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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러시아 그랜드오페라 내한공연의 큰 흐름
분류음악
국가 러시아
날짜2019-05-01
조회수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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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소련 오페라단의 내한은 1989년,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 오페라, 오스트리아의 빈 국립오페라, 미국 메트로폴리탄오페라와 함께 최정상급 오페라단으로 평가받고 있는 볼쇼이오페라단의 방한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소련 최고의 음악거장 마르크 에르믈레르(М. Эрмлер)가 이끌고 있던 오케스트라, 발레단, 합창단, 기술진 등을 포함한 4백여 명의 볼쇼이 전 단원이 한국인들에게 소련 오페라의 정수를 선보이기 위해 내한했다. 모로조프(М. Морозов), 셀레즈뇨프(Г. Селезнев), 페딘(А. Федин), 예라스토바(Т. Ерастова), 테렌츠예바(Н. Терентьева) 등 세계무대에서 성악적 기량을 널리 인정받고 있었던 볼쇼이 간판 가수들이 대거 한국을 찾았으며, 이 소식을 접한 국내 오페라 팬들은 영상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볼쇼이의 무대를 직접 관람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들떠있었다.

소련의 볼쇼이오페라 내한 소식 자체가 낯선 뉴스였듯이, 그들이 선보였던 작품 역시 국내 관객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것이었다. 볼쇼이극장 측은 당시 러시아 오페라의 3대 걸작 중 하나인 무소르그스키(М. Мусоргский)의 <보리스 고두노프>(Борис Годунов)를 한국 관객을 위한 첫 작품으로 선택했다. 일종의 서사극인 이 작품은 비평계에서 거대한 스케일의 무대가 극적인 아리아, 합창과 어우러져 러시아 오페라의 매력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로 국내 언론들은 볼쇼이오페라단이 89년 7월 첫 공연에서 청중을 압도하는 묵직한 저음의 베이스와 거친 듯 웅장한 코러스를 선보여 서구의 오페라와는 전혀 다른 색채를 보여주었고, 무대장치에 있어서도 장면이 변화할 때마다 중세 러시아 궁정의 외관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듯한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며 그랜드오페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고 소개한 바 있다.

                                                       
<1989년 ‘보리스 고두노프’공연 티켓>


두 번째 러시아 오페라단의 내한은 첫 내한 후 6년이 흐른 1995년 9월, 키로프오페라단의 <이고르 공>(Князь Игорь) 공연으로 성사되었다. 키로프의 공연은 볼쇼이 첫 내한 때와 마찬가지로 마린스키극장의 오케스트라, 발레, 합창단이 총 출연해 꾸민 무대로, 키로프가 지난 백년간 축적해온, 그들만의 경험이 녹아있는 현지 그대로의 양식으로 선보여졌다. 당시 푸틸린(Н. Путилин), 키트(М. Кит), 쩰로발니크(Е. Целовальник), 로스쿠토바(И. Лоскутова) 등이 출연했던 <이고르 공>은 러시아의 민속적 색채감과 역동적인 에너지, 무대 조명, 색감 처리 등에서 이탈리아 오페라와 다른 신선함을 선사했으며, 특히 ‘폴로베츠인의 춤’(Танец Половецких Девушек)은 그 독특한 역동성으로 초연당시부터 지금까지 가장 유명한 러시아 오페라의 한 장면으로 남아있다.

이 두 공연으로 우리 관객들은 세계 최정상으로 손꼽히는 두 가지 러시아 스타일의 오페라를 접했다. 러시아 공연예술의 상징인 모스크바의 볼쇼이극장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키로프극장은 역사적으로 러시아 최고의 극장 타이틀을 서로 내어 주고 되찾으며 그 명맥과 스타일을 유지해오고 있다. 1990년 전후로, 러시아의 그 어느 극장보다 러시아적이라 불리는 ‘볼쇼이 스타일’의 오페라와 유럽 오페라보다 더 유럽적이라는 ‘키로프 스타일’의 오페라 체험은 우리 관객들로 하여금 러시아 오페라의 전체적인 틀을 이해하고, 러시아 오페라의 역사를 감각적으로 조망하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97년 10월, 세 번째 내한 오페라 공연이었던 스타니슬랍스키 네미로비치 단첸코 극장의 <라 보엠>(La Boheme)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전 내한공연의 두 작품이 러시아 클래식 극장이 선보인 순수 러시아 오페라작품이었다면, 스타니슬랍스키오페라단이 보여준 작품은 국내 오페라 애호가들에게도 이미 익숙한 푸치니(G. Puccini) 원작 이탈리아 오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그동안 국내에서 공연된 전형적 이탈리아식 <라보엠>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스타니슬랍스키 극장의 <라 보엠> 공연은 러시아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진행되었고, 작품의 줄거리와 배경도 푸치니의 원작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시인 로돌포(Rodolfo)와 미미(Mimi), 화가 마르첼로(Marcello)와 뮤제타(Musetta), 이 젊은 두 쌍을 중심으로 파리의 가난한 예술가들의 사랑과 예술을 그려낸 <라보엠>이 어떠한 점에서 러시아적 오페라로 평가되는가? 스타니슬랍스키의 <라 보엠>은 다른 유럽 오페라단이 흔히 보여주는 방식인 이른바 ‘음악극으로서의 오페라’가 아니라, 음악적인 요소와 연극적인 요소를 균등하게 결합한 종합적 극예술로 제작되었다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들의 무대에서는 오페라 특유의 인위적이고 과장된 몸짓이 대체로 배제되고 마치 현실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재현한 듯 사실성을 기반으로 창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극중 마르첼로의 애인, 방종한 뮤제타는 배역의 성격에 걸맞게 페티코트 위에 긴 드레스를 입는 대신 빨간색 미니스커트에 짙은 분장을 하고 등장하여 노란 자동차 위에 요염한 자세로 누워 아리아를 부르거나, 책의 먼지를 털어내는 장면에서도 단지 동작만으로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용각산을 이용해 실제로 먼지 날리는 장면을 연출하는 등 혁신적 러시아 오페라, 마치 ‘연극과 같은 오페라’를 소개했다.

구성적 측면도 주목할 만한 하다. 원작과 달리 주인공 로돌포가 애인 미미가 죽은 이후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스토리가 시작되었고, 또 첫 장면에서 예술과 이상을 상징하는 비둘기를 무대에 날리는 연출을 통해 작품의 큰 주제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이밖에도 5백여 가지 다양한 방식의 무대조명은 무대에 다채로운 색채와 분위기를 연출하는 장치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와 같은 오페라의 독특한 구성과 다양한 미적 장치들은 우리 관객들에게 매우 이색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라 짐작된다. 당시 스타니슬랍스키오페라단을 국내로 초청한 한국오페라단 박기현 단장은 이와 관련하여, “이 <라보엠>은 충격이라 할 정도로 기존의 <라보엠>과는 다르다”(연합뉴스 1997.10.15.)면서, 이 초청공연의 추진한 목적이 참신하고 실험적인 러시아의 오페라를 국내에 소개하기 위함이었음을 밝힌 바 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연출가이자 연극이론가 스타니슬랍스키(К. Станиславский)의 이름을 내건 극장답게 현대적이고 파격적인 연출기법을 선보인 이들의 내한은 러시아 연출가에 의해 ‘러시아화’된 유럽 오페라를 소개한 첫 공연이라는 데 그 의미가 있으며, 국내 오페라계에 러시아 오페라의 인상을 강렬히 남기는 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1997년 10월 동아일보 기사들>

 
앞서 언급한 러시아 오페라의 중심축인 볼쇼이와 키로프, 스타니슬랍스키 오페라단의 내한공연은 러시아 오페라의 진수를 국내에 소개한 공연들이었다. 볼쇼이의 <보리스 고두노프>와 키로프의 <이고르 공>을 통해 우리 관객들은 베르디(G. Verdi)나 푸치니의 유럽 오페라가 아닌 러시아 오페라를 체험했고, 스타니슬랍스키의 <라보엠>을 통해 유럽과는 차별화된 러시아식의 오페라 스타일과 연기 양식, 즉 현대 러시아의 창작세계를 경험했다. 이는 향후 2000년대 이후 이루어진 국내 오페라 붐을 가능케 했던, 그리고 우리 오페라가 다양한 갈래의 창작적 색채를 확보할 수 있게 한 일련의 사건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2000년대로 진입하면서 국내에는 보다 다양한 러시아 오페라단들이 소개되었고, 이와 함께 러시아로부터 유입된 레퍼토리들도 다양화되었다. 앞서 소개된 볼쇼이와 마린스키(구 키로프), 스타니슬랍스키를 제외하고도 차이코프스키 콘서바토리 오페라극단, 노보시비르스크 국립오페라단, 무소르그스키극장 오페라단(현 미하일롭스키극장 오페라단), 헬리콘오페라단 등이 내한했다. 이 단체들은 러시아 오페라의 역사성과 전통성, 혁신성과 현대성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독자적 개성을 갖는 오페라단들이다. 노보시비르스크 국립오페라단은 모스크바 볼쇼이,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와 더불어 러시아 3대 오페라발레극장의 전속오페라단으로 손꼽힐 정도로 러시아 내 예술인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으며, 미하일롭스키오페라단은 마린스키극장, 알렉산드린스키극장과 함께 3대 황실극장인 미하일롭스키극장의 전속오페라단이다. 현재 러시아 클래식을 대표하는 마린스키극장보다 무려 30여년이나 긴 역사를 갖는 이 오페라단은 러시아 황실오페라의 정통성을 표방하면서 오페라의 정석을 보여주는 단체로 아직까지 오페라 애호가들의 찬사와 지지를 받고 있다. 그에 비해 모스크바 소재의 헬리콘오페라단은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갖는다. 그러나 러시아 최고 권위의 예술상인 골든마스크 상을 11차례 수상한 단체로,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예술단체라고 할 수 있다. 이 오페라단을 구성하는 350여명의 단원들 대부분이 러시아 국민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은 대가들이며, 러시아 현대 오페라를 이끌고 있는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오페라단들의 내한은 국내 팬들에게 러시아 오페라의 다양성을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들이 공연했던 작품의 수는 총 8편이었는데, 그중 우리 관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작품은 <스페이드 여왕>(Пиковая дама)과 <카르멘>(Кармен)이었다. 이 두 작품은 내한 당시의 흥행성과도 주목할 만하지만, 그보다 공연이후 우리나라 오페라 시장에서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먼저 2000년 7월 볼쇼이오페라단이 11년 만에 국내 무대에 오르면서 소개한 <스페이드 여왕>은 러시아 오페라뿐만 아니라, 문학과 음악의 대중화에도 크게 기여한 작품이다. 1989년 첫 볼쇼이 내한 당시 지휘를 맡았던 예술 감독 에르믈레르는 솔리스트 23명과 오케스트라, 합창단 등 230여명의 볼쇼이 예술가들을 이끌고 와, 러시아에서 <예브게니 오네긴>(Евгений Онегин)과 함께 인지도가 가장 높은 <스페이드 여왕>의 대형 무대를 또 한 번 선보인 바 있다. ‘카드놀이에 얽힌 망령의 저주와 운명의 장난’이라는 러시아 대문호 푸슈킨(А. Пушкин) 원작을 바탕으로 모데스트 차이코프스키(М. Чайковский)가 대본을, 표트르 차이코프스키(П. Чайковский)가 곡을 써 완성된 이 오페라는 다이내믹한 극적 구조, 화려하고 장중한 무대가 돋보이며, 세계 오페라 애호가들에게 러시아 오페라의 위상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리브레토를 쓴 모데스트 차이코프스키는 푸슈킨의 원작과 차별화하기 위해 서사의 시대적 배경을 19세기에서 18세기로 설정해 무대장치와 의상의 화려함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차이코프스키 형제의 의도대로, 볼쇼이오페라단의 <스페이드 여왕>에는 18세기 러시아 궁정 및 귀족들의 화려한 의상, 현란한 기교의 아리아, 웅장한 합창과 발레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클래식예술의 강점들이 총체적으로 응집되어 있었다. 그 결과 우리 관객들에게 이는 ‘그랜드오페라’ 다운 오페라로 인식되었고, 국내 오페라 시장에서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러시아 오페라로 자리를 잡았다.


                                                        
<2000년 ‘스페이드 여왕’ 공연 티켓>


볼쇼이오페라단이 <스페이드 여왕>으로 러시아의 스케일을 보여주었다면, <카르멘>은 여가수의 강렬한 카리스마와 매혹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2002년 노보시비르스크오페라단의 <카르멘>은 러시아 오페라의 테크닉적 기량으로 관객을 압도했고, 2007년 스타니슬랍스키오페라의 <카르멘>은 극적 장면 연출과 연기력으로 이례 없는 관심을 받았다. 스타니슬랍스키의 <카르멘>의 경우 사흘 연속 85%라는 객석 점유율을 기록했고, 이 공연 이후 현재까지 <카르멘>이 국내 오페라 시장을 휩쓸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공연 이듬해인 2003년, <카르멘>이 무대에 오른 횟수만 하더라도 총 11차례, 유료객석 점유율도 80%를 상회했다.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는 <카르멘>이 나흘간 전회 연속 매진을 기록해 5억3000만원의 관람료 수익을 창출하기도 했다. 2003년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서 갈라콘서트를 포함한 <카르멘> 공연 횟수는 스타니슬랍스키오페라단의 공연 이전보다 세 배 가량 증가했다는 사실은 러시아 오페라단들이 보여준 <카르멘>의 영향력이 지대했음을 증명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랜드오페라 내한공연 목록 중 마린스키(구 키로프오페라단)의 공연은 국내 오페라계에 새로운 장르와 형식의 오페라 탄생을 불러일으킨 작품들이었다. 마린스키 극장은 첫 내한에서 보여준 <이고르 공> 이외에도 한국 오페라 역사에 기록될만한 작품을 선보였는데, 2005년에 공연된 <니벨룽의 반지>(Кольцо нибелунга) 4부작이 그것이다. <니벨룽의 반지>는 상연시간이 총 16시간이나 되는 만큼 작품 전체를 관람하는 일조차 쉽지 않은 오페라로, 마린스키의 공연이 국내 초연이었다는 점에서 오페라계 인사들의 시선을 끌었다. 또한 이 작품이 게르기예프(В. Гергиев)의 버전으로는 러시아, 독일에 이은 세계 세 번째 공연이라는 점에서 국내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했다. 전체 작품은 총 4부작으로 <라인의 황금>(Золото Рейна), <발퀴레>(Валькирия), <지그프리트>(Зигфрид), <신들의 황혼>(Гибель богом)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바그너(Р. Вагнер) 음악의 종합이라고 볼 수 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니벨룽의 반지> 바그너가 북유럽 전설을 바탕으로 30여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직접 대본을 작성하고, 작곡, 무대조형, 연출법까지 완성했다. 현재까지 이 작품은 음악사에서 혁신적 음악뿐만 아니라, 신화적 공간을 배경으로 신과 인간의 갈등, 권력과 자유, 사랑과 증오 등 인류 보편적 과제와 주제를 다루고 있는, 문학적 완결성을 갖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 공연은 무엇보다 바그너가 주장했던 ‘종합예술’ 혹은 ‘총체예술’로서 오페라의 의미를 우리 관객들에게 전달해준 작품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니벨룽의 반지’4부작 중 발퀴레>


정리하자면, 지금까지 국내에 선보여진 러시아 그랜드오페라 작품 편수는 총 9편 (<보리스 고두고프>, <이고르 공>, <라보엠>, <스페이드 여왕>, <카르멘>, <니벨룽의 반지>,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 <예브게니 오네긴>,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이다. 이와 같은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러시아 오페라는 1988년 첫 교류 이후 끊임없이 수입되어 우리 관객들과 소통해왔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오페라계에 초대형 오페라뿐만 아니라 새로운 장르의 소규모 오페라, 즉 뮤페라, 팝페라, 서페라, 콘체르탄테와 같은 독특한 양식의 오페라가 등장하게 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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