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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중국 연말연시 상업영화의 거장 펑샤오강
분류대중문화
국가 중국
날짜2016-12-06
조회수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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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샤오강 감독은
2000년대 최고의 흥행감독중 한 명으로 중국 상업영화의 개척자이다.그는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 1위로 선정된 중국의 국민 감독이기도 하다. 때로는 사회현실에 대해 방관적이고, 예술적 깊이가 없으며 지나치게 상업주의에 영합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펑샤오강은 문화대혁명으로 하방(下放)하여 10년 동안 농촌 및 군대에서의 노동을 통해 중국 인민의 삶을 경험한적 있는 5세대 감독이다. 그는 1978년에 베이징영화대학에 입학하여 보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게 된다. 이러한 인생의 궤적은 그들의 영화에도 영향을 주게 되는데, 기존 영화의 형식과 주제에 대해서 끊임없는 의문을 던지며 파격적인 작품들을 발표하기에 이른다.그가 만든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흥행에 성공하여,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꿈을 담는 영화를 제작하여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영화적 제재를 선택하고, 이에 따른 관객의 욕망을 읽어내어 철저히 관객을 중심에 둔 영화를 만들었다.
 


그림 1. 펑샤오강 감독

 

한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는 시기로서 크리스마스와 중국의 최대명절인 춘제(春節)로 이어지는 이기간은 가족과 연인들이 긴 연휴의 기쁨과 송구영신에 들뜬 마음으로 극장을 찾게 되는 이른바 중국영화시장의 최대 성수기라 할 수 있는데, <하세편(賀歲片)>이란 이렇게 12월부터 음력설까지의 기간에 걸쳐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연말연시 특선영화를 말한다. 하세편의 공식적인 시작은 홍콩에서 1981년에 개봉한 <미스터 부(摩登保鑣, Security Unlimited)>(쉬관원 許冠文,1981)이라는 작품이었고, 이 영화는 흥행에도 성공하였다.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중국 본토와 여러모로 닮아 있는 홍콩의 극장가는 이미 1980년대부터 이 기간에 집중적으로 자국영화를 개봉하여 상당한 흥행수입을 거두고 있었다. 홍콩의 대표적인 상업영화 감독인 청룽의 <나이스 가이>, <폴리스 스토리>와 저우싱츠의 <서유기>, <가유희사> 등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작품들이 홍콩에서 하세편으로 개봉하여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던 만큼 홍콩의 하세편은 일찍이 상업영화시장의 대목으로 자리 잡아 왔고 남녀노소 누구나 웃고 즐길 수 있는 가벼운 소재의 오락영화가 대세를 이루었다.

중국영화산업의 태동은 상하이에서 1920년대부터 영화산업이 시작되었고, 1930년대부터는 스튜디오 시스템으로 영화를 생산하여 배급과 상영도 이루어질 정도로 부흥하였으나 1932년 일본군에 의해 상하이가 점령되고 1937년 중일전쟁이 발생하면서 상하이 영화사는 홍콩에 영화제작시설을 만들게 된다. 이 때 상하이에서 활동하던 많은 영화인들이 홍콩으로 이주한다. 1949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상하이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영화계 인력과 자본이 다시 홍콩으로 대거 유입되어 홍콩상업영화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중국본토와는 정치· 경제적으로 완전히 격리되어 독자적인 길을 걷는다. 1950년부터는 매년 200여 편의 영화를 비롯하여 철저히 오락성을 띠는 영화가 만들어졌으며 1952년에는 해외배급수입이 320만 달러에 이르게 된다.홍콩민들은 일상의 고단함을 잠시 잊기 위한 문화의 일부로 영화를 보게 되었고, 영화는 저변 넓은 대중오락물로서 그 입지를 넓혀가기 시작한다. 1960년대 쇼 브라더스(邵氏兄弟有限公司)는 고전무협영화로 중흥기를 맞았고 홍콩영화는 1970년대 중반부터 국제화와 스타시스템으로 상업영화의 전성기를 맞는다. 당시 홍콩의 유력한 영화제작사중에 하나인 골든 하베스트(嘉禾娛樂事業有限公司)는 자사의 인기스타인 청룽(成龍)과 리샤오룽(李小龍)이 주연을 맡은 영화를 동남아 화교권과 미국에 개봉해 흥행에 성공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1986년에 우위썬(吳宇森)감독이 연출한 <영웅본색(英雄本色)>의 큰 성공으로 80년대와 90년대를 풍미했던 홍콩 누아르로 다시 황금기를 여는 듯 하였으나 90년 중반부터 쇠퇴기로 접어들게 된다. 하지만 홍콩의 중국반환이후에 중국 내륙시장과 북미시장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기 시작한다.1949년 이후 홍콩은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영화시장의 활로를 찾은데 반해, 중국은 당국에 통제를 받으며 퇴행하고 있었다.

<하세편>은 중화권에 최대성수기로 영화산업의 가늠자와 같은 상징성을 띠고 있고, 하세편을 통해 많은 화교권의 영화거장들이 배출되게 된다. 청룽(成龙)코믹 무술영화’, 저우싱츠(周星馳)모레이타우(無厘頭)’로 불리는 황당한 줄거리와 난센스(Nonsense)로 점철된 영화, 펑샤오강의 펑씨 코미디로 대변되는 영화는 하세편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996년 홍콩영화인 청룽의 <홍번구(紅番區)>는 홍콩·대만·중국에서 하세편으로 동시 개봉되었고 중국에서 6000만 위안의 흥행수입을 올리면서 중국본토의 하세편에 대한 성공의 가능성이 엿보였다. 또한 중국에서는 19971224일에 개봉한 <갑방을방>(甲方乙方)3600위안의 수입을 올리며 중국 하세편의 효시가 된다. 하세편인 <갑방을방>에서 2003년에 개봉한 작품인 <핸드폰>까지의 총 다섯 작품은 거요우가 연달아 출연하는데, 하세편의 성공은 거요우가 사용하는 북경식 어투의 유머와 펑씨 코미디로 불려지는 펑샤오강 특유의 유머가 성공적으로 조화되어 이루어 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하세편이 중국 본토에서 영화의 대목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일조하였으며 다양한 하세편이 뒤따라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20021214일에 개봉된 장이머우 감독의 <영웅(英雄), Hero>에서는 기존까지의 하세편의 틀을 깨는 새로운 시도가 진행되었다. <영웅>의 제작비는 2.6억 위안이고 리롄제(李连), 장만위(張曼玉)등 톱스타들과 6500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된 초대형작으로 흥행에 성공하게 된다.저예산 코미디 영화였던 하세편의 장르가 점차 다양화되면서 감독들은 하세편에 막대한 제작비를 들이기 시작했고 결국 그 해에 해당 영화사의 명운이 걸린 대작 영화들이 격돌하는 경연의 장으로 바뀌는 단초가 되었다. 2004년에펑샤오강 감독의 <천하무적>1.2억 위안 흥행기록을 세우면서 <영웅>에 이어서 하세편의 대작영화로서 성공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저우싱츠감독의 국제적인 자본으로 만들어진 <쿵푸허슬>1.3억 위안의 흥행기록을 세우며 중국뿐만 아니라 대만과 홍콩, 한국 등지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1990년대 말부터 2004년까지 하세편은 <영웅>, <쿵푸허슬>등을 제외하고는 흥행수입이나 개봉영화편수가 많지 않았으나 같은 시기에 평샤오강은 하세편으로 6편을 발표하였고 모두 흥행에 성공하였으며 <천하무적>은 중국과 홍콩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하세편을 영화 시장의 대목으로 부각시켰다. 2005년 하세편으로 개봉한 천카이거 감독의 한··일 합작영화인 <무극, (無極)>은 당시 역대최고 제작비 기록을 가지고 있었던 <영웅>2.6억 위안보다 많은 3.4억 위안의 제작비가 들었고, 흥행 성적은 1.7억 위안을 기록하였다. <무극>은 장동건과 장백지, 사나다 히로유키 등 다국적 출연배우와 스텝이 참여한데다 중국인들의 취향에 맞는 중국식 환타지물로 제작되어 단연 중국영화에 최고 흥행기록을 달성한다. 2005년에 제작된 4편에 대작 영화중 두 편이 하세편으로 개봉되었고 2006년에는 장이머우 감독의 <황후화>가 중국영화수입 1위를 기록하고 펑샤오강의 <야연>2위를 기록하며 하세편의 대작영화는 박스오피스를 장악하기 시작한다.

 

 

그림 2. <야연> 영화의 한 장면

 

2007년에는 펑샤오강의 <집결호>가 하세편으로 흥행에 성공하게 되고, <명장> <무간도4-문도>가 박스오피스를 석권하며 하세편의 대작영화로 관객이 몰리는 현상은 더욱 심화되어진다. 2008년 이전의 대작영화는 박스오피스의 상위권을 무조건 휩쓸었으나 이후에는 대작 영화의 제작 편수가 지나치게 많아지면서 아무리 대작영화라고 해도 관객의 외면을 받는 일이 생기게 된다. 우위썬 감독의 <적벽>은 중국 최대의 흥행기록인 <황후화>를 넘어선 새로운 흥행기록을 세웠으나, 제작비 2.7억 위안을 들인 <황시>가 흥행에 참패를 하면서 하세편의 개봉 시기는 이전과는 달리 치열한 격전장으로 변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중국 관객들은 선택할 수 있는 영화의 폭이 넓어진 만큼 꼼꼼히 비교하고 고르기 시작하면서, 영화가 아무리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대작영화라고 하더라도 관객과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면 흥행수입에 참패로 이어지는 결과를 불러왔다. 그 해에 하세편의 대작영화 4편은 대체로 흥행에 선전하게 된다. 펑샤오강은 <비성물요>2008년에 하세편으로 개봉했고, 3.4억 위안의 흥행 성적으로 같은 해에 개봉된 오위썬(吳宇森)감독의 <적벽대전>이 세운 최대흥행기록을 간발의 차로 다시 한 번 갱신하게 된다. 당시 하세편이 대작사극영화 일색이었다는 점에서 펑샤오강의 로맨틱 코미디가 성공한 것은 의미있는 일로서 장르의 다양성에 대한 관객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었다. 2009년에 개봉한 <적벽대전2><8: 최후의결사단(十月圍城)>은 흥행에 성공하지만 기대를 모으던 <풍운 2, (風雲 2)>는 흥행에 실패하며 대작영화들은 희비가 극명하게 갈렸다. 2010년 하세편으로 개봉하고 거여우가 동시에 주연을 맡은 <양자탄비>와 펑샤오강의 <비성물요2>는 나란히 중국의 박스오피스 1위와 2위를 다툰다. 하세편은 아니지만 같은 해에 개봉된 펑샤오강의 <대지진>6.7억 위안의 흥행 수입을 기록하며 아시아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운다. 이처럼 중국영화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이런 흥행수입에 대한 기록들과 순위들은 더 자주 바뀌게 된다. 2011년 이후 대작영화는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며 중소규모의 영화일지라도 작품성과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을 관객에게 인정받는다면 제작규모와 배급사에 상관없이 흥행에 성공하는 사례가 속출하게 된다. 2012년도에 기존에 주류를 이루던 대작영화인 펑샤오강의 와 청룽의 <차이니스 조디악, (十二生肖CZ12)>2013년에 저우싱츠의 <서유항마편(西遊降魔篇)>등이 흥행에 성공하지만 그 비중은 줄어든다. 2013년 이후 이러한 현상은 가속화되어가며 대형 액션 사극이 쇠퇴하고, 멜로나 코미디물 같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하며 점차 영화 에 대한 참신함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추세에 발맞추어 펑샤오강은 블랙 코미디물인 <사인정제>를 개봉하여 흥행에 성공한다.

지난 10년 동안 중국의 극장매표수입은 매년 평균 30%의 성장세를 보였다. 2010년에 극장매표수입이 100억위안 규모를 기록했으나 이후 3년만인 2013년에는 200억 위안을 돌파하는 등 가파른 성장세에 있다. 중국은 세계2위의 일본의 영화시장을 제치고 북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시장이 되었다. 특히 최근 세계1위의 북미 영화시장의 극장매표수입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나 중국영화시장은 가파른 상승세에 있는 것은 대조적이다. 유엔 산하의 유네스코 보고서에 의하면 2020년에는 중국이 북미시장을 넘어 세계 1위의 영화시장이 형성되리란 예상도 내놓고 있다. 영화시장의 급격한 성장 뒤에는 그동안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영화 인프라 확충과 중국인들의 경제력 상승에 걸맞는 오락영화의 수요와 비견되는 공급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세편은 현재 중국 상업영화의 트랜드와 성장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으며, 누구나 인정하는 확고부동한 영화대목으로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처럼 펑샤오강은 매년 하세편마다 중화권 스타들과 함께 관객들에게 익숙한 코미디에 새로운 시나리오를 가지고 찾아간다. 관객들도 그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기대를 모으며 펑샤오강의 영화를 기다리게 되었고, 이것은 흥행수입에 상승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또한 그는 영화의 기획 단계부터 계획된 마케팅전략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의 기호를 간파하여 그들이 식상하지 않도록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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