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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차(Чай)의 러시아 유입과 차 문화의 발달
분류역사
국가 러시아
날짜2021-10-18
조회수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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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져 있듯이, 러시아는 영국과 함께 차(茶)를 사랑하는 나라로 유명하다. 찻잎이 처음 러시아에 유입된 이후 지난 300여 년 동안 러시아인들은 가족, 지인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어김없이 달콤한 잼이나 각설탕을 곁들인 차를 즐겨왔다. 러시아인들에게 일상이 되어버린 전통적인 티타임 혹은 티파티는 차가 머금은 온기를 함께 나누는, 대화와 소통의 즐거움을 나누는 시간이다. 다시 말해, 러시아인들에게 차를 마시는 행위는 단순히 갈증 해소를 위한 방법이 아닌 타인과 교류하고 소통하기 위한 하나의 일상 문화가 되었으며, 그 결과 러시아는 오늘날 세계 최대의 차 소비국가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그렇다면 나뭇잎을 비롯한 식물성 재료를 우려 만든 음료인 ‘차’는 러시아에 어떻게 유입되어 정착했는가? 


<니콜라이 보그다노프-벨스키의 <티타임(Чаепитие)>, 1912.>
(출처: https://www.liveinternet.ru)


18-19세기 러시아 식문화 관련 자료들을 보면, 러시아에 차가 유입된 시기는 표트르 대제의 시대라고 언급되고 있다. 표트르 대제가 실시한 서구화 정책으로 식문화, 의복문화를 비롯한 다방면에서 사회적, 문화적 혁신이 야기되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나, 실제로 러시아인들이 차를 마시기 시작한 때는 표트르 대제가 즉위했던 시기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였다. 차와 그 역사를 연구한 빌얌 포흘료프킨(В. Похлёбкин)의 저서 <차(Чай)>에 의하면, 러시아에 처음으로 차에 대한 정보가 들어온 시기는 1567년이다. 중국을 방문한 바 있는 카자크인 대사 이반 페트로프(Иван Петров)와 부르나슈 옐릐초프(Бурнаш Елычов)가 러시아로 돌아와 그때까지 러시아에 알려지지 않고 있던 중국, 시베리아 남동부, 중앙아시아의 음료 풍습을 설명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내용의 출처는 19세기 고대 문서 수집가 이반 사라호프(И. Сахаров)가 출판한 <러시아 민족의 설화(Сказания русского народа)>였다. 그러나 동시대 역사학자 드미트리 프로조롭스키(Д.И. Прозоровский)를 비롯한 대다수의 현대 역사가들은 ‘페트로프와 옐릐초프의 중국 방문기’는 그 자체가 허구이며, 두 대사가 언급했다고 하는 차에 대한 내용 역시 거짓으로 간주하고 있다.

여러 연구서를 종합해볼 때, 러시아에서 차를 마시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 초인 것으로 보인다. 프로조롭스키는 로마노프 왕조를 구성한 첫 번째 황제 미하일 1세가 1618년 이미 중국 대사로부터 여러 상자의 차를 선물로 받은 바 있으며, 뒤이어 알렉세이 1세 시대였던 1654년 이르쿠츠크에서 중국으로 파견된 표도르 바이코프(Ф. Байков)가 그곳에서 “우유와 소의 버터로 끓인 차(чай, варёный с молоком и коровьим маслом)”를 제공받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한편, 북경어어로 ‘чха’와 ‘чхаэ’가 각각 차 음료와 찻잎을 의미한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중국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러시아어의 ‘차이’ 즉 ‘차’라는 단어는 17세기 중반 의학 서적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예컨대, 1665년 출간된 <러시아 의학 역사에서의 재료들(Материалы для истории медицины в России)>에는 “허브차, 세 줌”, “끓인 차”, “바흐치사라이 지역의 잎사귀”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이처럼 의학 서적에서 차의 효능과 복용법이 등장하는 것은 당시 러시아인들이 이를 전염성이 높거나 해로운 질병을 막아주는 보호제이자 병을 치유하는 약용 음료의 일종으로 간주했음을 의미한다. 이렇듯 유럽에서와 마찬가지가지로, 러시아에서도 차는 주로 약용 음료로 인기를 얻었지만, 곧 러시아인들의 미각의 즐거움을 위해 소비되기 시작했다. 1670년대 모스크바에서는 이미 10여 종의 차를 판매했고, 1679년에는 중국과 지속적인 차 공급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그 후로 다양한 품종의 중국산 차들이 모스크바로 유입되었고,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고위층 인사들에게 이는 건강 음료로 널리 음용되었다.


<17세기, 찻잎을 생산하는 중국 시골마을의 풍경>
(출처: https://historykorolev.ru)


러시아에 공급된 차는 대부분 현재의 후베이성과 후난성 경계 지역에서 재배되었다, 그리고 이는 몽골과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상업지역 캬흐타와 시베리아의 육로를 통해 러시아로 들어왔다. 18세기 초부터 본격화 된 찻잎의 수입은 꾸준히 증가했고, 수입량은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1840-1850년에 이르러서는 중국으로부터 수입되는 품목 중 찻잎이 차지하는 비중이 95%에 육박했으며, 교역액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5-600만 루블로 추산되었다.(같은 기간 러시아 곡물의 연간 수출규모가 1700만 루블이었다고 한다.) 당시 차 무역은 물물교환을 기반으로 이루어졌으며, 러시아 상인들은 차를 구입하기 위해 그들이 생산한 직물, 가죽, 모피 제품을 중국에 공급했다. 또한 차 소비의 발달은 차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다양한 산업의 부흥에 크게 기여했으며, 특히 툴라 지역에서는 사모바르(Самовар)의 생산이 광범위하게 발전했다.

그러나 차는, 그 수입량이 아무리 증가했다 하더라도 오늘날처럼 서민들이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음료가 아니었다. 이는 러시아가 찻잎 생산국가가 아니었던바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했기 때문이며, 말을 이용한 육로 운송 방식은 러시아에서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던 원인이 되었다. 수입업자들은 중국 국경에서 모스크바까지 약 11,000km를 여행해야 했으며, 운송에 소요되는 시간은 최대 6개월가량이었다. 찻잎의 가격에는 차르 정부가 부과한 관세 80-120%를 비롯, 그 밖의 여행경비, 말의 먹이 값 등이 추가되어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이 지불해야하는 가격은, 독일이나 영국의 가격과 비교할 때 10-12배에 달할 정도로 상당히 높았다. 



<찻잎을 운송하는 인부들(上) / 중국에서 러시아로, 차 운송 경로(下)>
(출처: https://kivahan.ru)


이러한 상황은 19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전환점을 맞았다. 1862년, 처음으로 바다를 통해 러시아로 운송되는 광둥 지역 찻잎 수입이 시작되었고, 1880년대부터는 사마라-우파, 예카테린부르크- 튜멘을 오고가는 철도가 개통되었다. 이처럼 선박과 철도를 이용한 운반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수송 시간과 비용은 내륙도로를 이용할 때에 비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중국 뿐 아니라 인도와 스리랑카 역시 러시아로 차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남아시아로부터 들어오는 찻잎은 바다를 통해 오데사로, 오데사에서 러시아 전역으로 운송되었다. 그 결과 러시아 내에서 차의 가격은 크게 하락했고, 비로소 이는 러시아인들의 일상 속에서 널리 음용되는 대중적인 음료가 되었다. 1886년, 이는 군인들에게 보급되는 식량 목록에 포함되었는가 하면, 1890년대 중반부터는 돈, 음식과 함께 노동자들의 임금을 대체하는 품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 후로 러시아에서 차 소비는 꾸준히 증가했는데, 1830-1840년 통계에 따르면, 차 소비가 증가한 지역에서는 알코올음료의 소비가 감소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19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러시아 내 전 지역에서 차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모스크바와 시베리아 도시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주로 음용했으며, 상대적으로 러시아 중부 지역인 볼가 및 우랄 지역,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 지역 사람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찻잎의 도매 무역이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이르빗스카야 시장(Ирбитская ярмарка)과 마카리옙스카야 시장(Макарьевская ярмарка)에서 이루어졌으나, 대중들을 대상으로 하는 차의 소매 판매는 모스크바에서만 시행되었다. 19세기 중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상황을 보더라도, 도시 전체에 차를 판매하는 점포가 하나뿐이었던 반면, 모스크바에서는 차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점포의 수가 100개를 넘었고, 카페처럼 차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은 300개 이상 존재했다. 즉, 당시 러시아로 수입된 차의 60-70% 가량이 모스크바에서 소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던 중 19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유통 지역이 빠르게 확대되기 시작했다. 오데사, 폴타바, 로스토프, 사마라, 오렌부르크 등지에서 차 관련 무역 및 산업이 활성화되었고, 20세기 초에 이르자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차 소비가 많은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귀족들은 고품질의 중국 차, 유럽에서 수입된 값비싸고 희귀한 과일차 등을 접할 수 있었고, 서민들은 저렴하고 낮은 품질의 차를 마셨다. 이들은 종종 이미 우려낸 차를 다시금 끓여 마시기도 했는데, 이처럼 수차례 우려낸 차로 만든 음료는 ‘펠트페벨스키 차이(фельдфебельский чай)’라고 불렸다.

그때까지 차르 정부는 찻잎의 러시아 내 자체 생산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터라, 찻잎 재배는 소수의 개인 애호가와 부유한 지주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러시아 내부에서 차 재배와 산업의 발달은 크림 전쟁 이후에야 이루어졌다. 당시 영국 장교로서 그루지야 귀족 여성과 결혼해 그루지야에 정착한 스코틀랜드인 제이콥 맥나마라(Джейкоб Макнамара)가 최초로 작은 찻잎 농장을 만든 것이 그 출발점이었다. 농장이 탄생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1864년, 무역박람회에서 해당 농장이 생산한 ‘카프카즈산 차(кавказский чай)’가 선보여졌으나, 이는 중국에서 수입된 차와 경쟁할 수 없을 만큼 품질이 매우 낮았다. 그 후 1893년에는 포포프 가문의 콘스탄틴 포포프(К. Попов)가 고품질 찻잎 재배에 도전했다. 그는 이를 위해 그루지야의 바투미 근교 차크비 지역의 부지를 인수했고, 뒤이어 중국의 차 전문가 라우 존 주(Лау Джон Джау)와 몇몇 농장 인부들을 초청해 재배 기술을 배웠다. 찻잎의 최대 생산국 중국 전문가들의 지도 아래 포포프의 농장에서는 고품질의 찻잎이 재배되기에 이르렀고, 첫 수확이 이루어진 지 4년만인 1900년에는 포포프 농장의 찻잎이 파리에서 열린 박람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은 러시아 땅에서 생산된 ‘러시아 차’가 처음 출현한 시기로 간주될 수 있으며, 또한 포포프 농장은 러시아에서 고품질 찻잎을 생산해낸 곳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그러나 첫 재배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 동안 찻잎의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물론 포포프 농장의 성공 이후 찻잎 재배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크고 작은 농장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도 했으나, 러시아 내 찻잎 재배 총 면적은 900헥타르에 불과했다. 여기에서 생산된 찻잎의 양은 연 130-140톤 남짓이었고, 연간 수만 톤의 차를 소비하는 나라에서 이 정도의 생산 규모는 결코 크다고 볼 수 없었다. 따라서 당시 러시아산 차는 수입차와 혼합해 향을 풍부히 하는 용도로만 사용될 뿐이었다.


<포포프 농장에서 생산된 차>
(출처: https://gorfin.mos.ru)


러시아가 찻잎 재배의 부흥기를 맞이한 것은 소비에트 시기였다. 1917년에서 1923년 사이, 소비에트 사회에서 알코올음료는 공식적으로 금지되었고, 군인들과 산업 노동자에게는 술을 대신해 각종 차가 무료로 제공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형성된 후 레닌 지도부는 본격적으로 러시아 내 찻잎 생산량 확대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레닌과 스탈린 스스로가 차 애호가였던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소련에서 차 생산량이 전폭적으로 증가했던 시기는 1970년대 후반이었다. 이때 차 재배 농장의 면적은 최대 97,000헥타르에 이르렀는데, 이는 혁명 이전 시기와 비교할 때 100배 이상이 증가한 수치다. 확대된 규모에 상응하게 당시 소비에트 내에는 차 산업과 관련된 80개의 기업이 존재했고, 1986년까지 찻잎의 총 생산량은 150,000톤에 달했다. 1950-1970년대부터 소련은 독일, 헝가리, 루마니아, 핀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아프가니스탄, 이란 등 세계 각지에 러시아산 찻잎을 수출하기 시작하며, 세계에서 손꼽히는 차 생산국으로 부상했다. 1990년대 소비에트가 해체된 이후, 러시아의 차 산업은 한때 침체기를 겪으며 3-5만 톤의 수입량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러시아는 아직까지 세계 5위 찻잎 생산국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티타임은 러시아인들의 삶과 일상에서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부분이자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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