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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소비에트 시기의 희생자들을 재조명하다: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
분류영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1-06-16
조회수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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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과 2021년 우리는 예상치 못한 코로나 19와 사투를 벌이며 인류사에서 오래 회자될 만한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2020년과 2021년은 대한민국 영화계에서도 또한 잊지 못할 해였다. 2020년에는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전 세계 주요 영화제뿐만 아니라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국제영화상, 각본상의 4개 부분을 석권하며, 단일 최다 수상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뒤이어 2021년에는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에 출연하여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우리나라 영화역사상 처음으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대한민국의 영화계의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윤여정은 노련한 연기력뿐만 아니라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위트 있는 수상소감으로 K-할머니의 스웩을 자랑하며 전 세계의 영화 팬들을 사로잡았다. 이는 우리나라 영화의 성과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중요한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영화 ‘미나리’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할리우드 영화배우 브레드 피트가 세운 영화사 플랜B가 제작비를 지원하고,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로 미국의 자본과 미국감독에 의해 제작되어 미국영화로써 아카데미 시상식에 출품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영화대사에 한국어의 비중이 높다는 이유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며 대중들의 공분을 사는 것과 동시에 오스카의 모순을 여실히 드러냈다. 영화 ‘미나리’는 한국인들이 미국에 정착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로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필자가 궁금한 점은 과연 이 영화가 미국의 자본으로 제작되었다고 하여 단순히 미국영화로 볼 수 있는 것인가? 이 영화를 미국영화? 한국영화? 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인가? 사실 이러한 상황은 우리나라 영화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2019년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러시아 다큐멘터리 감독 마리안나 야로프스카야(М. Яровская, 1971~)의 다큐멘터리 영화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Women of the Gulag, Женщины ГУЛАГа)’이 최고 다큐멘터리 영화의 최종 후보로 올랐기 때문이다. 러시아 출신의 여성감독이 최종 후보로 오른 것은 오스카 역사상 9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최근 아카데미상의 권위적이고 편협한 면이 논란이 되고는 있지만 야로프스카야의 경우만 보더라도 오스카는 이미 조금씩 세계화의 추세에 발맞추어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어쩌면 봉준호 감독과 윤여정 배우의 수상은 오스카의 변화의 흐름에 있어 예견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과연 영화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은 어느 나라 영화라고 볼 수 있을까? 최종 선택은 이 글을 읽고 난 여러분의 판단에 맡긴다.


<제91회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감독 마리안나 야로프스카야>
출처: http://relrus.ru


러시아계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마리안나 야로프스카야

1971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마리안나 야로프스카야는 미국으로 이주하여 USC 영화예술학교(USC School of Cinematic Arts)에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공부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영화 ‘원하지 않는(Undesirable)’(1999)으로 2001년 학생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동메달을 수상하며 학창시절부터 그녀의 영화적 재능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아카데미에서 최고의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한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의 연구책임을 맡기도 하였다. 그녀는 2007년 종교를 발견한 군인들에 대한 연구를 영화화 한 다큐멘터리 영화 ‘신성한 전사들(Holy Warriors)’로 ECU 유럽 독립영화제에서 최고 비유럽권 다큐멘터리 영화상을 수상하였다. 그 이후 ‘탐욕스러운 거짓말쟁이(Greedy Lying Bastards)’(2012)을 연출하고, ‘마라톤의 정신 2(Spirit of the Marathon II)’(2013),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날(Last Days in Vietnam)’(2014)등의 영화의 연구팀에서 활동했다. 그녀는 현재까지 다양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며 능력 있는 러시아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또는 연출로 20년째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영화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2018) 포스터>


영화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Женщины ГУЛАГа)’ 탄생

이 영화는 1980-90년대 교정노동 수용소 굴라크에 수용되었다가 생존한 6명의 여성들의 처절했던 실제 삶과 기억을 인터뷰를 통해 여실히 담아내고 있다. 이 영화는 5년 동안 제작되었다. 이는 소비에트 정권의 탄압의 역사를 이를 실제로 겪은 이들의 구술과 증언을 통해 기록한 것으로 개인의 경험을 통해 소비에트 말기의 상황에 대한 미시사적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연구 자료로써도 매우 가치가 높다고 본다.

특히 이 영화는 그녀의 모국 러시아의 근대사 안에서 그녀의 가족사와 긴밀하게 관계있는 사건을 주제로 하고 있다. 영화배우였던 그녀의 할아버지는 실제로 굴라크에 수감되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학대에 시달린 희생자였다. 석방 이후, 그는 추방을 당했으며, 배우활동에도 많은 제약이 따랐다. 이와 함께 트라우마에도 시달렸다. 이렇게 소비에트 정권의 대숙청의 물결 아래 실제로 많은 희생자들을 나은 굴라크는 이에 대한 진상규명, 특히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의 명예회복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다. 그녀는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사람들이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재고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이 영화의 제작을 결심했다고 한다. 특히 이 영화는 미국의 휴스턴 대학교 경제학 교수이며 꾸준히 러시아와 소련에 대한 글을 집필해 온 폴 로데릭 그레고리(P.R. Gregory, 1941~)가 2013년에 출간한 동명의 소설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 5가지 주목할 만한 삶의 초상(Women of the Gulag: Portraits of Five Remarkable Lives)』를 모티브로 영화화 한 것이다. 이 밖에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А. Солженицын, 1918~2008)의 작품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수용소 군도에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 영화의 제작과정에서 러시아의 무비판적 역사교육, 그로인해 지속 되는 러시아인들의 수동적 역사인식과 끊임없이 충돌해야했고, 그 안에서 끝없는 자기성찰과 이 영화를 제작해야하는 동기부여가 가능했다고 한다.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서 러시아 인들 뿐만 아니라 이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굴라크 생존자들의 실제 증언을 통해 굴라크의 실체를 파악하고 소비에트 시기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영화는 안나 아흐마토바의 의미심장한 시 구절로 시작한다. 

Две России глянут друг другу в глаза:

та, что сажала, и та, которую посадили

수감을 시킨 러시아와 수감을 당한 러시아

두 개의 러시아가 서로를 마주보게 될 것이다.

-Анна Ахматова- 


이러한 영화에 투영된 그녀의 간절함이 그녀의 영화적 능력을 전 세계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비록 그녀가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최종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그 성과는 충분하다고 본다. 아카데미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된 이후에, 이 영화에 대한 러시아 측의 반응은 양분된다. 이 영화를 러시아 영화로 만들기 위해 러시아 기업들로부터 러브콜이 있었다고 한다. 반면에 언론은 이 영화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다. 현재 야로프스카야는 전 세계의 대학에서 이 영화를 상영할 수 있도록 홍보메일을 발송하고 있으며, 전 세계의 수많은 대학들이 상영을 희망하는 이메일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미래세대들에게 20세기 구소련의 참혹한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리고 싶어 하는 그녀의 선택은 역시 탁월하다. 우리나라에는 2019년 제16회 EBS 다큐영화제(EIDF)에 공식적으로 초청되었지만, 우리나라 대학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었는지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 


<영화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 제작현장>
출처: https://www.themoscowtimes.com

 
역사는 반복된다: 소련의 교정노동수용소총국 굴라크(ГУЛАГ)

소련의 스탈린 시기에 만들어진 교정노동수용소총국 굴라크(Главное управление исправительно-трудовых лагерей)는 1923-1967년까지 공식적으로 존재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그 이후에는 형집행총국 ГУИН(Главное управление исполнения наказаний), 소련 해체 이후 2004년에는 연방형집행청 ФСИН(Федеральная служба исполения наказаний) 등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그 상황은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지만 이 시스템은 현재까지도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존속해 오고 있다.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굴라크와 비슷한 형태의 수용소들을 볼 수 있다.

사실 굴라크의 희생자들의 증언을 러시아 인권단체의 조작이라며 이를 철저히 부정하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소비에트 시기 정치범들의 수용소였던 굴라크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계속되어 왔다. 특히 미국의 정통한 러시아 연구자로서 프린스턴 대학교 정치학과 명예교수인 스티븐 F. 코헨(S. F. Cohen, 1938~2020)이 30년간 러시아를 오가며 굴라크 생존자들의 자료들을 집대성하여 2010년 출간한 저서 『돌아온 희생자들: 스탈린 이후 굴라크 생존자들의 증언(The Victims Return: Survivors of the Gulag After Stalin)』를 보면 그 생생한 증언들을 볼 수 있다.


<실제 여성 굴라크 수용소의 모습>


야로프스카야 감독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감독으로서 구소련 시기에 굴라크라는 수용소에서 자행되었던 참혹함을 알리고 후대에 이러한 역사가 반복 되지 않기를 바라는 성찰의 의미를 그녀만의 언어로 영화에 담아냈다. 그녀의 행보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후속 프로젝트로 이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미나리를 한국영화(?) 미국영화(?)로 규정하기 어려운 것처럼 이 영화 또한 감독이 러시아 출신이고, 러시아를 주제로 한 영화라고 해서 한마디로 러시아 영화라고 규정지을 수 있을까? 특히 요즘처럼 여러 문화들이 녹아들어 경계가 모호해진 탈경계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의 역사 속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들은 존재해 왔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비극이 인류 역사상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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