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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뮤르와 메릴리즈’에서 ‘쭘’으로
분류역사
국가 러시아
날짜2021-07-16
조회수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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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는 러시아 수도를 상징하는 다양한 명소들이 있다. 수도의 심장 ‘크레믈’과 ‘붉은 광장’,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정교회 성당으로 알려진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 노벨상 수상자 11명을 배출해낸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붉은 광장 한쪽 면을 차지하고 있는 국영 백화점 ‘굼’, 러시아 화가들의 삶과 정신을 품고 있는 ‘트레챠코프 미술관’ 등은 모스크바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어김없이 찾는 필수 코스다. 그런 이유로 크레믈과 인접해 있는 러시아 최대 규모의 백화점 ‘굼’을 찾는 사람들은 물건을 구매하기보다 기념촬영과 눈요기를 위해 방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편 현지인들이 대체로 선호하는 대형백화점은 세계적 최신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곳, 바로 볼쇼이 극장 옆 페트로프카 2번지에 자리하고 있는 ‘쭘(ЦУМ)’이다. 쭘은 굼과 비교할 때, 비록 건물 자체의 외관은 관광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웅장하거나 아름답다고 볼 수 없지만, 굼보다 더욱 화려한 쇼윈도우 디스플레이를 자랑한다. 또한 쭘에는 해외 유명브랜드를 포함해 약 1천5백 개의 다양한 점포가 입점해 있어,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곳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이처럼 오늘날 러시아 내 최고급 대형백화점으로서 패셔니스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쭘은 언제부터 모스크바 쇼핑의 메카로 기능하게 되었는가?


<1900년대 뮤르와 메릴리즈(左) / 2015년 쭘(右)>
(출처: https://tjournal.ru, https://dervishv.livejournal.com)


‘뮤르와 메릴리즈’, 그리고 최신식 유통 시스템의 탄생

쭘의 역사는 1857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무역업자 앤드류 뮤어(Andrew Muir)와 아치볼드 메릴리스(Archibald Merilies)가 ‘뮤르와 메릴리즈(Мюръ и Мерилизъ)’라는 상표권을 등록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두 사업가는 당시 페테르부르크에서 무역 회사를 운영했는데, 주로 영국으로부터 레이스를 비롯한 직물들을 수입하는 일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이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이주하게 된 것은 1880년의 일이며, 그 5년 후인 1885년에는 모스크바에서 처음으로 그들의 이름을 내건 부티크를 열었다. 창립자들의 성을 따 ‘뮤르와 메릴리즈’로 불렸던 상점에서는 여성용 모자와 잡화를 판매했다. 오픈 직후부터 상점의 인기는 치솟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스크바 내 패션과 유행을 주도하는 중심 상점으로 등극했다. 이처럼 모스크바 시민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이들은 상점 규모를 확장하기로 했는데, 그 계획은 단순히 매장을 넓히는 차원에만 그치지 않았다. 당시 그들은 패션과 관련된 전 품목들을 취급하는 ‘대형 쇼핑센터 창립’이라는 꽤나 거창한 일을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당시 이 스코틀랜드 사업가들에게 모델이 되었던 것은 19세기 중반부터 유럽 중산계급의 유행을 형성하면서 최대 쇼핑센터로 자리매김했던 런던의 화이틀리(Whiteleys)와 파리의 봉마르셰(Le Bon March)였다. 그들이 소망했던 대형 쇼핑센터 건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큰 건물이 필요했고, 1888년 뮤어와 메릴리스는 모스크바의 중심지역 ‘찌아트랄나야 광장’에 위치한 3층짜리 건물을 매입했다. 사업 규모를 확장한 이 기업은 음식을 제외한 모든 생활용품을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매우 빠른 속도록 러시아 중산층을 위한 고급 백화점으로 성장했다. 1891년까지 뮤르와 메릴리즈는 약 1천 명에 달하는 직원을 고용했고, 매장 수는 44개까지 확장되었다. 


<앤드류 뮤어와 아치볼드 메릴리스>
(출처: https://www.gazeta.ru)


기업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었지만 1900년 11월 발생한 화재로 건물은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당시 화재로 인해 기업이 입은 손실액은 무려 150만 루블에 달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뮤르와 메릴리즈가 겪었던 1900년의 화재는 두 번째 화재였다. 첫 번째 화재는 1891년도의 일이었다. 그러나 보험회사의 보상과 훼손된 건물 복원을 위한 직원들의 자발적 노력으로 쇼핑몰은 화재 6주 만에 다시금 문을 열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뮤어와 메릴리스의 사업이 완전히 망해 결코 일어설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재기를 위한 의지를 굳건히 다졌다. 약 6년에 걸쳐 다른 건물을 임대해 장사를 하며 기반 마련에 성공한 그들은 다시금 다른 곳과 차별화될 법한 새로운 백화점을 짓기로 결정한다.

드디어 1906년, 건축가 로만 클레인(Р.И. Клейн)의 건축 기획안이 발표되었고, 그 구상에 따라 1908년 8월 뮤르와 메릴리즈 쇼핑센터는 오늘날과 유사한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건물 재건축을 담당함에 있어, 클레인은 영국식 고딕 양식의 건축구조를 고안해냈는데, 이러한 디자인은 동시대인들에게 아름답지 못한 시대착오적 디자인으로 여겨졌고, 아름다운 찌아뜨랄나야 광장의 경관을 해치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분노와 비아냥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공간구획과 설계, 재료 등 건축공학적 측면에서 볼 때, 이는 혁신성과 완성도를 두루 갖춘 최신식 건축물이었다. 굼 건축을 주도한 바 있던 엔지니어 블라디미르 슈호프(В. Шухов)는 이 건물에 대형 스테인글라스 창문을 설치하고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했다. 특히 철근 콘크리트는 러시아 내 최초의 시도였다고 하는데, 이러한 선택은 건축물의 내구성을 유지하면서도 벽의 두께를 얇게 만들 수 있도록 했다. 그 덕분에 백화점 내부의 매장 공간은 획기적으로 늘어났다.(당시 건축에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하는 방식은 미국에서 고층빌딩을 짓는 데 사용된 바 있지만, 모스크바에서는 최초의 시도였다고 한다.) 또한 클레인이 설계한 이 7층 건물은 대체로 3-4층 높이로 이루어져 있던 주변의 다른 건물들 사이에서 확연히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메릴리스와 뮤어는 모스크바 경관에 있어서 자신들이 소유한 건축물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이해하고 있었으며, 주변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브랜드 이름을 포함해 두드러지게 눈에 띠는 간판을 건물 외벽에 설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1906년 로만 클레인의 설계도(左) / 1908년 완공 직후 뮤르와 메릴리즈(右)>
(출처: https://www.gazeta.ru, https://dezinfo.net)


1913년까지 이곳에는 향수, 의류, 신발, 가정용 가구 등 고품질 상품만을 취급하는 약 80여 개의 매장이 입점해 있었는데, 특이한 점은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사람들만이 그곳에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모스크바 거주민이 아니더라도 쇼핑센터 자체의 배송 서비스를 통해 타 지역 거주자들 역시 이곳에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었다는 말이며, 이를 위해 뮤르와 메릴리즈는 제품을 소개하는 카탈로그를 제작해 무료 배포했다. 연 4회 매 시즌마다 새로운 카탈로그가 제작되어 다양한 직물 샘플들과 함께 러시아 전역으로 발송되었으며, 카탈로그를 참고해 주문된 상품은 고객의 거주지까지 배달되었다. 당시 75루블 이상 주문할 경우 러시아 내 다른 도시(유럽지역)로 무료 배송되었고 하니, 오늘날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온라인 주문과 배송 서비스라는 현대식 유통 시스템과 매우 유사한 형태가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뮤르와 메릴리즈 브랜드의 배송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던 고객 중 한 명이 바로 안톤 체호프(А. Чехов)였다는 점이다. 그는 식기와 같은 생필품부터 모자, 의류, 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품들을 이곳에서 구입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그가 얄타에서 보낸 생의 마지막 기간 동안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마샤에게. 가능한 한 빨리 메릴리즈에게 양털 모자를 착불로 보내달라고 말해주렴. 그의 가을 카탈로그에서는 검정색 카라쿨양털로 만든 ‘바데이카’(N 216)라고 불린단다. 59cm 사이즈의 부드러운 것으로 골라주어라. 만약 ‘미국식 캡이 달린 모자’(N 213)가 따뜻하다면, 메릴리즈가 이 모자도 같이 보내도록 하렴.” 


<뮤르와 메릴리즈의 배송서비스>
(출처: https://krisandr.livejournal.com)


<뮤르와 메릴리즈의 카탈로그>
(출처: http://akademforum.ru, http://vnikitskom.ru)


카탈로그 홍보과 배송 서비스는 쭘의 혁신적인 판매시스템에서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고객들은 그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특별 서비스에 매료되었는데, 쇼핑센터 내부에는 고객들의 편의를 위한 헬프 데스크와 휴게시설, 두 대의 고속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상점 내 물품 가격은 불필요한 흥정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고정되어 있었고, 매년 몇 차례 세일 행사가 개최되기도 했다. 또한 구매자가 제품에 만족하지 않을 경우 즉시 새 제품으로 교환하거나 반품할 수 있는 일종의 ‘고객 만족 서비스’가 도입되기도 했다. 이렇게 최신식 시스템을 갖춘 뮤르와 메릴리즈에는 혁명 이전까지 약 80개의 매장이 운영되고 있었고, 약 3천 명의 직원이 고용되어 있었으며, 백화점이 올린 연간 수입은 약 9만 루블에 달했다고 한다.
 

소비에트 시기 쭘 백화점

1917년 혁명 이후, 러시아 패션계를 장악하다시피 했던 뮤르와 메릴리즈는 새로운 시대정신에 따라 국유화되었고, 1918년에는 폐점하기에 이르렀다. 1922년, 뮤르와 메릴리즈는 다시금 문을 열 수 있었지만, 이는 이미 과거의 이름이 아닌 ‘모스토르그(Мосторг)’로 불리게 되었으며, 1933년에는 ‘중앙백화점(Центральный универсальный магазин)’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름이 바뀐 만큼 내부 모습도 확연히 변화되었다. “장사하는 법 배우기!(Учиться торговать!)”라는 슬로건 아래 200명이 넘는 청년당원들이 새로이 만들어진 상점 카운터에 배치되었다. 구매자의 주요 계층은 모스크바 공장 노동자들로 쭘은 공장 업무가 끝나는 오후 5시 이후부터 영업 종료 전까지 몰려든 인파로 북적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쭘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끊어졌다. 이전까지 다양한 의류로 치장된 마네킹이 서 있던 쭘의 창가에는 모래주머니들이 수북히 쌓였다. 백화점의 상층부는 막사로 바뀌었으며, 1층은 근로자들을 위한 배급소로 기능했다. 전쟁 이후에는 주문상품 자체제작을 위한 공장이 별도로 설치되어 쭘의 이름을 내건 상품이 생산되기도 했다. 


<소비에트 시절 쭘의 외관(左) / 내부 향수매장의 모습(右)>
(출처: https://www.gazeta.ru)


1974년에는 확장공사가 이루어졌고, 그때부터 쭘은 모스크바 쇼핑의 메카로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다양한 출처에 따르면, 당시 쭘에서는 최소 1만7천 개에서 최대 4만1천 개의 상품이 판매되었다. 특히 “소젖을 짜는 착유기과 로열피아노, 카메라와 유아용품, 사냥용 소총과 소시지, 바늘과 침대, 확성기와 부츠, 피리와 냄비” 등 구체적인 물품 목록을 <4만1천 개의 품목>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한 프라브다(Правда) 지의 내용을 보면, 당시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제품들이 이곳에서 판매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쭘은 구매자가 상품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셀프 구매 서비스와 샘플 및 카탈로그, 브로셔 등 체계적인 상품 설명을 위한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고, 이는 러시아 내 효율적인 제품 판매 시스템 개발의 첫 단계가 되었다. 상품 판매 방식은 구매자가 진열된 상품을 보고 선택한 후 카운터에 설치된 현금 수납기를 통해 판매자에게 돈을 지불하는 방식이었다. 이처럼 해를 거듭할수록 국내외 경험을 바탕으로 한 판매 방식이 개선되어 보다 새롭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체계화되었다.

소비에트 시절 동안 국가 소유였던 쭘은 체제전환 이후인 1992년 주식회사로 전환, 운영되고 있다. 1995년에는 매장 공간을 확장하고 건축물 구조를 최적화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대대적인 내부 수리가 진행되었다. 이를 위해 1995년 말부터 1996년 초, 쭘은 백화점 현대화 프로젝트의 구현을 위한 공개 국제 입찰을 시행했고, 유럽 대형백화점 재건에 참여한바 있는 독일 건설회사(ReDesign Einrichtung GmbH)가 낙찰되었다. 공사는 영업을 중단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1997년 수리 완료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쭘은 현대적 외관과 국제적 규모를 갖춘 러시아 쇼핑의 메카이자 하이 엔드 백화점으로 국내외 패션니스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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