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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진정한 ‘리얼’은 어디있는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 메타버스까지
분류대중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1-07-02
조회수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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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길을 가다가 추억의 ‘스티커 사진’ 샵을 발견했다. 1990년대 후반에 한참 유행했던 스티커 사진은 등장하자마자 그야말로 광풍을 불러일으켰다. 지금은 워낙 ‘카카오 치즈’, ‘B612’ 같은 사진앱들이 많이 발달해서 ‘뽀샵’은 기본이요, 다양한 배경과 액세서리 장착으로 사진 속 나를 완전히 다른 또 하나의 인물로 탄생시키는 것이 일상화되어있지만, 90년대 후반만 해도 스티커 사진은 단순히 추억 남기기 용 사진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잡지나 화보 속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스튜디오에서 찍은 느낌을 자아내는 등 현실로부터 이탈한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내는 몇 안되는 수단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마침 집에 와서 사진첩을 뒤적거리다 보니, 아니나다를까 예전에 찍었던 스티커 사진이 사진첩 한 구석에 남아있었다. 


<1990년대 ‘잡지 화보’ 컨셉의 스티커 사진>


사진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바로 아이폰 카메라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이폰 유저라면 모두 알고 있지만, 아이폰 카메라는 그 뛰어난 기능과 화소에도 불구하고 셀카용 카메라로는 최악이라는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그 악명이 높디높다.

아이폰 카메라가 이렇게 악명이 높은 이유는 바로 ‘대칭’의 문제이다. 셀카 모드로 나를 찍게 되면, 나의 시선이 아니라 ‘상대방’의 시선으로 나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 전에 몰랐던 안면비대칭을 비롯하여 다양한 얼굴의 약점이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물론 갤럭시라고 예외는 아니지만, 최근 나오는 갤럭시 모델은 이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후면카메라 좌우대칭을 맞춰서 출시되며 예전보다는 좀 나아 보인다는 평이다.

물론 ‘B612’와 ‘카카오 치즈’ 등의 사진 앱으로 셀카를 찍어도 나는 온전한 나의 시선이 아닌 ‘상대방’의 시선으로 잡혀서 연출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런 앱을 사용해서 찍은 사진을 보면 좀 더 어려 보이기도 하고 가끔 꽤 괜찮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해당 앱에 장착된 사진 보정 기능 덕분이지, 앱을 사용해서 나를 찍은 어느 날 갑자기 나의 모습이 괜찮아진 것은 절대 아니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로 인하여 몇몇 사람들은 ‘거울 속에 보이는’ 모습과 ‘어플로 찍은 사진 속의 모습’이 진짜 나라고 믿고 살며, 외부 카메라로 찍은 나의 모습은 철저히 외면하면서 “저것은 내가 아니얌...”이라고 되뇐다고 한다. 외부 카메라로 찍은 사진 속의 내 모습이 진짜이고, 내가 거울 속에서 보는 나는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면, 과연 나의 진짜 모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나의 온전한 모습을 ‘나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것일까?

상대방의 시선에 비친 나의 모습도 온전한 나의 모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는 인간의 시각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반 카메라로 찍은 나의 모습은? 역시 온전한 모습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카메라가 처음 세상에 출현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현실의 모습을 왜곡없이 그대로 담아낸다고 생각하면서 열광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카메라가 어느 정도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복제’하여 연출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카메라를 다루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동일한 풍경도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연출되어 이미지화 될 수 있다. 따라서 카메라는 현실의 외관을 일정 부분 그대로 담아낼 수는 있지만, 그 속의 의미까지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누가 어느 부분을 초점화시켜서 대상을 연출하는가에 따라 동일한 사물도 완전히 다른 의미로 재탄생하기 때문이다.

가상현실, 메타버스는 요즘 가장 핫한 이슈를 담은 키워드 중 하나이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넘어서 이제는 아예 독립된 하나의 가상세계로서 메타버스가 출현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게임이나 싸이월드 등에 취미가 없기에 아직까지 메타버스의 개념이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그저 막연하게 90년대 말을 풍미했던 ‘싸이월드’와 유사한 형태의 어떤 것이 더이상 모니터 속 가상세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결합하여 탄생된 무엇(!?) 정도로의 개념으로 와닿을 뿐이다. 


<싸이월드 속 미니미가 구축한 가상 세계 화면> 


실제로 ‘싸이월드’가 메타버스로 진화하여 다가오는 7월 5일에 재오픈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새롭게 재편된 ‘싸이월드’의 시작은 ‘도토리 환불’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21세기형 ‘싸이월드’가 기존의 버전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현실’과의 연계성은 바로 이 ‘도토리’의 변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존에는 모니터 속 가상세계, 즉 ‘싸이월드’라는 가공 세계에서만 통용되었던 도토리가 이제는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와 결합하여 출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네이버’ 역시 메타버스를 활용한 신경제 개념에 주목, ‘제페토’를 개발하여 운영 중이다. ‘제페토’는 가상세계 속 아바타를 이용하여 SNS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든 플랫폼으로, 아바타 의상을 직접 제작하고 판매도 가능하다. 이미 제페토는 약 2억 명 이상의 유저를 확보하며 글로벌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메타버스 게임 혹은 시스템 중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어스 2 (Earth2)’이다. 이 게임에 직접 접속해보지는 못했지만, 가상세계 속에 실현된 지구를 대상으로 그 안에서 땅도 사고팔고, 월세도 받는 형태로 운영된다고 한다. 실제 지구 모습을 모델로 한 부동산 게임 정도로 이해하면 너무 단순한 접근일까? 사실 게임이나 수학에 매우 취약한 필자가 보기엔, 실제로 ‘지구’를 모델로 했을 뿐, 초등학생 시절 한참 가지고 놀았던 ‘블루마블’이나 ‘모노폴리’ 혹은 ‘삼국지’ 등의 게임 대상이 실제 세계와 좀 더 근접한 ‘지구’로 전환되었다는 것 외에는 큰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겠다. 


<‘어스 2 (Earth2)’에 등장하는 서울의 모습>


<‘어스 2 (Earth2)’ 토지 현황과 소유자들의 국적>


이렇게 가상현실 속 아바타에 집착하고, 심지어 현실 세계 속 부동산 열풍에도 모자라 가상세계에서까지 땅을 사고파는 게임이 등장하고 이에 열광하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며, 불만족스러운 현실에 대한 대리만족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가상현실에 심취하는 현상이 가속화 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문제는 이러한 가상현실에 대한 몰두가 심화될수록, 그리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가상현실과 현실 간의 경계가 희미해질수록, 사람들이 어느 순간 가상과 현실을 뒤바꿔 생각하기 시작하는 시점이 도래할 것이란 점이다. 마치 어플로 찍은 사진과 거울 속에 비춰진 나의 모습을 진짜로 믿고, 진짜 나의 모습은 외면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서론이 길어졌는데, 소비에트 시절 예술의 강령처럼 불리웠던 ‘사회주의 리얼리즘’ 역시 ‘리얼’을 표방했지만, 결국 만들어진 ‘리얼’을 선전하고, 그렇게 ‘창조된 리얼’을 믿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정치적 수단이었다. 

1934년에 개최된 소비에트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작가연맹 제1차 전당대회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공식적인 정의가 내려졌다. 당시 내려진 정의는 다음과 같다.
 

“소비에트 문학과 문학비평의 주요 방법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혁명적 발전 속에서 현실에 대한 진실하고 역사적이며 구체적인 묘사를 예술가에게 요구한다. 이 때 현실에 대한 예술적 묘사에 담긴 진실성과 역사적 구체성은 사회주의의 기조 속에서 사상적 개조와 교육이라는 과제와 결합되어야만 한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란 혁명의 진실과 역사적 사실을 예술적으로 묘사하고, 이것을 사회주의라는 사상 전파와 교육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게 만들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너무나 뻔한 이야기이지만 좀 더 거칠게 말하자면,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소비에트 혁명과 그 현재를 ‘선전’하기 위한 일종의 광고와도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광고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결국 ‘사회주의’라는 모종의 상품과 그것에 담긴 모종의 ‘진실’과 ‘역사적 사실’은 모종의 목적을 위해 과장되거나 당과 이데올로기라는 소수에 한정된 하얀 거짓말을 수행하기 위해 왜곡된 형태로 새로운 ‘리얼’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소비에트 대중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원칙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리얼’을 곧 다가올 미래로 믿고, 현실의 불만과 부족함에서 비롯된 결핍을 이렇게 ‘만들어진 리얼’을 통해 대리만족하면서 살아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지닌 왜곡의 구조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하루는 오른쪽 다리를 절고 왼쪽 눈은 사시인 황제가 화가에게 명했다.

“나를 사실 그대로, 아름답게 그려보도록 해라!”

순진한 화가는 황제가 명한 대로, 오른 다리는 절고 왼쪽 눈은 사시인 그의 모습을 ‘그대로’ ‘리얼’하게 그려냈다. 화가는 황제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바로 사형에 처해졌고, 황제의 초상을 그리기 위한 또 다른 화가가 초빙되었다.

두 번째 화가는 두 다리로 힘차게 땅을 딛고 두 개의 눈동자를 정명을 응시하는 용사의 모습으로 황제를 묘사해냈다. 그 화가가 무사히 목숨을 부지했냐고?

노우~ 그는 ‘삶의 진실을 왜곡’한 죄로 사형에 처해졌다. 그리고 세 번째 화가가 초빙되었다.

세 번째 화가는 영리했다. 그는 말을 타고 있는 황제의 모습을 그려냈다. 덕분에 절름발이 황제의 오른쪽 다리는 말의 몸통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화폭 속 황제의 손에 총을 쥐어주고, 사시인 왼쪽 눈을 가늘게 뜨게 만들며 뭔가를 겨냥하고 있는 황제의 모습을 연출해냈다. 황제는 크게 기뻐하면서 상을 내렸다. 황제의 일화에서 진화한 현실의 일화도 존재한다.
 

스탈린 통치 시절, 하루는 샤라포프(Шарапов )라는 화가가 스탈린의 초상을 그릴 기회를 얻게 되었다. 초상화를 그리는 내내 스탈린은 한껏 기분이 올라 이런저런 수다를 떨어댔다. 작품이 완성되고 초상화를 확인해보니, 화폭 속에는 웬 비실비실해 보이는 늙다리 영감탱이 한 명이 뾰족한 눈을 흘기고 있었다. 그 후 샤라포프가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되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게라시모프 作, 크렘린에서의 스탈린과 보로쉴로프 (1938)>


샤라포프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은 화가들은 ‘아름다운 진실’과 ‘진실 그대로의 아름다움’ 사이에서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게라시모프(А. Герасимов)를 비롯하여 카츠만(Е. Кацман), 슈르핀(Ф. Шурпин) 등의 화가들은 철저하게 “당 지도부에게 ‘필요한 형태’로, 그리고 당 지도부에 ‘걸맞는 형태’로 현실을 묘사한다”라는 명제에 입각하여 현실을 그려나갔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 요구하는 ‘리얼’은 다름 아닌 ‘당 지도부’를 위한 ‘리얼’이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리얼’은 ‘선택된 리얼’이었으며, 자신의 약점을 예쁘게 채색하여 만들어진 ‘보고 싶은 현실’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현실 자체가 나날이 강퍅해지는 오늘날 진정한 ‘리얼’은 ‘아름다움’과 병립될 수 없으며, 그것은 오로지 가상현실에서만 가능할 것 같다. 그렇다면 소비에트 시대 예술강령으로 사용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바로 이런 것을 이미 앞서서 예견하고 보여 준 하나의 사례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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