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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레닌카의 전신, 루먄체프 박물관
분류역사
국가 러시아
날짜2021-12-01
조회수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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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욱 익숙한 러시아 국립도서관(РГБ), 이는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중심부에 위치한 모스크바 최초의 종합 도서관이다. 러시아 국립도서관은 2020년 1월 기준, 러시아어를 비롯해 세계 367개 언어로 집필된 4,740만 권 이상의 서적과 문서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중 약 300만 권 이상이 희귀본과 귀중본이라고 한다. 장서량 기준으로 세계 5위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이 도서관의 전신은 페테르부르크에 위치했던 ‘루먄체프 박물관(Румянцевский музей)’이었다. 1831년 페테르부르크에 설립된 러시아 최초의 공공 사립 박물관 루먄체프 박물관은 외교관이자 역사가, 자선가로 활동했던 니콜라이 루먄체프(Н.П. Румянцев) 백작의 컬렉션을 기반으로 했다. 루먄체프 백작이 소장했던 많은 예술품들은 훗날 박물관을 비롯한 여러 문화 기관을 낳았고, 그의 서재를 빼곡히 채웠던 서적들은 러시아에서 가장 큰 도서관으로 성장했다. 그렇다면 러시아 국립도서관의 설립 역사는 어떻게 이어져 왔을까?

루먄체프 백작은 러시아 문화와 예술, 러시아 역사와 자연을 두루 포괄하는 박물관 건립을 평생 꿈꿨던 인물로, 열정적인 골동품 및 도서 수집가였다. 무엇보다 러시아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고서와 필사본, 역사적 장면이 담긴 양피지 편지들과 연대기 기록 등을 수집했고, 그가 보기에 진귀하다고 여겨졌던 책들은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서라도 전체 컬렉션을 구입했다. 그는 유럽 인쇄술 발명 초기였던 13세기 인쇄본(инкунабулы), 러시아 고서적, 고대 지도를 포함하여 약 30,000권의 자료가 소장했다. 그중에는 1800년 <이고르 원정기(Слова о полку Игореве)> 초판과 1772년 디드로(Д. Дидро)와 달랑베르(Ж.Л. Д’Аламбер)가 출간한 <백과사전 혹은 과학, 예술, 기술에 관한 체계적인 사전(Энциклопедии, или Толкового словаря наук, искусств и ремесел)>도 포함되어 있었다. 러시아 역사와 학문을 사랑했던 루먄체프 백작은 러시아 황실 아카데미, 아르자마스(Арзамас) 문학그룹, 러시아 역사 고대 유물애호가 협회를 비롯한 다양한 학회의 회원이었다. 또한 그는 스스로 “루먄체프 서클(румянцевский кружок)”을 조직해 그룹 회원들이 러시아 역사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논의할 수 있도록 연구의 장을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개인 서재는 페테르부르크의 주요 도서관 중 하나가 되었다. 1802년 루먄체프는 페테르부르크 안글리스카야 나베레즈나야 거리에 저택을 구입해 개인 박물관 및 도서관을 설립했다.

 

<<루먄체프 백작>. О.А. Кипренский, 1822.(左) / 루먄체프 백작의 저택, 페테르부르크(右)>
(출처: https://rg.ru / http://loveread.ec)
 

한편, 그는 러시아 제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전통을 연구하기도 했다. 따라서 그의 컬렉션에는 진귀한 서적들 외에도 각종 동전과 메달, 고고학 연구에서 획득한 광물, 민족지학적 자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모두 루먄체프 백작의 재정적 지원으로 조직된 그룹들의 러시아 일주에 의해 마련된 것들이었다. 첫 번째 여행은 이반 크루젠슈테인(И.Ф.Крузенштерн)과 유리 리샨스키(Ю.Ф. Лисянский)가 ‘나제즈다’호와 ‘네바’호를 타고 항해했던 러시아 일주였고, 두 번째 여행은 오토 코체부(О.Е. Коцебу)가 선박 ‘류릭’호를 타고 항해했던 여행이었다. 이 두 차례의 여행에서 연구자들은 매우 의미 있는 기념물들을 얻어왔고, 이는 모두 루먄체프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1826년, 루먄체프 백작은 사망했고, 그는 죽기 전 자신이 살던 페테르부르크 저택을 공공 박물관으로 활용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1828년 3월 22일, 니콜라이 1세는 루먄체프의 저택을 박물관으로 설립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그리고 3년 후인 1831년 11월 23일, 그때까지 일반 대중들에게 허용되지 않았던 박물관의 문이 페테르부르크 시민들에게 처음으로 공개되었으며, 1845년부터는 황실도서관 소속 기관이 되었다. 그렇게 개관 이후 박물관에는 러시아인이라면 누구나 아무런 제약 없이 드나들 수 있게 되었으며, 박물관의 모든 시설은 루먄체프 백작의 유언집행자였던 남동생 세르게이(С.П. Румянцев)가 관리했다. 30년 동안 박물관은 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의 삶 속에 존재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건물과 시설은 전부 낡아 진귀한 자료들을 보관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가 되어버렸다.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 수도 현저히 감소한 탓에 운영 상황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자료들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한 새로운 공간을 찾아야 했다.

모스크바로 옮겨 보존할 것을 제안했던 인물은 루먄체프 박물관 관장 블라디미르 오도옙스키(В.Ф. Одоевский)였다. 루먄체프 박물관의 어려운 상황을 국가 행정부에 알리고자 오도옙스키가 작성했던 메모는 우연히도 모스크바 교육청에 근무하고 있던 니콜라이 이사코프(Н.В. Исаков)에게 전달되었고, 그 후 박물관의 이전 프로젝트는 지체없이 추진되었다. 1861년 하반기 무렵 기관 이전을 위한 위원회가 조직되었고, 동년 5월 23일에는 행정부 위원회는 루먄체프 박물관을 모스크바로 이전해 ‘모스크바 공공도서관 및 루먄체프 박물관’이라는 명칭의 문화기관으로 변경하는 것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박물관이 들어설 건물 선정은 이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이사코프가 맡았고, 최종적으로 크렘린 맞은편에 위치한 퇴역 장교이자 사업가 표트르 파쉬코프(П. Пашков)의 저택이 선택되었다. 넓은 면적의 건물에는 ‘모스크바 공공도서관 및 루먄체프 박물관’의 소장품이 전시될 예정이었다. 시설 정비와 소장품 이전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새로이 개관할 박물관을 홍보하기 위한 전시회가 모호바야 홀에서 펼쳐졌다. 드미트리 레비츠키(Д.Г. Левицкий)와 카를 브률로프(К.П. Брюллов)의 그림들, 요한 마이어 폰 브레멘(Johann Meyer von Bremen)을 비롯한 독일 화가들의 그림, 에르미타쥬 소장 그림들, 우랄 석공들의 조각품들이 전시되었다. 


<이사코프(左) / 모스크바 파쉬코프 저택(右)>
(출처: https://commons.m.wikimedia.org / https://river-ship.ru)


<19세기 루먄체프 도서관>
(출처: https://relaxmoskva.ru)


새로운 모스크바 박물관의 개관식은 1861년에 이루어졌다. 대중은 주 4일간 10코페이카를 지불하고 박물관을 방문할 수 있으며, 일요일에는 무료로 개방되었다. 모스크바 이전 이후 박물관 내 예술품과 도서의 양은 지속적으로 늘어갔다. 주요 후원자는 알렉산드르 2세였다. 덕분에 에르미타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그림 200여 점과 알렉산드르 이바노프(А.А. Иванов)의 걸작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Явление Христа народу>가 모스크바로 이전되었다. 또한 아이바좁스키(И.К. Айвазовский), 트로피닌(В.А. Тропинин), 베네치아노프(А.Г. Венецианов) 등의 그림이 포함된 표도르 프랴니슈니코프(Ф. Прянишников)의 소장 컬렉션도 옮겨졌다.

한편 모스크바 공공도서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페테르부르크 도서관과 황실도서관이었다. 특히 황실도서관은 오도옙스키에게 페테르부르크 루먄체프 박물관이 처한 어려움과 모스크바 이전 가능성에 대해 타진해 볼 것을 직접 지시한 인물인 코르프(М. А. Корф)가 대표를 맡고 있었다. 그는 모스크바 도서관의 발전을 위해 진심 어린 자신의 지지 의사를 보여주고자 대규모 서적의 모스크바 이전을 제안했다. 코르프는 1861년 7월 28일, 이사코프에게 “모스크바 공공도서관 설립에 참여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황실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많은 러시아어 서적과 외국어 서적, 황실도서관 내 초기 인쇄 서적 등을 카탈로그 카드와 함께 모스크바로 보냈다.

뿐만 아니라, 개인들의 후원과 기증도 이어졌다. 교육부 장관 이고르 코발렙스키(Е.П. Ковалевский)의 허가로 파펠 투치코프(П.А. Тучков) 소령과 이사코프는 새로운 도서관과 박물관의 설립을 위해 모스크바 시민들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그들은 귀족, 상인, 출판사, 개인 시민과 같은 모스크바 전체 사회 구성원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는데, 많은 모스크바 시민들은 오랫동안 염원해온 공공문화기관 건립을 순조로이 성사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기부에 참여했다. 많은 양의 책과 필사본 컬렉션, 진귀한 물품들이 ‘모스크바 공공도서관 및 루먄체프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특히 직물제조업체를 운영하던 사업가 코즈마 솔다텐코는(К.Т. Солдатенко)는 40년간 1천 루블에 달하는 금액을 도서 구입비 명목으로 기부했고, 그의 서재에 있던 8천여 권의 책과 러시아 화가들의 그림도 기증했다. 이처럼 후원과 기증 행렬이 이어지자 박물관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커졌고, 이 모든 자료들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시설이 필요했다. 이에 알렉산드르 2세는 1862년 6월 19일, 박물관 관리, 구조, 활동 방향 계획 등을 결정한 최초의 공식 문서였던 ‘모스크바 공공도서관 및 루먄체프 박물관에 관한 규정’을 발표했고, 1869년에는 해당 기관의 최초이자 유일한 헌장과 ‘박물관 관리에 관한 법령’을 승인했다. 이로써 곧 박물관에는 별도의 건물이 마련될 수 있었고, 당시 이바노프의 그림을 전시하기 위한 개별 홀과 70만 권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보관할 수 있는 도서관도 탄생되었다.

1913년에는 로마노프 왕조 건국 300주년을 맞았다. ‘모스크바 공공도서관 및 루먄체프 박물관’ 건립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도 이 시기에 맞춰 개최되었다. 당시 황실의 결정에 따라 ‘모스크바 황실 루먄체프 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되었고, 1917년 2월, 이는 또 다시 ‘루먄체프 국립 박물관’으로 개명되었다.


<소비에트 시대 레닌 국립 도서관>
(출처: https://pastvu.com)


1918년 3월, 볼셰비키 혁명 이후 소련 정부가 수도를 모스크바로 이전하면서 루먄체프 박물관과 도서관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고, 특히 도서관은 곧 러시아 제1의 주요 도서관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한 위상에 걸맞게 도서관에는 보다 체계적인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1918년 상호대차 및 문헌관리국이 조직되었고, 1919년 인민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시스템 개선을 위한 상당한 자금을 할당받았다. 이를 통해 도서관은 직원 수를 대폭 확대하고 학문 분과 부서를 새로이 설립했으며, 주요 학자들을 영입할 수 있었다. 또한 도서관 내 체계적인 카탈로그 시스템이 구축되기도 했다.

1920년대 초반까지 도서관은 소비에트 사회 내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1920년, 도서관에는 비밀 부서가 만들어졌는데, 여기에서는 혁명 이후 망명한 러시아인들이 소장했던 책, 러시아 저명 학자들이 집필한 서적을 비롯하여, 프롤레타리아 작가연합에서 부르주아 지식인 연합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단체의 구성원이 집필한 책, 문학과 예술의 형식주의에 비판적 견해를 내놓았던 인물들이 쓴 책들까지도 수집되었다.

소비에트 시대를 관통하며, 그리고 페레스트로이카라는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하며 도서관의 이름 역시 몇 차례 변경되었다. 1924년, 당시 더욱 방대해진 예술품의 수용문제와 건물 재건축 등의 문제로 루먄체프 박물관은 개별 박물관과 도서관으로 분리되었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유물이나 예술품들은 그 동안 루먄체프 박물관에 재정적 지원을 해왔던 푸쉬킨 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도서관은 ‘울랴노프 국립 공공도서관’으로 명칭이 얻었고, 1925년 이래로 이는 ‘레닌 국립도서관(ГБЛ)’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인 1992년 1월 22일에는 대통령 옐친의 포고로 소비에트 시대의 레닌도서관은 러시아 국립 도서관이라는 오늘날의 이름을 부여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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