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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구소련의 체육 시스템: 피즈쿨투라와 스파르타키아다, 그리고 게떼오
분류기타
국가 러시아
날짜2022-04-18
조회수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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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의 위상은 스포츠 강국으로 이미지가 확고하였다. 최근 소치올림픽에서의 국가적 차원의 도핑 스캔들로 인해 명성에 금이 가긴 했지만, 소련 시절부터 이어져 온 스포츠 강국으로서 이미지는 현재까지도 유효한 측면이 있다. 신체 단련을 위한 훈련은 제정 러시아 시대부터 존재했던 정책을 혁명 후 대중의 군사훈련과 신체 단련으로 확대시켰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대중의 신체 단련 시스템인 피즈쿨뚜라(Физкультура, Физическая культура, 이하 신체문화)에 대해 알아보고, 이를 통해 사회주의 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스파르타키아다(Спартакиада)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ГТО(Готов к труду и обороне, GTO:노동과 국방을 위한 전국민 체력단련, 이하 게떼오) 프로그램에 대해 살펴보자.
 

1. 신체문화와 스포츠 

제정 러시아 말기 스포츠는 부유한 사람들의 독점적인 여가활동이라 할 수 있지만, 체육 교육에 의미를 두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다수 사람들의 운동과 건강한 생활방식을 장려하길 바라는 움직임이 있었다. 19세기에는 요트, 조정, 사이클 같은 엘리트 스포츠와 그 조직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 스포츠와 스포츠의 경계가 모호한 면이 있었지만, 1890년대 신체문화에 대한 용어와 개념이 정의되면서 스포츠와 신체문화 사이에 차이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포츠가 엘리트 체육을 육성하는데 의미를 둔다면, 신체문화는 아마추어 체육을 기반으로 하는 대중의 신체 건강과 체력단련에 의미를 둔다고 할 수 있다.  


<그림 1. 겨울과 여름의 신체문화 포스터(左) / 그림 2. 데이네카(А. Дейнека)의 39년도 포스터(右)>
(출처: https://regnum.ru, https://www.deineka.ru)


1917년 혁명 이후 피폐해진 사회의 인력자원을 회복하고자 정부는 국민들의 신체 건강을 위해 새로운 정책을 발표한다. 체제를 유지하고 혁명과 내전으로 떨어진 경제 생산력을 늘리는 동시에, 육체적으로 건강한 대중을 양산하여 소비에트의 새로운 인간형을 만들 목적으로 신체문화 정책을 발표한다.

1962년에 정립된 신체문화의 의미는 ‘노동자들의 개인적 건강 증진, 사회주의 노동을 향한 준비, 조국 방어’의 세 가지 목적으로 정의된 바 있다. 신체문화가 처음부터 이와 같은 정의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다. 대중의 건강 증진이 신체문화의 주요 목적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짜르 통치 시기 스포츠맨을 전쟁에 징집했듯이 볼셰비키도 내전 동안 스포츠맨을 끌어들였다. 14세에서 18세까지의 모든 청소년들을 군대준비와 예비 훈련을 위해 참가시켰으며, 붉은 군대가 민간인 훈련을 가능하도록 하였다. 혁명 기간 신체문화는 신체 단련의 의미보다는 군사훈련의 예비과정으로 인식되었으며, 1924년 4월에 가서야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신체문화위원회 전 연합회의(All-Union Conference of Councils of Physical Culture)에서 대중의 신체 건강을 위한 의미로 확대되었다. 1925년 7월에 신체문화에 대한 당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신체문화는 청소년의 문화, 경제, 군사적 준비 수단으로서 육체적인 단련(воспитание)과 건강뿐만 아니라, (신체교육은 의지, 집단적 습관, 인내, 수완과 다른 가치 있는 자질을 발달시킴으로써) 대중을 교육하는 방법의 하나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신체문화는 사회정치적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도록 당, 위원회, 전문조직을 중심으로 노동자와 농민을 결속시키는 수단이다.
 

이와 같은 결의안은 신체 문화가 사회, 문화, 경제, 교육, 보건, 군사 부분에 있어서 통일적인 영향력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1929년까지 4년간 이 결의안은 소비에트 사회의 대중을 훈련, 단련, 단결시키는 수단으로서 소련 체육 시스템의 이데올로기적 기초를 제공한다. (<그림 2 참조>)

앞서 살펴보았듯이 신체문화는 경쟁을 통해 승부를 가리는 스포츠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개념이다. 소비에트 시기 신체 문화는 아마추어 체육을 사회, 정치, 문화적 의미로 확장 시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신체문화의 개척자이며 이론을 제시한 표트르 레스가프트(Пётр Лесгафт, 1837-1909)에 의하면, 신체 문화의 목적은 참가자들이 깨닫는 집단정신, 이타심, 사회에 대한 봉사의식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으며, 승리의 결과로 주어지는 트로피, 상금 등은 이기적인 욕심으로 인해 육체와 정신의 조화로운 발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시킨다. 이와 같은 사고는 국립 모스크바 신체 문화 연구 소장이었던 지그문트가 제기한 권투, 레슬링, 축구, 펜싱 등의 승패를 가르는 스포츠에 대해 반대하고, 자신과의 싸움을 전제로 하는 트랙경기, 수영, 조정 등의 스포츠를 권장하는 내용과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그림 1> 참조) 신체 문화와 스포츠 정책에 대한 논쟁은 1920년대 소련의 체육 시스템의 단면을 나타낸다.

1930년대부터 소련 당국은 신체문화와 스포츠에 대해 전문성을 강조하는 스포츠와 다수의 대중성을 강조하는 신체 문화의 체육 정책을 공존시킨다. 이에 따라, 1928년 소련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국제적 연대를 위해 ‘스파르타키아다’를 개최함으로써 ‘사회주의자들의 국제 올림픽’의 의미와 통일된 집단성을 강조한다.
 

2. 스파르타키아다와 게뗴오 

스파르타키아다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개최되는 올림픽 규모의 경기라고 할 수 있다. 스파르타키아다의 성립은 1918년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문화의 원칙을 강조하고 부르주아 스포츠를 폄하하는 프롤레트쿨트(Пролеткульт)의 문화적 원칙이 받아들여지면서 보다 실질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체문화에서는 노동자 대중의 노동체조, 견학, 대규모 전시와 공연이 장려되었으며, 축구나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가 즐겨 했던) 테니스 같은 종목은 부르주아 스포츠로 분류되어 규칙을 바꾸어 새로운 게임으로 변경하기도 하였다.

1952년까지 서방의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았던 소련은 1928년부터 1937년까지 노동자들의 국제적 단합을 위해 퍼레이드, 체조, 음악과 스포츠가 결합된 형태의 스파르타키아다를 개최하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스파르타키아다는 고대 로마의 노예 출신 검투사인 스파르타쿠스(Spartacus)에서 유래한다. 1928년 첫 대회는 모스크바에서 개최되었으며, 개최 종목으로는 육상, 체조, 사이클링, 수영, 사격, 농구, 배구를 비롯하여 부르주아 스포츠로 반대했던 테니스, 축구 등이 포함되었다.(<그림 3, 4, 5> 참조)


<그림 3. <신체문화> 잡지 4호(左) / 그림 4. 클루치스의 스파르타키아다 포토몽타주(中) /
그림 5. 1928년 1회 대회의 포스터 (右)>
(출처: https://upload.wikimedia.org/, https://www.moma.org, https://i.redd.it)
 

그러나 국제적 스포츠 대회로서 스파르타키아다는 그 위상을 달성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1956년에 ‘소비에트 인민의 스파르타키아다(Спартакиада народов СССР)’라는 명칭으로 4년에 한 번씩 하계와 동계 대회로 변경되어 개최되었다. 1952년 소련이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스파르타키아다는 소련을 구성하는 공화국 사이에서 진행되었으며, 개인과 팀으로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었다. 1991년 10회 대회를 끝으로 소련이 해체되어 경기는 더 이상 열리지 않게 되었다. 스파르타키아다는 광범위하게 소비에트의 젊은이들을 스포츠로 끌어들이는 정책이었으며, 구성원의 참여를 통해 신체문화의 이념을 실현하는 행사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스파르타키아다가 신체문화와 스포츠의 범위를 확대하여 기획된 프로그램이라면, 신체문화의 대중적 참여를 독려하고 스포츠에서 강력한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도입된 것이 ГТО(게떼오, Готов к труду и обороне, GTO)이다. 러시아어로 ‘노동과 국방에 대한 준비’(여기서 준비는 선동에 대한 대답의 의미)라고 해석하며, 신체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노동과 국방을 위한 전국민 체력단련’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체문화가 보상이 없이 진행된 것과는 달리 게떼오는 배지를 수여함으로써 실질적인 보상과 참가의 성공을 상징한다. 이 프로그램은 혁명 첫해 <무술의 의무 훈련에 대하여(Об обязательном обучении военному искусству)>란 칙령을 통해 채택되었다. 1918년 4월부터 18세부터 40세까지의 남녀는 일정 수준의 무술훈련을 받아야 했으며, 1930년부터는 전국민의 체력향상을 위해 항공과 화학전 대비의 군사프로그램으로 강화되었다.

제1회 게떼오 프로그램 종목으로는 달리기, 수영의 기본 스포츠와 사격과 수류탄 던지기의 군사 활동을 다루는 15개 종목 6개 과목으로 구성되었다. 이 같은 종목은 1931년부터 1934년까지 진행되었으며, 이후 3개의 종목이 추가되어 24개의 종목으로 진행되었다.(<그림9> 참조) 1단계보다 2단계를 통과하기 어려웠으며, 30년대 중반까지 난이도가 3단계로 높아졌다.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일반인보다 체육 교육을 받은 사람과 군사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단계의 배지를 받았다.(<그림7>, <그림8> 참조)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게떼오는 신체문화를 알리는 역할은 물론 이 시기 신체 숭배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림 6. ГТО 1회 대회 참가자들에게 제공된 배지, 그림 7. 30년대 1단계와 2단계 배지(上),
그림 8. 현재 수여되는 금, 은, 동 배지(下)>
(출처: https://ru.wikipedia.org, https://user.gto.ru)


40년대 전시 기간에는 군사 체육 훈련으로 강화되었으며, 50-60년대 어린이에서 어른까지 연령에 따라 단계가 나누어졌다. 80년대 이르러 성인은 3단계 학생은 4단계로 바뀌게 되었다. 게떼오 프로그램에는 각 종목별로 통과 기준이 있으며, 일정한 기준을 통과해야 단계별 배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실행되지 않다가, 2013년 9월 4일 푸틴 대통령이 이 프로그램의 재도입을 언급하면서 모스크바 알라비노 사격장에서 ‘영웅들의 경주(곤까 게로예프, Гонка героев)’라는 이름으로 개편되어 운영되고 있다. 현재는 기존의 게떼오 종목 외에도 크로스컨트리(스키), 노르딕, 헬스 등 다양한 종목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림9> 참조)


<그림 9. 소비에트 시대 게떼오 포스터>
(출처: https://user.gto.ru)


1920년대 국민 체육의 성격으로 청소년과 일반인들의 신체 발달을 촉진하고, 체력 증진을 돕고, 또래 그룹들의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시작된 신체문화는 러시아의 ‘강인한’ 스포츠 이미지를 위해 본래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이것은 소비에트 시대 신체문화의 저변 확대와 국민들의 건강 증진을 기반으로 하는 강인한 사회주의 노동자의 이미지에서 엘리트 체육으로 대변되는 천재적 스포츠맨을 양산하는 현대의 모습으로 크게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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