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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위진남북조시대 僧肇의 禪宗 사상에 대하여
분류철학과 사상
국가 중국
날짜2017-03-07
조회수1,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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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자연과 사회의 관계가 대립하게 된 시기는 중국의 위진남북조시대였다. 당시 문인들은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한 사회적 분위기로 말미암아 인간 존재의 무상과 인생의 허무함을 느꼈고, 당시 사회질서에 대해 회의와 번민 속에서 반감을 나타냈다. 당시 지식인 문인들 사이에는 불안하고 모순에 가득 찬 현실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전개했다. 그래서 그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도 강렬하게 일어났다. 당시 초월적 본체를 탐구했던 玄學사상이나 고상한 정신세계를 담론의 주제로 삼았던 淸談사상은 이러한 배경에서 태생된 산물이다. 또한 사회적 관계의 불확실성과 생존의 불안감은 일찍부터 정치적 질서를 부정하고 사회적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들을 만들어졌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벗어나서 자연에 은거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중국적인 현자의 원형인 은사가 이 시대 지식인들의 이상형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은일은 시대적 유행이 되었다. 이에 따라 앞에서 지적한 바대로 자연과 사회는 대립적인 관계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위진남북조시대에 은일은 한편으로 정치적인 성격을 띠면서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인 삶과의 조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정치성을 탈각해가는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 시기 자연은 내가 그 속으로 돌아가야 할 공간이 아니라 그것과 더불어 함께하는 공간이 되었다. 자연은 여전히 사회와 대립되지만 사회에서 자아가 느낀 긴장을 해소하는 자아의 내면적 공간으로 변화하였다. 여기서 당시 자연관의 변화에는 불교, 특히 선종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위진남북조시대 선종을 대표하는 僧肇의 불교사상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알아본다.

승조(僧肇, 384년~414년)는 중국 동진의 승려이다. 속성은 장(張)이다. 《고승전》에 따르면, 경조(京兆) 사람이다. 원래 노장을 우러러 믿었으나, 《유마경》을 읽고 크게 감동하여, 출가해 쿠마라지바 문하를 따르게 되었다. 쿠마라지바와 함께 장안에 들어가 역경 사업에 종사했다.

 

 

그림 1 승조화상

 

일반적으로 불교사상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어느 정도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그 특징을 말하기는 어렵다. 초기불교는 현실에 대해 “존재세계는 모두 고통스럽다.[一切皆苦]”라는 통찰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온갖 고통으로 뒤덮인 이 곳(此岸)과는 다른 저곳(彼岸)의 세계에 최상의 가치가 부여된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고통이 완전히 소멸된 상태를 ‘열반(涅槃)’이라고 한다. 그런데 분명히 열반의 성격은 “존재 세계가 무가치하다.”는 허무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따라서 유가로부터 염세주의적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이에 맞서 당대에 이르면 인도적 색채를 거의 벗어난 禪宗이라는 독특한 종파가 등장하게 되는데, 禪師들은 “나고 죽는 이 세계가 바로 열반의 세계다”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이는 초기 인도불교와는 달리 현실세계를 적극 포용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은 교학불교의 복잡하고 추상적인 사유체계로부터 벗어나 보다 명확하고 현실적인 이론을 정립해나가게 되는데, 즉 “경전에 의지하지 않고, 문자에 사로잡히지도 않으며, 사람의 참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본성을 꿰뚫는 통찰로 진리에 이른다”라는 네 가지 선언 문구가 그들의 사상을 잘 압축해주고 있다. 그리하여 선사들은 삶의 의미와 인간의 운명에 대한 물음에 ‘마음(心)’을 중심에 놓고 그 해답을 구하고자 했다. 불교사상에서 마음은 매우 특별한 가치를 갖는 용어로서, 특히 선종에서 이 개념은 존재론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선사들은 마음을 실존적이면서도 세계내의 존재들과 근원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존재의 근원으로서 이해했다. 또한 마음을 완전한 자유의 경지를 스스로 체득할 수 있는 역동적인 주체로서 이해했다. 그러므로 자기구원의 문제는 존재의 근원인 마음을 어떻게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해결점을 찾는 것이 된다. 그는 존재의 근원을 가장 진실한 상태를 나타내는 ‘공(空)’으로 보았다. 즉 존재의 근원인 마음(心)은 ‘텅 비어 있는 바탕’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텅 비어 있는 마음’은 바로 근원적인 ‘性’, 즉 ‘佛性’인 것이다. 즉 불성이란 세계안의 모든 존재자들이 함께 부여받은 존재의 본질인 것이다.

또한 혜능(638~713)은 “둘 아니 본성(性)이 바로 불성”이며, “불성은 항상 청정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불성을 깨닫기 위해서는 ‘자기 마음속의 선지식, 즉 훌륭한 친구’와의 만남을 강조한다. 마음속의 선지식은 바로 본래 자기 자신이다. 선지식과의 ‘순간적 만남’을 통해 모든 존재자들이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이 같은 혜능의 말은 ‘속박되지 않는 인간’에게서 일어나는 존재체험으로, 본래의 자기 자신과 이루는 존재론적인 만남이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나’는 세계전체와 만난다. 이 ‘본성’은 곧 마음의 ‘참본성’과도 동일한 의미인데, 그렇다면 마음의 ‘참본성’에 의거한 인간의 행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선악도 부정되는 空의 개념이라면 어떠한 행동도 불성이라는 한마디에 포함시켜 정당화 되는가? 이는 자칫 윤리적인 문제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유가로부터 비난을 면치 못한다. 따라서 선사들은 인간의 행위를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하나는 ‘무심(無心)’의 상태에서의 행위이고, 다른 하나는 ‘대상’에 집착되는 행위이다. 이는 ‘모습 없는 오묘한 행위’와 ‘모습에 사로잡힌 행위’, 다시 말하면 ‘선악을 넘어서는 행위’와 ‘선악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행위’와의 구분을 말한다. 선사들이 행위를 두 가지 차원으로 구분한 것은 바로 인간의 자유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사유나 행동이 대상에 집착하게 되면, 전후의 생각과 행동이 서로서로 인과관계를 맺게 된다. 이것은 제약된 세계에로 얽혀드는 행위이므로 자유로운 행위가 아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행위 하면서도 이러한 제약된 세계를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무심의 상태에서의 행위이다. 즉 선사들은 인간이 가장 순수해지며 그래서 제약당할 수 없는 마음의 상태가 있다고 믿었다. 가장 순수하며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상태가 바로 무심이다. 그리고 무심의 상태에서 인간의 행위는 자연의 순수한 생성작용과 일치한다. 그래서 이른바 “무심이 도에 부합한다.”라고 한다. 여기서 도는 깨달음을 말한다. 그래서 무심의 행위는 존재의 순수한 생성을 깨달은 선악판단의 영역을 넘어선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현실을 통째로 버릴 수 없다. 따라서 선사들은 “나고 죽는 이 세계가 바로 열반의 세계이다.”라는 대승불교의 교설을 무심을 통해 체득하고자 한 것이다.

위진남북조시대 불교는 일반적으로 격의불교라고 일컬어지는데, 그것은 노장사상을 토대로 불교를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불교와 노장사상은 세계를 보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서로 달랐다. 격의불교를 중국적인 토양에 뿌리박은 불교로 탈바꿈시킨 사람은 다름 아닌 승조이다. 그가 지은 『肇論』은 격의불교에서 분분했던 반야사상에 대한 이해가 일단락되고, 불교가 중국철학의 중심 주제가 되었음을 알리는 매우 중요한 책으로, 승조의 선종 불교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림 2 <<조론강의>> 표지

 

먼저 「物不遷論」은 현상론으로서 俗諦에 해당하고,「不眞空論」은 眞諦, 즉 본질론이다. 다음으로「般若無知論」은 성불의 원인에 대한 설명이며, 마지막으로「涅槃無名論」은 열반에 대한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불교방면에서 중국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던 위진남북조 시기의 학술 경향이 현학인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주지하다시피 현학은 불교가 수용될 수 있는 기초가 된 동시에 중국에서의 불교 수용 현상이 어느 특정 종파에 치우쳐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중국 고대인 사고의 관심은 주로 도덕론에 치우쳐져 있었다. 반면 위진남북조시대 현학사상의 주된 관심은 바로 우주 본체론으로 치우쳐져 있었다. 이 당시 현학 사상의 기본 명제는 바로 ‘無와 有의 관계’에 대한 정립이었다. 우주의 궁극적 존재 근거이자 본체인 無와 그 현실적 바탕을 이루는 현상의 有를 어떻게 관계 하느냐가 매우 중요했다. 위진남북조시대 현학자들이 불교를 수용할 시에도 불교를 그 자체로 이해하기보다, 현상과 본체의 관계에 비추어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수많은 현학자들의 불교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는 우주 본체론의 관점에서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가 많이 부족했다.

흔히 六家七宗으로 분분했던 격의불교의 세계관은 本無宗의 형이상학적 세계관과 心無義의 관념론적 세계관으로 대별되는데, 이 두가지 세계관은 모두 불교의 ‘공’의 의미를 현학의 ‘무’의 관념에 비추어 해석하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세계관은 형이상학적 실재를 상정한다는 점에서, 또 관념론적 세계관은 관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는 점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차원이 다른 세계를 인정하려는 이원론적 세계관이다. 게다가 이 두 가지는 변화하는 세상의 현상에 비해, 조용하고 변화하지 않는 현상 본체를 높이 평가하는 현학적인 사상을 추숭하는 경향성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하지만 위진남북조 대표적인 학승인 승조는 이러한 세계관에 결코 동의하지 않았다. 승조는 현실 세계를 기존의 본체와 현상이라는 이원적인 구조로 파악하는 현학적 사유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체와 용의 상보적인 관계를 통해 ‘空’을 이해하려고 했다. 이처럼 승조는 현실세계를 무궁무진하게 매일 변화하고, 자신과 같은 않은 모습의 성질이 바로 현상의 참모습이라고 역설했다. 그가 「물不천론」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부분도 바로 이 점이다. 승조는 운동과 시간의 관념 뿐 아니라 변화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통해 空의 이치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또한 승조는 일반인들이 ‘動而非靜’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과거가 현재에 이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만약 과거가 현재에 이르지 않는다면 현재도 어디론가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사물이 현재 존재하지 않기에, 과거의 사물이 현재로 오지 않으며, 반대로 현재의 사물은 과거에 없었기 때문에 과거로 흘러가지 않는다. 때문에 사물은 천류하지 않는다고 인식하는데 이것을 ‘정이비동’이라고 했다. 그는 움직임과 정적인 대립 관계를 통하여 고요함을 구하되 움직임을 버리지 않고, 움직임 속에서 고요함을 구해야만 한다고 논하고 있다.

승조의 『조론』은 현학의 체용론을 불교에 적용시켜 중국불교이론서로 중국불교사에서 매우 중요한 저작이다. 그의 일원론적 체용론은 현상을 끊임없이 생멸하며 찰나적으로 존재하는 가상으로 인식한다. 이처럼 승조가 세계를 가상으로 해석함으로써 타파한 것은 본체론의 이원론적 사유만이 아니고,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본체론이 가지고 있던 세계에 대한 관념이다. 다시 말하면 객체로서의 세계의 존재가 부정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보통 노장사상에서 세계는 대상화된 실체의 존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 관계와 운동은 객관으로서의 세계를 바탕으로 해서 성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세계는 이제 더 이상 객관적 실체가 아니고, 空한 가상, 즉 주관적인 마음의 경계로 전환하게 객관으로서의 자연은 상대적이고 유한하다. 반면, 가상으로서의 자연은 시공을 초월한 무한성을 표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노장사상에서 변화는 즉 순환이라고 귀결되었다. 그러나 승조는 자연이 ‘불변’하는 관념을 깨뜨렸다. 그리하여 위진남북조대 선종이 흥기한 이후에 지식인의 세계관속에 더욱 깊이 파고들어 갔다. 마침내 도가의 자연 관념을 변화시키고 이전까지의 관념을 극복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위진남북조시대 대표적인 학승인 승조는 선종을 널리 발전시키고 전파시켰다. 또한 그는 자연을 인간 마음의 경계로 전환되었다.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나 외연과 연속이라는 성질을 잃게 되며 초시공적인 자연이 되어 마음의 경계를 현시하게 된다. 이러한 선종의 종교적 깨달음이 바로 이와 같은 감성적 인식을 통해 나타났다. 그 전환은 외적인 데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사람 내면 인식의 주관에서 일어난 것이다. 또한 승조는 깨달음은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선종이 유일무이하고, 구체적인 개체의 경험을 매우 강조했다. 찰나의 순간에는 어떤 연상이나 언어적 사유가 개입될 수 없으며 주관의 욕망이나 관심도 관여할 수 없다. 이러한 선종의 무관심한 인식으로 자연 사물에 대한 순간적 직관을 순수한 직관으로 전환하여 특별한 경험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통해서 승조는 자연의 사소한 사물 속에서 우주의 진리를 발견하는 선종의 직관적 자연 체험을 가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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