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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울려 퍼진 문화 수사학
분류대중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17-10-17
조회수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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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올림픽 폐막식에서 평창올림픽 홍보를 위한 단촐한(!) 공연을 본 지 벌써 3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카운트다운도 이미 시작되었다. 이제 얼마 후면 그 면모를 드러낼 평창의 모습은 어떠할지 매우 궁금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의 마음도 앞선다. 소치 올림픽은 단순한 1회성 스포츠 메가 이벤트에 머물지 않고,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국가 이미지 개선을 위한 훌륭한 매개체가 되었던 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한 번쯤 소치에서 울려 퍼진 올림픽 문화수사학과 그 전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미 여러 학자 및 통계에서 나와 있듯이, 올림픽과 같은 메가 스포츠이벤트의 유치와 개최는 더 이상 ‘경제적’ 차원에서의 이익을 보장하지 않는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올림픽을 개최한 국가들 중에 최초에 수립했던 올림픽 예산을 그대로 집행한 나라는 없으며, 오히려 더 많은 보조금을 쏟아 붓는 형태가 반복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특히 공식 집계된 개최비용만 따지더라도 430억 달러에 이르는 소치 동계올림픽의 경우, 하계올림픽 개최지 중 역대 최고 개최 비용을 기록한 바 있는 북경올림픽을 훌쩍 뛰어넘었고, 예상외의 큰 비용 부담으로 인해 러시아 내에서도 한 때 비난의 중심에 선 바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한 때 서구 유럽과 미국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던 메가 스포츠이벤트의 개최지가 현재는 아시아 및 아프리카 등 제3세계권으로 이동하는 추세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원래 세웠던 예산보다 더 많은 경제적 부담을 지우곤 하는 메가 스포츠이벤트가 아시아, 특히 제3세계권 국가에 더 많은 경제적 부담과 손실을 안길 것이란느 점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가 스포츠이벤트 개최지의 지각변동이 지속적으로 감지되는 현상은 메가 스포츠이벤트 개최국이 경제가 아닌 다른 측면에 관심을 두고 해당 이벤트를 유치시키고 있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리게 해준다.

러시아 역시 2014년 소치 올림픽 개최 시점을 전후로 크고 작은 다양한 스포츠 이벤트를 유치시켰지만, 실제로 이런 메가 스포츠이벤트를 통해 러시아가 취한 경제적 반사효과는 매우 미비한 수준이다. 게다가 소치 올림픽의 경우,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예산초과 비율 및 실제 개최 비용이 하계·동계 올림픽을 통틀어 역대 최고에 해당하기에 경제적 측면에서만 놓고 본다면 오히려 득보다 실이 더 많은 이벤트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메가 스포츠이벤트 유치에 대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2018년 월드컵 개최를 비롯하여 다른 스포츠 관련 행사유치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러시아의 행보는 경제적 측면보다는 메가 스포츠이벤트의 정치적 속성, 대내/대외 문화정책의 실현이라는 차원과 결부시켜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메가 스포츠이벤트에 내포된 정치적 수사학의 기원은 1990년 이후 매우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나간 ‘스포츠 민족주의’라는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학적인 의미에서 볼 때, 스포츠는 ‘민족, 혹은 국가 정체성 형성을 위한 장’으로 간주되곤 한다. 이와 동시에 스포츠는 ‘민족적 감정을 고양시키기 위한 독특한 수단’을 제공한다. 한편 스포츠는 “영토를 점령하지도, 이데올로기 혹은 종교를 파멸시키지도 않지만, 늘 상상된 민족의 창조를 지원”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와 관련하여 올림픽이 분명 글로벌한 이벤트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글로벌성은 대회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로 전환되어 나간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올림픽 정신과 연관된 요소들, 예를 들어 국제올림픽 위원회가 올림픽 개막식 단계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하는 것으로 규정한 올림픽 참가 선수들의 입장행렬, 공식 인사들의 연설, 올림픽 찬가의 연주, 올림픽기의 게양과 성화 점화 및 비둘기 날리기 등 일련의 의전용 요소들은 민족, 나라, 인종과 관계없이 ‘올림픽 정신’ 하에 집결된 글로벌한 세계를 연출해낸다. 하지만 이 ‘글로벌성’은 화려하게 이어지는 개최국의 문화 스펙터클을 감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성’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경기가 시작되고, 승리자를 배출한 나라의 국가가 올림픽 경기장에 울려 퍼지면서 승자의 국기가 게양되는 순간, 개최국의 ‘지역성’은 올림픽에 참가한 개별 국가들이 제각기 발현하는 강한 ‘민족주의’로 다시 한 번 대체된다. 승자와 패자는 서로서로 간의 존재 덕분에 ‘구별’되고, 결국 ‘타자’는 자기 인식, 즉 국가와 나와의 동질감을 확인시키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된다. 이처럼 올림픽은 본래부터 내재되어 있는 ‘글로벌성’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으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시간, 나와 국가 간의 동질감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간이자, 동시에 나와 타자, 나의 조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와의 거리감이 최대화되는 특별하고도 다소 아이러니한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소치 동계올림픽은 말 그대로 “꿇었던 무릎을 딛고 일어서는” 러시아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한때 열강의 일원으로 차지했던 권좌로의 복귀를 선언한 ‘잘 만들어진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드라마는 대외정책적 차원에서 ‘러시아 다시 보여주기’만 겨냥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 내부적으로도 ‘애국심’과 ‘민족적 자긍심’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국민들의 강한 결속력과 응집력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냈다. 



러시아의 알파벳을 호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소치 올림픽 개막식 행사는 선수단 입장순서도 자신들의 자모순으로 배치하여 진행시키는 예외적인 특수성을 보여준 바 있다. 보통 어떤 식으로 올림픽 참가국들의 입장 순서를 배치하든 간에, 세계최초의 올림픽 개최국에 대한 ‘전관예우’에 따라 늘 가장 처음으로 입장하는 그리스 역시 이러한 예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덕분에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먼저 입장한 팀은 오스트레일리아 선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예외적인 운영은 타국민의 시선에 비추어 볼 때 낯설고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러시아 국민들은 자신들의 알파벳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질서에 따라 이 거대한 스포츠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무의식중에 상기해내면서, 이를 자신의 국가와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배가시키는 계기로 삼게 된다.

다소 과장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포스트소비에트 러시아에서 푸틴 대통령 집권 시기의 국가 이데올로기는 상당부분 스포츠로 대체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스포츠 이벤트에 내재된 정치적 효과는 예상보다 훨씬 크다. 특히 스포츠 경기 과정에서 ‘나-타자’의 구별짓기로부터 시작되는 민족주의적 성향은 자국팀의 승리를 곧 나의 승리, 국가의 승리와 지속적으로 동일화시켜 나가면서 애국주의로 확장되어 간다. 이러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는 푸틴과 크렘린의 통치 기반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 푸틴 시대의 국가이데올로기는 스포츠를 통해 실현되었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소치 올림픽의 개막식과 폐막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콘스탄틴 에른스트(К. Эрнст)는 개막식 공연에서 소비에트 시대는 물론 러시아 역사와 문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와 역사적 순간만 ‘선별’하여 인용하는 전략을 세워서 이를 충실히 이행했다. 그는 전쟁과 혁명과 같은 부정적인 층위를 성공적으로 걷어낸 채, 제정러시아와 소비에트 시대, 그리고 현대 러시아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을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처럼 구성해내면서 가장 러시아적인 문화-역사적 내러티브를 성공적으로 완성해냈다. 특히 혁명을 아방가르드적 정신 속에서 ‘굴절’시켜 구현해 낸 것은 가히 신의 한 수라 일컬을 수 있다. 아방가르드 자체는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와 거리가 있지만, 새로운 세계를 갈망했다는 점에서 서로 호응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실제 삶에서도,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도 ‘다양한’ 색채와 거리가 멀었던 소비에트 시대는 개막식 무대에서 알록달록함으로 연출되었고, 피오네르와 젊은 남녀 무리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그동안 주로 서구의 시각에서 조명되어 왔던 소비에트 시대에 대한 시각적 단상과 편견을 깨는데 충분했다.

이처럼 소치 올림픽 개막식에서 말 그대로 ‘연출된’ 소비에트의 모습은 마치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처럼 현실보다 더 현실같이 느껴지는 상황, 더 나아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 이미 실제를 대체해버리는 상황처럼 21세기 현대 러시아 공간으로 소비에트 시대를 호명해낸다. 올림픽 개막식에서 의도적으로 기획된 긍정적인 국가 이미지를 송출하는 것은 대내적으로 자국민의 정체성과 역사에 대한 인식을 강화시키게 되고, 자연스럽게 내부결속력을 강화시키면서 정부의 정책 지지율 역시 상승시키는 효과를 얻게 된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송출된 긍정적 이미지에 힘입어 국가선호도 및 국가경쟁력을 강화시키고, 국제 사회에서의 발언권과 신뢰도 지수를 끌어올리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러시아 문화 관계자 및 메가이벤트 기획팀은 소치 올림픽의 개막식과 폐회식 자리에서 전 세계 관객을 대상으로 과거 소비에트와 ‘다른’ 이미지를 송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마치 올림픽 개최의 궁극적인 목적이 국제무대에서 러시아의 이미지를 재설계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푸틴과 그의 크렘린 최측근들은 이미지 메이킹을 통한 러시아의 정치적 위상 강화를 위해 전력을 다했고, 그 노력은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한편 크림 사태로 인한 부정적인 그림자를 거둬내기 위해 소치를 활용하려는 노력 역시 지속될 것이다. 러시아 정부는 특히 올림픽 이후 대부분 방치되거나 잊힌 도시들, 일회성 이벤트 소비 공간으로 전락한 도시들과 달리 소치를 올림픽 이후에도 지속 가능한 국제적 수준의 문화 소비 공간으로 자리매김 시키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크림 사태 이후 국내 휴양지 관광을 원하는 사람들의 수요가 크림 대신 소치로 몰린 것 역시 올림픽 이후 휴양 도시로서 소치의 입지를 굳히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심지어 ‘올림픽 이후 소치에 가봐야 하는 5가지 이유’와 같은 것들이 SNS를 통해 급속히 확산되어 나가면서 소치에 대한 관광 수요 및 방문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올림픽 파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소위 ‘러시아판 디즈니랜드’로 불리는 테마파크가 개장되어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소치 자체가 본디 러시아 국내 휴양지로서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 이 도시는 소비에트 시절에 여행권을 발급받아 방문하곤 했던 구시대를 대표하는 요양 도시의 이미지가 더 강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소위 ‘올림픽 효과’를 통해 소치는 최신식 설비와 건축물을 갖춘 현대적 모습의 휴양지, 올림픽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다양한 이벤트가 개최되는 ‘문화 이벤트’ 도시라는 새로운 이미지로의 변신을 꾀하게 된다. 소치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및 조직위 대표를 맡았던 체르니센코(Чернышенко)는 “소치는 현대 러시아가 지닌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고, 낡은 스테레오 타입을 모두 해체할 것이다”라는 야심찬 발언을 통해 올림픽 이후 소치의 청사진을 미리 제시한 바 있다.

실제로 소치는 ‘포뮬러 원’, ‘아세안 정상회담’과 같은 메가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유치하여, 올림픽 이후에도 여전히 메가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모범 사례로 제시되며 장소 포지셔닝을 해 나가는 중이다. 이 모든 것들은 위에서 언급한 ‘2016년도 목표와 과제에 대한 공식 선언문’에도 나와 있듯이, 러시아 관광산업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국제무대를 향한 러시아의 긍정적 이미지 송출과 이를 통한 국가 이미지 개선과 직결된다. 해당 선언문은 소치 이외에도, 러시아 고대 도시이자 러시아 국가성과 문화의 기원으로서 ‘벨리키 노브고로드(Великий Новгород)’에 대한 도시 브랜드 마케팅,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황금고리’로 이어지는 전통 관광 노선(традиционные маршруты) 개척계획을 포함하고 있다. 이 관광마케팅 역시 내국인들에게는 자국문화를 둘러보며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고, 외국인들에게는 그동안 잘 몰랐던 러시아의 전통문화를 접할 기회, 러시아를 보다 긍정적으로 인식할 계기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평창 올림픽 준비를 마무리해야 될 것인가? 들리는 말에 의하며, 평창 올림픽에 사용될 경기장과 관객석은 현재 조립식 모듈로 건설하여, 이벤트 이후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경기장 공실률을 최소화 시키고, 더불어 비용도 절감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이 메가 스포츠이벤트가 안고 있는 ‘이벤트 이후’의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 시킨다는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접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경제적 손실을 줄였다는 것만으로 평창 올림픽에 대해 박수를 보낼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진정으로 박수 받는 이벤트로 거듭나기 위해, 전 세계로 송출되는 평창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은 물론, 지역의 특성을 최대한으로 살린 다양한 소규모 이벤트의 기획과 운영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가이미지’를 전 세계에게 각인시킬 전략이 필요하다. 모쪼록 구태의연한 K-POP 공연이나 부채춤이 아닌, 설원을 배경으로 전 세계 인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한국적인 논버벌 퍼포먼스와 드로잉쇼, 전통 창가와 국악의 현대적 재구성 등을 통해 중국과 일본이 아닌 대한민국만의 문화정체성을 보여주는 축제의 장이 되길 조심스럽게 기원하며 남은 올림픽 개최일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 본 글은 필자가 지난 2016년 6월 『비교문화연구』 제43권에 게재한 글의 일부를 발췌하여 수정, 재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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