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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러시아 레지오페라 시대의 총아 드미트리 체르냐코프
분류음악
국가 러시아
날짜2019-04-15
조회수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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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페라(Regieoper)’란?

페터 콘비츠니, 마틴 쿠세이, 칼릭스토 비에이토, 데이비드 맥비카. 평소 오페라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 이름들 앞에서 호와 불호를 명확하게 표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일명 ‘레지테아터(Regietheater)’ 오페라계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문제적’ 연출가들이기 때문이다. ‘레지테아터’란 ‘연출가 극’이란 뜻의 독일어로, 용어의 기원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독일에서 시작된 연출가 중심의 공연을 의미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연극계에서는 연출가의 자의적인 해석을 통해 고전극을 현대화하여 새롭게 무대에 올리는 것이 유행하였는데, 연극계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러한 연출 경향은 이후 오페라계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되었다. 오늘날 ‘레지오페라(독: Regieoper, 영: Regieopera)’라고 불리게 된 연출가 중심 오페라의 탄생은, 기존의 음악 중심 오페라를 개혁하여 음악과 연극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종합예술, 즉 ‘음악극(Musikdrama)’으로 개혁하고자 했던 리하르트 바그너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손자인 빌란트 바그너는 1950~60년대 바이로이트 음악축제의 예술감독직을 수행하는 동안 연출가로도 이름을 떨치게 된다. 그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발퀴레> 등의 작품을 추상화되고 단순화된 무대 및 조명 효과에 기댄 새로운 연출 방식으로 무대에 올린 바 있는 것이다. 더욱이, 통상 본격적인 레지오페라의 탄생으로 간주되는 공연 역시 1976년 바이로이트 음악축제에 올려진 <니벨룽의 반지>였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니벨룽의 반지> 초연 100주년 기념 공연을 책임지게 된 프랑스 연출가 파트리스 셰로는 <니벨룽의 반지>의 신화적인 시공간을 현대 산업사회로 옮겨와 자본가와 노동자의 문제로 풀어냄으로써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셰로의 혁신적인 연출 방식은 격렬한 찬반 논쟁을 야기하기도 했으나 오늘날 이 공연은 레지오페라의 고전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후 간헐적으로 등장하던 연출가 중심의 공연들은 1990년대 이후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을 중심으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되었다. 레지오페라 연출가들은, 다른 어떤 이유보다 일차적으로는 현대의 관객들이 고전 오페라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내고 있다고 한 목소리로 강조한다. 하지만 이런 현대식 연출에 의해 구성된 무대 위에서는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장면들이 강조되기도 하면서 미성년자관람불가 공연 판정을 받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연출가에 의해 자의적으로 재해석되거나 심지어 재창조된 작품으로 인해 오히려 관객들의 상상력이 제한을 받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저 일시적 현상으로만 전망되기도 했던 이러한 유럽식 트렌드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유럽을 넘어서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유럽 오페라계를 점령한 이러한 연출 방식에 대해 ‘유럽쓰레기(eurotrash)’라는 멸칭을 붙이기도 했던 미국의 보수적인 오페라 무대마저도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이 거대한 열풍을 비껴갈 수 없었고 소비에트 붕괴로 유럽의 유행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러시아에서도 미국과 유사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물론, 한국의 오페라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가죽 재킷에 미니스커트를 입고서 담뱃불을 빌리러 오는 미미, 뉴욕 맨해튼의 마피아가 된 만토바 공작,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알프레도, 타자기로 혹은 노트북으로 편지를 쓰는 타치야나, 동성애 코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한 침대에서 뒹구는 오네긴과 렌스키 등이 자연스럽게 전 세계의 오페라 무대를 누비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연출 방식은 앞으로도 여전히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바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오페라 연출가 드미트리 체르냐코프(Дмитрий Черняков, 1970-)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없지 않을 것으로 사료된다.


‘오페라 시대의 영웅’ 드미트리 체르냐코프

유럽에 비해 다소 지체되긴 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 러시아에서도 고전 오페라의 현대적 연출은 아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레지오페라 연출가들로는 모스크바 스타니슬랍스키&네미로비치-단첸코 음악극장의 예술감독 알렉산드르 티텔(Александр Титель, 1949-), 모스크바 헬리콘-오페라 극장의 예술감독 드미트리 베르트만(Дмитрий Бертман, 1967-), 드미트리 체르냐코프(1970-), 바실리 바르하토프(Василий Бархатов, 1983-) 등을 꼽을 수 있다. 게다가 연극 연출가 안드레이 모구치(Андрей Могучий, 1961-), 영화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Кирилл Серебренников, 1969-)까지 가세하면서 러시아의 오페라 무대는 그야말로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연출로 활기를 띠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러시아의 음악 비평가 바딤 주라블료프(Вадим Журавлёв)는, 2018년, 체르냐코프의 오페라 연출가 데뷔 20주년을 기념하여 <드미트리 체르냐코프. 오페라 시대의 영웅(Дмитрий Черняков. Герой оперного времени)>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을 출간하였다. 주라블료프에 의해 ‘오페라 시대의 영웅’이라는 타이틀을 선사 받은 체르냐코프는 1993년 러시아극예술아카데미(ГИТИС) 연출학부를 졸업한 이후 빌뉴스의 리투아니아 러시아드라마극장에서 연극 연출가로 활동을 시작했다가 1998년 노보시비르스크 극장에 블라디미르 코베킨의 오페라 <청년 다윗(Молодой Давид)>을 올리면서 오페라 연출가로 데뷔하게 된다. 이 프로덕션은 1998-1999 시즌을 대상으로 한 2000년 ‘골든마스크(Золотая маска)’의 최고 오페라 작품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될 정도로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더욱이, 체르냐코프 개인뿐 아니라 지역 극장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드미트리 체르냐코프


체르냐코프의 두 번째 오페라 연출작은 2001년 마린스키 극장에 올린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보이지 않는 도시 키테슈와 페브로니야 아가씨에 관한 전설(Сказание о невидимом граде Китеже и деве Февронии)>로, 이 프로덕션은 2002년도 골든마스크 최고 오페라 작품상과 연출가상을 동시에 수상하게 된다. 타타르족의 침략을 피해 호수 아래로 가라앉은 도시 키테슈의 전설과 성녀 페브로니야의 이야기가 결합된 오페라는 체르냐코프에 의해 현대 페테르부르크로 시공간이 변경되어 무대 위에 오르게 되었다. 고대 러시아의 광경들을 현대의 미장센으로 변신시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 연출작으로 인해 체르냐코프는 연출가로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후의 연출 방향을 정하는 데 있어서도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 프로덕션의 성공 덕분에 체르냐코프는 마린스키나 볼쇼이 같은 러시아의 메이저 극장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초청을 받게 되었고, 그의 연출작들(<보이지 않는 도시 키테슈와 페브로니야 아가씨에 관한 전설>, <난봉꾼의 행각>, <아이다>, <예브게니 오네긴>, <보체크>, <루슬란과 류드밀라>)은 6차례 골든마스크 연출가상 수상작이 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오페라의 현대적 연출에 그 어떤 지휘자보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다니엘 바렌보임의 초청으로 2005년 베를린 슈타츠오퍼 무대에 데뷔한 이후 뮌헨, 밀라노, 뒤셀도르프, 파리, 코펜하겐, 런던, 암스테르담, 취리히 등의 유럽 무대에 자신의 인장이 찍힌 프로덕션을 올리게 되었고 결국 뉴욕의 무대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유럽 진출 이후에는 러시아보다는 유럽의 무대에서 더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데뷔 초기 체르냐코프의 연출작들은 2004년 노보시비르스크 극장에 올린 <아이다>와 2005년 마린스키 극장에 올린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러시아 오페라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이후 점차 베르디, 모차르트, 야나첵, 바그너, 베르크, 드뷔시, 비제, 베를르오즈 등으로 레퍼토리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유럽 및 미국의 무대에서 러시아 레퍼토리가 아니라 다양한 작품들로 체르냐코프를 초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현재 전 세계 오페라계에서의 그의 위상을 능히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2017년에 그는 독일의 오페라 전문 잡지 에 의해 ‘올해의 최고 연출가’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체르냐코프의 대표적 프로덕션들

그럼에도 체르냐코프의 연출작 가운데 가장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은 러시아 오페라들, 그 중에서도 2006년 볼쇼이 극장에 오른 차이콥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Евгений Онегин)>과 2011년 볼쇼이 극장 재개관 첫 프로덕션이었던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Руслан и Людмила)>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 두 작품은 공히 러시아 오페라의 대표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징적 작품인 만큼 러시아 관객들의 지대한 관심에서 비켜나가기가 어렵다. 자신만의 이상적인 ‘예브게니 오네긴’이나 ‘루슬란과 류드밀라’ 무대를 그리고 있을 러시아 관객들의 입장에서 이런 이상과 환상을 무참히 깨뜨려버린 체르냐코프의 프로덕션은 그야말로 예술에 대한 모독이자 글린카와 차이콥스키에 대한 불경으로 받아들여졌다. 레지오페라를 싫어하는 관객이라 하더라도 ‘현대식’ 무대 연출 그 자체를 비난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고전 오페라를 현대의 관객들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다는 연출가들의 본래의 취지에 부합하는 작품에는 큰 호응을 보이기도 한다. 일례로, 2005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오른 연출가 빌리 데커의 <라 트라비아타>는 연출가의 과도한 자의적 해석이나 눈살 찌푸려질 정도의 자극적인 연출 없이 원작 오페라의 주제를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물론, 이 공연이 화제작이자 성공작으로 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독특한 연출에 더해 카를로 리치의 지휘 아래 안정적인 연주를 펼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뛰어난 가창력 및 연기를 선보인 안나 네트렙코와 롤란도 비야손의 활약이 뒷받침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말하자면, 많은 ‘보수적인’ 오페라 관객들은 오페라를 ‘보고 듣는 것’으로 파악하기에 연출로 인해 이 ‘보고 듣는 것’, 더 정확히 말해 ‘듣는 것’이 방해를 받을 경우 ‘보는 것’에 경도되어 있는 연출을 비난하게 되는 것이다. 기존의 전통적인 오페라 연주 방식에 따르면, 객석에 불이 꺼지고 막이 오르기 전에 오페라 전체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서곡이 연주되고 이 서곡 연주가 끝난 뒤에야 막이 오르면서 무대의 미장센이 공개된다. 그로 인해 관객들은 서곡이 연주되는 동안 오케스트라 연주에 오롯이 집중하며 작품 전체를 그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레지오페라가 유행한 이후 관객들은 서곡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었다.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는 레지오페라는 서곡마저도 무대 설명을 위한 백그라운드 음악 정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볼쇼이 극장, 체르냐코프 연출)


2006년 체르냐코프가 볼쇼이 무대에 올린 <예브게니 오네긴>으로 돌아가 보자. 관객들은 서곡이 연주되기 이전에 이미 막이 오른 무대를 거의 채우는 초대형 식탁에서 식사 중인 인물들의 웃음소리와 달그락대는 식기 소리를 먼저 들어야 했다. 또한 서곡에 뒤이어 연주되는 라리나 부인과 필리포브나, 타치야나와 올가의 이중창 및 사중창 장면, 농부들의 합창 장면이 모두 식탁 장면으로 대체되어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사실상 공연 전체가 이 거대한 식탁에서 진행되고 있어 이 식탁이 오페라 전체의 주요하고도 유일한 미장센이 되었다. 통상 무대 뒤에서 먼저 울려 퍼지는 타치야나와 올가의 이중창은 체르냐코프의 프로덕션에서는 식사에 초대된 손님들을 위해 자매가 노래 부르는 장면으로 전환되어 있는데, 이 장면 역시 일반적인 무대 연출 관습에서 벗어나 타치야나와 올가는 객석을 등진 채 식탁의 손님들을 향하고 있었다. 연극 무대에서 이미 시작된 극장의 관습성 허물기는 오페라 무대에도 상당 부분 전이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이 정도의 관습성 허물기에서 관객들이 크게 놀라지는 않았으리라고 본다.

진짜 문제는 차이콥스키 원작, 더 거슬러 올라가 푸슈킨의 원작을 대하는 연출가 체르냐코프의 조소적 태도에 있었다고 하겠다. 푸슈킨과 차이콥스키 원작의 장중한 아우라를 깨뜨리기 위한 연출가의 노력은 특히 렌스키의 형상에서 두드러지게 표출된다. 체르냐코프의 렌스키는 시종 경박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데, 특히 차이콥스키 원작에서 타치야나의 명명일 파티에서 무슈 트리케가 부르는 쿠플레를 노란색 어린이용 파티 모자를 쓰고 물총을 든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렌스키가 부르게 함으로써 렌스키를 어릿광대의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결투 직전 렌스키가 비통하고도 처연한 심정으로 아리아를 부를 때조차 식탁을 치우는 가사 도우미들로 인해 아주 어수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이에 관객들은 체르냐코프가 ‘렌스키를 죽여버렸다’고 혹평을 했다. 하지만 체르냐코프가 ‘죽여 버린’ 형상은 렌스키만이 아니었다. 오네긴 역시 원작의 형상을 잃은 채 우스꽝스럽게 그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3막 폴로네즈가 연주되는 동안 사교계에서 거부당한 채 미끄러지는 운명을 지닌 오네긴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도로 연출가는 오네긴을 연회장을 걷다가 (거의 슬랩스틱 코미디 수준으로) 갑자기 바닥에 넘어지게 한다거나 서빙되는 음식을 실수로 쳐서 바닥에 떨어뜨리게 만드는 등 다소 억지스러운 연출을 하기도 했다.

이 공연은 곧바로 체르냐코프의 문제작으로 등극하게 된다. 관객들은 원작의 진지함을 의도적으로 훼손하여 거의 오페라 부파 수준으로 만들어버린 체르냐코프의 연출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더욱이 대체로 레지오페라 연출가들조차 작곡가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 그대로 남겨두었던 악보에까지 손을 대어 배역을 자의적으로 바꾸어 버린 것은 맹공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오네긴 역을 폴란드인 바리톤에게 맡겨 피날레의 그 강렬한 세 마디를 격음 가득한 외국인 딕션으로 듣게 되었다는 것은 이 공연에 쏟아진 수많은 비난 중 어쩌면 가장 사소한 것에 속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체르냐코프의 <예브게니 오네긴>에 쏟아진 과도한 관심과 그에 따른 비판은(이 공연에 충격을 받은 볼쇼이의 전설적 프리마돈나 갈리나 비쉬넵스카야는 볼쇼이 극장에서 치러질 예정이었던 자신의 팔순 기념행사를 취소하기도 했다) 2011년 볼쇼이 극장 재개관 첫 프로덕션이었던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다.

2011년 가을, 볼쇼이 극장은 엄청난 비용과 기간이 소요된 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6년간의 복원을 끝내고 2011-2012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재개관한 역사적인 오페라 극장의 첫 프로덕션이 갖는 의미는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전 세계 문화예술계의 이목이 집중된 재개관 첫 오페라 공연의 작곡가로 글린카를 선택한 것 역시 이러한 의미와 상징성이 충분히 고려된 결과였다. 하지만 연출가는 ‘악명 높은’ 체르냐코프였다. 글린카와 체르냐코프라는 이 조합 속에 사실상 21세기 볼쇼이 극장의 방향과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으로도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체르냐코프는 <루슬란과 류드밀라>에 그 동안 자신이 추구해왔던 혹은 앞으로 추구할 주요 연출 방식을 두루 활용하였다. 그는 <예브게니 오네긴> 이후 <보체크>와 <돈 조반니>(두 공연 모두, 체르냐코프만큼이나 화제성을 지닌 ‘스타’ 테오도르 쿠렌치스(Teodor Currentzis, 1972-)가 지휘봉을 잡았다)를 볼쇼이에 올린 바 있지만 러시아 작곡가의 작품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조금이나마 세간의 관심으로부터 비켜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역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공연이지 않은가. 더욱이 이번이 체르냐코프가 내놓는 <루슬란과 류드밀라>의 첫 프로덕션이었기에 도발적인 연출가가 고대 루시 및 동화적 시공간을 담고 있는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어떻게 연출해낼 것인가에 대해 이목이 집중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과도한 관심을 받으며 볼쇼이에 오른 <루슬란과 류드밀라>에서 체르냐코프는 절충주의적인 방식을 취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직접적인 논란을 피해가려는 듯 보였다. 하지만 사실상 그런 절충주의적 방식의 이면에는 ‘전통적 취향’의 ‘보수적’ 관객들에 대한 조롱이 짙게 깔려 있었고, 체르냐코프의 이러한 의도를 눈치 챈 관객들의 심기는 더욱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체르냐코프가 취한 절충주의적 방식은 초반에 제시된 전통주의적 방식을 후반에 가서 슬쩍 비틀어버리는 것이었다. 서곡이 연주되는 동안 무대의 막은 내려져 있어 관객들은 오케스트라 피트를 바라보며 서곡을 여유롭게 즐기게 된다. 하지만 이런 전통적인 연주 방식은 서곡의 종반부에서 막이 오르면서 조금씩 깨지기 시작한다. 일단 막이 오른 무대는 고대 루시의 미장센으로 꾸며져 있어 관객들을 안심시키는 듯 보이지만 오케스트라의 서곡 연주가 끝나자 오케스트라 피트를 향해 박수를 보내는 고대 루시 복장의 인물들을 보며 그 미장센과 복장은 그저 페이크에 불과한 것임을 간파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무대 위의 인물들은 루슬란과 류드밀라의 혼례식을 찾아온 하객들이 아니라 현대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한 결혼식에서 루슬란과 류드밀라의 혼례식을 연기하는 인물들이었음이 밝혀지게 되는 것이다. 수트를 입은 카메라맨들의 등장, 무대 뒤쪽에 설치된 두 개의 대형 스크린, 그리고 2막의 서주가 연주되는 동안 막 위를 꽉 채우는 대형 스크린에 등장한 핀족 노인과 나이나의 대화를 통해 이 모든 것이 결국 ‘플레이’란 사실이 직접 밝혀진다. 1막에서 바얀 역을 맡았던 테너가 2막에서 핀족 노인 역을 이어가고, 1막에서 루슬란 역을 맡았던 바리톤은 2막에서 패딩 점퍼를 입고 등장하여 핀족 노인의 발라드를 듣는다. 2막에서부터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은 큰 틀에서는 오페라가 제시한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되 이 스토리라인은 모두 현대의 시공간으로 옮겨진 채 진행된다.


                                        
오페라 <루슬란과 류드밀라>(볼쇼이 극장, 체르냐코프 연출)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이미 목격되었던 음악적인 차원에서의 변경은 <루슬란과 류드밀라>에서도 관찰된다. 위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바얀과 핀족 노인 역에 동일 가수를 캐스팅함으로써 통상적인 캐스팅 룰을 깨뜨린 것을 시작으로 라트미르 역의 캐스팅에 있어서도 변화를 주고 있었다. 원작에서 라트미르는 콘트랄토가 맡았기에 여성 성악가가 남장을 한 채 무대에 등장했다면 체르냐코프의 프로덕션에서는 카운터테너가 콘트랄토를 대체하였던 것이다. 또한 바얀이 타는 구슬리를 재현했던 하프와 피아노를 오케스트라 피트가 아니라 무대 위에 보이도록 배치함으로써 음악적인 측면의 관습성 역시 여지없이 깨뜨리고 있다.

한편, 이 프로덕션에서 가장 큰 비난을 받은 부분은 4막 체르노모르 마법 궁전에서 벌어지는 선정적인 장면이었다. 류드밀라의 의상을 입은 채로 납치되어 온 곳에서 류드밀라 역을 맡았던 소프라노는 슬립을 입고 등장하여 상의를 탈의한 건장한 마사지사에게 겁탈당하는 듯한 장면이 연출된다거나 갑자기 등장한 전라의 여인들이 무대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했던 것이다. 또한 원작에서 잠에 취한 류드밀라를 깨우기 위해 사용되었던 마법의 보석반지가 여기에서 목에 꽂는 주사바늘로 대체됨으로써 원작 동화 오페라의 환상성을 무참히 깨뜨리고 있다. <예브게니 오네긴>을 통해 체르냐코프가 선호하는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적’ 조소와 패러디를 이미 간파한 관객들조차도, 극의 흐름과 그다지 상관없이 등장하고 있는 <루슬란과 류드밀라>의 선정적인 노출 장면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2011년 볼쇼이 극장 객석에서는 공연 중에 ‘수치다!(Позор!)’라는 외침이 수차례 터져 나오기도 했다. 물론, 이 공연에 비판만 쏟아졌던 것은 아니었다. 체르냐코프의 연출에 불만을 품은 ‘수치!’라는 외침에 맞서 ‘브라보!’도 같이 터져 나오면서 이날 공연은 결국 스캔들로 비화되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유럽 무대에 비해 보수적인 러시아의 극장에서 관객들은 레지오페라에 대해 ‘수치!’와 ‘브라보!’를 동시에 외치고 있다.

과거 오랜 기간 동안 오페라 무대에서는 지휘자나 성악가들이 빛을 발하며 그들의 네임 밸류에 기댄 공연이 주를 이루었다면 오늘날은 명실공히 연출가 전성시대라고 칭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진 연출가들이 오페라 무대를 주도하고 있다. 연출가 중심의 오페라, 즉 레지오페라는 정체된 오페라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자 한 긍정적인 시도임이 틀림없다. 최초에 무대 미장센의 ‘현대화’ 정도에 그쳤던 이런 시도는 이제 연출가들이 원작과 상관없이 임의로 설정한 스토리라인에 따라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일 정도로 진화한 상태다. 하지만 새로움에 대한 강박이 독이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연출가들이 제시하는 ‘보는’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와 성악가들의 음악은 부차적으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페라를 개혁하고자 하는 연출가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오페라라는 장르의 특수성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오페라 작품은 우리가 흔히 보는 일반적인 형태의 무대 공연이외에 일체의 무대 연출 없이 음악에만 집중하게 하는 콘체르탄테, 즉 콘서트 형식으로도 연주될 수 있다. 말하자면, 오페라 작품은 무대 장치가 없어도 공연될 수 있지만 음악 없이는 절대로 무대에 올릴 수가 없는 ‘음악’ 작품인 것이다. 연출가들은 무대에 오르는 공연자들이 오페라 ‘배우’가 아니라 오페라 ‘가수’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연극 연출자나 영화감독들이 오페라를 연출하면서 간혹 잊는 것이 오페라가 다름 아닌 ‘보고 듣는’ 예술이라는 점이다. 보는 것에 집중되어 듣는 것을 방해하는 공연이 아니라 말 그대로 보고 듣는 것이 잘 조화된 오페라야 말로 오페라 공연의 진정한 존재 의미가 아니겠는가. 새로운 자극을 위해 연출가가 자의적으로 쥐어짜낸 억지스런 스토리와 무대 연출로 인해 성악가들이 공연을 거부하고 오케스트라 단원마저도 연주에 참여한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그리고 관객들이 그런 작위적 연출로 인해 듣는 것을 방해받게 된다면 그나마 지금까지 객석을 채우던 ‘보수적’ 관객들마저도 오페라 극장을 외면하게 될지 모른다. ‘무엇보다 음악!’ 의도적으로 ‘문제작’, ‘화제작’만을 꿈꾸며 볼거리에 집중하는 일부 레지오페라 연출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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