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인문한국) 사업단 홈페이지

HK(인문한국) 사업단

웹진 문화로(文化路) 내용 시작

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러시아 애니메이션 산업 동향
분류대중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0-01-01
조회수803
첨부파일

외국어를 공부해봤다면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본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명확한 발음, 절제되어 있는 행동과 언어는 외국어 초보자에게 안정감을 준다. 더욱이 러시아어와 같이 실제로 사용하는 말의 속도가 빠르고 정보의 양이 많은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공감할 법하다. 필자도 이와 같은 이유로, 지금도 물론 종종 보고 있지만, 유학생활 동안 심심치 않게 애니메이션을 즐겨봤던 것 같다. 일반 영화가 주로 어른들의 이야기와 삶을 다룬다면 애니메이션은 그 타겟층이 아동이다. 그렇다보니 순화되어 있고 보고나면 내심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마음이 따뜻해지는 콘텐츠들을 많이 다룬다. 언제 그칠지 모르는 눈과 옷깃을 후벼 파는 칼바람을 맞고 들어온 날이면 뜨끈한 차와 함께 짧게라도 애니메이션 방송을 시청하며 몸과 마음을 녹였던 기억이 난다.

‘살아있는’을 뜻하는 라틴어 낱말 ‘anima’에서 기원한 애니메이션(animation)은 정적인 장면들을 연속으로 이어 붙여 움직이는 것처럼, 착시효과를 이용해 만든 영상물이다. 러시아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시아 최초의 애니메이션은 1906년 마린스키 극장의 발레안무가였던 알렉산드르 쉬랴예프(Александр Ширяев)의 손에서 탄생한다. 움직이는 인형극 형태의 영상 속에는 잘 꾸며진 발레무대를 배경으로 사람이 아닌 인형들이 차례로 나와 움직이며 춤을 춘다. 당시 쉬라예프는 인형극 영상을 개인 소장하면서 지인들에게 보여주거나 무용학도들의 교육용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쉬랴예프를 시작으로 블라디슬라프 스타레비치(Владислав Старевич), 유리 메르쿨로프(Юрий Меркулов), 다닐 체르케스(Даниил Черкес) 등의 감독들이 평면 인형극을 기반으로 아동영화를 제작하며 그 맥을 이어갔다.

러시아 국영 만화영화 스튜디오 ‘소유즈물트필름(Союзмультфильм; 창립 당시 명칭은 소유즈제트물트필름(Союздетмультфильм))’이 1936년에 조직되면서 통합된 시스템 내에서 러시아 만화영화가 생산된다. 1945년에는 고골의 단편작품을 바탕으로 한 첫 장편 만화영화 ‘잃어버린 편지(Пропавшая грамота)’가 상영된다. 애니메이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동물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단편 영화도 잇달아 제작된다. ‘아, 잠깐만!(Ну, погоди!, 1969년)’, ‘위니 푸(Винни Пух, 1969년)’, ‘악어 게냐(Крокодил Гена, 1969년)’, ‘체부라시카(Чебурашка, 1971년)’는 세대를 불문하고 많은 러시아인의 사랑을 받으며 시리즈물로 만들어진다. 유리 노르슈테인(Юрий Норштейн) 감독의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여우와 토끼(Лиса и заяц, 1973년)’, ‘안개 속 고슴도치(Ежик в тумане, 1975년)’, ‘이야기들의 이야기(Сказка сказок, 1979년)’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이목을 끌게 된다. 소련이 붕괴되고 소유즈물트필름이 잠시 주춤하던 사이 파일럿(Пилот, 1988년 창립), 마스터 필름(Мастер-фильм, 1996년 창립), 방앗간(Мельница, 1999년 창립)과 같은 독립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이 애니메이션 산업 시장에 뛰어든다. 방송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1960년대부터는 텔레비전 방송용 버전의 만화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하는데, 텔레비전 기술 센터인 오스탄키노(Останкино)와 창작협회 ‘스크린(Экран)’이 방송용 애니메이션 제작의 터전을 닦는다. 각각 2004년, 2009년 ‘로시야-1(Россия-1)’ 채널에서 방영되기 시작한 ‘스메샤리키(Смешарики)’와 ‘마샤와 곰(Маша и медведь)’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러시아 애니메이션 캐릭터이다.

오늘날 국영 및 민간 러시아 애니메이션 제작소는 약 50여개로 집계된다. 러시아 애니메이션 제작사, 유통사, 배급 및 교육기관을 통합하는 애니메이션 영화 협회(Ассоциация анимационного кино)가 2012년에 조직되었고, 총 49개 기관이 함께 하고 있다. 문화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해당 협회는 러시아 애니메이션을 자국 및 해외 시장에 홍보하기 위해 주력을 다하고 있다. 당면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교육, 해외홍보, 애니메이션 개발을 담당하는 3개의 위원회가 운영되고 있다. 2018년에 열린 협회 정기총회에서는 소유즈물트필름 대표 율리아나 슬라쉐바(Юлиана Слащева)가 협회장으로 선출되어 러시아 애니메이션 산업 내 통합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애니메이션 산업 관계자들과 좌담회를 갖고 있는 푸틴과 정부 관계자들>
(출처: 리아 노보스티(РИА Новости), 2017.05.31)

블라지미르 푸틴(Владимир Путин) 대통령은 소유즈물트필름 스튜디오에게 애니메이션 산업단지 ‘러시아 애니메이션 하우스(Дом российской анимации)’ 조성을 위임하였다. 원래 애니메이션 산업단지 조성은 2011년에 처음 제안되었다. 당시 푸틴 대통령도 이 제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지만 적극적으로 대응하진 않았다. 2017년에 이르러서야 푸틴은 러시아 만화영화 산업 관계자들과 좌담회를 갖은 자리에서 관련 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약속하기에 이른다. 드디어 프로젝트가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애니메이션 하우스는 모스크바에 러시아 최대 규모로 들어설 것이며, 애니메이션 기법과 특수 소프트웨어 개발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만화영화 테크노파크 건립의 주축이 되는 소유즈물트필름은 보험료 인하와 수입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에 대한 소득세, 부가가치세 면제 등 세재혜택을 받을 것이다. 러시아의 국영통신사 타스(ТАСС)에 따르면 모스크바 시 정부도 대통령령의 산업단지 조성을 실행하는 차원으로 소유즈물트필름 스튜디오의 지방세를 25%까지 인하시키고, 면제받는 금액을 산업단지 조성에 투입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였다고 한다.

2017년 좌담회 당시 푸틴 대통령은 관계 부처와 회의를 거치지 않은 단계여서 정확한 액수를 콕 집어 밝히진 않았지만, 애니메이션 산업의 부흥을 위해 약 1억 원(5억 루블)까지 국가예산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2018년 말 열렸던 문화예술위원회 연례회의에서도 보조금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러시아 문화부에는 어린이 만화영화 지원과 관련된 조항이 명시돼 있지만, 집행기관인 러시아 연방 국립영화재단(Фонд кино)에서는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재단 내 어린이를 위한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별도의 지원과 예산의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재단이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듬해인 2019년 2월 러시아 대통령 관저인 크렘린 궁에서 연례회의 결과를 내놓는다. 발표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연방 국립영화재단이 아동 애니메이션의 제작과 배급을 별도로 지원하고, 2019년부터 자국 영화 산업 부흥을 위한 예산 보조금 규모를 매년 약 2억 원(10억 루블)씩 늘리도록 지시했다.

 

이처럼 최근 들어 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관심과 재정적 지원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러시아 내 애니메이션 영화 관람객 수가 다른 장르의 영화와 견주어 봤을 때 크게 뒤쳐지지 않는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위의 통계자료에서 보다시피 애니메이션 배급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수요는 꾸준히 증가 추세에 있다. 2010년대 베이비 붐 세대의 성장과 꾸준한 출산율 덕분에 아동 및 가족 관람객을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한 수요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러시아 애니메이션은 세계 시장을 무대로 그 성장 가능성을 확인했다. 2019년 12월 기준 ‘마샤와 곰’ 시리즈의 ‘마샤가 끓인 스프(Маша плюс каша)’편의 유튜브 조회수가 41억 뷰를 달성했다. 이를 계기로 ‘마샤와 곰’은 ‘가장 많이 시청된 애니메이션 영화’로 2019년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또한, 국제 리서치 기관인 Parrot Analytics에 따르면 ‘마샤와 곰’이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어린이 만화영화 5개 중 하나로 꼽혔다고 한다. ‘스메샤리키’의 경우 2010년 베이징에 사무소를 연 이후, 중국 시장에 안정적으로 안착하였다. 해당 방송 시리즈는 CCTV 채널을 시작으로 2018년 말 기준 13개의 TV 채널과 30~35개의 인터넷 플랫폼에서 방영되고 있다.

러시아 언론과 애니메이션 산업 관계자들은 전문적인 기술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꾸준히 지적해 오고 있다. 인력 양성을 위한 통합된 교육 시스템도 없다. 또한, 애니메이션 제작 소프트웨어의 경우 러시아 자체 기술이 아니라 수입 프로그램에 전적으로 의존해 있는 상태이다. 최근 몇 년간 도입된 일련의 정책적 지원들은 이러한 러시아 애니메이션 산업이 갖고 있던 문제점을 보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있다. 만화영화 산업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지원으로 양적, 질적 성장을 도모한다면 늘어나는 수요에 충당하는 안정적인 공급시장 확보와 세계 시장 속 러시아 애니메이션의 홍보 효과를 노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더불어 해외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몇몇 애니메이션들을 모델 삼아 지속적으로 기술과 콘텐츠 발달에 노력을 기울인다면 정부의 지원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목록

웹진 문화로(文化路) 내용 끝

TOP

저작권 표시 및 연락처

06974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로 84 법학관(303관) 1420호 / E-mail: fsicau@cau.ac.kr / TEL: 02-820-6355 / FAX: 02-822-0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