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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중국 전통 음악예술의 이해
분류전통문화
국가 중국
날짜2017-06-12
조회수1,752
첨부파일

 

주지하다시피 한국, 중국, 일본은 같은 한자문화권이고 유교문화권에 속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중국과 활발한 문화교류를 통하여 문화와 음악을 발전시켰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부터 중국에서 많은 음악이 들어왔는데, 이를 당악(唐樂)이라 한다. 고려시대 이후에도 송(宋)의 사악(詞樂), 교방악(敎坊樂), 대성아악(大成雅樂) 등이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음악이다. 중국은 민족적으로는 한족(漢族)이 90% 이상을 차지하지만 이 외에도 조선족, 만주족, 몽골족, 위그루족, 키르키즈족 등 50여족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음악적 양상도 매우 복잡하다.

흔히 중국의 전통음악은 주로 민가(民歌), 무곡(舞曲), 설창(說唱), 희곡(戱曲), 기악(器樂)의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중국 역사 발전과정 속에서 중국음악도 마찬가지로 독특한 민족 풍격을 형성하였다. 중국은 약 5천년 이전의 원시 씨족사회에 가무(歌舞)와 가곡(歌曲)이 탄생되었다. 즉 상주(商周)시대에 이르러 이미 비교적 발달된 음악 문화가 있었으며, 서주(西周)시기에는 기록되어 있는 악기가 70여종에 달한다. 1978년 5월 호북(湖北) 수현(隨縣)에서 전국(戰國) 초기의 고분이 발굴되었는데, 그 속에는 하나의 완전한 종고(鐘鼓) 악대가 있었으며 진귀한 악기가 124개에 이르렀다. 특히 그 속에는 청동으로 주조한 편종(編鐘)이 있었는데 악종(樂鐘)이 65개, 종가(鐘架)의 길이는 10.79m, 높이가 2.67m였다. 편종은 크기가 달라서 12개의 음조를 낼 수 있고 음역은 5개 8도에 걸쳐 있으며 연주한 음악은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이 편종은 고대 중국의 악기 제조가 이미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었음을 설명해 준다. 이 외에도 ≪시경≫ 속의 "풍(風)", "아(雅)", "송(頌)"은 사실상 모두 주대(周代)의 악곡 가사이며, 그것의 악곡은 궁정과 제사에 사용된 것도 있고 민가 음악도 있다. 이것은 당시 중국의 음악이 이미 상당히 유행하였음을 설명해 준다. 주대(周代)에서 한대(漢代)까지는 중앙에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모두 민간음악을 전문적으로 책임지고 수집 정리하는 기구를 설치하였는데, 이것은 음악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전국(戰國)시대에 중국에는 음악을 체계적으로 논술한 최초의 저작인 공손니자(公孫尼子)의 ≪악기(樂記)≫가 출현하였다.

당대(唐代)는 중국의 가무(歌舞)예술이 가장 번영을 누린 시기이다. 당시에는 국내의 각 민족의 음악 교류가 빈번하였으며, 일본인도 한국, 동남아 등지의 음악도 끊임없이 중국으로 유입되어 중국의 음악문화를 매우 풍부하게 하였다. 민간음악이든 궁정음악이든 모두 매우 흥성하여 문헌상의 기록에 보이는 악곡 명칭만도 수백여 종이나 된다. 예를 들면, 유명한 대곡(大曲)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은 체제가 방대하고 구성이 복잡하며 소리, 음악, 춤이 결합된 것으로 당시 궁정음악의 매우 높은 예술적 성취를 대표한다. 또한 중국에서 수입된 악기는 궁중음악의 주요 악기로 쓰인다. 편종, 편경을 비롯하여 해금, 아쟁, 당적 등의 많은 악기가 들어왔다. 우리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 중의 하나로 여겨지는 장고도 예전에는 당악기로 분류되었다. 중국의 음악이론도 받아들여서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12율명이나 12율을 만들어내는 삼분손익법 등이 모두 이 시기에 들여온 것이다.

 

 

 

그림 1 12율명의 예

 

송원(宋元)시기에 도시 무역의 중심인 "와사(瓦舍)" "구란(勾欄)"은 민간의 각종 음악 예인(藝人)들이 모이던 장소로써 시민계층의 통속음악 예술을 발전시키는데 비교적 양호한 환경과 조건을 제공하였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예술가곡(藝術歌曲)과 고사인물(故事人物)의 설창(說唱)을 특징으로 하는 공연예술이 신속하게 발전하였으며, 예인(藝人)들은 시민들이 좋아하는 많은 설창 악곡을 창작하였다. 이와 동시에 일부 전문 예인(藝人)과 예술단체는 수당(隋唐)의 산악(散樂)과 백희(百戱)의 전통을 발전시켜 고사 인물과 설창 가무 악기를 결합하여 새로운 예술 영역인 잡극(雜劇)을 번영으로 이끌었으며, 그리하여 희곡(戱曲) 음악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이 때에는 또한 작사(塡詞)와 가창(唱曲)이 일시에 풍미하여 희곡 공연예술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남송(南宋)의 완약파(婉約派) 사인(詞人)이면서 음악가인 강기(姜夔)는 사곡(詞曲) 음악을 창작하는 중에 후세 사람들을 위해서 송사(宋詞) 음악의 기본적인 특색을 대표하는 귀중한 작품을 남겨 주었다. 설창음악과 희곡음악의 발흥은 악기 예술의 발전을 가져와 중국의 전통 악기는 호금(胡琴), 피리(笛子), 금(琴), 생(笙), 소(簫), 비파(琵琶) 등으로 구성된 취(吹), 납(拉), 탄(彈), 타(打)의 4대 유형의 구조가 형성되어 소형 음악합주의 흥성과 독주예술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명청(明淸)시기에는 다양한 민간음악이 출현하였다. 특히 예술가곡 설창음악과 희곡음악의 발전은 민간 가무와 기악 합주의 번영을 촉진시켰다. 근대사회에 접어든 이후에도 전통음악은 계속 발전하였지만 새로운 시대적 특징이 출현하였다. 즉 민가, 설창, 희곡, 기악, 가무 등의 음악형식이 명청시기보다 더욱 대중화되어 갔다. 수많은 새로운 악종(樂種)과 새로운 곡종(曲種), 새로운 극종(劇種)이 연이어 흥기하고, 일찍이 없었던 대규모의 음악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고 발전하여 중국 음악계에는 그야말로 활기가 가득하였다. 이와 동시에 금관악기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트럼펫 교향악 화성학(和聲學) 등과 같은 서양의 악기와 음악이 중국에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중국의 이호(二胡), 피리(笛子), 금(琴), 생(笙), 소(簫), 비파(琵琶) 등의 악기 및 음악과 상호 호응하여 중국의 음악 영역과 중국인의 시야를 넓혀 주었다. 한편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몸통이 큰 악기를 좋아했다. 편종이나 편경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인데, 중국에서 약 2,000년 전에 만들어졌던 편경은 64개의 대리석을 걸어놓고 세 명의 악사가 연주해야 할만큼 그 규모가 엄청나다.

 

 

그림 2 중국전통악기 편경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정부의 강력한 지원하에서 음악예술 사업은 왕성하게 발전하였다. 음악창작 방면에서는 제재가 폭넓고 형식이 다양하여 우수한 작품이 수없이 나타났다. 음악공연 방면에서는 가창단 가무단 관혁악대 민족악대가 보편적으로 설립되어 우수한 작곡가 가수 연주가 지휘자들이 대량으로 배출되어 나왔다. 전문 음악단체 외에도 대중적인 음악활동도 매우 활발하였다. 음악이론 연구와 음악교육 방면에서는 과거에 거의 공백 상태였으나, 이때에 이르러서는 전문적인 연구기구와 음악학교를 설립하고 음악잡지도 출판하게 되었다. 이외에 외국 음악계와의 교류도 끊임없이 확대하였다. 이상에서 신중국이 왕성하게 전개한 음악예술 사업은 중국 음악예술의 질적 향상을 촉진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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