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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공자 – 콩즈(孔子) - 콘퓨셔스(Confucius)
분류대중문화
국가 중국
날짜2015-10-12
조회수2,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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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1일 뉴욕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타임스퀘어에는 중국의 공자(孔子)가 등장했다. 공자가 공손히 두 손을 모아 중국의 전통적인 인사인 읍(揖)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동영상은 산둥(山東) 방송국과 산둥 둥팡텐젠(東方天健) 디지털 미디어 유한공사(有限公司)가 함께 제작한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산둥(山東)은 공자의 고향이다. 산둥의 홍보를 목적으로 제작된 이 동영상엔 공자 말고도 산둥의 남녀노소가 번갈아가며 공자와 같이 읍을 하는데, 공묘(孔廟) 대성전(大成殿)이나 태산(泰山) 같은 명승지와 칭다오(靑島)항구나 신도시 풍경이 배경으로 깔린다.

 
                                                               < 뉴욕 타임스퀘어에 나온 공자 >
 
동영상의 공자 모습은 공자의 고향 산둥(山東) 취푸(曲阜)에 있는 공묘(孔廟: 공자를 모신 사당)의 석각화(石刻畵)를 영상화한 것이다. 공묘의 석각화는 당나라 때 화성(畵聖)이라 불렸던 오도자(吳道子: 680-759)의 그림을 원본으로 새긴 것으로 현재까지 가장 표준적인 공자상으로 손꼽히고 있다.(정식 이름은 ‘선사공자행교상’(先師孔子行教像)이다.)
 
                                         
                                                         < 공묘의 공자 석각화 탁본 >
 
이 광고만 보면 뉴욕 타임스퀘어의 전광판을 이용해 산둥을 홍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동영상이 나오는 타임스퀘어의 전광판이 중국 정부 보도매체인 신화사(新華社)가 고가의 대여료를 지불하고 2011년 8월부터 6년간 대여한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해본다면, 단순한 중국 지역의 홍보 광고가 아니라, 중국이란 국가 이미지 홍보의 일환이기도 하다는 점을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장기대여 전인 2011년 초부터 중국 홍보 영상을 부분적으로 방영하고 있었지만, 어림잡아 매달 대여료가 3-4억원 정도할 것으로 추정되는 전광판을 6년 계약한 것은 중국 정부의 결연한 의지와 확고한 목표의식을 짐작하게 해 준다. 
중국이 뉴욕 타임스퀘어의 전광판을 장기 임대한 뒤 지속적인 중국 홍보 영상을 방영하는 가운데, 공자가 그 홍보 영상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16세기 말에 이미 중국에 온 예수교 선교사들을 통해 서양에 중국 문화가 소개되면서, 공자는 ‘콘퓨셔스’(Confucius: 이 표현은 공자의 성씨인 ‘孔’에 선생님이란 존칭인 ‘夫子’를 붙인 ‘孔夫子’(콩푸즈)에서 연원한 것임)란 이름으로 알려졌기에, 공자(Confucius)나 유교(儒敎: Confucianism)는 진작부터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적 기호 중 하나로 서양인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중국 정부의 이른바 ‘공자 활용법’을 살펴보면, 국내와 국제에서의 방법이 상당히 이질적이다.
1949년 10월 1일 마오저둥(毛澤東)은 텐안문(天安門)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음을 선언했고, 광장을 가득 채운 인민들은 열광하며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마오저둥은 중국을 위대한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 것을 공약했고, 모든 인민들은 그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었다. 그의 명령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고 실제로도 그의 말 한마디가 곧 진리요 법이었다. 하지만 희망으로 가득 찼던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의 처참한 실패, 걷잡을 수 없는 광기(狂氣)의 문화대혁명을 겪으면서, 당초의 맹신(盲信)엔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1976년 마오저둥의 죽음으로 중국 정계는 혼란에 빠졌고, 믿고 따를 유일한 영도자를 잃은 인민들은 훨씬 더 심각한 아노미(anomie)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치열한 당권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본격적으로 이 같은 상황을 정리한 것이 바로 덩샤오핑(鄧小平)이다. 그는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말까지 피폐해진 중국의 경제와 사회를 재정비했고, 1990년대 초부터 본격적인 경제개방을 시도했다. 그 결과, 엄청난 자원과 값싼 노동력의 원활한 공급, 그리고 세계 최대 소비시장의 형성으로 인해 경이로운 경제성장이 가능해졌다. 이는 시류를 빨리 읽고 대처한 이들에겐 분명 갑부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근 40년 동안 공산당의 지도과 관리에 익숙해져버린 대다수의 인민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졸지에 사회주의라는 제도적 보호막을 잃고 ‘천박한 자본주의’라는 무한경쟁 속에 내던져진 것이었다. 사회안전망이 따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대다수 인민의 경제적 박탈감은 커져만 갔다. 그 와중에 소수 기득권층의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가 횡행했다. 인민들의 불만은 갈수록 쌓여갔고, 결국 1989년에 이러한 사회의 팽배한 불만을 대변하기 위해, 대학생들 위주로 텐안먼(天安門)에 모인 군중들은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이 시위는 ‘첸안먼사건’이라는 참담한 유혈 비극으로 일단락되고 말았다.
그제야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중국 인민들에게 사회주의는 더 이상 지향점도, 이상향도 아니었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는 더 이상 중국의 결속을 다지는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사회주의 시절 유행하던 ‘샹첸조우!’(向前走: 앞으로 전진하자!)라는 의욕적인 구호가, 발음은 그대로지만 뜻은 전혀 다른 ‘샹첸조우!’(向錢走: 돈을 향해 전진하자!)라는 자본주의적인 구호로 변질되었다는 사실이 이 같은 변화를 보다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중국은 1980년대 중반 ‘문화붐’[文化熱: 중국 전통문화가 현재 중국에 어떤 의미이고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가리킴. 주로 유교가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한 논쟁이 주류를 이루었음]에 이어,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국학붐’[國學熱: 문화붐 때보다 중국 전통문화에 보다 우호적이고, 보다 대중화된 관심과 논의가 이루어짐. 이 역시 유교가 논의의 주축이었음]이 일었고, 심지어 ‘독경’(讀經)운동[유교 경전을 읽자는 운동]까지 일어났고,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제 유교를 부흥시켜야할 시기인가 아닌가라는 문제를 놓고 대대적인 논쟁까지 벌였다. 2006년엔 베이징사범대학 위단(于丹) 교수의 TV를 통한 『논어(論語)』 강의가 전국적으로 히트를 치면서 ‘위단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적 필요와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중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공자와 유교를 중국 문화와 사회의 구심점으로 자리매김시키는 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엄청난 경비를 들여서, 불교의 『대장경(大藏經)』이나 도교의 『도장(道藏)』처럼, 유교 관련 모든 문헌을 총망라한 『유장(儒藏)』을 기획해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고, 2008년 8월 8일 유명감독 장이모우(張藝謀)가 기획한 북경 올림픽의 개막 공연에서도 공자는 주인공 중 1명이었다. 2010년엔 정부가 주도적으로 투자해 저우룬파(周潤發) 주연의 <공자>라는 영화를 찍어 상연했다. 이 같은 중국 정부의 시도는 단순한 전통문화 창달에 대한 도움이 아니라, 정부가 추구하는 문화이념을 대중에게 관철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단적인 예로, 중국에서 <공자>를 개봉할 당시 전세계적으로 빅히트한 <아바타>가 중국에서도 성황리에 상영 중이었는데, <공자>의 흥행실패를 걱정한 중국정부가 나서서 반강제로 <아바타>의 배급과 상영을 막기까지 했다. 결국 이 같은 시도는 중국 대중의 비난을 초래했고 영화도 흥행에 실패했다. 영화의 내용이나 완성도 자체도 비난과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 한국과 중국의 영화 <공자> 포스터 >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영화 <공자>의 무리한 흥행 추구는, 구심점으로서의 문화이념을 구축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종괄하자면, 중국 내에서는 공자와 유교를, 극심해진 경제적 모순(예: 빈부격차 등)으로 유명무실해진 사회주의라는 국가적 구심점을 대신해 새로운 구심점으로 삼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도에 국가적인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로 눈을 돌리자면 문제는 달라진다. 서양에서 공자나 유교가 가지고 있는 실질적인 내용은 그다지 문화적 장악력이 없다. 공자나 유교는 서양인들의 뇌리에 단지 중국과 바로 연관되어지는 문화적 아이콘(Icon)일 뿐이다. 중국 정부 역시 이 같은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중국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공자학원’(孔子學院: Confucius Institute)이다.

                              
                                                                     < 공자학원 로고 >
 
중국 정부는 국가홍보, 중국어 및 한자 교육, 중국 전통사상 전파 등을 위해, 2004년부터 세계 곳곳에 공자학원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2014년까지 126개국에 475개소의 공자학원과 851개소의 공자학당을 개설했다.(흥미로운 것은 세계최초의 공자학원이 바로 서울공자학원이란 점이다. 현재 한국에는 공자학원이 20개소, 공자학당이 4개소 설립되었다.) 공자학원의 보다 궁극적인 목적을 알기 위해선 『공자학원장정(孔子學院章程)』 제1장 총칙의 제1조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제1조. 공자학원은 중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세계 각국(지역)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중국문화에 대한 세계 각국(지역) 사람들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중국과 세계 각국의 교육문화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고, 중국과 외국간의 우호관계를 발전시키며, 세계의 다양한 문화 발전을 촉진하여 평화로운 세계를 구축한다.
 
비록 ‘중국문화’운운하고 있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현재까지 공자학원의 실질적인 주력사업과 함께 고려해 볼 때 제1조에서의 방점은 중국어의 세계 보급에 찍혀있다. 실제로 공자학원의 로고나 교육 내용에서 공자나 유교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바는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이와 비슷한 성격의 기구로 세종학당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세종학당의 이름 중 ‘세종’은 한글을 창제한 사람이므로 한국어 교육을 상징하는 중요 인물로 손꼽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당연하고 적절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공자의 경우 중국어나 한자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중국과 오랑캐의 구분을 따지던 그였기에, ‘공자’를 가지고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은 언뜻 보기에 뜻밖이다. 실제로 <<공자학원의 공식 사이트>>를 뒤져봐도 공자는 없다. 곰곰이 생각을 해봐도, 실제 공자의 나 유교의 가르침은 오히려 중국어 세계 보급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국가나 민족이나 학술사상이나 종교적 색채를 철저하게 제거한 순수 언어 교육이야말로 불필요한 오해나 문제의 소지를 없앨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공자학원에서 ‘공자’란 본래의 함의를 모두 버리고, 오로지 ‘중국’을 대체하는 기호로서, 혹은 아이콘으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뉴욕 타임스퀘어의 공자로 돌아와 보면, 두 손으로 정중히 읍을 올리는 모습은 공자의 원래 형상과도 실제로 매우 부합하지만, 해외 광고에서의 주안점은 중국이란 이미지의 각인일 뿐이다. 타임스퀘어에서 지속적으로 방영된 중국의 홍보영상들 모두가 같은 궤를 좇고 있었다. 구체적인 내용이 아닌 중국이란 이미지를 계속해서 각인시키는 것, 그것이 중국정부가 거금을 들여 장기간 뉴욕의 타임스퀘어를 대여한 주된 목적이었다.
 
 
뱀발: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중국의 이러한 투자와 노력은 뜻밖의 결과를 초래했다. 홍콩과 영국의 기관에서 2011년말 공동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1년들어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으로 중국을 홍보한 이래로 중국에 대한 미국인의 경계심은 41%에서 51%로 10%나 높아졌다. 물론 선호도 역시 29%에서 36%로 높아지긴 했지만, 야침찬 계획과 엄청난 금액을 투자한 결과치고는 초라하다 못해 역효과에 가까웠다. 미국의 자존심인 뉴욕 타인스퀘어의 한 복판에서 중국이 본격적인 광고를 한다는 것 자체가 미국인들에겐 자존심 상하고 중국의 경제적 부상에 경각심을 갖게 되는 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어쩌면 미국과 함께 G2로 간주되는 중국의 부상이, 지금껏 세계를 주도했던 서양 선진국 사람들에겐 위협으로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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