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인문한국) 사업단 홈페이지

HK(인문한국) 사업단

웹진 문화로(文化路) 내용 시작

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붉은 광장 위에 펼쳐진 책들의 향연
분류철학과 사상
국가 러시아
날짜2017-02-08
조회수1,387
첨부파일


러시아인들의 책 사랑과 일상화 된 독서 습관은 유명하다. 최근에 들어와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빠르게 움직이는 열차 속도가 주는 좌우 흔들림으로 인해 악명이 높았던 모스크바 지하철 내 어두침침한 조명 아래에서도 러시아인들의 독서에 대한 열의는 변함없이 유지되어왔다. 이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스마트 폰과 태블릿 PC가 기존의 할머니, 할아버지 혹은 아주머니와 아저씨 손에 들려있던 신문과 문고판 서적을 대체해나가는 추세이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으로 짐작되어 보이는 사람들의 손에 책이 쥐어져 있는 것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어두운 지하철 객차 안을 벗어나면, 넓고 탁 트인 공원에서 그들의 독서가 계속된다. 특히 차들이 다니는 도로 면적보다 사람들이 거니는 공원길이 훨씬 더 넓은 것으로 유명한 모스크바 중심부의 트베르스코이 공원에서, 눈으로 하얗게 뒤덮이는 한겨울을 제외하고, 산책로 곳곳에 놓인 벤치를 마치 야외도서관 의자처럼 여기며 독서 삼매경에 빠진 모스크비치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림 1. 트베르스코이 불바르에서 독서와 담소를 나누는 러시아인들>
 

이렇게 책을 소중히 여기는 러시아인들에게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었던 때가 있었으니, 바로 소비에트가 붕괴된 직후였다. 동시에 바로 이 시기에 그 동안 소비에트 정부가 '금서'로 낙인찍어 놓았던 책들이 ‘주홍글씨’를 떼고 일반인들에게 대거 공개되면서, 너도 나도 앞 다투어 신간 아닌 신간을 구하기 위해 서점을 들락대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비에트 붕괴 직후, 그 동안 정부의 우산 아래에서 성장하며 한 번도 체험해보지 못했던 재정적 위기에 처한 출판사들은 독자들의 갈증을 넉넉하게 채워줄 만큼 충분하게 해금 도서를 공급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인쇄 부수를 최소화시키고, 그나마 각 지역별 도서관 및 학교에 배당되는 의무 납입 부수를 제외하고 나면, 실제로 서점에 풀리는 책의 부수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실제로 일반인들이 90년대 초반 해금도서를 접할 수 있는 경로는 서점을 통한 도서 구입보다는 도서관을 통해, 혹은 간간히 문학계간지에 실리는 신간 및 해금도서 지면을 통해 더 많이 이루어졌다 할 수 있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당시 문학연구자는 물론, 나름 문학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던 러시아인들은 오로지 신간을 읽어보겠다는 일념으로 도서관에 가서 책을 신청하고, 그나마 누군가 먼저 와서 자신이 신청한 책을 선점하여 읽고 있는 중이라면, 그 책이 반납되길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본의 아니게 한정판으로 제작된 도서들은 90년대 중후반을 넘어가서도 여전히 구하기도 힘들고 값도 터무니없이 비쌌다. 석사 과정 시절, 논문 쓸 자료를 찾아보겠다는 기특한 마음으로 잠시 러시아에 들린 적이 있었다. 오로지 바흐친 책을 사겠다는 일념으로 여러 서점을 뒤지고 돌아다니던 시절, 우연치 않게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인문대 서점에서 «프랑수와 라블레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 시대의 민중 문화»라는 중고 서적을 발견하는 행운을 거머쥔 적이 있었다. 당시 서점 주인에게 “이 책은 다시 안 찍나요?”라고 질문하자 돌아오는 대답은 “아마 당분간은 그럴 일 없을걸...”이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일반 책 가격의 거의 5배 이상을 주고 그 책을 구입했지만, 비싼 책 가격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원하던 책을 손에 넣었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어딘지 모를 뿌듯함마저 느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2000년도 이후, 절대로 다시 나오지 않을 것 같던 바흐친 책이 재판되기 시작했고, 심지어 보급용 문고판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지켜보면서(이제는 인터넷 상에서 무료로 PDF 파일을 다운받을 수도 있다!) ‘흠, 그래도 나는 소비에트 시절에 출판된 판본을 손에 넣었으니...’라는 생각으로 이제 와서 어딘지 손해 본 것만 같은 느낌을 떨쳐내기도 했다.

 

이렇듯 2000년대 이후, 러시아 경제 상황이 나아지기 시작하면서 출판업계도 호황을 맞기 시작한다. 간혹 연구자들 사이에서, 소비에트 붕괴 이후 얼마 동안 지속되었던 턱없이 싼 책 값 덕분에, 서점에 들어가서 책장 몇 줄을 그대로 쓸어 담아 왔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회자되곤 한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전설과 같은 일이 일어나기는 힘들 것 같다. 2005년을 전후로 러시아 내 책값이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고, 예전처럼 지금 당장 읽을지 읽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싼 맛'에 일단 구입하고 보자는 심리가 작동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대신 러시아 출판계 역시 '변신'을 시작했다. 종이의 질과 표지 디자인의 퀄리티가 놀라울 만큼 변화되었고, 러시아 서적 특유의 '고리고리한' 냄새도 더 이상 맡을 수 없었다. 과거의 학술서적 및 정부에서 관리하는 도서 목록에 맞춰 책을 출판해왔던 '관료주의식' 출판사들은 서서히 사라져가고, 그 자리를 판타지와 추리 장르를 전면에 앞세우며 등장한 '아즈부카', '엑스모'와 같은 신규 대형 출판사들이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신규 대형출판사들은 다양한 출판 행사와 마케팅을 통해 자신들의 영역을 점점 더 넓혀 나갔다. 대규모 도서 전시회 및 책 시장 역시 독자들이 다양한 책과 만나는 자리인 동시에 출판사 마케팅을 위한 최적의 창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림 2. 제1회 모스크바 국제 도서 전시박람회>

 

구 소비에트에서 개최된 최초의 도서전시회는 1977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국제 도서 전시박람회'이다. 당시 67개국에서 1535개의 출판사가 참여했는데, 이때부터 2년에 한 번씩 모스크바에서 '국제 도서 전시박람회'라는 명칭 하에 도서전시회를 개최하게 되었으며, 1995년부터는 매년 모스크바 '전 러시아 전시 센터(베베체)에서 도서전시회가 개최되고 있다. 실제로 소비에트가 붕괴되기 전까지 «모스크바 국제 도서 전시박람회'는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비영어권 도서 전시회로 명성을 떨쳤으며, 2017년 가을에는 4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국제적 규모의 도서 전시박람회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도서 소개 및 판매, 도서 판촉 관련 행사는 물론, 출판사 간의 협력 및 도서 유통과 판매로 구축이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된다.

 

하지만 국내도서전의 경우 국제 도서 전시박람회와 다소 다른 성격을 지니고 진행된다. 국제 도서 전시박람회가 말 그대로 출판사 마케팅 차원의 '전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국내 도서전은 일반인들을 위한 '도매 책시장'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국제 도서전시회처럼 연 단위로 일정 기간 동안에 걸쳐 개최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지역에 '상설'로 개최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국제 도서전의 경우 보통 '전시-박람회'라는 단어를 행사에 적용시켜 사용하지만, 국내 도서전의 경우 '전시, 박람회' 보다는 '시장'이라는 명칭으로 더 자주 통용되곤 한다. 모스크바 시내의 프로스펙트 미라(평화 거리)에 위치한 올림픽 경기장 내 상설 도서시장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올림픽 복합경기장 내 상설 도서시장의 역사는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상설 도서시장에 가면 일반 서점에 없는 책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겁도 없이 프로스펙트 미라까지 찾아갔던 나는 무려 6층에 달하는 도매 시장의 엄청난 규모에 한 번 놀라고, 복도까지 꽉꽉 들어찬 책 무더기에 한 번 더 놀랬다. 마치 동대문 의류시장에라도 들어온 듯한 기분을 느끼며 책을 뒤적이던 중, 좀 더 둘러본 후에 한꺼번에 구입할 요량으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결국 아까 들렸던 서점을 찾지 못해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던 웃지 못 할 해프닝도 몇 번 겪었다. 현재까지도 여전히 그 위상을 떨치고 있는 올림픽 경기장 내 책 도매시장은, 한 때 2018년 러시아에서 개최되는 세계축구선수권대회 개최 장소로 사용하기 위한 리모델링을 위해 폐쇄한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지만, 현재 '북 클럽'이라는 명칭으로 개명한 뒤에 계속 운영 중이다. 1층에서 3층까지는 법률서적, 중고서적, IT서적, 심리학 및 의학 서적을 비롯하여 아동도서와 앨범, 엽서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4층에서는 문학작품, 사진 앨범, 달력, 기념품, 잡지 등을 판매하고 있다. 5층은 주로 학생들을 위한 공간으로 교과서와 참고서 및 문구용품을 판매하며, 6층에서는 시즌 특별 상품을 판매하는데, 예를 들자면, 개학과 입학을 앞둔 6~8월 사이에는 문구류 및 교과서를 판매하고, 12월에는 트리 및 장식품 등 신년 맞이 기념품을 판매하는 식이다.

 

 

<그림3. 올림픽 복합경기장 내 상설 도서 도매시장>

 

 
<그림4. 올림픽 복합경기장 내 상설 도서 도매시장 내부>

 

러시아 내에서 이러한 도매시장 형태 외에 '전시'에 비중을 둔 국내 도서박람회는 2000년대를 전후하여 본격적으로 활성화 된다. 가장 대표적인 국내 도서 전시박람회는 1998년부터 '베베체(전 러시아 전시 센터, 구 베데엔하)'에서 «러시아의 책»이라는 이름 하에 매년 3월에 개최되는 국가 도서 전시박람회이다. 통상적으로 러시아 연방 민족 언어로 쓰인 10만권 이상의 도서가 전시된다. 2015년이 러시아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문학의 해'로 선포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당해에 매년 «러시아의 책»이라는 명칭으로 개최되었던 도서박람회가 전면 취소되었다. 취소 이유는 여러 가지 경제적 상황 악화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새로운 형태의 도서 페스티벌 «붉은 광장»이 행사 명칭과 동일한 장소 '붉은 광장'을 무대로 개최되어 «러시아의 책»을 대신하는 새로운 도서 행사로 자리매김 하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러시아의 책» 행사는 대체로 봄을 알리는 3월에 개최되었고, «붉은 광장» 페스티벌은 백야와 함께 여름이 시작되는 6월에 열린다는 것이다. 작년에도 도서 페스티벌 «붉은 광장»이 개최된 4일 동안 러시아 내에서 가장 우수한 도서들은 성 바실리 사원에서 역사박물관에 이르는 공간을 가득 메웠다. 또한 «붉은 광장» 도서 페스티벌은 문학의 해로 명명된 2015년도에 러시아에서 개최된 다양한 문학행사의 구심점 역할을 해낸 것은 물론, 러시아 내 50개 지역에서 참가한 300개 이상의 출판사에서 10만권 이상의 도서를 전시하면서, 명실 공히 러시아를 대표하는 새로운 문학 행사로 당당히 등극하게 된다. 한편 2016년에 다시 재개된 «러시아의 책» 도서 전시박람회는 모스크바라는 한정된 공간을 벗어나 러시아 전 지역에 걸쳐 순회 형식으로 개최됐다.

 

 

<그림 5. 2016년 도서 페스티벌 «붉은 광장» 포스터>

 

그 외에도 '베베체'에서는 1977년부터 시작된 «모스크바 국제 도서 전시박람회»가 매년 개최되고 있으며, 개최 4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9월, 제30회 국제 도서 전시박람회가 열릴 예정이다. 1977년 당시 총20개 전시관을 토대로 시작된 «모스크바 국제 도서 전시박람회»는 현재 매년 200만 명 이상의 독자들이 찾는 '문학 이슈'로 자리매김 했다. 또한 2016년도에는 매일 저녁 7시에 마감되는 전시회를 둘러보기 힘든 직장인들의 참여도 및 호응도를 높이기 위해 ‘베베체’ 내 광장에서 저자와의 만남, 오픈 콘서트 등 다양한 문학 관련 행사를 진행하면서, 직장인들으 비롯한 일반인들의 문학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는데 한 몫을 했다.

 

 

<그림 6. «모스크바 국제 도서 전시박람회» 풍경>

 

 

<그림 7. «모스크바 국제 도서 전시박람회»에 참가한 '엑스모' 출판사 전시 스탠드>

 

이와 같은 다양한 도서 박람회 및 전시회의 개최는 책과 독서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 지수를 높이는 동시에, 러시아 내 출판업의 진흥 및 발전을 위한 매개체가 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서 전시박람회의 개최 장소 역시 초기에는 일부 주요 도시에 한정되었지만, 점차 러시아 전 지역으로 개최지 및 행사 규모를 확대해나간 결과, 이제는 도서 전시박람회가 러시아인들 사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문화 행사로 자리매김 되었다. 

목록
이전글 이전글한일영화교류와 한일관계 (2017-02-10)

웹진 문화로(文化路) 내용 끝

TOP

저작권 표시 및 연락처

06974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로 84 법학관(303관) 1420호 / E-mail: fsicau@cau.ac.kr / TEL: 02-820-6355 / FAX: 02-822-0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