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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작가 블라지미르 막시모프에 대한 소고(小考)
분류문학
국가 러시아
날짜2020-09-01
조회수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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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비통하다’의 의미를 내포한 러시아 형용사 고리키(горький)를 자신의 필명으로 삼은 막심 고리키(Максим Горький/1868-1936))는 러시아 문학사에서 ‘어린 시절의 극빈의 고통’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로 니즈니 노브고로드(Нижний Новгород)에서 아주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막심 고리키는 3살 때 부친이 사망하자 외조부모가 맡아서 키우게 되지만, 외갓집의 경제적 사정이 너무 어려워서 어린 시절 부터 성년이 될 때 까지 변변한 생활을 전혀 영위하지 못 한 채 막노동 현장을 전전하면서 스스로 삶을 책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러시아 연방 서부 타타르스탄 공화국의 수도인 카잔에 정착하여 여러 해 거주하다가 청년시절에 그곳을 떠나 잡일을 하며 러시아 남부 지방을 정처 없이 옮겨 다니면서 부랑자 생활을 여러 해 동안 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직접 겪은 이러한 쓰라린 경험으로 인하여 고리키는 러시아의 헐벗은 민중의 궁핍한 생활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게 되었다.


 <막심 고리키>


유태인 작가들을 중심으로 1970년대를 전후해서 소련을 떠난 3차 디아스포라 작가들 중에서 고리키와 비슷한 인생 경험, 전기적으로 고리키의 길을 따라 갔던 인물이 블라지미르 막시모프(В.Е.Максимов/1930-1995)이다. 고리키는 또한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막시모프의 문학 감수성을 키우는데 이바지한 러시아 작가로도 알려져 있는데, 막시모프는 유년 및 청년시절의 참담한 경험을 타인의 시선에서 동병상련의 마음을 기대하기라도 한 듯 고리키의 작품의 독서에 어린 시절부터 매달렸고(비록 나중에 고리키에 대한 관심을 조금 잃어버리지만), 이러한 다작의 독서의 결과는 인생의 시련 및 극복과정과 결합되면서 문학적인 관심이 자연스럽게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Ф.М.Достоевский)의 러시아 정교로 이동하게 만들었다. 문학적인 측면에서도 고리키와 막시모프는 연관성 있는데, ‘대지주의적 작가들과 비교되기도 하는 막시모프의 언어는 고리키의 사실주의적 수법을 계승하여 독자적이고 무거운 문체를 획득’하였다고 러시아 문학사에서 평가 하고 있다. ‘사악한 이념에 맞서 분투하는 신성한 작품’의 창작을 작가적 신념으로 삼았던 막시모프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에게 가해졌던 극도의 운명적 불운과 스탈린 시절 등 현대 러시아 역사의 비극 등을 체험하면서 영적 및 도덕적 열망의 중심에 서 있었던 작가였다. 이러한 블라지미르 막시모프의 종교적 갱생의 소망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향으로 20세기 단순한 현대 러시아 디아스포라 작가를 넘어 막시모프를 러시아 정교회 작가로 자리매김 하게 만들었다. 독자들은 막시모프의 작품들에서 작가가 창조한 정교회 사제(혹은 성인), 신앙을 위해서 고통 받은 수난자의 고귀한 형상들에서 러시아 정교신앙을 통한 영적 깨달음에 대한 작가의 깊은 열정을 느낄 수 있다.


<블라지미르 막시모프>


3차 디아스포라 작가 블라지미르 막시모프는 누구인가?

러시아 문학사에서 일반적으로 디아스포라를 세 개의 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러시아 혁명과 내전 이후 확립된 공산주의 체제를 용인할 수가 없어서 디아스포라 길을 선택한 작가들의 러시아의 탈출은 첫 번째 시기로서 가장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1차 디아스포라 작가들은 처음에는 주로 베를린에서 활동하다가 독일의 정치적 상황의 변화와 함께 프라하를 거쳐 파리로 이주한 세대들이다. 이들은 망명 전 러시아에서의 작가로서의 입지의 구축여부, 19세기 러시아 고전 산문의 전통의 계승여부 및 경도되는 사조에 따라서 ‘구세대’ 와 ‘신세대’로 나눠진다. 1차시기에 이어진 2차 디아스포라는 ‘2차 세계대전과 그 진행 과정 중, 그리고 대전후에 망명 작가들의 행렬이 이어진 것’을 말한다. 이들 작가들은 ‘제한 된 숫자의 인테리겐차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전시대의 망명가들에게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었다.’

1966년 작가 겸 언론인인 발레리 타르시스(Валерий Тарсис)가 공식적으로 외국으로 떠나는 것이 허용되면서 시작된 3차 디아스포라는 이전의 디아스포라 문학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양한 견해와 신념을 지니고 있었던 3차 디아스포라 작가의 대부분이 소비에트 시절에 태어나서, 어린 시절 및 청년시절을 사회주의 체제에서 보냈지만 공산주의라는 전체주의적 이념에 대한 거부를 명확히 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소비에트권력과 소비에트 정부에 대한 철저한 불인정의 자세를 견지한 것이다. 막시모프도 다른 3차 디아스포라 작가들처럼, 자신을 항상 소비에트 체제에 맞지 않는 반체제 인사로 여겼다. 그는 자서전적인 경향을 나타낸 자신의 많은 작품을 통해서, 자아가 투영된 주인공들의 언어를 통해 신랄하게 공산주의를 비판했다. 시대는 틀리지만 고리키처럼 소비에트 체제의 러시아 민중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경험하면서 탐구한 러시아 국민들의 솔직한 감정, 즉 공산주의 혁명의 실제 결과에 대한 실망과 이데올로기로서의 마르크스주의의 완전한 붕괴의 예감은 막시모프의 많은 작품의 결론으로 자주 등장한다, 결국 막시모프는 평생 공산주의를 체제를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막시모프의 동시대 문학 비평가들은 작가의 반공산주의적 정치적인 태도를 보인 또 다른 원인으로 공산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인 삶을 살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을 거론하고 있다. 막시모프의 할아버지는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철도군사 위원이었지만 강제노동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수용소에서 나온 이후 그는 비참한 삶을 살았다. 또한 10월 혁명이후 발생한 내전에서 적군 편에 가담한 작가의 아버지(Самсонов Алексей Михайлович)는 공산당 당원이었고 트로츠키주의 조직에 속해있었지만 소비에트 정부에 의해서 1927년과 1937년에 두 번 체포 되었는데, 마지막 체포 이후 영영 집으로 귀환하지 못했다.

본명이 삼소노프 레프 알릭세예비치(Самсонов Лев Алексеевич)인 막시모프는 작가, 편집자, 출판인으로 활동하였다. 러시아의 방대한 지역을 유랑한 이후,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평생 떠돌아다니는 디아스포라적인 삶을 예상이라도 한 듯 막시모프의 삶은 어려서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상기했듯이, 단순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실종 된 이후 가족의 비극은 계속 되었는데, 그의 형제 중 형은 어렸을 때 죽었고, 작가의 누나마저 1940년에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그래서 아주 어린 시절부터 혼자가 된 막시모프는 매우 어려운 재정 상황에서 살았는데, 특이하게도 막심 고리키처럼 독서는 많이 했다. 이러한 과한(?) 독서가 독이 되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그렇게도 좋아한 고리키의 작품의 영향으로 막시모프는 또 다른 미지의 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새로운 운명을 찾기 위하여 방랑의 길을 나섰다. 즉 가출한 것이었다. 그러나 막시모프에게 인생의 행운 같은 것은 없었다. 가출의 끝은 고아원 행이었다. 당연히 고아원을 탈주한 막시모프는 또다시 구금되어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교화소에서 일정시간 복역했는데, 이 시기에 막시모프는 자신의 본명을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했다. 끝날 것 같던 불운은 계속 막시모프를 떠나지 않고 스멀스멀 다시 그의 운명 속으로 기어 들어와서 회복하기 쉽지 않는 타격을 막시모프에게 가했다. 참으로 희한한 법 죄목인 ‘방랑죄’로 막시모프는 7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때 그의 나이는 열여섯 살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7년 형기를 다 채우지 않고 1년 반 이후에 풀려난 막시모프는 러시아의 북쪽 지방으로 이주했다. 이 시기 이후부터 고리키가 그랬던 것처럼 노동을 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다. 지독한 불행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었지만 불운이 오는 빈도는 많이 줄어들고 있었다.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Красноярский край)에 있는 자치구 타이믜르(Таймыр)에 살면서 수색과 노동일을 하면서 막시모프는 아마추어 예술 활동에 참여했다. 그리고 막시모프에게는 약속의 땅으로 여겨졌던 북카프카즈의 쿠반(Кубан)으로 이주했다. 집단 농장에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언론과 문학관련 일에 종사한 막시모프는 시집 <시계의 세대>(Поколение на часах)를 자신의 문학 데뷔 작품으로 쿠반에서 출판하였다. 그때가 그의 나이 스물한 살 때였다. 그리고 모스크바로 이사 한 후 그는 <문학신문>(Литературная газета)에 본격적으로 작품을 펴내기 시작했다.
 

디아스포라와 블라지미르 막시모프의 문학

러시아 민중의 심리와 러시아 영혼의 아주 능숙한 연구자로서 평가 받고 있는 막시모프의 문학은 ‘고통과 유혹을 통해 궁극적인 구원에 이르는 과정’의 모색이다. 양식화된 토착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그의 산문의 언어적 특징은 ‘선과 악, 빛과 어둠 사이의 대비에 중점을 두는 작품의 구조’와 잘 어울리는 사슬이 되어 독자들을 옭아맨다.

막시모프의 가장 대표작은 <창조의 7일>(Семь дней творения)과 <검역>(Карантин)이다. 이 작품들은 막시모프에게 문학적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지만, 이 작품들의 검열의 문제가 발단이 되어서 결국 막시모프는 러시아를 떠나 서구로 디아스포라의 길을 선택했다. 스토리는 이러했다. 막시모프의 <창조의 7일>, 그리고 조금 나중에 창작된 <검역>은 소련 당국의 검열을 통과하지 못해서 출판이 허용되지 않았는데, 막시모프는 이 두 작품 모두를 비밀리에 서구에서 출판했다. 후 폭풍은 거세게 불어, 1973년에 막시모프는 소련작가 동맹에서 제외되었고, 곧이어 1974년에 소련 당국은 막시모프를 러시아 영토로부터 분리결정을 내렸다. 막시모프는 할 수 없이 프랑스로 이주했고, 소련정부는 1975년에 그의 소련 시민권을 박탈했다. 망명 이후 막시모프는 자전적 소설 <미지의 장소로부터의 이별>(Прощание из ниоткуда)과 <불청객을 위한 방주>(Ковчег для незваных)를 출간하기도 했다.

세계의 여러 언어로 번역된 막시모프의 작품은 소련밖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이어서, 그의 대부분의 작품이 들어가 있는 6권으로 된 작품집이 독일에서 출판되기도 하였다. 막시모프가 러시아 디아스포라 문학사에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점은 러시아 디아스포라 문학잡지 중 하나인 <대륙>(Континент)을 창간했다는 것이다. 이 잡지는 한때 가장 영향력이 있는 러시아 망명 문학잡지였다. 


<블라지미르 막시모프의 『창조의 7일』>


고향에서 창작한 <창조의 7일>은 막시모프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면서 5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으로서 ‘러시아 혁명시기의 라쉬코프가(лашковская)의 연대기를 기록한 것으로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창작된 소설이다. <창조의 7일>의 중심에는 케케묵은 공산주의자 표트르 라쉬코프(Петр Лашков)의 형상이 있는데, 소설 속에서 어머니 러시아에 대한 사려 깊지 못한 실험은 그를 암울한 삶의 결과로 이끌고, 손자 바짐의 질문(다른 사람들이 피를 대가로 하는 잔인한 장난에 빠지지 않도록 아마도 이 땅을 완전히 떠나는 것이 우리, 라쉬코프가(лашковская)의 운명이겠지요?)은 독자들에게 가슴 깊은 감동과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6일 동안 이루어지는 사건, 즉 러시아에 존재하는 ‘악’을 상징하는 콜레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검역>은 막시모프의 종교적 사상이 짙게 배여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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