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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러시아 코미디 영화의 역사
분류영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1-09-16
조회수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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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 (L'Arrivée d'un train en gare de La Ciotat)>은 세계 최초의 상업영화로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더 일찍 제작된 몇 편의 영화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물 뿌리는 정원사 (L'Arroseur arose)>로 정원사가 꽃에 물을 줄 때 한 소년이 호스 중간을 밟고 있다가 정원사가 의아해하며 호스의 끝을 들여다 볼 때 소년이 발을 치우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세계 최초의 코미디영화인 동시에 픽션영화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에도 코미디영화는 가장 사랑 받는 장르로 자리매김하며, 전세계 영화역사에서나 러시아영화 역사에서도 드라마 장르(1345편 개봉)보다 적은 수의 개봉(코미디영화는 616편 개봉)을 하면서도 더욱 많은 관람객을 유치하고 있고, 주요 장면들은 세대에서 세대로 인용되고 있다.
 

세계 2차대전 전후(前後) 코미디영화 

1920년대 코미디영화들은 당시 나라 안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듯 이데올로기적인 측면들은 배제한 채 제작되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서 고위 관료에 대한 풍자를 그린 <기계의 배신(Механический предатель), 1931>이 개봉되었지만, 정부에서도 국민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1930년대 가장 인기 있는 장르는 뮤지컬 코미디였다. <볼가-볼가(Волга-Волга), 1938>, <재미있는 녀석들(Весёлые ребята), 1934>, <트랙터 운전사들(Трактористы), 1934> 등이 있다. 당시 이 영화들은 매우 큰 인기를 얻었고, 1번 이상 이 영화들을 관람한 관객들이 많았으며, 영화의 OST는 러시아 전역에서 대유행이었다. 

세계 2차대전 중에는 <전투영화 콜렉션>의 일부로 단편 코미디영화가 정기간행물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대표 영화들 중에는 <두 전사(Два бойца), 1943>, <항공모함(Воздушный извозчик), 1943>이 있는데 이 영화들은 주로 파시즘을 비꼬는 풍자, 전선에 있는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내용이었다.

2차대전 이후 소비에트를 대표하는 코미디영화 감독은 스크루볼 코미디(괴짜코미디)의 거장 레오니드 가이다이 (Леонид Гайдай, 1923-1993), 로맨틱 코미디로 유명한 엘다르 리자노프 (Эльдар Рязанов, 1927-2015), 희비극과 풍자로 인기 있었던 게오르기 다넬리야 (Георгий Данелия, 1930-2019)로 이들은 50년대를 시작으로 1990년대까지 활동했다. 레오니드 가이다이의 대표작으로는 <작전명 "Y" 그리고 슈릭의 다른 모험들(Операция «Ы» и другие приключения Шурика), 1965>, <카프카즈의 포로, 혹은 슈릭의 새로운 모험들(Кавказская пленница, или Новые приключения Шурика), 1966>, <다이아몬드 팔(Бриллиантовая рука), 1968>이며 세 작품이 각각 약 7,000만의 관객을 동원했다. 엘다르 리자노프는 <축제의 밤(Карнавальная ночь) ,1956>, <운명의 아이러니(Ирония судьбы, или С лёгким паром!), 1975>, <사내연예(Служебный роман), 1977>등의 작품으로 큰 인기를 얻었고, 게오르기 다넬리야는 <나는 모스크바를 걷는다(Я шагаю по Москве), 1963>등의 대표작이 있다.


<<카프카즈의 포로, 혹은 슈리크의 새로운 모험>의 포스터>
(출처: https://zen.yandex.ru/)

스탈린 사후, 해빙기 코미디영화

스탈린 사후 1950-60년대 러시아 사회와 예술계에서는 "해빙기"를 맞으며 자유가 주어진 듯 보였지만, 웃음 뒤에 풍자나 조롱을 감출 수 있음을 검열당국이 인지함으로써 코미디에 대한 제재가 심해져 해당 장르 제작에 있어 어려움을 가져왔다. <다른 세계에서 온 신랑(Жених с того света), 1958>은 관료주의를 조롱했다는 이유로 2년 동안 감독 레오니드 가이다의 영화활동을 중단시켰고, 이 후 이 영화는 문제가 된 부분을 삭제한 뒤 단편으로 개봉되었다. 또한, 술을 마시는 장면, 서기관을 비롯한 정치인 패러디, 사회주의 이상에 반하는 장면이 포함된 영화들은 장면을 삭제하도록 하거나 상영이 금지되었다. 때문에 많은 코미디 작품들이 검열에 통과하지 못하여 개봉을 하지 못한 경우들이 많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반소비에트, 반흐루쇼프* 장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열에 통과한 작품이 있다. 바로 엘렘 클리모프(Элем Климов, 1933-2003)가 연출한 <환영, 혹은 진입금지(Добро пожаловать или посторонним вход воспрещен), 1964>이다. 영화는 한 소년이 캠프의 규칙사항을 어기고 쫓겨났다가 다시 몰래 잠입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 소년의 할머니는 작품 속에서 게임체인저로서 역할을 함과 동시에 흐루쇼프를 희화화하는 인물이지만, 직접 이 영화를 관람한 흐루쇼프는 작품을 매우 마음에 들어 하였고, 빠른 개봉을 지시했다고 한다.

*니키타 흐루쇼프: 스탈린 사후 집권한 제1서기관. 경제성장둔화 당간부들의 불만고조로 1964년 사임. 


<니키타 흐루쇼프(左) /
흐루쇼프를 직접적으로 희화화한 장면. 영화 <환영, 혹은 진입금지> 속 할머니역 예카테리나 마주로바(右)>
(출처: https://feldgrau.info/2010-09-02-14-35-19/21642-podborka-9)


1970년대 텔레비전 보급과 코미디영화

1970년대부터는 텔레비전 보급율이 높아지면서 텔레비전영화가 더욱 활발히 제작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까지 한 해 3.5편 수준의 제작 편수가 70년대에 들어서는 한 해 15편씩, 70년대 후반에는 30편이 넘게 제작되었다. 1976년 1월 1일에 텔레비전으로 개봉된 엘다르 리자노프 감독의 <운명의 아이러니(Ирония судьбы, или С лёгким паром!)>는 방영 당시 곧바로 러시아 전역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중앙방송국에 재방송을 요청하는 편지가 빗발쳐 약 1개월 후인 2월 7일 다시 텔레비전에서 상영되었다. 이후에도 이 영화를 다시 보고자 하는 수많은 요청으로 같은 해 8월 영화관에서 개봉되어 700만의 관객을 유치했다. 그리고 약 4개월 후 1977년 새해 아침 다시 텔레비전으로 송출되었고, 이는 현재까지도 1월 1일 아침 <운명의 아이러니> 시청은 러시아 인들의 중요한 문화적 현상 중 하나가 되었다.

 

<운명의 아이러니 주요장면 캡쳐>
(출처: https://zen.yandex.ru/)


그 외에도 극장용 영화 <사내연애(Служебный роман), 1977>와 같은 서정적인 코미디도 당시 큰 인기를 얻었고, 비극코미디 <가을 마라톤(Осенний марафон), 1979>, <아포니아(Афоня), 1975>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


1970년대 말부터 소련붕괴 당시 코미디영화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극장방문이 줄어들면서 정부는 극장영화의 부흥을 위해 영화제작지원을 확대했고, 감독들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어느 정도 주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코미디영화에서는 밀수꾼, 결손, 정치적 상황, 빈부격차 등에 대한 농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코미디에서는 '웃기는 것' 보다는 주인공을 둘러싼 현실의 암울함을 더해주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대표적인 영화로는 엘다르 리자노프 감독의 <주차장(Гараж), 1979>, 게오르기 다넬리야 감독의 <킨-자-자!(Кин-дза-дза!), 1986>가 있다.

이미 1970년대 말부터 이어져 오던 국가체제의 위기는 1985년이 되면서 총체적 개혁과 재편이 강조되기 시작하며 1991년 소련붕괴까지 '페레스트로이카'가 진행된다. 이 기간의 영화들을 '페레스트로이카 영화'라 부는데 그 동안은 금지되었던 주제들에 대해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제재와 검열이 없어진 동시와 지원도 없어지면서 극도의 잔인함과 성적인 표현, 삶의 암울함, 모욕적인 현실 등에 대한 저질의 필름을 무분별하게 찍어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코미디의 거장 감독들이 - 엘다르 리자노프, 게오르기 다넬리야, 레오니드 가이다이 등 - 여전히 왕성한 활동들을 펼쳤지만, 이전만큼의 인기를 부가하지는 못한 사이, 아제르바이잔 출신 감독 아나톨리 에이람잔(Анатолий Эйрамджан, 1937-2014)이 <마이애미에서 온 신랑(Жених из Майами), 1994>, <탕아(Бабник), 1990>, <무기력한 사람(Импотент), 1996>, <뉴 오데온(Новый Одеон), 1992>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러시아 코미디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그 외에 <쉬를리-믜를리(Ширли-мырли), 1995>, <선거 날(День выборов), 1998>이 관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보였다.


2000년대 코미디영화

2000년대에는 소비에트 시절의 인기 영화의 리메이크가 유행했다. 엘다르 리자노프의 <축제의 밤(Карнавальная ночь), 1956>, <운명의 아이러니>, <사내연예>, 알라 수리코바(Алла Суриковаб, 1940~)의 <카푸틴 거리에서 온 남자(Человек с бульвара Капуцинов), 1987>, 그리고리 알렉산드로프(Григорий Александров, 1903-1983)의 <즐거운 녀석들>, 레오니드 가이다이의 <카프카즈의 포로, 혹은 슈릭의 새로운 모험들>이 리메이크되어 개봉되었다. 이 영화들은 제목만으로 러시아 인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나름대로 좋은 반응을 보였지만, 원본영화의 플롯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환경들을 무시한 채 억지스러운 웃음코드를 산발적으로 끼워 넣었다는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사내연예> 포스터 비교. 1977년도 원작(左) /
2011년도 리메이크작(右). 2011년도 리메이크작의 남자주인공 (가운데) 블라디미르 젤렌스키는 현재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다>
(출처: https://cinewest.ru/aktery-sluzhebnyj-roman-1977-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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