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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표트르 대제 인류학 민족학 박물관 쿤스트카메라에 관하여
분류역사
국가 러시아
날짜2021-10-18
조회수149
첨부파일


러시아 최초의 박물관 "쿤스트카메라"

표트르 1세는 줄기처럼 뻗은 가지가 있는 특이한 소나무를 발견하고는 불가사의한 것에 대한 수집을 결심했고, 소나무가 있던 그 자리에 현재의 쿤스트카메라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시는 르네상스 이후 새로운 과학적 지식과 특이한 과거에 대한 관심이 커졌던 시기로, 여러 유럽국가들에서 쿤스트카메라와 같은 박물관의 형태들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표트르 1세가 이러한 시류에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사료된다. 유럽국가의 경우에는 쿤스트카메라와 유사한 전시가 주로 귀족의 저택에서 수집품들이 특정 계층을 위해 이루어졌었고, 과학적, 역사적 의미보다는 물품 소유자의 해박함을 자랑하거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움과 경악을 전달하는 목적이 강했다. 이와는 달리 쿤스트카메라는 역사적 인류학적 목적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고, 모든 이들에게 무료로 개방되었다는 것에서 유럽의 그것들과는 약간의 차이를 둔다. 


<쿤스트카메라 전경>
(출처: https://www.veditour.ru/)


첫 
콜렉션

1717년 열린 쿤스트카메라의 첫 전시는 표트르 1세의 명령에 따라 기형의 모습을 띄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을 수집하여 이루어졌다. 수집품 기증자에게는 일정의 돈이 지불되었고, 희귀품을 소지하고 있음에도 신고하지 않을 경우 벌금이 부과되었다. 이 전시에 포함된 물품 중에는 1697년 네덜란드에서 수집된 박제된 새와 물고기, 말린 곤충, 알코올 병 속에 담긴 생명체들이었다. 이 때 표트르 1세는 사체를 보존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배웠다고 알려진다.
 

쿤스트카메라 창립역사

'쿤쉬트카메라'라는 독일식 명칭을 받은 1714년이 바로 공식적인 박물관의 창립일이다. 쿤스트카메라 초창기는 괴물, 난쟁이, 거인 등 살아있는 전시물로 가득 찼다. 첫 번째 박물관 관람객은 스코틀랜드 황제 로베르트 아를로비치 아레스킨과 러시아 학자 이반 슈마헤르이다. 표트르 1세는 스스로 외국 사신과 러시아 고위관리에게 박물관 안내를 하기도 했다. 쿤스트카메라는 전시물의 보관문제와 정치적인 이유로 몇 차례 자리를 옮기다가 1718년 현재의 위치에 착공을 시작했고, 표트르 1세의 사후 10년 후인 1934년에 완공이 되었다.
 

쿤스트카메라 전시관의 발전

1740년대 초에는 '자연 관', '화폐 관', '실용예술과 여러 민족의 생활양식 관', '표트르 1세 관', 이렇게 4개의 전시관이 구성되어 있었다. 얼마 후, 쿤스트카메라의 모든 전시품이 삽화와 독일어 설명이 포함된 두 권의 도록으로 발간되었다.

1747년에는 쿤스트카메라에 대형 화제가 발생하여 수집품 일부가 불에 탔다. 손실된 전시물들은 1766년에 거의 모두 복원되었고, 이 때 박물관 건물을 다방면으로 증축했다. 또한, 당시 손실되었던 태양계를 상징하는 혼천의도 복원되어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쿤스트카메라 건물 꼭대기에 세워져 있다.


<쿤스트카메라에 세워져 있는 혼천의>
(출처: https://ok.ru/)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 박물관의 전시물품 수집 활동은 러시아 인뿐만 아니라 외국의 과학자와 탐험가들에 의한 것들이 많이 늘어났다. 당시 주요 전시품들은 폴리네시아와 뉴기니의 과학탐험, 시베리아와 캄차트카 탐험, 남극탐험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19세기 중반 쿤스트카메라의 전시관은 '동물학 관', '민족학 관', '식물학 관', '광물학 관', '이집트 관', '아시아 관', '표트리1세 관'으로 늘어났고, 1903년에는 창립자 표트르 1세의 이름을 딴 현재의 "표트르 1세 인류학 민족학 박물관"으로 명명 되었다. 

쿤스트카메라 현대관은 300년 전 표트르1세가 직접 창립한 때와는 달리 지구상 인종의 다양성과 기원에 대한 인류학에 비중을 더하는 모습을 보이며 북미, 오세아니아, 인도, 중국, 몽골, 일본 등 새로운 지역의 전시품들이 수집되었다.

한국에 관한 첫 전시품은 18세기 초로 추정되며 1747년 화재로 인해 최초의 물품들은 손실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후 19세기 말 러시아 총영사가 한양에서 모은 자료들을 수집해 박물관에 기증했다. 1957년에는 북한 문화부에서 한국의 전통문화와 관련된 유물들을 쿤스트카메라에 전달했다. 현재는 2000 점이 넘는 한국의 유물들이 쿤스트카메라에서 전시되고 있으며, 한-러 관계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쿤스트카메라 한국관의 모습>
(출처: https://www.kunstkamera.ru/)


미하일 
로모노소프 박물관 

쿤스트카메라 박물관에는 또 하나의 특별한 전시관이 있다. 18세기 중엽에 쿤스트카메라에서 근무했던 러시아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시인 '미하일 로모노소프 관'이다. 현재 이 곳에는 그의 개인 물품, 과학 장비들을 볼 수 있다. 로모노소프 관에서 흥미 있는 전시품 중 하나는 건물 상단 층에 배치되어 있는 고토르프 지구본이다. 이는 17세기 독일의 역학자와 조각가가 만들었으며, 외교적 목적으로 표트르 1세에게 선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토르프 지구본은 3.1m 지름의 구체로, 겉면에는 지도가, 지구본 내부에는 별자리가 표시되어 있다. 고토르프 지구본 역시 1747년 화재로 고초를 겪으며 철근 뼈대 외에는 모두 손실되었으나 1750년대 복사본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고토르프 지구본은, 세계 2차대전 당시 레닌그라드 봉쇄 기간에 자리를 옮겼을 만큼 쿤스트카메라가 보유한 전시물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 중에 하나이다. 


<고토르프 지구본(Готторпский глобус)>
(출처: https://www.kunstkamera.ru/)


쿤스트카메라의 
현재와 미래 

2016년 쿤스트카메라는 <제 3 밀레니엄>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현재 박물관의 홈페이지에서는 박물관의 내부와 외부 전경을 포함한 전시물들을 3D로 관람할 수 있고, 온라인 전시관을 개설하여 6만5천 점이 넘는 전세계 유물들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박물관의 로고를 새로 바꾸어 브랜드화에 노력을 기울이는 하는 한편, SNS 활동을 통해 박물관 소식들을 공유하며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쿤스트카메라의 로고 홈페이지 캡쳐>
(출처: https://www.kunstkamera.ru/)


이뿐만 아니라, 쿤스트카메라는 박물관의 현대화와 확장을 위해 약 53억 루블(약 838억 원)의 예산을 들여 새로운 과학저장 복합단지 건설에 착수했다. 새 복합단지 부지에는 원래 30년 전 천문복합단지 건설이 진행되고 있었으나 여러 주변 사정으로 인해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올 해 다시 새롭게 착공에 들어갔다.

그 외에도 박물관 관장 안드레이 골로브네프(Андрей Владимирович Головнев)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현재 많은 사람들이 쿤스트카메라는 '해부학적 수집품 보관소'라는 편견이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안드레이는 쿤스트카메라에 <우리의 트렌드는: 괴물에서 인간으로>라는 내걸면서, 박물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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