반)>
(출처: https://rus.team/)


<노란 셔츠를 걸친 자화상 (P. 콘찰롭스키, 1943)>
(출처: https://rabotaart.ru/)


참고로 콘찰롭스키는 우크라이나 동부에 해당하는 도네츠크 근방의 슬라뱐스크(Славянск) 시에서 태어났다. 노년의 콘찰롭스키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마쉬코프의 붓끝에 의해 탄생한 아랍풍의 이미지는 그의 실제 모습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후일 콘찰롭스키 스스로 그린 자화상에서도, 콧수염을 제외하고는 마쉬코프 화폭 속에 그려진 인물과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그의 예술적 행보에서 일어난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콘찰롭스키는 마쉬코프와 마찬가지로 혁명 이후 프랑스 인상주의와 야수파 화법을 버리고 리얼리즘으로 자신의 화풍을 선회하게 된다. 아마도 예술적 경향이 변화되기 이전, 자신의 예술적 스타일을 확립하기 위해 질풍노도의 시기를 걷던 젊은 날 콘찰롭스키의 단면이 마쉬코프의 화폭 속에 이러한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재현된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그림의 의의는 불경함이나 아이러니적 요소를 드러내는 것에도, 예술적 질풍노도의 시기를 걷던 한 화가의 젊은 날을 조명하는 것도 아닌 바로 ‘새로운 시대의 예술 선포’에 있다. 한때 ‘러시아의 세잔’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마쉬코프는 고갱과 고흐, 세잔과 마티스 등 프랑스 인상주의 화파의 작품에 심취해있었다. 그런 그가 기존의 리얼리즘은 물론이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풍미하며 다분히 ‘천상지향적’ 경향을 보였던 상징주의에 각을 세운 것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자화상과 표트르 콘찰롭스키의 초상>에서 마쉬코프와 콘찰롭스키는 모두 고대 그리스 조각에 나옴 직한 건장한 운동선수처럼 묘사되어 있다. 두 인물의 발치에 나란히 놓여있는 투포환 공과 케틀벨 2개가 이들이 운동선수, 혹은 적어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란 점을 넌지시 일러준다. 한편 얼핏 이 그림의 불경스러움을 더해주는 소품처럼 보이는 ‘검은 장화’ 두 켤레는 이들이 ‘천상’이 아닌 ‘지상’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있는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근육질로 무장한 몸매를 소유한 화가들과 이들이 착용한 불경스러운 ‘검은 장화’는 이제 ‘그리스 예술로의 회귀’, 즉 신이 세계관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중세나 상징주의 ‘천상지향성’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이 중심에 놓인 예술, 즉 ‘러시아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도구로 역할를 수행하게 된다.

또한 마쉬코프는 단순히 기존의 리얼리즘 화풍을 거부하고 ‘러시아 르네상스’의 시작을 선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간에 화단을 휩쓸고 지나간 다양한 미술 사조를 하나의 화폭에 담아내는 기지를 발휘한다. 


<자화상과 표트르 콘찰롭스키의 초상 부분도 (1)>


바이올린과 악보만으로는 다소 부족함을 느꼈는지, 마쉬코프는 자신의 왼편에 피아노 한 대를 배치해놓았다. 그리고 그의 좌측에 위치한 피아노 위에는 4권의 책이 옹기종기 사이좋게 줄지어 세워져 있다. 마쉬코프는 이 책조차도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포괄적으로 선포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처럼 사용했다.

좌측에서부터 ‘세잔’, ‘예술’, ‘이집트, 그리스, 이탈리아’에 관한 책, 그리고 ‘성경’이 놓여있다. 마치 우람한 근육질과 부드러운 선율, 지상에 발붙인 건장한 인간의 부활과 천상지향성, 기존의 리얼리즘에 대한 부인과 새로운 예술의 선포 등이 이 4권의 책 제목과 내용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는 듯하다. 주목할만한 것은 마쉬코프의 방점이 이들 다양한 예술 사조와 예술 지향성에 대한 반박이나 부인, 대립과 반목이 아니라 ‘공존’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자화상과 표트르 콘찰롭스키의 초상 부분도 (2)>


그뿐만이 아니다. 마쉬코프와 콘찰롭스키 뒤편에는 일견 화병 속에 담긴 꽃다발을 그린 정물화 2점이 놓여있다. 하지만 눈을 좀 더 크게 뜨고 이 정물화를 들여다보면 남성과 여성의 얼굴이 슬며시 떠오른다. 왼쪽은 은빛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고 머리를 틀어올린 여성처럼 보이고, 오른쪽에는 잿빛 연미복을 한껏 빼입고 보타이를 두른 후 머리에는 포마드 기름을 잔뜩 발라서 양 갈래로 머리를 빗어넘긴 신사의 모습이 보인다. 마치 르네상스 이후 매너리즘 시기 화가들의 작품에서 심심치 않게 목격되곤 하는 ‘인형 풍경’(anthropomorphic landscape)’을 보는 듯하다.

또한 콘찰롭스키 우측에 위치한 식탁과 그 위의 정물은 세잔과 러시아 민속 문양을 떠올리게 만들고, 건장한 육체미를 자랑하는 두 남성과 이들 앞에 놓인 오브제는 그리스 육상선수와 이를 형상화 시킨 그리스 조각품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게다가 건장한 남성들의 손에 들린 악기와 악보는 마치 천상의 노래를 작곡하고 연주하고픈 이상을 품은 인간계 남성의 원대한 포부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 즉 지상과 천상, 인간과 신, 예술과 일상, 고대 예술과 마니에 리모스를 거쳐 인상주의, 그리고 소위 ‘러시아 르네상스’로 일컬어지는 새로운 예술의 등장에 이르는 다양한 예술사조와 철학이 하나의 화폭 속에서 ‘공존’하면서 ‘시대의 초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마침내 1911년도에 문제적 초상화의 두 주인공인 마쉬코프와 콘찰롭스키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다이아몬드 잭(Бубновый валет)’이라는 화가 그룹을 함께 결성하여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하게 된다.

한편 1911년에 그려진 마쉬코프의 <자화상>은 1910년에 개최된 ‘다이아몬드 잭’ 전시회를 통해 소개된 <자화상과 표트르 콘찰롭스키의 초상>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자화상 (I. 마쉬코프, 1911)>
(출처: https://artzakaz.pro/)


동료 콘찰롭스키를 빼고 오롯이 자기 혼자만의 모습을 그려낸 1911년 作 마쉬코프의 <자화상>은 확실히 전작과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를 풍긴다. 전작에서 다분히 ‘루복’적인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면, 1911년에 제작된 <자화상> 속 인물은 어딘지 모를 코믹함이 가미된 추리 만화 속 주인공과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이 자화상은 3겹의 파도 구조를 통해 경쾌한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다. 먼저 마쉬코프 자신이 입고 있는 모피코트의 깃에 적용된 물결 모양이 시선을 사로잡고, 그다음에는 그의 뒤편에서 물결치는 파도가, 그리고 그 뒤에는 다시 기선의 돛과 기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의 모양이 물결무늬를 만들어내면서 서로 반향한다. 이렇듯 화폭 전체에 걸쳐 반복적으로 적용된 물결무늬는 마치 당시 예술적 지향점을 두고 치열한 고민에 빠져있었던 마쉬코프 자신의 내면을 반영해 낸 듯 하다. 처음부터 프랑스 인상주의와 야수파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던 마쉬코프는 세기 초 러시아 화단과 문단을 이끌었던 입체 미래주의의 극단적이고 형식 파괴적인 경향을 마땅치 않게 여겼다.

하지만 1911년도에 그려진 <자화상>에서는 고갱의 원시주의적 화풍과 장식적 요소가 다분했던 1910년도의 <자화상과 콘찰롭스키의 초상>과 달리 상당히 간결해진 선과 축약된 구도를 확인할 수 있다. 1911년도 作 자화상 속에서 인물의 눈, 코, 입을 지우고, 윤곽선을 모두 원통과 네모, 세모로 더 간결하게 축약하면 바로 입체미래주의 풍의 그림으로 완성될 수도 있음 직한 모양새이다. 이는 마쉬코프가 더는 기존의 인상주의와 원시주의적 색채만 고집하지 않고, 당시 대세를 이루던 입체미래주의의 화풍과 어느 정도 화해의 길을 걷기 시작한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마쉬코프 자신의 얼굴에 적용된 선홍빛 색채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색을 사용함에 있어서 인상주의적 요소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지만, 전체적인 윤곽선 처리에서 있어서는 입체미래주의적 요소가 돋보이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개인적으로는 마쉬코프가 짝눈의 소유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마치 짝눈처럼 묘사해놓은 것에도 눈길이 간다. 아마도 한쪽 눈으로는 여전히 인상주의와 원시주의를 바라보고, 다른 한쪽 눈으로는 입체미래주의를 향하고 있는듯 하다. 하지만 마쉬코프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인상주의도, 원시주의도, 입체미래주의도 아닌 바로 ‘사실주의에 입각한 정물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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