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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일리야 마쉬코프와 '자포니즘'
분류회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1-10-01
조회수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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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쉬코프의 수많은 뮤즈 중 한 명이었던 예브게니야 키르칼디(Е.И. Киркальди)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스코틀랜드 성씨를 가진 독일인 출신 상인 가문의 딸이었다는 점, 한때 마쉬코프가 아끼는 제자였지만 결혼 후에는 어찌 된 일인지 붓에 전혀 손도 대지 않았다는 정도만 전해질 뿐이다. 마쉬코프가 예브게니야 키르칼디를 화폭에 담아낸 당시, 그녀의 나이는 20세 전후였다고 알려져 있다.

    
예브게니야 이바노브나 키르칼디(Е.И. Киркальди)의 실물 사진 (1910년 경)
(출처: https://estan.livejournal.com/)
 

나이와 전해지는 이야기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아마도 그녀가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아직 마쉬코프와 종종 왕래하던 시기에 소위 <중국 여자와 함께 있는 부인>이라는 부제로 더 유명한 <키르칼디의 초상>이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키르칼디(Е.И Киркальди)의 초상화 (중국 여자와 함께 있는 부인) (I. 마쉬코프, 1910)
(출처: https://www.wikiart.org/ru/)

    

시기적으로 볼 때, 키르칼디의 초상을 그릴 당시 마쉬코프는 한창 프랑스 야수파에 심취해 있을 때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얼핏 보면 침울하면서도 어딘지 기력이 없어 보이는 키르칼디의 실물 사진과 마쉬코프의 그림 속 여인은 상당히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붉은빛이 도는 여인의 양 볼과 살짝 흘기는 듯한 시선은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내성적 성격의 소유자였던 키르칼디의 모습을 잘 전달해내고 있다. 특히 <키르칼디의 초상> 속 여인은 유난히 빨갛고 도톰한 입술과 진한 눈썹의 소유자로 묘사되어 있다. 비록 흑백 사진이긴 하지만, 키르칼디의 실물 사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그녀의 도톰한 입술과 유난히 짙은 눈썹은 마치 캐리커처를 그리듯 마쉬코프의 눈길에 순간적으로 포착되어 그대로 화폭으로 옮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키르칼디의 좌측에 위치한 또 한 명의 동양 여성은 전통적인 초상화에 등장하는 여인의 모습이라기보다 오히려 만화에 가까운 캐릭터처럼 묘사되어 있다. 소위 ‘중국 여자’로 명명된 이 인물은 그 표현 방법에 있어서 키르칼디와 상당히 대조적이다.

다분히 과장된 듯한 붉은빛과 초록빛이 뒤얽혀 표현된 키르칼디의 얼굴과 달리, 중국 여자의 얼굴은 다소 푸르스름한 빛이 돌긴 하지만 마치 잘 빚어놓은 백자와도 같은 우윳빛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전체적으로 입체감을 최대한 자제하고 화폭을 눌러 ‘평면감’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키르칼디의 옷자락과 머리칼에는 나름대로 음영을 부여하여 입체감을 느낄 수 있지만, 중국 여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지독하리만큼 평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발견된다. 바로 평면감으로 인하여 중국 여자는 키르칼디와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현실의 인물이 아니라, 마치 키르칼디의 뒷쪽에 위치한 벽면에 그려진 배경처럼 보이는 효과를 자아낸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중국 여자’로 명명된 이 인물의 외형은 중국 여성보다는 오히려 일본의 채색목판화 ‘우키요에’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본 여성과 훨씬 더 닮아있다는 점이다. 우키요에 예술가 사이에서도 특별히 여성을 섬세하게 묘사해 낸 작가로 평가되는 기타가와 우타마로 목판화 속 여인의 모습은 마쉬코프가 자신의 뮤즈인 키르칼디 못지않게 정성을 쏟아 화폭에 담아낸 ‘중국 여자’와 매우 흡사함을 알 수 있다. 동시에 마쉬코프의 필치 속에 완성된 ‘중국 여자’의 얼굴은 마치 가부키 배우의 얼굴과도 닮아있다. 유난히 원색적인 색채와 굵은 선으로 처리된 인물의 모습 역시 우키요에의 양식에서 차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左. 간세이 시대의 세 미인 (기타가와 우타마로, 1791)
(출처: https://jnilbo.com/)

右. 담뱃대를 손에 든 타마야의 코무라사키 (기타가와 우타마로, 1794)
(출처: https://blog.naver.com/)

    

마쉬코프의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이러한 일본풍의 영향은 그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고흐와 마네를 비롯하여 19세기 말 인상주의 화파에 속했던 일련의 작가들은 사진의 출현 이후, 기존의 사실주의적 묘사만으로는 사진이 담아내는 현실을 절대 따라갈 수 없다고 판단하며 새로운 예술기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접한 일본 목판화의 평면적 구성과 강렬한 색채에 매료되어 자신들의 작품에 이를 적용하기에 이르렀고, 이후 ‘자포니즘(Japoniwm)’으로 명명된 이러한 일본풍의 영향은 후기 인상주의자들을 중심으로 발전해나가게 된다. 따라서 창작 초기에 인상주의 화풍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던 마쉬코프의 작품 속에서 이러한 ‘자포니즘’적 요소가 나타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자포니즘적 요소는 마쉬코프의 또 다른 초상화 <공작새와 같이 있는 부인>이라는 작품에서 루복적인 요소와 결합되어 나타나게 된다.

 


꿩과 함께 있는 부인 (I. 마쉬코프, 1911)
(출처: https://www.wikiart.org/ru/)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화폭에 앉아있는 여인의 얼굴은 발그레한 뺨과 입술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거칠고 그로테스크하게 표현되어 있다. 불과 1년 전에 제작한 <키르칼디의 초상>과 비교해 볼 때, 평면성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윤곽선은 훨씬 더 대담하고 굵게 처리되어 있으며, 회화작품의 느낌보다 ‘루복’ 혹은 ‘캐리커처’에 더 가까운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서양 회화에서 인물 이외의 오브제로 많이 사용되는 동물은 말이나 개 혹은 고양이 등이며, 새가 묘사되는 경우는 드물다. 설령 새가 묘사의 대상이 된다 하더라도, 주로 공작새나 비둘기를 그리기 마련인데, 마쉬코프는 특이하게 ‘꿩’을 자신의 화폭에 끌어들이고 있다. 물론 꿩의 서식지가 유럽에도 분포되어 있지만, 꿩이라 하면 주로 동아시아 지역에 서식하는 조류로 당연히 동양 회화 속에서 종종 마주치곤 하는 친근한 대상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아마도 마쉬코프는 이러한 디테일한 측면까지 모두 고려하여 자신만의 ‘자포니즘’적 요소를 만들어 나간 것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마쉬코프가 묘사한 꿩의 모습 역시 예사롭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여인 어깨를 기준으로 우측 상단에 놓여있는 꿩의 경우, 나뭇가지를 딛고 서 있는 것으로 보아 박제 형태로 벽에 매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푸른 빛이 감도는 여인의 의상과 꿩을 둘러싼 배경색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꿩이 묘사된 작품의 후경은 앞서 살펴본 <키르칼디의 초상 (중국 여자와 함께 있는 부인)>에서처럼 공간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평면처럼 처리되어, 마치 벽화를 장식하는 거대한 오브제처럼 느껴지는 효과를 자아내고 있다.

이렇듯 프랑스 인상주의 화파는 물론 일리야 마쉬코프에게까지 소위 ‘자포니즘’이라고 불리며 영향력을 발휘한 일본의 우키요에는 이후 반대로 서양미술의 원근법과 명암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또 다른 변신을 준비하게 된다.



서리가 내릴 것 같은 한밤의 풍속: 등불을 켜는 여인 (우타가와 구니사타, 1819)
(출처: http://www.koreanart21.com)

    

<등불을 켜는 여인>이라는 부제로 더 잘 알려진 우키요에의 또 다른 거장 우타가와 구니사타의 작품은 기존의 우키요에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그림자와 명암을 그려 넣었다는 점에서 확실한 차별성을 보인다. 하지만 이는 서양미술의 시각에서 볼 때 일종의 ‘기법의 역행’과도 같은 혁신 아닌 혁신이라 할 수 있다.

서양의 화가들이 기존 회화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동양으로 눈을 돌리면서, 그곳에서 ‘평면성’으로 구축된 새로운 공간을 발견했다면, 동양의 화가들은 반대로 자신들의 밋밋한 화폭을 채워줄 새로운 도구로 서양의 원근법과 명암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이 매우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마쉬코프 역시 자신의 창작 초기에 이러한 당대의 흐름에 편승하여 다분히 평면적인 공간으로 구성된 작품을 많이 쏟아냈지만, 창작 후기에 가까워질수록 다시 전통적 사실주의로 복귀하게 된다.

갑자기 드는 의문 하나. 키르칼디는 자신의 스승이 그려준 초상화를 과연 마음에 들어했을까? 판단은 우리 모두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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