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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희망과 행복 추구의 공간 – 파라다이스
분류전통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15-09-10
조회수2,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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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연을 음미하고 사색하는 정신적 공간으로서, 또는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철학을 논하며 인생을 반추하고 공유하며, 내적인 편안함과 풍요로움을 더해가는 공간임과 동시에 이상향과 행복을 향한 인간의 심미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공간 그 이상의 존재 그 자체이다. 동서양의 정원들은 나무와 풀, 꽃, 채소나 약초, 동물, 물고기, 바위, 물, 건축물, 예술작품 등으로 정원을 구성한다. 화초류나 나무, 바위와 물 등으로 아름답게 장식하여 심미적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는 반면, 과실수나 텃밭 등을 만들어 실용적인 목적으로도 정원을 활용해 왔다. 자연 그대로의 환경을 활용하거나 인위적으로 가공된 이상적인 환경을 만듦으로써 인간의 삶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해 주었다.

 

마음의 안식처

정원은 영어로는 ‘garden’, 그리스어로는 ‘paradeisos’이다. 정원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garden은 ‘gan’과 ‘oden/eden’의 합성어로 ‘울타리 또는 둘러싸인 공간임과 동시에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그리스어에서 ‘정원’을 뜻하는 paradeisos는 ‘천상의 정원, 천국, 이상향’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Paradeisos라는 단어는 B.C. 7세기경, 박트리아 태생의 조로아스터가 태양신 아후라 마즈다가 진흙으로 최초의 인류를 창조하였고, ‘영원한 아침 빛이 비치는 위대한 정원’을 그들이 사는 장소로 정해 주셨다고 메디아 사람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초목과 곡물, 다양한 생명체들이 삶의 여유를 누리고 있었으며, 인류에게 이로운 생활환경을 제공했던 이곳이야 말로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 지상낙원이 아니었을까?[1]

이러한 내적인 여유와 풍요로움, 그리고 실용적인 과실수를 제공하는 정원은 각 나라마다 처한 자연환경과 기후에 최적화된 형식과 모습을 취하고 있다. 동양의 정원이 자연과의 조화를 거스르지 않고 축소된 자연을 그대로 형상화 하여 인간과의 조화로 더 깊이 있는 내적인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곳이 동양 정원의 모습이라면, 서양의 정원은 문화와 예술의 부흥운동인 르네상스시대를 거치며 인간본위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자연을 지배하거나 자연 위에 올라선 인류의 위대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이탈리아의 전통을 이어받은 프랑스 정원은 기하학적인 정원양식, 강한 축선, 명확한 공간구분, 대칭과 균형의 미를 적용하여 절대왕권을 상징하는 정원 양식으로 발달하였다. 이러한 양식은 다른 유럽국가들로 전파되는데 러시아의 정원양식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러시아의 전통적 정원

러시아의 전통적 정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공리적, 실용적이라는 것이다. 중세 수도원의 기본적 먹거리를 제공했던 텃밭 개념의 정원에서 현대 러시아 도시인의 바쁜 생활에 여유로움을 더해주는 다차(dacha) 개념의 정원까지 사람을 환대하고 음주가무를 즐길 줄 아는 러시아인의 삶의 모습을 반영해 준다. 다른 유럽국가들의 계획적이고 원칙적으로 설계된 조형공사가 아닌 단순하게 필요에 의해 편리한 방법으로 발전되었기 때문에 대칭과 균형의 미나 조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직선으로 뻗은 길은 대칭을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꾸불꾸불한 길보다 만들기 용이했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졌다. 또한, 러시아의 정원은 저렴하고 경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잡하거나 고비용의 수력기술을 요하는 구조물은 찾아보기 힘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16세기 이전에는 수도원 건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수도원을 건설할 아름다운 터를 잡는 것이었다. 강가나 호숫가, 언덕 위, 숲속이나 우거진 산 속 등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며 생활할 수 있는 장소에 수도원을 세우고, 그 안에 전통적인 러시아의 정원을 가꾸었다. 러시아 성인들의 성자전의 대부분은 거친 자연환경 속에서 생존해 나갈 수도사들을 위하여 장소 선택에 관한 기록이나 표시였다고 한다.

16세기부터 주변의 거친 자연환경을 다스리기 시작하는데, 정교회 수도원을 통해 퍼져나갔다. 주변의 자연을 다스리며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동시에 추구했던 수도원 건설의 특성은 수로와 물고기가 노니는 연못, 채소밭과 과실수 정원 등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편안함(ease), 자연스러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은 전형적인 러시아식 정원이었던 것이다. 현대에도 다차의 정원엔 손님을 맞는 후한 접대와 넉넉한 마음을 가진 러시아인의 사고방식(mentality)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표트르 대제의 정원

중국의 정원이 한국, 일본, 대만에 영향을 주고, 페르시아의 정원이 다마스쿠스와 안달루시아로 퍼져 아랍식 정원에 영향을 준 것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형식미를 중요시하는 고전주의 프랑스 정원 양식은 전 유럽으로 퍼져 강한 권력과 왕권을 상징하는 제국주의적 표상이 되었다. 이렇게 절대권력을 상징하던 프랑스 풍의 정원은 서구주의자인 표트르 대제를 자극하였으며, 페테르부르크의 정원 양식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난다. 그 중에 최초로 만들어진 정원이 여름정원(Summer Garden)이다.

서구주의자인 표트르 대제는 낙후된 러시아의 문화를 다른 서유럽국가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늪지대에 도시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였으며, 동시에 궁전과 공원, 정원들을 세우며 서구의 건축과 조각의 세련미를 추구하려 노력하였다. 1714년 표트르 대제는 페테르부르크의 네바 강변에 여름궁전에 딸린 정원을 네덜란드식으로 건설하게 되는데, 이는 예술로서의 러시아 정원예술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유럽의 다양한 정원을 경험한 표트르 대제는 지역의 자연적 조건을 잘 알고 성공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적용함으로써 성공적으로 늪지대에 러시아의 조경예술의 근간을 이룩할 수 있었다. 초창기의 정원은 개인의 소유였으며, 휴식과 기분전환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동시에 많은 정원들이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여름정원은 표트르 대제의 교육기관으로서 유럽식 교육을 여름정원에서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채소나 과실수를 심어 가족농장처럼 활용하였으며, 18세기 후반부터 실용적인 정원에서 조경예술로서의 정원이 탄생하게 된다. 19세기 초 도시의 성장과 더불어 인구가 확대되며 도시환경의 개선 목적으로 녹림을 확대할 필요성이 대두하게 되며, 최초의 가로수길이 생겨나고, 이후에 사회적 교류의 장인 정원이 탄생하게 된다. 이러한 요소들이 페테르부르크의 녹음을 형성하게 만든 것이다. 그들 중 하나가 여름정원이다.

여름정원은 낭만을 즐기는 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의 휴식 공간이자 여름 피서지 역할을 한다.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여름정원은 1704년 표트르 대제의 명령에 의해 착공되고, 엘리트들을 위한 도시 공원으로 발전하게 된다. 100년이 넘도록 귀족들만의 공간으로 제한되었고, 니콜라이 1세때 일반 민중들의 출입이 허가된다. 드디어 러시아 최초의 공영 정원으로 거듭나게 된다. 넵스키 대로 디자인에 큰 역할을 했던 J-B LeBlond에게 여름정원을 계획하라는 임무가 주어지고, 마트비예프(I. Matviev), 젬쵸프(I. Zemtsov), 쉬뤠더(C. Schroeder) 등의 유명한 건축디자이너들도 함께 참여한다. 여름정원은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방하여 프랑스 양식으로 건설된다. 기하하적 구조로 뻗어있는 길들 옆에는 오크나무와 느릅나무로 꾸며져 있고, 많은 분수들이 터진 공간들을 장식하고 있다. 이 때 세워진 분수들은 러시아 최초의 공원분수이며, 다채로운 대리석과 나무들로 만들어졌다. 페테르부르크의 판탄카(Fontanka)라는 이름도 이 분수에 물을 공급하는 장소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많은 분수 이외에도, 표트르 대제 때는 많은 볼거리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물을 이용하여 연주하는 물풍금(waterorgan) 연주였다. 정원 전체가 미로처럼 꾸며졌으며 관목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32개의 분수들과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이태리산 동상들도 대표적인 장식물들이었다. 불행하게도 1777년 대홍수로 인해 나무들과 분수들이 뽑히며 정원 전체가 모두 망가졌지만, 에카테리나 대제 때 여름정원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비교적 덜 형식적인 영국풍의 정원으로 재건된다. 아쉽게도 대홍수와 혹독한 겨울날씨, 전쟁으로 인해 250개의 동상과 조각품들 중에 단지 89개의 작품들만이 남아있다. 지금은 매년 겨울 작품들을 보호하기 위해 목관으로 씌워 놓는데 우스꽝스런 모습을 자아내곤 한다. 여름정원의 남쪽은 중앙에서 분수가 뿜어 나오는 '백조의 호수(the Swan Lake, Karpiev Pond)'와 저수지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물새들과 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다. 1710년부터 1714년에 완공된 여름정원의 북쪽 부분은 도메니코 트레지니(Domenico Trezzini)에 의해 표트르 대제의 궁전이 건립되었다. 동시대의 다른 궁전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이 궁전은 네덜란드 풍의 매우 소박한 건물이었다. 궁전 내부는 독일의 건축가 안드레아스 쉴루터(Andreas Schluter)에 의해 29개의 프리즈(frieze)로 장식되었으며,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와 스웨덴과의 북방전쟁(Northern War)에서의 승리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미하일 젬쵸프(Mikhail Zemtsov), 니콜로 미체티(Niccolo Michetti) 등에 의해 꾸며진 이 궁전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표트르 시대의 외관을 그대로 갖추고 있으며 시대적 특징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첫 번째 궁일 뿐만 아니라, 상하수도관을 갖춘 도시 최초의 건물이다. 1826년 커피하우스 건물이 카를로 로시(Carlo Rossi)에 의해 디자인 되고, 1827년 루드비흐 샤를레망(Ludwig Charlemagne)에 의해 목조로 지어지는데, «Tea House»라고 이름 붙였다.

 여름정원은 짜르가 거주하는 귀족적 장소에서 시민의 정원으로 변해갔다. 원래의 분수들과 초기의 건물들, 화단 등은 사라졌지만 전체적으로 평온함은 도시의 나무숲 아래에 그대로 유지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여름정원에 많은 손상을 끼쳤다. 전쟁 초기에 대리석 동상들을 정원의 땅속에 묻음으로써 보존하려 노력했지만 폭탄과 파편에 의해 숲과 나무들의 대부분이 망가졌다. 전쟁의 쓰라린 상흔과 독일 포병부대의 흔적은 1989년까지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전쟁 후 정원은 즉시 복원되어 동상들과 예술작품들은 제 위치를 찾았으며, 새로 깔린 잔디가 그 어느 때보다도 푸르게 복원되었다. 현재 여름정원에는 89개의 수려한 대리석 조각품들이 남아있다.

 

무엇보다도 여름정원은 지난 과거의 낭만적인 매력을 불러일으킨다. 조각품들은 역사적, 우화적, 신화적 인물들로 구분되어 전시되고 있다. 페트로 바라타(Pietro Baratta)의 작품 «평화와 풍요(Peace and Abundance)»는 여름정원 남쪽 정면 앞에 위치하며, «항해(Navigation)»와 «영광(Glory)» 동상과 함께 북방전쟁에서 러시아가 스웨덴에게 승리한 것을 상징한다. 다른 작품들은 하루의 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새벽의 여신, «오로라(Aurora)», «정오(Noon)», «일몰(Sunset)», 그리고 «밤(Night)»의 작품 등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조각품은 비너스의 아들 큐피드가 누워 잠을 자는 동안 그의 얼굴을 훔쳐 보려 등불을 들고 있는 «큐피드와 프시케(Cupid and Psyche)»로 신화적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다.

 

Tea House 앞에는 넵스키 대로에 있는 아니치코프 다리(Anichkov Bridge)의 말을 디자인한 표트르 클로트(Piotr Klodt)가 디자인한 러시아의 대표적 우화작가 이반 크릘로프(Ivan Krylov)의 동상이 서 있다. 여름정원의 네바강 쪽은 36개의 화강암 기둥이 받치고 있는 금박의 연철로 만든 창모양의 철책이 뻗어 있다. 이 담장은 UNESCO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울타리는 1770년부터 1784년까지 건축가 표트르 에고로프(Peter Egorov)와 유리 벨텐(Yuri Velten)에 의해 만들어졌다. 벨텐의 아버지는 독일인으로 1704년 표트르대제의 요리사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왔다고 한다. 이 담장의 외관은 1860년대에 바뀌었는데, 뒷 배경은 1866년 4월 4일에 여름정원에서 일어난 알렉산드르(Alexander) 2세 암살시도 실패를 기념하는 교회가 입구에 정면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라 한다. 이 교회는 1930년에 허물어졌고, 이후에 철책은 이전의 1866년의 형태로 복원되었다.

 

정원은 우리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정신적 문화적 공간이며, 실용적 공간이다. 정원을 거닐며 철학을 논하던 교육 공간으로서의 정원, 삶의 심미적 여유를 찾던 정원, 과실수와 채소를 가꾸며 그 속에서 노동과 땀의 의미를 찾던 정원, 절대 권력을 상징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서의 정원, 또한 신화 속의 황금사과가 열린다던 그리스-로마 신화의 ''헤스페리데스 화원''[2] 등 모두가 현실에 지친 삶에 희망과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고,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내적 사색을 가능하게 하는 편안한 휴식 공간이자 재충전의 공간이 아닐까 싶다.

 



[1] 헤라가 제우스와 결혼했을 때 대지의 여신으로부터 선물 받은 화원으로, 그곳에는 헤스페이데스인들이 지키고 있던 황금 사과가 열리는 나무가 심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리스-로마 신화, 토마스 불핀치, 최혁순 편역, 1990, 범우사)

[2] 자크 브누아 메샹 (이봉재 역), 정원의 역사, 2005,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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