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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러시아 서커스, 오락문화에서 공연예술로
분류공연예술
국가 러시아
날짜2020-01-01
조회수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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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로서 서커스

고도의 신체 유연성과 표현력이 요구되는 발레, 서커스, 리듬체조는 러시아의 자랑이다. 이는 모두 음악의 리듬과 선율에 따라 신체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또 허리, 다리 등의 동작에서 기이할 정도의 신체 관절 가동범위, 고난도 점프와 턴을 보여주는 장르(종목)들이지만, 대중들에게 문화적 이벤트로서 감상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발레와 서커스일 것이다. 리듬체조의 경우는 러시아가 최고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는 최강국임에도 우리가 올림픽 기간 TV 중계를 통해서만 마주할 수 있는 것으로, 이는 대중의 문화 체험 대상이 아닌 승부를 가르는 스포츠 종목이다. 반면 발레와 서커스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공연예술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위계적 구도 속에서, 그리고 역사적으로 귀족들이 누려왔던 '고급문화'와 배고픈 광대들이 만들어 내는 '오락문화'라는 이분법적 인식 속에서 보통 이 두 공연예술 장르를 비교의 대상으로 삼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럼에도 러시아를 방문한 대부분의 관광객들에게 이 두 장르의 극장이 주요 관광 코스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는 점을 볼 때, 발레와 서커스가 러시아 공연문화의 두 가지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러시아 언론에 보도된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관광지’ 목록에 볼쇼이와 마린스키극장이 최상위권에 머물러있기에 발레 공연의 인지도가 더욱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요 발레극장의 공연 티켓이 어마어마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재정적 여력이 있는 여행객들이라 하더라도 표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 종종 놓이게 된다. 이런 경우 많은 이들은 발레 대신 서커스의 무대로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서커스 무대를 찾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발레는 쉽고 지루한 예술이라는 통념이 아직까지 존재하지만 서커스는 고도의 긴장감과 다양한 볼거리. 기이한 동작들이 우리의 흥미를 자극하는 종합 문화공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모로 대중들에게 접근성이 용이한 러시아 공연예술로 자리하고 있는 서커스는 어떻게 러시아 사회와 문화 속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는가?

 

러시아 서커스 공연의 시작

러시아 서커스는 광대의 출현과 함께 7세기부터 그 역사를 써내려 왔으나, 현대적 의미의 서커스 공연은 17세기경 러시아에 유입되었다. 유럽에서 온 유랑 곡예사들이 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신체의 균형을 잡는 기적을 선보였고, 감쪽같이 속이는 마술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러시아 아티스트들은 직접 재능있는 사람들을 모아 극단을 만들려는 움직임을 시작했고, 그 후 백 년이 지난 즈음 러시아에 서커스 전문 공연단이 등장했다.

러시아에서 최초로 서커스단을 창립한 이는 니키틴 삼형제(Братья Никитины)였다. 드미트리(Дмитрий), 아킴(Аким), 표트르(Пётр)라는 이름의 삼형제는 농노 알렉산드르 니키틴(А. Никитин)의 아들들로 태어났다. 1860년대 초반 알렉산드르 2세의 농노해방령이 공표되고, 알렉산드르 니키틴은 인격적, 육체적 예속으로부터 해방됨에 따라 자유를 얻어 오르간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가 되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니키틴 형제는 일찍이 서커스라는 경이로운 삶의 현장에 뛰어들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들을 데리고 볼가 지역을 유랑하며 저글링과 음악공연으로 생계를 유지했는데, 아이들은 이 소규모 공연에서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은 각자의 역할을 담당하며 집안 경제에 기여해야 했다. 아킴은 마술사이자 광대 역할로 다양한 악기를 연주했고, 표트르는 청중들에게 놀라운 고난도의 점프와 공중그네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형제 중 맏형이었던 드미트리는 발랄라이카 연주자이자 서커스를 진행하는 광대로 공연무대를 채웠다.

그들의 유랑극단 생활은 러시아 서부에 위치한 펜자 현에서 멈췄다. 1873년 그들이 러시아 최초의 서커스 간이공연장 ‘얼음궁전(Ледяной дворец)’을 오픈했기 때문이다. 형제들은 펜자의 수라 강변 얼음 기둥에 단순하고 볼품없는 천막을 덮어 간이극장을 마련했는데, 이렇게 러시아 역사상 첫 번째 서커스 공연이 준비되었다. 그 3년 후, 형제들은 사라토프에 최초의 서커스 전용 상설극장을 설립하기 위해 해당 지역 사업가 엠마누엘 바라네크(Э. Баранек)로부터 건물 한 채를 구입했다. 미트로파니예브스카야 광장에는 천 지붕의 둥근 목조 건물이 지어졌고, 그곳엔 ‘니키틴 형제의 첫 러시아 서커스’라는 광고문구가 붙었다. 이 극장에서는 러시아 아티스트들만이 공연할 수 있었는데, 이는 니키틴 형제들에게 매우 중요한 조건이었다. 다른 예술 장르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당시 러시아 서커스 역시 외국 아티스트들이 점유하고 있었고, 쇼의 양식 역시 외국의 것을 모방하는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니키틴 형제들은 러시아 민족의 특성, 취향, 관습 및 수 세기에 걸쳐 형성된 러시아적 삶의 방식을 바탕으로 당시 공연장을 지배하고 있던 이국적 양식과 러시아적 양식을 비교 분석했다. 그들은 서구인들이 ‘러시아적’이라고 말하는 양식을 찾아 서커스 예술에 덧입히고자 했다. 니키틴 형제들은 공연단이 민족의 정체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자신들만의 시간과 기술, 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고, ‘러시아인들에 의한 러시아 공연’을 제작하고자 했던 것이다.

 

<사라토프, 니키틴 형제 서커스 극장>

어린 시절부터 그들이 축적해온 경험과 기술의 결과는 사라토프 지역주민들에게 놀라운 경험을 선사했던 것 같다. 러시아의 전설적 전쟁영웅 바실리 차파예프(В. Чапаев)의 이미지를 만든바 있는 소련 민중예술가 보리스 바보치킨(Б. Бабочкин)은 니키틴 형제의 서커스 장면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는 여름마다 서커스단이 공연하는 큰 지방 도시에서 자랐습니다. 이는 사라토프의 니키틴 형제가 펼치는 서커스였습니다. 이 여름날의 서커스 공연은 시장의 광장에서 펼쳐졌습니다. 청중들의 박수갈채와 즐거운 웃음, 채찍 소리와 사자의 포효가 있던 여름날의 서커스는 성대하고 화려하게 울려 퍼진 음악과 함께 밝고, 독특하고, 놀랍고, 화려한 풍경이었습니다. 서커스장의 벽 너머에는 신비롭고 매혹적이며 마술적이고 비현실적인,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삼형제는 그 후 모스크바, 키예프, 아스트라한, 바쿠, 카잔, 니즈니 노브고로드, 하리코프, 오데사, 민스크 등의 주요 러시아 도시에 서커스 극장을 설립했고, 20세기 러시아 전역은 ‘경이로운’ 서커스 열풍을 맞이했다.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의 서커스

페테르부르크에 서커스가 유입된 것은 유명한 오스트리아 서커스 극단주이자 아티스트 카를 마르쿠스 기네(Карл Гинне)의 유랑 극단이 페테르부르크에 등장한 것이 그 출발점이었다. 기네는 유럽지역에서 서커스극단의 실패를 경험하고 러시아로 활동의 무대를 옮겨와, 1863년부터 말 조련사이자 극단지도자로 활동했다. 그는 당시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페테르부르크에 서커스 시설과 단체가 부재하다는 사실에 놀라, 1867년 네바 강변의 낡은 건물을 구입했다. 그리고 자신의 사비를 출연해 서커스 공연을 위한 목재 임시건축물을 지었다. 그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났을 때 이는 이탈리아인이었던 그의 매형 가에타노 치니젤리(Гаэтано Чинизелли)에게 소유권이 넘어갔고, 이곳에는 새 주인이 지은 러시아 최초의 석조 서커스 공연장이 들어섰다. 이 극장은 당시의 매우 훌륭한 건축적 모델이었다. 건축가 바실리 케넬(В.А. Кенель)은 서커스의 독특한 음향을 만들어 내기 위해 돔형 구조를 적용했다. 내부는 화려한 장식과 보석으로 치장되었으며, 5천 명 이상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홀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개최된 공연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치니젤리가 투자한 비용이 막대한데 반해 그만큼의 수익을 얻지 못했고 급기야 파산하기에 이르렀다.

<페테르부르크, 국립 볼쇼이 서커스 극장>


모스크바에서 이루어진 첫 번째 서커스 공연은 1880년에 열린 쯔베트노이 불바르(Цветной бульвар)의 서커스 공연이었다. 설립자 알베르트 살라몬스키(А. Саламонскии)̆는 서커스 ‘프로그램은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출 것’을 주장하며 어린이 공연 제작사업에 뛰어들면서 서커스 역사의 주요 인물로 등극했다. 당시 성인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만이 독점적으로 운영되고 있던 상황에서 살라몬스키 서커스는 어린이들을 위한 일요일 공연, 아이들을 위한 선물이 마련된 크리스마스 공연을 개최해, 서커스를 동심의 세계가 구현된 환상적 공연의 길로 인도했다. 그는 1895년, <인형 요정(Фея кукол)>을 탄생시키기도 했는데, 이는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또한 살라몬스키 서커스 공연에는 레프 톨스토이(Л. Толстой), 알렉산드르 블록(А. Блок), 파벨 플로렌스키(П. Флоренский) 등의 유명인들이 종종 방문했었다는 기록들이 남아있기도 하다.

쯔베트노이 불바르 서커스의 흥행은 1913년, 살라몬스키가 사망하고 난 후 점차 하락세를 보였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19년 8월 26일, 레닌이 러소연방공화국에서 국립 서커스단 창립을 위한 법령에 서명하면서 이는 국립단체로 전환되었다. 1920-30년대 소련 정부는 아티스트들의 체계적인 훈련을 위한 서커스 예술 워크숍을 개최했고 서커스는 점차 해외 작품들의 흔적을 지워가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소비에트 체제선전용 작품이나 전쟁 주제의 작품들을 선보였고, 레오니드 쿠스코(Л. Куско), 미하일 슈이딘(М Шуйдин), 올렉 포포브(О. Попов), 레오니드 엔기바로프(Л. Енгибаров) 등의 서커스 스타들이 꾸민 공연무대에서는 국가를 위한 헌신과 투쟁의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모스크바, 니쿨린 서커스 극장>


오늘날의 러시아 서커스

소비에트 해체 이후 오늘날까지 러시아 아티스트들은 세계 서커스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러시아가 서커스 강국이라는 인식을 세계에 각인시키고 있다.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 러시아 홍보 담당자 예카테리나 뷰슈겐스(Е. Бюшгенс)에 따르면, 현재 1,300여 개의 단체를 보유하고 있을 만큼 세계적 인지도를 가지는 캐나다의 서커스 아티스트 중 약 20-25%가 러시아 출신이며, 유럽, 미국에 진출해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아티스트들도 적지 않은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 광대들의 해외 공연도 적지 않다. 특히 슬라바 폴루닌(С. Полунин)은 국내 관객들에게도 낯설지 않을 정도로 세계 무대를 누비며 활약하고 있다. 88년 런던 공연, 93년 프랑스 <태양 서커스> 단체와의 북미 순회공연 등이 성공하면서 명성을 얻은 그는 현시대 최고의 광대로 평가되기도 한다. 지금껏 세계 50여 개국에서 100만 이상의 관객들과 만난 그의 서커스 세계는 러시아 황금마스크상, 영국 로런스 올리비에상, 에든버러 페스티벌 비평가상 등을 두루 휩쓴 데서 그 작품성을 짐작할 수 있다.

러시아 내부의 상황을 보면, 최근 러시아 서커스 감독들은 몇 가지 장르의 예술을 결합한 또 다른 유형의 서커스를 자국민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가령 엘레나 폴디(Е. Польди)가 탄생시킨 ‘모스크바 엔틱 서커스(Московский Антикварный Цирк)’는 연극, 안무, 쇼의 요소들을 결합했다. 이 공연이 무엇보다 특별한 점은 거리공연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서커스의 출발이 유랑극단의 공연이었듯이 러시아 도시민을 위한 거리 서커스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페테르부르크에는 웁살라 서커스(Упсала-цирк)라는 특별한 사회 프로젝트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는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을 모아 거리의 삶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서커스 예술가로서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들의 공연은 곡예, 저글링, 현대무용 및 판토마임으로 구성된다. 이처럼 서커스는 오늘날 다양한 장르와의 융합을 실천하고 특유의 예술성을 선보이며 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종합예술공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엔틱 서커스와 웁살라 서커스>


서커스에 대한 생각

분명 서커스는 관중들에게 정서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긍정적인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기이하고 기묘한 볼거리로 시각적 만족도를 선사하는 오락문화를 넘어 서커스는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사건들이 줄기차게 일어나는 환상의 공간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현실적 광경들로 가득 채워진 서커스의 시공간은 일종의 간접 경험을 제공하며 우리를 상상력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러나 서커스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통념적 이미지가 분명히 존재한다. 극한의 훈련 없이는 결코 도달할 수 없을 만한 곡예의 난이도와 동물들의 현란한 묘기에서 느껴지는 ‘고통’, 이 모든 위태롭고 어색한 화려함에서 기인하는 정체 불분명한 ‘비애’가 그것이다. 얼마 전 10월쯤, 러시아에서 서커스 공연을 하던 곰이 조련사를 공격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러시아 주요 도시도 아닌, 이름조차 생소한 카렐리야에서 진행된 보로네쥬 서커스단의 공연이었음에도 국내 언론을 통해 이 기사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오늘날의 우리 사회가 서커스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70년대 초, 유럽에서 시작된 ‘아트서커스’가 기이하고 현란한 곡예, 동물 서커스를 중심적으로 선보였던 과거의 서커스와 차별화하며 세계 주요 공연예술로서 자리매김했듯이, 수 세기에 걸쳐 러시아의 고유성을 확보하며 성장해온 러시아 서커스가 무형 문화유산의 대상 중 하나로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잘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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