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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미샤의 눈물 - 소치올림픽에 소환된 모스크바의 미샤 -
분류기타
국가 러시아
날짜2016-10-11
조회수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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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지금까지 2번의 올림픽을 개최했다. 그런데 그 2번의 올림픽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듯한 모양새로 묘한 대칭성을 형성한다. 1980년에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올림픽은 하계 올림픽이었고, 2014년에 소치에서 개막된 올림픽은 동계올림픽이었다. 20세기가 저물어가는 무렵에 모스크바에서 개최되었던 올림픽은 아이러니하게도 공산주의의 종주국으로서 소비에트 연방의 마지막을 장식한 행사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모스크바 올림픽은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비난하는 서방세계가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소비에트-러시아인들은 그 후 오랫동안 ‘반쪽’ 올림픽을 개최했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려야만 했다. 21세기에 접어들어서 소치에서 개최된 올림픽은 그동안 ‘꿇었던 무릎을 딛고 일어선’ 러시아의 건재함을 세계 각국에 알리고, 열강의 일원으로 복귀를 선언한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드라마’가 될 수 있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이후 서방세계로부터 가해진 다양한 압력과 제재로 인해 ‘다시 무릎을 꿇은 듯한’ 형세를 연출하게 되었고, 개막식과 폐막식을 통해 애써 채색하려했던 새로운 러시아의 이미지를 퇴색하게 만들었다.
 

 

<그림1. 모스크바 올림픽 공식 마스코트 ‘미샤’>
 

이렇듯 러시아에서 개최된 닮은 듯 다른 2번의 올림픽은 ‘미샤’라는 마스코트를 통해 연결고리를 형성하게 된다. 미샤는 1980년도에 개최된 모스크바 올림픽 공식 마스코트이다. 흥미로운 점은, 역대 올림픽 마스코트 중 ‘미샤’가 유독 인기를 끌면서 소위 ‘원 소스 멀티유즈’의 가능성을 이미 보여준 바 있지만, 모스크바 올림픽 이후 ‘미샤’는 올림픽 무대를 장식하는 캐릭터로 역할을 내려놓고 어디론가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를 슬그머니 대신한 것이 바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캐릭터 ‘체부라쉬카’이다. ‘

 

체부라쉬카’는 2004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에서 오리지널 캐릭터의 모습으로, 2006년 이태리 토리노 올림픽에서는 동계올림픽임을 명시하듯 갈색 털을 하얗게 염색(?)한 모습으로, 2008년 중국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붉은색 털옷을 입고,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푸른색 털옷을 입고 러시아 팀의 공식 마스코트로 활동한 바 있다. 보통 올림픽 공식 마스코트와 별개로 존재하는 올림픽 참가국의 팀 마스코트는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개인적으로 지니고 다니다가 개막식이나 폐막식 혹은 승리 세레모니를 하면서 관중석으로 던지거나 건네곤 한다. 꽤 오랜 시간동안 러시아 올림픽 팀 마스코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체부라쉬카’의 인기로 말하자면, 유난히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으로 인해 그저 한 국가를 대표하는 마스코트가 감히(!) 역대 올림픽 공식 마스코트에 대한 관심을 차단시키고 오히려 더 큰 인기몰이를 하면서 올림픽 공식 마스코트에 부정적인 영향을 행사한다고 있다는 의견으로 말미암아 2012년 런던 올림픽 조직위원회로부터 사용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을 받기까지 했다.

 

 

<그림2. 러시아 팀의 공식 올림픽 마스코트 ‘체부라쉬카’의 캐릭터 변천사>

 

이러한 ‘체부라쉬카’의 화려한 전적으로 말미암아, 소치 올림픽 마스코트로 ‘체부라쉬카’가 낙점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기도 했지만, 정작 주인공의 영광은 전혀 다른 동물 캐릭터에게 돌아갔고, 그 중에는 예전의 모스크바 올림픽 마스코트 ‘미샤’를 연상시키는 하얀 북극곰이 포함되어 있었다. 소치올림픽 조직위원회 역시 ‘체부라쉬카’의 명성과 인지도가 이미 새로운 올림픽 마스코트로 채택된 레오파드와 토끼, 그리고 북극곰의 캐릭터가 관중들의 머릿 속에 자리잡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러시아 팀 마스코트를 지정하지 않은 채 경기에 참여하게 된다.

 

 

<그림3.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공식 올림픽 마스코트: (좌측에서부터) 하얀 (북극)곰, 토끼, 레오파드>
 

‘체부라쉬카’의 명성을 뚫고 새롭게 지정된 3가지 동물 캐릭터 중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하얀 북극곰’이다. 러시아인들이 그동안 러시아 팀의 공식 마스코트로서 독보적인 위상을 점유하고 있던 ‘체부라쉬카’를 뒤로 하고 하얀 북극곰을 채택한 이유는, 아마도 스스로 ‘곰’이 러시아와 러시아 민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이 ‘하얀 곰’ 캐릭터는 과거 모스크바 올림픽 공식 마스코트로 활동했던 ‘미샤’를 상기시킨다. 실제로 이 북극곰 캐릭터가 완성되어 대중에게 선보인 이후, 과거 ‘미샤’ 캐릭터를 만들어냈던 빅토르 치쥐코프가 자신의 캐릭터를 표절했다는 의견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올림픽 마스코트 투표 후보군에는 ‘미샤’와 동일한 ‘불곰’ 캐릭터도 포함되어있었지만, 지지율에서 하얀 북극곰에게 밀리며 탈락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미샤’ 캐릭터 역시 대표적인 러시아 애니메이션 캐릭터 ‘비니 푸흐’를 다분히 연상시킨다. 두 캐릭터 간의 외모적인 측면도 유사하지만, 모스크바 올림픽 폐막식 당시 미샤는 비니 푸흐가 종종 한 손에 쥐고 다니던 풍선을 건네받기라도 한 듯이, 손 한가득 풍선 꾸러미를 안고서 모스크바 창공을 향해 올라간 바 있다.

 

   

                   <그림4. 비니 푸흐>                       <그림5. 모스크바올림픽 폐막식에 풍선을 들고 등장한 ‘미샤’>
  
<그림 6. 1980 미샤 vs 2014 하얀 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미샤’와 ‘하얀 북극곰’이라는 캐릭터 간의 유사성은 단순히 ‘따라하기’의 문제를 떠나서, 소비에트 시절과 현재의 러시아를 연결하고 묶어주는 하나의 고리로서 이해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는 2014년 소치올림픽 폐막식에서 ‘하얀 북극곰’ 캐릭터를 통해서 실제화 되었다.

‘하얀 북극곰’은 소치올림픽 폐막식 후반부에 다른 올림픽 마스코트인 레오파드, 토끼와 함께 스키를 타듯 무대를 미끄러져 들어오면서 등장한다. 이 때 하얀 북극곰 캐릭터와 함께 무대를 장식한 거울 모빌은 하얀 북극곰 캐릭터의 ‘타자화’를 위한 훌륭한 도구로 사용된다. 하얀 북극곰은 기다란 파편처럼 늘어뜨려진 거울 주변을 이리저리 돌면서 거울 속에 자신의 모습을 간간히 비추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의 시선으로 조망할 뿐만 아니라, 관객이 자신에게 투영한 시선을 다시금 거울 속으로 재투영하거나, 혹은 파편화되어 거울 속에 들어앉은 관객의 이미지를 바라보는 역할을 수행한다.

 

라캉의 ‘거울’ 이론에 따르자면, 거울 속에 투영된 자아의 모습은 ‘이상화’ 된 나의 모습, 즉 상상계 속에 존재하는 완벽한 모습이 되어야 한다. 거울을 인지하게 되는 생후 6개월 가량의 아이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자신의 몸뚱이를 팔, 다리, 어깨, 무릎 등으로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 인식하다가,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전신상을 보고 비로소 자아의 완전한 이미지를 인식하게 된다. 즉, 현실에서 불완전하게 인식되었던 자아가 정작 거울에 비춰진 또 다른 나, 실제로는 ‘허상의 이미지’를 통해 완전체로 인식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소치 올림픽 무대 연출자는 의도했던 혹은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이 ‘거울’ 이론을 역이용하는 센스를 발휘했다. ‘이상화’ 된 자아의 모습을 비춰야 할 거울은 처음부터 파편으로 조각나 있었고, 그 속에 비춰진 북극곰과 관객은 완전한 모습이 아니라 ‘부분’으로만 비춰진다. 라캉의 이론과 정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거울이 위로 걷혀져 올라감으로써 비로소 완벽한 ‘하얀 북극곰’과 그의 친구 레오파드와 토끼의 모습, 더불어 폐막식을 보러온 관객의 모습이 온전하게 정면으로 클로즈 업 된다. 뒤이어 ‘하얀 북극곰’의 형상과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의 마스코트 ‘미샤’의 형상이 교차되면서 파편으로 비춰졌던 ‘북극곰’의 형상은 비로소 완전체를 이루게 된다. 이는 마치 소비에트 시절과 유산을 부정한 상태로 러시아는 파편적으로밖에 인식될 수밖에 없으며, 소비에트와 러시아 간의 연결고리를 인식하고 인정함으로써 푸틴이 그토록 주장하는 ‘하나의 러시아’가 완성된다는 무언의 메시지처럼 다가온다.

 

 

<그림 7. 거울에 자신을 비추는 ‘하얀 북극곰’>
 

 

<그림 8. ‘미샤’를 떠올리는 ‘하얀 북극곰’>
 

이처럼 ‘미샤’의 등장은 소비에트 시절 대규모 보이콧 사태로 야기되었던 ‘모스크바 트라우마’를 극복함과 동시에, ‘미샤’라는 상징물이 속한 소비에트 시절을 자연스럽게 호명해낸다. ‘미샤’라는 이 특별한 상징물을 호명하는 의식을 통해, 구세대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이 어린 시절과 청춘을 보낸 소비에트 시절에 대하 노스탤지어에 젖어들게 되며, 소비에트 시절을 미처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 ‘미샤’와 ‘하얀 북극곰’의 병렬적 제시는, 마치 2014년 소치올림픽 마스코트 ‘북극곰’이 성화를 끄기 앞서 불현 듯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의 마스코트 ‘붉은 곰 미샤’를 떠올리듯, 소비에트와 현대 러시아 간의 계승성을 간접적으로 확인시키는 통로가 된다. 따라서 소치올림픽 폐막식 해설자가 모스크바 올림픽 마스코트 ‘미샤’를 ‘오늘날 미샤의 할아버지(дедушка нынешнего Миши)라고 지칭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며, 이는 소비에트 노스탤지어 현상과 역사의 지속성에 대한 강조라는 복합적인 콘텍스트 안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미샤’가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폐막식에서 떨구었던 한 방울의 눈물을 2014년도 소치올림픽에서 그의 ‘손자뻘’ 되는 북극곰이 올림픽 성화를 끄면서 그대로 재현해내는 장면 역시 ‘강한 소비에트’ 시대를 대변하는 ‘미샤’에게 바치는 오마주이자, 동시에 소비에트와 포스트 소비에트 시민 간의 ‘계승성’을 염두에 두고 철처히 계산된 시나리오에 의거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러시아는 올림픽이라는 스포츠 메가이벤트를 통해 과거 소비에트 시절에 겪었던 ‘트라우마’를 극복함과 동시에 달라진 자신들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고, 자신들의 이미지를 쇄신시키기 위한 전략을 구사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 ‘미샤’와 ‘하얀 북극곰’이라는 특정 캐릭터를 십분 활용하여 자국민들로 하여금 소비에트와 러시아 간의 역사적 연속성을 재인식시키고, 소비에트 시대에 대한 부정적 장막을 걷어내는 것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 대외적인 측면에서 평가해보자면, 비록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소치 올림픽에 쏟아 부은 노력과 쇄신된 이미지의 강도가 다소 퇴색되긴 했지만, 이 올림픽을 계기로 러시아가 다시 주목받게 되고,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전세기를 통틀어 러시아가 문화예술에 부문에 있어서만큼은 독보적인 존재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킨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러시아가 다양한 메가이벤트를 통해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이미지’를 더욱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낼지 향후 행보를 꾸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2018년 러시아에서 개최되는 세계 축구선수권대회가 그 답을 줄 수 있을 것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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