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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러시아 뮤지컬, 전통 속에서 새로움을 꿈꾸다
분류전통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16-09-12
조회수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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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붕괴 이후 서구 문화가 우후죽순으로 유입되기 시작된 1991년 이후 미국의 브로드웨이식 뮤지컬과 록 오페라 장르도 ‘뮤지컬’이라는 이름으로 러시아 공연예술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물론 소비에트 시절에도 현대의 브로드웨이판 ‘뮤지컬’과 유사한 형태의 공연이 존재하긴 했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는 바로 ‘연극에 노래의 멜로디를 얹은 것’이냐, 혹은 ‘노래에 연극적 제스추어를 얹은 것’인가에서 비롯되었다.
 

소비에트 시절에도 “12개의 의자”를 비롯하여 “노래하는 기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그리고 19811년 초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러시아 극장의 단골 메뉴처럼 올라오는 “유노나와 아보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사 뮤지컬 장르의 작품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노래가 많이 들어간 연극”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즉, 소비에트 붕괴 이후 브로드웨이식 뮤지컬이 수입되기 전까지 소비에트 무대를 장식했던 소위 ‘음악-연극물’은 말 그대로 ‘연기’에 더 방점을 둔 작품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스스로 ‘감성이 풍부한’, 그래서 때로는 ‘다혈질’적인 측면을 드러내기도 하는 러시아 사람들은 소위 ‘영혼’이 담긴 작품을 걸작으로 꼽곤 한다. 그래서 그들은 ‘영혼’이 담긴 목소리, ‘영혼’이 담긴 글, ‘영혼’이 담긴 그림 등등을 높이 사며, 이는 소비에트 시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늘날 뮤지컬, 혹은 록 오페라와 유사한 ‘음악-연극물’에서 소비에트 관중이 원한 것은 기교가 가득한 목소리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폭발적인 고음 가창력도 아닌 말 그대로 ‘영혼’이 담긴 노래였다. 따라서 이런 ‘음악-연극’ 장르에 캐스팅 된 배우들 역시 노래를 잘 하는 배우가 아니라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고, 그들은 그저 진심을 담아서 ‘영혼의 노래’를 부르면 그 자체로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림 1. 소비에트 뮤지컬 “유노나와 아보시”의 한 장면>
 

하지만 소비에트 붕괴 이후, 서구세계로부터 밀어닥친 소위 ‘문화의 물결’은 단순히 공연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만 긴장시킨 것이 아니라, 관객들의 눈높이 역시 상향 조정시키는 계기를 제공하게 된다. 게다가 2000년대 이후, 러시아 내에서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지고, ‘텍스트’의 권위가 ‘비주얼적 화려함’, ‘청각적인 것의 자극’으로 대체되면서, 시각적인 것에 대한 대중의 욕구는 더욱 높아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음악-연극’ 장르에 머물던 소비에트식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식 뮤지컬로 빠르게 변신을 꾀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제 뮤지컬에서 배우는 연기만으로 버틸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으며,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뛰어난 가창력을 바탕으로 연기도 하고 춤도 잘 추는 멀티 플레이어의 자질을 갖춰야만 했다. 이런 와중에 철저하게 브로드웨이식 공연 법칙에 따라 제작된 ‘메트로’가 상연을 시작하게 된다. 비평가들은 다름 아닌 ‘메트로’를 러시아 최초의 ‘뮤지컬’이자 공연예술계에 일어난 가히 ‘혁명적’인 사건으로 간주하곤 한다.

 

 

<그림 2. 뮤지컬 “메트로” 러시아 공연팀>
 

‘메트로’는 폴란드 뮤지컬 버전을 러시아적 상황과 정서에 알맞게 번안한 뒤, 1999년 “모스크바 오페레타” 극장에서 첫 번째로 관객들 앞에 선을 보이게 된다. ‘메트로’의 성공은 철저히 지역적, 즉 ‘러시아적 특성’을 파악한 덕분에 얻어진 것이다. 실제로 당시 ‘메트로’의 연출을 맡았던 프로듀서 카테리아 게치멘-발젝은 소위 ‘러시아 패러독스’라는 용어로 러시아 공연예술 시장의 특성을 언급한 바 있다. 그녀의 의견에 따르자면, 러시아에서 상업적인 작품을 제작하려하면, 종종 창작적인 측면을 하는데, 러시아에서는 바로 이 창작적인 요소가 예술적 성공과 동시에 상업적인 성공도 가져온다. 게다가 철저히 브로드웨이 뮤지컬 장르의 법칙을 따라 제작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소위 ‘토탈 뮤직 프로젝트’라는 용어로 자신들의 장르를 새롭게 정의한 뒤에 몇 명의 스타급 배우들에 의해 이끌어지는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달리, 경력과 인지도를 철저히 배제한 ‘오픈 캐스팅’으로 주연을 발탁한 점 역시 러시아판 ‘메트로’에 남다른 성공을 안겨준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림 3. ‘노르드-오스트’ 중의 한 장면>

 

2001년 드디어 러시아에서 제작한 소위 ‘러시아의’, ‘러시아 스텝에 의한’, ‘러시아 관객을 위한’ 온전히 러시아만의 기술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노르드-오스트’가 무대에 오르게 된다. 이 뮤지컬은 벤야민 카베린의 소설 ‘2인의 대위’를 기반으로 제작된 것으로 남다른 성공을 가져왔다. ‘노르드-오스트’의 성공은 철저하게 러시아 관객의 정서와 취향을 겨냥하되, 마케팅과 운영, 작품의 특성화에 있어서는 브로드웨이식 형식을 적용한 것에 있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르드-오스트’ 팀이 브로드웨이식으로 엄청난 양의 광고를 진행할 당시에도 공연예술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 뮤지컬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특히 과거 공연예술 티켓 가격에 비해 비교적 높게 책정된 티켓 가격을 관객들이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는지에 대한 의문, 그리고 관광 상품의 일환으로 해당 지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뮤지컬과 연극을 패키지로 묶어서 판매하는 미국과 달리 아직까지 관광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현 상황에서 과연 공연을 위해 발행한 티켓이 모두 소진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이러한 염려는 모두 기우로 판명된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공연 예술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러시아 관객은 ‘스토리’와 ‘감동’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게다가 ‘노르드-오스트’는 러시아 관객들에게 친숙한 카베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기에 스토리 라인을 따라잡기 훨씬 용이하고, 원작과 뮤지컬로 각색된 내용을 비교하는 재미를 더하게 해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놀랍기 그지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스펙터클한 스케일의 무대 장치를 설치한 것에 있다. 물론 이미 15년이 지난 현재와 비교해볼 때 다소 소박해보일 수도 있지만, 주로 스토리 라인 위주로 전개되던 공연에 익숙해있던 러시아 관객에게 ‘노르드-오스트’가 보여준 측면은 분명 신선한 것이었다. 소위 비주얼 시대에 입성하면서 ‘시각적 새로움’에 대한 갈증과 더불어, 이제는 ‘어설프게’ 각색되어 들여오거나 여전히 ‘진부한’ 소비에트식 공연예술의 틀에서 벗어난 ‘뭔가 다른 러시아 적인 것’을 원하던 관객들에게 ‘노르드-오스트’의 초연은 참으로 시의적절했다.

 

 

<그림 4. ‘노르드-오스트’의 비행기 무대 장치>
 

‘노르드-오스트’의 성공은 러시아 공연예술계 내에서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확실히 자리매김시키게 된다. 그 여세를 몰아서 서구 유럽의 유명한 뮤지컬들이 대거 수입되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서도 프랑스 뮤지컬 ‘파리의 노틀담 성당’은 대성공을 거두며, 외국계 뮤지컬 중 단연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파리의 노틀담 성당’ 역시 처음부터 성공을 점치며 출발한 작품은 아니었다. 특히 프랑스어를 러시아어로 번안하는 것에 대해 많은 관계자들이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게다가 주인공 콰지모토 역할을 맡아 테마곡 ‘벨라’를 부르게 모던 록 그룹의 보컬 뱌체슬라프 페트쿤은 목소리 톤이 매우 낮고 허스키하여 뮤지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마치 이런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페트쿤이 부른 콰지모토의 테마곡 ‘벨라’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으며, 당시 라디오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가 부른 ‘벨라’가 흘러나왔다. 또한 뮤지컬 ‘파리의 노틀담 성당’의 성공은 예술성보다는 상업성이 강하고 성적인 테마, 마약, 범죄와 관련된 이야기가 부각되는 미국판 브로드웨이식 뮤지컬보다 소위 ‘영적인 울림’이 있는 프랑스 뮤지컬이 러시아적 정서와 취향에 더 부합한다는 것으 ㄹ간접적으로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동일한 해에 상연된 브로드웨이 뮤지컬 ‘시카고’와 ‘42번가’가 초라한 성적으로 예정보다 일찍 무대에서 내려진 것 역시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그림 5. ‘파리의 노틀담 성당’ 러시아 공연팀>         <그림 6. 콰지모토 역의 뱌체슬라프 페투킨>
 

현재 러시아 뮤지컬계의 화두는 여전히 브로드웨이식 뮤지컬과 차별화된 ‘감동적 스토리’로 요약할 수 있다. 가장 최근 호평을 받으며 관객동원에 성공한 작품으로 “선홍빛 돛단배”를 들 수 있다. 이 작품 역시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그린의 동명 작품을 각색한 것으로, 2013년 공연예술 전문기업 “러시아 뮤지컬”에 의해 초연이 이루어졌다.

 

 

<그림 7. 뮤지컬 “선홍빛 돛단배”의 한 장면>
 

소비에트 시절에도 그린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선홍빛 돛단배”(1976)가 ‘뮤지컬’이라는 장르 타이틀을 달고 제작되긴 했지만, 당시에는 연기가 배제된 채 ‘음성’만 존재하는 록오페라 형식으로 제작되어 LP판으로 보급되었다. 따라서 “선홍빛 돛단배”가 본격적으로 시각화 된 것은 2010년부터라 할 수 있다. 당시 ‘청년 아카데미 극장’에 올려진 공연을 시작으로 이듬해에는 ‘음악 시’ 형식의 새로운 형식으로 편집되어 공연에 올려지게 된다. 이어서 2013년 10월에는 막심 두나옙스키가 음악감독을 맡아 새롭게 각색된 버전이 초연되었고, 같은 해 페름과 노보시비르스크 지역에서 상연된 작품이 ‘황금 마스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러시아 내 다양한 지역을 순회하면서 관객동원에 성공한 “선홍빛 돛단배”는 그 스케일과 역동적인 공연 내용에도 불구하고, 다소 과하게 삽입된 아크로바틱 공연 장면이 정작 스토리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고, 스토리 라인의 급작스러운 전환으로 인해 전체적인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선할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는 지적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이 과연 러시아 뮤지컬계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가 본디 ‘보여주기’에 충실한 장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보면 뮤지컬은 가장 화려하고 쇼비즈니스적 측면이 강한 장르라 할 수 있다. 특히 다이내믹한 무대구성과 무대장치, 그 무대 위를 이리저리 자유롭게 휘젓고 다니면서 다양한 퍼포먼스를 펼치며 노래하는 배우들, 이것이 뮤지컬 장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러시아 뮤지컬이 과연 얼마나 이러한 장르적 특성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지는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문제이다. 경영이나 공연 스타일의 ‘미국화’와 별개로, 러시아 뮤지컬은 그 장르적 속성상 가장 강하게 퍼포먼스적 요소에 대한 보강이 여전히 요구된다. 아직까지도 러시아 뮤지컬 공연에서 42번가에 나오는 멋진 브로드웨이식 군무와 시카고에 나오는 압도적 카리스마를 겸비한 소위 배우 1인의 ‘개인기’ 퍼포먼스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보여주기’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뮤지컬은 여전히 ‘들려주기’와 마치 독서를 하듯 전개되는 ‘스토리 라인’의 강화를 강조하는 실정이다. 나름 공연예술 강국이라 자타가 공인하는 러시아가 자신들의 뮤지컬을 내수용으로만 사용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외로 수출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당분간 이 부분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될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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