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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러시아 민중의 소리, 돔라와 발랄라이카
분류음악
국가 러시아
날짜2022-01-04
조회수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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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러시아를 대표하는 민속악기 발랄라이카(балалайка)는 러시아 민중들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러시아의 일상적 유희 문화를 담당하며 발전해왔다. 고대로부터 러시아 전역에서 가장 널리 보편화 되었던 악기가 ‘발랄라이카’이며, 이것이 바로 ‘슬라브 악기의 기원’이라고 주장했던 18세기 학자 야코프 슈텔린(Я. Штелин)은 “러시아에서 젊은이가 하녀에게 발랄라이카로 음악을 들려주지 않는 집을 찾기란 쉽지 않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러시아 민중 삶의 역사를 함께 지낸 발랄라이카는 시대를 막론한 러시아 화가들의 그림 속에서도 드물지 않게 발견되며, 그림 속 발랄라이카를 연주하는 민중들의 모습은 과거 러시아인들의 소박함과 단란함, 흥겨움과 여유로움을 잘 보여준다. 이를 볼 때,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악기 자체의 모양새와 쓰임새는 조금씩 변형되어왔을지라도, 발랄라이카가 러시아인들이 일상에서 체험했을법한 희로애락의 선율을 훌륭히 노래해왔음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보그다노프-벨스키(Н.П. Богданов-Бельский)의 그림들>
(출처: https://www.liveinternet.ru)


그렇다면 러시아에서 가장 대중적인 민속 악기로 일컬어지는 이 악기의 기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러시아 백과사전(ЭСБЕ) 속에서 해당 내용을 찾아보더라도 “발랄라이카가 언제 그리고 누구에 의해 발명되었는지는 밝혀진 바 없다.”고 언급되어 있듯이, 이 악기의 기원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볼가 불가리아를 방문했던 아랍인 여행자 아흐마드 파들란(Ахмад ибн Фадлан)이 10세기경 그가 만난 러시아 상인에게서 발랄라이카와 비슷한 현악기를 보았음을 자신의 여행기에서 밝혔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발랄라이카와 유사한 악기가 이미 10세기 이전부터 러시아에 존재해 왔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발랄라이카와 여러 면에서 유사하나 발랄라이카 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갖는 악기는 돔라(домра)다. 러시아 돔라는 중동 및 코카서스 지역 사람들이 오늘날까지도 즐겨 사용하고 있는 악기 탄부르(tanbur)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9-10세기경 코카서스인들과 거래했던 상인들에 의해 러시아로 유입되었다는 학설이 있다. 이 악기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민족 국가들의 생활 속에서도 발견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국가별로 해당 악기의 외형과 소리는 조금씩 변화했고, 악기를 지칭하는 이름 또한 각 나라마다 다르게 불렸다.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둠브락(думбрак),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두타르(дутар), 키르기즈스탄에서는 코무즈(комуз),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에서는 타르(тар) 또는 사즈(саз), 카자흐스탄과 칼미크에서는 돔브라(домбра)로 불렸다. 이처럼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현악기들은 그 형식, 소리, 연주법뿐 아니라 악기의 생김새에서도 탄부르와 많은 공통점이 발견되며, 따라서 이는 모두 각기 다른 지역에 유입된 탄부르의 변형된 버전들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수 있다.

러시아의 돔라는 1068년 키예프 루시 러시아 최초의 역사서 <원초연대기(Повести временных лет)>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해당 문헌의 편집자였던 네스토르(Нестор)는 유랑하는 음악가 ‘광대(скоморох)’들이 민중들의 여흥을 담당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민속 축제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돔라를 설명했다. 당시 광대들이 선보였던 우스꽝스럽고 코믹한 공연은 민중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이러한 광대극에서 빠지지 않고 사용되었던 악기가 바로 돔라였으며, 여기에서 주요 소재로 등장했던 인물들은 지체 높은 신분의 권력자들과 성직자들이었다고 한다. 해당 사회의 신분 체계와 질서를 파괴하고, 자유로운 연기로 풍자와 해학을 전달했던 광대극은 귀족과 황실의 노여움을 사기에 충분했고, 따라서 광대와 그들의 음악, 그리고 그 음악이 연주되던 악기들은 박해와 박멸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1648년, 차르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는 결국 러시아에 존재하는 모든 돔라를 불태우라 명하고, 이를 연주하는 사람들에게 엄중한 처벌을 가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광대극으로 이미 러시아 전역에 널리 유포된 돔라는 민중들의 삶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당시 민중들 사이에서 가장 사랑받는 악기였던 돔라는 비록 도심에서 보존될 수 없었지만 외진 시골 마을에서는 본래의 형태를 유지하며 민중들의 삶과 함께했다.


<돔라와 발랄라이카>
(출처: https://xn—04-kmc.xn)


그 후 꽤 오랜 시간 동안 돔라는 러시아 대중의 표면적 삶에서 사라졌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돔라는 돔라를 대체할만한 다른 악기로 변형되어 갔다. 다시 말해, 돔라 금지령으로 사람들은 돔라의 모양, 소리 생성 방식, 악기 구조 등에 변화를 주며 새로운 악기를 고안했고, 결국 러시아인들은 돔라의 단순화 버전이라고 볼 수 있는 ‘발랄라이카’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발랄라이카는 돔라와 달리 플렉트럼(plectrum) 혹은 픽(pick)이라 불리는 현악기의 줄을 튕기는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악기였다. 사람들은 직접 손가락을 이용해 연주하기 시작했으며, 몸체의 형태 역시 여러 가지 모양으로 다양화되었다. 타원형, 원형, 삼각형과 같은 모양의 악기가 등장했으며, 나무, 나무껍질 등과 같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악기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기도 했다. 그리고 악기 이름 또한 ‘브룬카(брунька)’, ‘발라바이카(балабайка)’, ‘발라보이카(балабойка)’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었다. 이는 일반적으로 ‘경박한 태도’를 지칭하는 ‘브렌차츠(бреньчать)’나 ‘브렌카츠(бренькать)’ 또는 ‘지껄이다’를 뜻하는 동사 ‘발라볼리츠балаболить’라는 단어와 발음이 유사하며, 따라서 당시 발랄라이카를 연주하는 행위는 경박하고 익살스러운 유희를 즐기는 문화를 의미하기도 했다.

돔라의 새로운 버전, 즉 세 줄의 현으로 구성된 발랄라이카는 곧 매우 선명한 소리를 내는 악기로 발전했다. 또한 악기의 외형은 최종적으로 삼각형의 모양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는 흔히 현악기들이 곡선의 형태로 제작되어 왔다는 점을 볼 때, 매우 특이한 모습이었다. 이처럼 발랄라이카가 삼각형 모양을 갖게 된 이유는, 일반 가정에서 악기를 직접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디자인이 크게 단순화되었던 까닭이었다. 곡선의 형태는 비전문가였던 일반인들이 집에서 제작하기 어려운 것이었던 터라 사람들은 나무를 직선 형태로 잘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러시아에서 발랄라이카에 대한 언급이 최초로 등장한 문헌은 1688년 <모스크바 연대기>다. 그 무렵 돔라의 닮은꼴 발랄라이카는 어느덧 대중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는 러시아 도시에서 도시로, 마을에서 마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발랄라이카는 러시아 대중들이 일상에서 흔히 찾는 상점에서 약 30코페이카에 판매되었고, 매우 빠른 속도로 러시아의 일상적 삶에 침투했다. 18세기에 접어들어서는 러시아에서 발랄라이카를 소유하지 않은 가정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삼각형의 단순한 모습을 한 발랄라이카는 러시아 내부에서도 오랫동안 조악한 수준의 흔하디흔한 악기로 치부되었으며, 다른 악기들과 달리 ‘진지하게 연주해야 할 악기’로 인식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발랄라이카는 뛰어난 재능과 실력,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지 않은, 즉 원시적이고 단순한 유흥 도구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러시아 사회에 팽배했다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새로운 버전의 발랄라이카가 공식적으로 언급된 것은 표트르대제가 코믹극 상연을 위해 발랄라이카를 활용했던 17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결혼식을 주제로 한 코믹극 상연 당시 극의 하이라이트는 당시 러시아 제국에 소속되어있던 여러 민족과 부족 그룹이 출연해 장대한 행렬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 민족 그룹들은 자신들의 민족적 색채를 드러낼 수 있는 민속 악기를 휴대해야 했고, 이 장면을 구성하는 전체 악기 중 발랄라이카는 총 4대가 포함되었다. (일부의 전문가들은 표트르대제의 이 공연은 역설적으로 18세기 초까지 러시아에서 발랄라이카가 러시아 민속악기로서 존재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당시 공연에서 발랄라이카는 러시아인들의 악기가 아닌 칼미크족의 악기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트르대제의 시대는 서유럽 문화에 대한 갈망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로, 당시 유럽에서 건너온 4개의 현, 7개의 현으로 구성된 악기들이 빠르게 유입, 확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순한 구조와 소박한 음색의 발랄라이카는 점차 러시아인들의 삶에서 소외되어 갈 수밖에 없었다. 풍부한 음역대를 자랑하는 최신식 유럽 악기와 경쟁할 수 없었던 발랄라이카는 이제 외딴 시골 마을에서만 접할 수 있는 악기로 전락해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19세기 말, 바실리 안드레예프의 발랄라이카 연주단>
(출처: http://pdmsh.ru)


이처럼 사라질 위기에 처한 발랄라이카의 잠재력을 알아본 인물은 바로 러시아 민속 음악 애호가 바실리 안드레예프(В. Андреев)였다. 그는 유럽 악기에 비해 단순한 소리를 내는 발랄라이카를 개조하고 악기의 음역대를 확장시킴으로써, 유럽 무대에서 다른 악기들과 경쟁할 수 있는 러시아 전통악기로 재탄생시켰다. 그의 노력 끝에 세계무대에서 발랄라이카가가 선보여진 것은 파리에서 세계박람회가 개최된 1889년의 일이었다. 당시 러시아관에서 발랄라이카 연주가 처음으로 시연되었고, 해당 공연을 찾은 많은 유럽 관객들은 러시아 악기의 음색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발랄라이카는 러시아 음악문화를 상징하는 대표 악기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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