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인문한국) 사업단 홈페이지

HK(인문한국) 사업단

웹진 문화로(文化路) 내용 시작

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국경분쟁 원인과 현황
분류지역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2-05-03
조회수117
첨부파일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세 국가의 국경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역을 일반적으로 페르가나계곡(Ferghana valley)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구분하는 거대한 자연지형인 천산산맥이 남북으로 뻗어있다. 이 산맥의 남쪽 끝은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나누어주는 힌두쿠시산맥의 동쪽 끝과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와 중국의 자연경계가 되는 히말라야산맥의 서쪽 끝과 타지키스탄 동부에서 만나 세계의 지붕이라고 하는 파미르고원을 만들었다.  

<페르가나계곡 국경>
(출처: https://www.grida.no/resources/7369)


다이아몬드 모양의 페르가나계곡은 그 길이가 약 300km이고, 너비는 최대 70km이며, 면적은 22,000km2에 달한다. 이곳에서 중앙아시아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시르다리야(Syr darya)와 아무다리야(Amu darya) 두 강이 발원한다. 페르가나계곡의 토지는 비옥하고 두 강의 수원이 존재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이곳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농사짓기가 좋은 지역으로 알려져 왔다. 지금도 면화, 쌀 , 밀, 각종 과일과 채소가 재배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천산산맥을 중심으로 유목민들이 자유롭게 목축을 하였다.

이러한 공간의 특성상 페르가나계곡은 소비에트정부가 지금의 국경선을 획정하기 이전까지 이곳에 거주했던 정주민과 유목민들이 매장지, 방목지, 시장 등을 공유했던 지역이었다. 소비에트체제하에서도 유목민이 정주화되는 것을 제외하면 비록 국경선은 존재했었으나 과거처럼 여권 없이 이곳 주민들이 페르가나계곡 곳곳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서 페르가나계곡에서 분쟁의 씨앗이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첫째, 급속한 인구증가. 페르가나계곡 자체의 인구증가, 유목민의 정주화, 스탈린에 의한 외부 이민족들의 강제이주와 정착을 통해서 이곳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 되었다.

둘째, 토지부족. 농사짓기에 좋은 환경을 가진 페르가나계곡에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기존의 농토가 부족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키르기스스탄 인구의 거의 절반이 이곳에 살았으며 농업생산량의 절반은 오시(Osh)와 자랄아바드(Jalalabad)에서 생산되었다. 우즈베키스탄 면화생산의 약 25%가 그리고 타지키스탄 경작지의 75%가 페르가나계곡에 집중되었다.

셋째, 수자원 부족현상. 시르다리야와 아무다리야 두 강의 수원은 천산산맥에 겨울동안 쌓였던 눈이 녹아서 만든 물이다. 이곳의 기후는 고온건조하다. 3월은 20°C정도이지만 6월부터 8월까지 평균 35°C까지 기온이 올라간다. 4월부터 9월까지는 비가 사실상 내리지 않지만 겨울에는 영하 20°C로 춥고 눈과 서리가 내린다.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 페르가나계곡의 표면온도가 크게 올라가는 기후변화로 인해서 두 강의 수원이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페르가나계곡에서 인구증가와 기후변화로 인해서 1인당 물 사용량은 1970년대에 연간 4,500m3에서 2002년에 2,500m3로 줄어들었는데 이것은 지난 30년 동안 56%가 감소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1989년부터 페르가나계곡에 민족 간 충돌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조지아의 메스케티(Meskheti)에 살고 있었던 터키의 소수민족이었던 메스케티안 투르크(Meskhetian Turk)가 1944년 스탈린에 의해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했는데, 그들 중에서 10만 여명이 페르가나계곡에도 살고 있었다. 1989년 페르가나계곡에서 이곳의 우즈베크인과 메스케티안 투르크인이 경작지 문제로 유혈충돌이 발생했는데 100명 이상이 사망하고 1,000여명이 부상당했다. 1990년 6월 5일부터 7일까지 오시(Osh)와 우즈겐(Uzgen) 지역에서 키르기스인과 우즈베크인이 각각 상대방에게 방화와 약탈을 저질렀는데, 사건의 원인은 이 지역의 경제적 낙후와 실업률이었다.

위와 같은 페르가나계곡의 심각한 변화와 이에 따른 민족 간 충돌의 발생으로 인해서 전문가들은 1991년 3개국의 독립 이후 이곳이 빈곤, 실업, 생태위기, 민족주의, 마약밀매, 이슬람 근본주의 등과 같은 원인으로 분쟁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였다.

페르가나계곡에서의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의 분쟁 역시 예상되었다. 양국이 접하는 국경선은 대략 1,000km에 달한다. 두 국가의 분쟁은 2004년, 2005년, 2008년, 2011년, 2014년, 2015년에 주로 관개목적을 위한 수자원과 방목을 위한 목초지로의 접근 및 사용에 대한 갈등 때문에 발생하였는데 이 기간 동안 국경지역에서 70건 이상의 사건이 지역 언론에 보도되었다. 2018년부터 2020년 5월까지 두 국가 사이에 발생한 충돌 유형은 21%가 전투, 10%가 시민 대상 폭력, 69%가 대중폭동으로 나타났으며, 주로 키르기스스탄 영토 내에 있는 타지키스탄 영토(enclave)인 보루흐(Vorukh)지역의 타지크 주민과 키르기스스탄의 주변 마을인 악사이(Ak-Sai)와 콕-타쉬(Kok-Tash)의 키르기스스탄 주민들 사이에서 대부분의 대립이 발생했다.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국경지대의 영토>
(출처: https://link. springer.com/content/pdf/10.1007/978-3-319-18971-0.pdf)


2021년 4월 28일부터 29일까지 양국의 국경에서 시민들과 군대가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타지키스탄과 접하는 국경도시 바트켄(Batken)에서 개인주택 78채, 학교 2곳, 의료시설 1곳, 국경검문소 2곳, 유치원 1곳, 주유소 10곳, 경찰청 건물 1곳, 상점 8곳이 파괴되었고 5세 소년을 포함해 36명의 자국 시민이 사망했고 183명이 부상당했으며 5만 명이 그 지역을 탈출했다고 밝혔으며, 반면에 타지키스탄 정부는 5월 3일 키르기스스탄 국경경비대가 키르기스스탄 주민들을 선동해 보루흐로 진입하여 타지크인들에게 무력시위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14채의 개인주택이 파괴되었고 최소 16명의 타지크인이 사망하고 최소 90명이 부상했다고 보고했다. 이후 두 국가 사이에 2022년 1월 말과 3월에 갈등이 다시 나타났다. 지난 1월 27일에 양국 국경수비대 간의 충돌로 수십 명이 사망했는데, 타지키스탄 국가안보위원회는 보안군 6명과 민간인 4명을 포함해 민간인 2명이 숨지고 10명이 부상했다고 밝혔으며,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양국의 국경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타지크 시민들이 차단하면서 충돌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면서 부상자 12명이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24,000명 이상의 자국 시민이 대피했다고 발표하였다. 1월 28일에 양국은 러시아가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의 중재로 휴전했다. 그러나 3월 10일에 키르기스스탄 바트켄 지역의 테세키(Teseki) 마을 근처에서 양국 국경수비대 사이에 충돌이 다시 발생하였다.

양국의 국경분쟁은 기본적으로 독립 이전에 국경이라는 정치적 장벽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관행에 따라 관습적으로 나타났던 수자원 공유와 토지소유가 두 국가의 경제적 어려움과 겹치면서 완전히 정치적 문제로 비화되면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사국이 각각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것인데 오히려 2020년 초부터 유행한 Covid-19로 인해서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 31년 동안 이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민족적, 국가적 단위의 정치적 결정과 행위가 지난 몇 천년동안 이곳을 평화롭게 만들었던 역사적 관습을 바꾸는데 실패했다는 점도 양국의 갈등을 이해하게 한다.


목록

웹진 문화로(文化路) 내용 끝

TOP

저작권 표시 및 연락처

06974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로 84 법학관(303관) 1420호 / E-mail: fsicau@cau.ac.kr / TEL: 02-820-6355 / FAX: 02-822-0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