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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러시아 그래피티 아트와 스테노그라피야 축제
분류회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2-03-30
조회수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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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미술’이라고도 불리는 그래피티 아트(Graffiti art)는 거리의 벽이나 담장, 지하철 등의 공공장소에 낙서 같은 그림이나 문자를 그리는 공공미술의 한 분야다. 그래피티는 회화의 주요 도구로서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하는 만큼, 분사형 에어 스프레이가 세상에 처음 등장한 1960년대에 접어들어 그 역사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구체적으로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콘브레드(Cornbread)’와 ‘쿨 얼(Cool Earl)’이라는 서명(낙서)을 거리에 남긴 이들로부터 출발했으며, 1970년대 뉴욕 빈민가의 흑인, 청소년, 소수민족 사이에서 유행처럼 확산되면서 거리 미술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초기 그래피티 화가들이 작품 안에 담아낸 내용은, 그들 스스로가 주로 사회의 비주류 계층이었던 만큼, 대체로 사회의 보수성에 저항하고 기성문화로부터의 탈피를 지향하는 내용이었다. 인종 차별, 소수자들의 소외감과 고립감, 기성문화 비판 등 사회비판적 메시지의 ‘낙서’들이 공공장소에 점차 많아지기 시작하자, 이는 거리의 경관을 해치고 시민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사회적 골칫거리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그래피티는 시대 현실을 반영하고 사회적 모순을 고발하는 하나의 예술 장르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그래피티는 미국과 유럽, 러시아와 아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화가의 정치·사회적 사상 표현의 수단이자 예술가가 대중과 소통하는 하나의 방법론이 되었다. 1980년대에는 그래피티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화가들이 등장했다. 이 시기에는 그림의 내용 또한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이슈들로 대체되면서 점차 대중들의 호감을 얻기 시작했고, 그래피티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현대 미술가들, 장 미쉘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키스 해링(Keith Haring) 등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서구에서 시작된 거리 미술은 오늘날 러시아 사회에서도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역사를 시작한 러시아 거리 미술의 성장세는 2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예술가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는 사실을 통해 입증되며, 여러 미술 비평가들은 서구에 비해 짧은 시간 동안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화가들의 작품 수준이 크게 향상되었다고 평가한다. 최근에는 도시 미학적 관점에서 그래피티 작품들이 점차 도시의 경관과 조화를 고려해 제작되고 있는바, 오늘날 러시아에서 그래피티는 도시디자인 분야의 혁신을 주도하는 공공미술로서 기능하고 있다.

거리 미술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거리 예술의 세계적 확산과 인기에 힘입어 러시아에 처음 등장했다. 다른 나라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보다 널리 확산되었으며, 오늘날에는 러시아 도시 문화의 주요 현상으로 자리매김했다. 러시아 대도시, 특히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 예카테린부르크가 그래피티의 중심지로 자리를 잡았고, 도시예술을 실험했던 초기 러시아 거리 예술가들 중 몇몇은 오늘날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미술가로 성장했다. 그렇다면 러시아 거리 미술은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을까? 러시아 화가들의 그래피티에는 어떤 러시아적 요소와 특성이 반영되어 있을까?  


<페테르부르크의 거리미술 화가들>
(출처: https://zen.yandex.ru)


러시아에서 거리 미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변곡점이 될만한 발전의 시기를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시기(1995-2005)는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하던 거리 미술이라는 장르가 하나의 예술적 현상으로 러시아 사회에 처음 등장한 시기이며, 이는 기존의 서구 양식을 막연히 따라하던 ‘모방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벽에 낙서처럼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와는 구분되는 이 시기 러시아 ‘거리 미술’은 대중의 인식 속에서 젊은 소수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하위문화 또는 반달리즘의 한 가지 형태로 인식되었다. 이때 화가들이 즐긴 대표적인 창작기법으로는 각종 무늬, 글씨, 모양 등을 오려낸 뒤 페인트나 물감을 묻혀 찍어내는 ‘스텐실 아트(стенсил-арт)’ 기법, 페인트 스프레이를 분사하는 방식의 ‘스프레이 아트(спрей-арт)’ 기법, 포스터와 스티커를 벽에 붙이는 ‘프린팅 아트(принт-арт)’ 기법 등이 있으며, 이러한 거리 미술들은 독립적이기보다는 다양한 설치예술 및 공연예술과 함께 이루어지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처럼 러시아 거리 예술의 형성기라고 볼 수 있는 초기에는 화가들이 유럽 그래피티의 주제를 차용하거나 그들의 창작기법을 적극적으로 모방했던 탓에 서구의 영향력이 러시아 거리 예술을 지배했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유럽식 그래피티와의 차별화를 위한 러시아만의 민족 문화 이미지를 탐색하고 고유한 정체성을 그 안에 적용하려는 대안적 경향도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대체로 러시아 거리미술가들은 키릴문자 캘리그라피, 러시아 미술, 문학, 영화 속 이미지, 민족 영웅 또는 종교적 이미지 등 러시아의 문화적 상징들을 작품 속에 넣고자 시도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예술가로는 오늘날 서구에서 ‘러시안 뱅크시(Русский Бэнкси)’로 불리는 ‘파벨183(Павел183)’(본명: 파벨 푸호프)이 있다. 파벨183은 스프레이 아트 및 랜드아트(Land art: 대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적 표현)에서 디지털 디자인아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적 양식을 혁신적으로 결합시킨 인물이다. 또한 그는 거리 미술에 러시아를 상징하는 다양한 이미지를 적용하고 민속 테마를 도입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로는 <알룐카(Аленка)>, <안경(Очки)>, <다리 방화범들(Поджигатели мостов)>, <페테르-천사들의 도시(Питер—город ангелов)> 등이 있다. 파벨183 이외에도 포토 리얼리즘, 추상화, 팝아트 양식 등을 결합한 모스크바 화가 그룹 ‘310’과 거리 미술에 대한 작가 영상시리즈 제작으로 널리 알려진 모스크바 거리미술팀 ‘자쳄(Зачем)’ 등이 2000년대 초반 러시아 거리를 장식한 유명 아티스트들이다.

 

<파벨183의 그래피티: 알룐카(上) / 다리 방화범들(下)>
(출처: https://www.liveinternet.ru, https://stoneforest.ru)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는 러시아에 거리 미술이 안정적으로 정착한 시기다.(보통 학계에서는 이 시기를 2005-2015로 간주함.) 이 시기는 러시아 대중들이 이미 그래피티를 현대 예술이자 시각문화의 일부로 수용하게 된 시기였으며, 도시를 수놓은 많은 작품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예술가들은 거리 미술이 낙서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과거보다 좋은 조건과 환경 속에서 창작활동에 임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즈음 러시아 내 처음으로 거리 미술 축제와 전시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그래피티는 도시 디자인과 더욱 밀접하게 상호 작용할 수 있었으며, 따라서 이 시기는 그래피티가 러시아 공공미술로서 부흥기를 맞이한 시기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당대 사회-정치적, 문화적 의제를 반영한 거리 미술 작품들이 꾸준히 등장했다. 이 시기에 개최된 국가적 행사들, 예를 들어 2014년 소치 올림픽과 2018년 FIFA 월드컵과 같은 주요 스포츠 대회는 예술 창작의 주요 주제가 되었던 한편, 행사가 개최된 모든 도시들에는 수많은 그래피티 작품들이 거리를 장식했다. 다른 한편으로, 러시아 내 대도시에서는 상업성을 띤 광고 그래피티가 활성화되기도 했다. 광고회사의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저마다 거리 미술 양식을 차용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현상이다. 그러한 예로는, 2013년부터 그래피티 양식을 기업 광고에 활용하고 있는 이동통신사 ‘Tele2’가 대표적이며, 이 회사는 수년간 러시아 주요 도시의 거리 예술 축제를 후원하며 그래피티의 광고 효과를 경험하고 있다.

세 번째 시기라고 볼 수 있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면, 거리 미술이 ‘어느 특정 거리를 장식하는 예술’이라는 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 미디어 공간으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인터넷 전용으로 제작된 러시아 예술가들의 그래피티 작품은 퍼포먼스를 함께 담은 짧은 영상으로 제작되어 세계인들에게 널리 보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인터넷은 광범위한 세계 대중에게 러시아 그래피티가 널리 공유될 수 있도록 하며, 아티스트들은 이를 통해 스스로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있다. 또한 그래피티는 오늘날 디지털 박물관화의 대상이자 상업적 판매의 대상이 되고 있는바, 보다 특별하고 다양한 유형의 디자인을 요구하는 대중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대중의 요구에 부응해 감각적인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는 대표예술가로는 포크라스 람파스(П. Лампас) (본명: 아르세니 픠젠코프А. Пыженков)를 들 수 있겠다. ‘캘리그래피미래주의(каллиграфутуризм)’라고 불리는 그의 작업 방식은 문자의 기하학적 구조를 기반으로 슈퍼그래픽(Super graphic: 옥외 공간이나 건물 벽면 등을 장식하는 거대 규모의 그래픽 이미지)을 제작하는 방식이다. 그는 다양한 문자 실험을 통해 미래의 문자를 상상하며, 각종 알파벳 기호들의 구성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문자와 기호를 고안해냈다. 이러한 문자의 구성은 크기 조절을 통해 대규모 건물 장식에서부터 작은 티셔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제작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지닌다. 그야말로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는 그의 창작세계는 상업적으로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을 만한 실용적인 것이었으며, 광고 및 마케팅 분야를 공부하기도 한 그는 러시아뿐 아니라 해외 대중들에게도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적 색채를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현재 그는 자신의 고유한 의류 및 액세서리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 최대 브랜드(Nike, YSL, Mercedes-Benz, Pirelli, Lamborghini, IKEA, Adidas, MAC)들과의 협업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포크라스 람파스의 캘리그래피>
(출처: https://www.behance.net, https://www.pinterest.de, https://blog.postel-deluxe.ru)


한편, 러시아에서 그래피티의 도시라 불리는 곳은 바로 예카테린부르크다. 예카테린부르크에서는 매년 여름마다 거리 미술 국제 페스티벌이 개최되고 있으며, 축제 기간에는 러시아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모인 그래피티 예술가들이 도시 거리를 메운다. 2010년부터 역사를 시작한 ‘스테노그라피야(Стенограффия)’라는 명칭의 거리 미술 축제는 개최 초반 주민들의 거센 항의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벽화작업은 시 당국의 허가 아래 시작되었지만, 이에 생소함을 느낀 주민들의 민원과 신고로 작업이 중단되는 사태가 빈번히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밝고 특색있는 모습으로 변신한 도시 이미지는 예카테린부르크 시민들의 동의와 참여를 이끌어냈다. 과거 벽화를 낙서로만 취급하며 신고를 감행했던 주민들은 이제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며 축제 홍보에 가담하는가 하면, 작업하는 예술가들에게 색상과 디자인을 추천하는 등의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또한 페스티벌 주최 측은 ‘도시는 스스로 그린다(Город рисует сам себя)’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도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기도 한다. 주민들에게 그림 그릴 수 있는 공간과 페인트, 롤러 등의 도구를 제공해 벽화 제작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며, 이는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또한 축제가 발전해감에 따라 행사의 규모 역시 점차 커져갔다. 시 당국의 예산은 10년간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으며, 현재는 가즈프롬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이 행사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이처럼 춥고 어두운 도시 공간을 밝고 생동감 넘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자 하는 목표에서 출발한 스테노그라피야 축제는 지난 역사를 지내온 동안 시민들 모두가 참여하고 즐기는 국제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12년간 이 축제에는 러시아 및 해외에서 온 670여 명의 자원봉사자와 430명의 거리 예술가가 모여들었으며, 그들은 예카테린부르크뿐 아니라 러시아 전역 540개 이상의 건물을 화려한 그래피티 작품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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