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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아이스링크의 스파르타쿠스: 빅토르 안(Виктор Ан)
분류기타
국가 러시아
날짜2020-04-16
조회수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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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코로나 19 사태로 2020년 도쿄올림픽이 올림픽 역사상 1년 연장 개최가 확정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일각에서는 40년마다 반복되는 올림픽의 저주가 일본에 내린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1940년의 동계올림픽과 하계올림픽은 각각 삿포로와 도쿄에서 개최예정이었으나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로 일본은 개최권을 반납했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결국 올림픽은 취소되었다. 40년 후인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으로 서방국가들의 집단 보이콧으로 반쪽짜리 올림픽을 치렀다. 34년 지난 2014년 소련은 러시아로 제22회 소치 올림픽을 개최하게 되었다. 소치올림픽은 유독 대한민국과 관련된 많은 이슈를 낳으며 우리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대한민국 여자 컬링 국가대표팀이 처음 올림픽에 출전하였고, 피겨여왕 김연아가 완벽한 연기를 펼쳤음에도 은메달에 머물러 심사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품은 우리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소치 올림픽에서의 이슈메이커는 공식적으로는 보다 나은 환경에서 운동하고 싶다며 러시아로 귀화하여 빅토르 안이라는 러시아 이름과 러시아 국적으로 출전하여 쇼트트랙에서 금메달 3개와 동메달 1개 총 4개의 메달을 획득한 안현수 선수일 것이다.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빅토르 안>

안현수가 빅토르 안(Виктор Ан)이 되기까지

우리나라에서 동계 스포츠는 몇 개의 주력 스포츠를 제외하고는 그 저변이 넓지 않은 편이다. 최근 피겨스케이팅, 컬링, 스켈레톤 등 한국선수들이 올림픽 무대에 출전하여 선전하고 있는 동계스포츠의 종목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 중 쇼트트랙은 대한민국의 메달밭이라고 할 수 있는 주력 스포츠 중 하나이다. 2000년대 한국 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중심에 안현수 선수가 있었다. 그는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개인 1000M, 1500M, 5000M 계주에서 금메달 3개와 개인 500M에서 동메달을 거머쥐며 올림픽 3관왕에 올랐다. 그는 아웃코스에서도 최고의 속력으로 달리다가 밖으로 밀리지 않고 인코스로 파고들며 추월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품 기술의 구사가 가능한 세계최고의 선수이다. 스피드 스케이트 경기와 다르게 여러 선수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경쟁해야 하는 쇼트트랙은 특히 체격이 큰 서양선수와의 몸싸움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안현수는 철저하게 자신만의 기술로 그들과 정면승부를 건다. 아웃코스 출발이 불리하기에 대부분의 선수들이 아웃코스 출발을 꺼리지만 당당히 자신의 기술로 승부하겠다는 자신감으로 아웃코스 출발을 자처하는 선수가 안현수이다.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고급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선수라고 평가받는다.

쇼트트랙은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대회등 세계대회에서 획득하는 메달의 수가 많기에 그나마 다른 종목보다는 선수들에 대한 지원이 나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훈련에만 집중을 해도 모자를 시간에 언제 팀이 해체 될 지 모르는 불안감, 안정적인 훈련장의 확보, 스포츠 선수의 인권보호, 파벌문제 등 운동과 훈련을 둘러싼 다른 여러 가지 문제들과 싸워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 현재 대한민국 스포츠 선수들이 직면한 냉혹한 현실이다.       

안현수 선수는 2006년 올림픽 3관왕에 올랐지만, 그 이후 부상과 2010년 벤쿠버 올림픽 불참, 2011년 4월 한국 국가대표선발전 탈락, 소속팀인 성남시청 빙상팀의 해체 설상가상으로 빙상계 내 파벌싸움에 연루되어, 그 과정에서 빚어진 대한빙상연맹과의 갈등이라는 여러 가지 악재가 동시에 겹치면서 갈 곳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현수는 2011년 8월 17일 러시아로 귀화신청을 하기에 이른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보에 여러 루머가 돌았지만, 그는 그동안 해외에서 숱한 러브콜을 받고 있었음에도 한국선수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운동선수로서 운동에만 집중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2006년 제20회 토리노 올림픽에서 안현수>

 
빅토르 안 러시아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다

사실 처음 그의 러시아행은 장기적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러시아측에서는 그의 귀화를 조건으로 내세웠고, 그를 통해 쇼트트랙 강국인 한국의 훈련 방법과 그의 기술을 전수받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의 안현수의 여러가지 복합적인 상황과 러시아의 파격적인 조건이 그의 러시아로의 귀화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2019년 12월 29일 당시 러시아 드미트리 메드베제프 대통령의 승인으로 안현수의 러시아로의 귀화가 받아들여졌다. 빅토르 안이라는 이름은 소련의 전설적인 고려인 록가수 빅토르 최의 이름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러시아로 귀화한 직후, 2012년 그의 성적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세계선수권에서는 메달권에서는 이미 멀어져 있었기에, 계주 경기에만 참가했을 정도였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기간이었겠지만 ‘쇼트트랙의 황제’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던 빅토르 안에게 성적부진은 큰 스트레스의 요인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2011년 안현수의 귀화문제는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달구었지만, 어느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지기 시작했을 무렵, 러시아에서 빅토르 안은 제2의 전성기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동안 불안정 했던 기술들도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보강하여 안정화시켰다. 단기간에 그는 다시 예전의 컨디션을 회복하여 2013-14년 세계선수권과 유럽선수권 등 국제무대에서 다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에 한국 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한국대표팀은 안현수의 실력을 알기에 긴장을 늦출 수 없을 것이다. 드디어 안현수는 빅토르 안이라는 이름으로 러시아 국적으로 2014년 제22회 소치올림픽에서 출전하여 토리노 올림픽 이후 8년 만에 또 다시 3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쇼트트랙 분야 최다 올림픽 메달 보유자가 되었다. 동시에 단숨에 러시아의 국민스포츠 영웅의 반열에 올랐다. 반면 대한민국 빙상계는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부진한 성적과 함께 정부와 국민들로부터 안현수를 러시아로 떠나게 만들었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빅토르 안이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그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빙상계의 파벌주의, 줄 세우기, 심판부정 등의 민낯이 드러났고,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점들의 해결해야 한다는 내부의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외부의 질타도 받아야 했다. 반면에 러시아의 철저한 선수 관리 시스템과 선수가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던 러시아가 안현수를 다시 세계 정상으로 복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러시아는 개최국이라는 장점을 이용하여 빅토르 안의 금메달 3개를 포함하여 20년 만에 동계올림픽에서 1위를 탈환하는 스포츠 강국의 위엄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러한 공로로 빅토르 안은 올림픽 이후 푸틴 대통령에게 조국 공헌 훈장 4급을 받았다.


<소치 올림픽 이후 푸틴 대통령에게 훈장을 받은 안현수>

마지막 2018 평창 올림픽 출전의 좌절

2014년 소치올림픽 이후, 빅토르 안은 러시아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으며 더 이상의 스캔들은 발생하지 않는 순탄한 길이 계속 될 듯이 보였다. 그러나 2016년 세계반도핑기구 (WADA) 러시아 도핑 파문 관련조사 보고서인 맥라렌 리포트가 발표된 것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가 2011-2015년까지 벤쿠버와 소치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을 대상으로 조직적으로 “공작부인”이라는 스테로이드 칵테일을 선수들에게 복용시켰고, 도핑테스트 결과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약물을 복용한 선수들의 명단이 함께 기재되었다. 이 보고서에 빅토르 안의 이름이 언급되었다는 이유로 그가 고대하던 고국에서 개최되는 2018년 평창올림픽에 그의 4번째 올림픽 출전이 무산되었다. 평창올림픽 이후 은퇴를 계획하고 있던 빅토르 안은 그의 선수 인생의 마지막인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는 마음과 각오는 남달랐을 것이다. 그 계획이 무산되었을 때의 상실감 또한 컸을 것이다. 맥라렌 보고서의 여파로 러시아는 소치 올림픽에서 11개의 메달을 상실하며 4위로 밀려났다. 그리고 2017년 12월 5일 IOC는 러시아의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을 금지했다. 실제로 초기에 이 명단에는 빅토르 안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나, 갑자기 평창올림픽 개최가 가까워 오자 IOC가 빅토르 안에게 평창올림픽 출전 불가통보를 한 것이다. 이러한 IOC의 강경대응에 러시아 푸틴대통령은 2018년 러시아의 월드컵 개최를 의식해서인지 평창올림픽 보이콧 선언을 하지 않고 IOC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러시아에서는 음모론을 제기하며 스포츠 중재 재판소(CAS) 제소 의견을 밝혔지만, 실질적으로 평창동계올림픽 이전에 결과가 나오기는 힘들기에, 빅토르 안의 평창올림픽 출전은 결국 좌절 되었다. 아마도 마지막 올림픽 출전이 무산되면서 빅토르 안의 은퇴 결심을 굳힌 듯 보인다.

    

은퇴 선언 이후, 새로운 시작

2018년 8월 빅토르 안은 지금까지 그의 인생의 전부였던 선수 생활의 종지부를 찍는 은퇴를 선언한다. 러시아 국가대표팀 코치제안도 있었으나 거절했다고 한다. 지난 6-7년간 빅토르 안의 인생은 이름이 안현수에서 빅토르 안으로 또 국적이 대한민국에서 러시아로 바뀌는 큰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6년간의 러시아 생활동안 인생의 큰 변화가 있었다. 이와 더불어 가족이 생겼고 가장이 되었다. 2017년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딸 제인과 출연했고, 2018년 군대 체험 리얼리티 쇼 ‘진짜사나이’에 출연하면서 은퇴 이후 스포테이너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소문들이 무색하게 그는 2019년 2월 다시 선수로 복귀하여 2022년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 계획을 밝혔다. 빅토르 안은 인터뷰에서 은퇴 직전인 2017-18년 2년간 성적이 부진하여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나 선수생활을 계속하기를 원하고 내가 할 수 있을지 도전해 보고 싶어 선수로 복귀했다고 한다. 향후 컨디션에 맞춰 훈련을 다시 재개하고 결과를 지켜볼 예정이라고 한다. 빅토르 안은 2019년 9월 러시아빙상연맹 오픈컵 대회에서 1000M 1위를 차지했다. 러시아대표팀 그리고리예프 감독은 빅토르 안의 실력은 아직 건재하며, 베이징 동계올림픽까지는 2시즌이 남아있어, 안선수의 나이도 적지 않고 또 IOC가 맥라렌 보고서에 언급된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금치 처분을 풀어주어야 안선수의 향방도 확실해 진다.

현재 빅토르 안은 아이의 교육문제로 러시아정부로 부터 받은 아파트를 처분하고 한국에 귀국하여 거주하고 있다. 러시아로 귀화 당시 취소된 대한민국의 국적을 회복하는 일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에 베이징 올림픽 출전이 확실시 된다면 대한민국의 국적회복은 잠시 보류해 두어야 할 것이다. 빅토르 안은 러시아로 귀화하여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러시아의 스포츠사 또 올림픽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스포츠인의 국적, 인권 등 우리사회에 많은 담론을 남긴 인물이다. 그에게 닥친 역경과 시련을 인내와 끈기로 이겨내고 세계가 인정한 출중한 실력을 갖춰 쇼트트랙의 정상에 섰다. 2022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빅토르 안의 활약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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