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인문한국) 사업단 홈페이지

HK(인문한국) 사업단

웹진 문화로(文化路) 내용 시작

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체부라쉬카’의 변신은 무죄! - 애니메이션 캐릭터에서 소비에트-러시아 문화 브랜드로 -
분류대중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16-09-12
조회수2,009
첨부파일



2016년에는 연초부터 러시아 애니메이션계가 쏟아진 한 해라 할 수 있다. 지난 1월 14일 콘스탄틴 브론지트 감독이 연출한 러시아 애니메이션 “우주 없이는 살 수 없어”가 오스카 상의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비록 미국에서 출품한 ‘인사이드 아웃’에 밀리는 바람에 최종 수상의 영광을 거머쥐진 못했지만, 이미 이 작품은 프랑스 ‘안시 영화제’를 비롯하여,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크록’ 등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명성을 날린 유명한 작품이다. 한편 2016년 7월에 집계된 자료에 따르자면, 러시아 애니메이션 “끼룩끼룩 방학”이 중국 내 차트 탑10에서 8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러시아 문화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제작된 또 다른 애니메이션 “다람쥐와 뾰족이 2”가 미국 상영에 들어갔다.

         

<그림 1. 우주 없이는 살 수 없어>             <그림 2. 다람쥐와 뾰족이 2>

 

 

이처럼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줄곧 예술성과 전통을 인정받고 있는 소비에트-러시아 애니메이션계에서 나름 굵은 획을 그으며 인기를 누린 캐릭터를 들자면 ‘부라티노’, ‘비니-푸흐’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소비에트가 붕괴된 이후 지금까지도 그 명성을 유지해오고 있는 애니메이션 주인공을 말해보라면 단연 ‘체부라쉬카’를 지목할 것이다. ‘체부라쉬카’는 이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넘어서서 러시아를 대표하는 모종의 ‘브랜드’, 혹자의 의견에 따르자면, 심지어 러시아하면 연상되는 다소 클리셰적인 상징물들 – 크렘린, 마트료쉬카, 곰 – 에 전혀 뒤지지 않는 ‘문화 상징’의 반열에까지 오른 상태이다. 이미 체부라쉬카는 여러 차례에 걸쳐 올림픽 마스코트로 활동하고, 여러 가지 게임 캐릭터로 사용되고 있으며, 체부라쉬카를 테마로 내세운 다양한 행사가 해마다 러시아 전역에서 개최되고 있다. 또한 ‘체부라쉬카’는 실제로 이를 보면서 자란 세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계속 다양한 버전으로 리메이크 되면서 러시아인들 스스로 세대를 초월한 애니메이션, 어른을 위한 동화처럼 받아들이는 흔치 않은 작품이다.

 

      

<그림 3. 부라티노>                <그림 4. 비니-푸흐>
 

소비에트 아동작가 에두아르드 우스펜스키의 손끝에서 탄생한 체부라쉬카는 그 생김새를 놓고 보자면, 커다란 귀를 가진 것이 마치 디즈니랜드의 미키마우스처럼 보이기도 하고, 잿빛 털모양만 놓고 보면 귀여운 아기곰처럼 보이기도 한다. 체부라쉬카는 그 성별도 매우 모호한데, 실제 소설에서는 남성성에 더 가까운 캐릭터로 묘사되지만, 미디어 논평이나 기사에서는 여성성이 더 부각되는 측면이 있고,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애니메이션 상에서는 ‘보호가 필요한 어린아이’ 캐릭터로 등장한다. 여러 연구자들의 지적처럼, 아마도 이런 모호한 ‘성 정체성’은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친밀감을 형성해내는 장점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도무지 그 ‘종’을 파악할 수 없어서 동물원에서조차 수용을 거부당한 채 거의 버려지다시피 방치되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측은지심은 오히려 체부라쉬카라는 캐릭터에 이끌리게 만드는 장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체부라쉬카의 탄생은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체부라쉬카가 남녀노소 성별과 세대에 구애받지 않고 소비에트 시절을 거쳐 현대까지도 여전히 사랑받는 소위 ‘흥행 캐릭터’가 되도록 만든 것은 최초 설계자인 우스펜스키가 아닌 애니메이션 감독 로만 카차노프와 예술감독 레오니드 슈바르츠만이다. 1969년 체부라쉬카와 그의 영원한 동반자이자 친구인 게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카차노프 감독의 애니메이션이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고, 이후 체부라쉬카는 책의 지면을 박차고 나와 마치 살아있는 캐릭터처럼 관객들에게 각인되면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치 못했던 흥행이 반드시 좋은 쪽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았다. 소비에트 붕괴 이후, 저작권을 둘러산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형성되면서 가장 처음 체부라쉬카라는 캐릭터를 설계한 작가 우스펜스키와 실제로 체부라쉬카라는 캐릭터에 비주얼적인 매력을 덧입혀 구체화시킨 레오니드 슈바르츠만 사이에 저작권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림 5. 체부라쉬카>                       <그림 6. 체부라쉬카와 악어 게나>
 

한편 체부라쉬카의 인기는 소비에트 국경을 넘어 스웨덴, 일본에까지 전파되었다. 특히 늘 자그마하고 귀여운 것에 열광하기 일쑤인 일본 매니아들의 체부라쉬카에 대한 사랑은 소비에트 애니메이션을 수입하고 상영하는 것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2003년 도쿄에서 개최된 국제 애니메이션 박람회장에서 일본 기업 ‘SP 인터내셔널’이 ‘소유즈물트필름’으로부터 2023년까지 총 20년간 체부라쉬카에 관한 애니매이션 판권 및 배급에 관한 권리를 획득하게 되면서, ‘체부라쉬카의 일본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그 첫 번째 단계로, 체부라쉬카라는 모종의 소비에트 브랜드 캐릭터를 중심으로 결집한 매니아 층의 응원에 힘입어 체부라쉬카의 리메이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더 나아가 수수미 쿠도 감독의 지휘 하에 총26개의 시리즈물로 제작된 “체부라쉬카 얼렐레?(Cheburashka Arere?)”가 2009년 10월 7일부터 일본 방송채널 ‘도쿄 TV’에서 방영되면서, ‘일본화’ 된 체부라쉬카의 탄생이 본격화되기에 이른다.

 

   

<그림 7. 일본판 체부라쉬카 “체부라쉬카 얼렐레?”>
 

TV용으로 제작된 일본판 애니메이션 버전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에 초점을 두고, 약 3분가량의 영상으로 제작되었다. 체부라쉬카라는 캐릭터 일본판으로 제작되면서 다소 다른 경향을 지니게 되는데, 러시아 원작에서 버려진 외로운 캐릭터로 등장했던 체부라쉬카는 일본판에서 한층 귀엽고 천진난만한 캐릭터로 변신하게 된다. 체부라쉬카의 묘사에도 소위 ‘일본적 캐릭터’에서 관찰되는 전형 중 하나인 과장되게 ‘크고 초롱초롱한 눈’(일본 순정만화의 여주인공 눈동자를 떠올려 보자!)이 그대로 적용되어 있다. 오히려 게나의 캐릭터가 다소 외로움을 타는 형상으로 묘사되면서, 체부라쉬카를 통해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고 위로받는다. 이 역시 ‘혼자 놀기’ 문화가 자연스러워질 정도로 타인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 일본인의 모습을 은연중에 투영한 것이라고 하면 다소 과장된 것일까?

 

러시아 원작의 경우, 소비에트 일상과 이념에 대한 프로파간다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특히 부모도 없고, 모호한 정체성으로 인해 그 어느 무리에도 어울리지 못한 채 ‘버려지고’ ‘방치된’ 체부라쉬카의 모습은 작고 귀여운 외모, 아기같은 살짝 혀짤배기 음성과 묘하게 겹쳐지면서 측은지심 어린 매력을 발산한다. 하지만 약간만 관점을 달리 생각해보면, 체부라쉬카는 다름 아닌 소비에트를 이끄는 새로운 세대, 즉 ‘피오네르’를 상징화 한 캐릭터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첫 등장 장면에서 체부라쉬카는 오렌지 박스 속에서 정체모를 털복숭이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오렌지’라는 단서 속에서 우리는 체부라쉬카가 ‘더운’ 지방에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더운 지방에 사는 동물(?)이 짧은 털도 아니고 복슬복슬한 털에 휘감겨 있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여기서 체부라쉬카가 전혀 다른 곳에서 온 새로운 형상의 인물, 즉 미래의 시대를 살아갈 ‘피오네르’를 다분히 이미지화 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체부라쉬카’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는 러시아어 단어 ‘체부라흐누티(чебурахнут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체부라쉬카’는 아직 잘 걷지 못하고 잘 넘어지는 아이, 아직 ‘어른’의 세계, ‘기존’의 경화된 세계의 논리에 익숙하지 않아 걸려 넘어지는 존재이다. 따라서 체부라쉬카의 첫 번째 친구이자 그를 옆에서 아버지처럼 돌봐주는 악어 ‘게나’는 구세대의 상징이 된다. 어딘지 구성지면서도 구슬픈 마이너 느낌이 가득한 ‘게나’의 아코디언 연주와 노래 역시 구세대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그림 8. 노파 ‘샤포클랴크’>
 

‘체부라쉬카’라는 애니메이션에서 감초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은 바로 악당 기질이 다분한 노파 ‘샤포클랴크(실크 해트)’이다. 체부라쉬카가 성과 나이의 구분이 모호한 것처럼, 체부라쉬카의 안티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이 심술쟁이 할머니 캐릭터 역시, 모자와 행동으로 그 정체성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본디 ‘실크 해트’는 영국 신사들이 착용하는 것으로, 세련된 유럽 문물의 수혜를 받은 것을 상징한다. 요즘에야 남녀 구분 없이 ‘패션 센스’를 발휘하기 위해 페도라를 쓰고 다니지만, 실크 해트나 페도라 류의 모자가 본디 ‘남성용’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소품 역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구시대적 인물, 또는 반대로 자신의 역할로부터 분리된 인물을 상징하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심술궂음을 배가시키는 매부리코를 지닌 ‘샤포클랴크’는 과거의 마녀 캐릭터들이 착용하던 챙이 넓고 뾰족한 삼각 모자 대신 남성용 ‘실크 해트’를 쓰고 마녀 빗자루 대신 마치 서류 가방’처럼 보이는 네모난 가방을 들고 다닌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노파 ‘샤포클랴크’는 과거 러시아 전래동화에 종종 등장하곤 했던 러시아판 마녀 캐릭터 ‘바바 야가’의 20세기적 변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비에트 문화라는 맥락에서 해석해보면, 당시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직업전선에 뛰어드는 가운데 전통적인 여성상으로부터 점차 탈피하여 목소리를 높여가던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잠재적 두려움과 반감을 모호한 성정체성과 다소 악동스러운 이미지로 표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현대 러시아 작가 중 한 명인 안드레이 쿠즈네초프는 ‘체부라키’라는 이련의 시리즈물을 제작하면서, 체부라쉬카 캐릭터를 다양한 영화 캐릭터 및 역사의 한 장면과 연결지어 패러디 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애니메이션 스토리 원작이 다양한 장르의 스토리 속으로 ‘걸어들어가면서’ 새로운 의미가 창출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그림 9. 크람스코이 作 미지의 여인>          <그림 10. 쿠즈네초프 作 미지의 여인>
 

        

<그림 11. 레핀 作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그림 12. 쿠즈네초프 作 기다리지 않았다>
 

         
<그림 13. 체부라매트리스>                     <그림 14. 체부라게라>

  

한편 2003년부터 모스크바에서는 매년 8월 둘째, 셋째주 주말에 고아 어린이들을 위한 자선 행사 “체부라쉬카 탄생의 날”을 개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체부라쉬카라는 캐릭터를 가장 먼저 세상에 선보인 작가 에두아르드 우스펜스키는 2005년도에 체부라쉬카의 생일이 8월 20일이라고 공표하기도 했다.

한낱 캐릭터에 불과한 체부라쉬카의 탄생일까지 정확하게 공표하고 챙기는 것을 보면, 러시아 문화 내에서 체부라쉬카는 이미 하나의 캐릭터임을 넘어서서 하나의 문화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러시아 문화 내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계속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목록

웹진 문화로(文化路) 내용 끝

TOP

저작권 표시 및 연락처

06974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로 84 법학관(303관) 1420호 / E-mail: fsicau@cau.ac.kr / TEL: 02-820-6355 / FAX: 02-822-0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