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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아폴리나리 바스네쪼프(Аполлинарий Васнецов)와 ‘옛러시아(Старая Москва)’연작
분류회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1-06-16
조회수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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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스네쪼프 형제 이야기

모스크바에는 바스네쪼프의 그림이 소장되어 있는 박물관이 3곳 정도 된다.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화가 빅또르 바스네쪼프의 작품인 «용사들(Богатыри, 1898)», «전투 이후(После побоища, 1880)», «알료누쉬까(Аленушка, 1881)»는 뜨레찌야꼽스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의 다른 작품들인 «바바야갸(Баба яга, 1917)», «개구리 황녀(Царевна-лягушка, 1918)», «불멸의 꼬쉐이(Кощей Бессмертный, 1926)» 등 스까스까, 슬라브 신화, 고대러시아를 주제로 하는 그림들은 생가 박물관의 2층에 소장되어 있다.(사진 1)

바스네쪼프의 유명한 작품 이면에 그의 화가 형제에 대한 이야기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치스띄 푸르듸 역 뒤편의 공원길을 따라 걷다보면 바스네초프의 동생인 화가 아폴리나리 바스네쪼프(Аполлинарий Васнецов)의 생가박물관이 나온다. 바스네쪼프라는 이름만을 확인하고 우연히 들어간 박물관에는 형인 빅또르 바스네쪼프의 그림과는 다른 풍의 작품들이 생가 박물관을 가득 채웠다. 아폴리나리의 작품에는 우랄과 시베리아 자연의 서사시적인 풍광을 예술이미지로 구체화시킨 것이 많았으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우랄의 울창한 숲과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의 광활한 자연을 담은 것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사진1. 빅토르 바스네쪼프 생가박물관 2층의 전경 / 그림1. 《오래된 공원의 소음(шум старого парка, 1926)》>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작품이 하나 있는데 《오래된 공원의 소음(шум старого парка)(1926)》이라는 그림이다.(그림1) 전체적으로 어두운 주변 경관과 멀리 보이는 집안의 불빛은 사뭇 대조적으로 나타나며, 뒷모습만 보여주는 등장인물의 상황을 대변하는 듯하다. 얼굴을 괴고 있는 백발의 노인은 얼굴표정을 보여주고 있지 않지만, 한적한 공원의 고요함과 대조적으로 절망감의 소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노인은 다름 아닌 빅또르 바스네쪼프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는 화가 자신이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같은 해 형을 잃은 슬픔의 괴로움을 ‘소음’으로 표현하였다. 다른 관점에서 이 작품은 70세에 이른 화가의 삶의 황혼기를 표현한 자전적 고백과 지나간 기억에 대한 향수를 동시에 나타낸다. 형의 유명세에 가려져 있었지만, 부모 없이 13살 때부터 그의 형은 그의 모든 것이었다. 뻬쩨르부르그로 이사하여 살면서, 그는 지질학에 미련을 버리고 형처럼 화가로 살아가기로 한다.


2. 화가 아폴리나리 바스네쪼프

1854년 8월에 지금의 끼로프 지역에서 출생한 그는 형과 함께 지낸 1872-75년의 뻬쩨르부르그에서 레삔, 뽈레노프, 막시모프 등의 거장과 함께 작품 활동을 한다. 1882년 아브람쩨보에서 당대 유명화가들과 교류하면서 마몬또프가 설립한 ‘모스크바 사설 러시아 오페라(Московская частная русская опера)’ 극장에서 무대배경을 그렸다. 빠벨 뜨레찌야꼬프가 구입 한 《회색 하루(Серый день, 1883)》(그림 2-1)라는 작품을 통해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된다. 작품의 풍경은 중앙을 가로지르는 길 하나로 양쪽으로 나뉘어져 묘사되고, 비스듬히 서 있는 나무 사이 멀리에 숲으로 향하는 고독한 사람이 걸어간다. 녹색의 공간과 회색 톤의 흐린 하늘은 멀리 지평선으로 나뉘어 구조적 안정감을 준다. 무엇보다 중앙의 나무 두 그루는 우울한회색의 날씨와 대조적으로 서로를 의지하듯 가운데로 기울어져 있다.

베누아는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아폴리나리를 기억한다.
 

“나는 그의 순진함이 맘에 들었고, 모스크바의 과거를 ‘재현’하려는 설득력 있는 기획과 시베리아 자연의 웅장함과 광활함을 보여주려는 그의 시도 역시 좋아한다. 그를 더 잘 알게 된 나는 그의 영혼의 절대적 순수함과 그의 영적 본성과 그의 예술의 정체성을 믿는다. 그의 ‘시베리아 계곡’은 또한 매력적이어서 진정한 러시아의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베누아의 언급대로 그의 1891년 작품 《우랄에서 타이가. 푸른 산(Тайга на Урале. Синяя гора, 1891)》과 《북쪽 지역. 시베리아의 강(Северный край. Сибирская река, 1899)》에는 러시아의 자연이 캔버스에 담겨있다.


<그림2-1. 《회색하루 (Серый день (Серенький денек), 1883)/
그림2-2. 《모스크바 크렘린. 대성당 (Московский Кремль. Соборы, 1894)/
그림2-3. 《이반 뇌제 시대 모스크바. 붉은 광장(Москва при Иване Грозном. Красная площадь, 1902)>


3. ‘옛 모스크바(Старая Москва)’를 그림으로 복원하다.

아폴리나리의 러시아에 대한 관심은 시원의 자연과 풍광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서구화 이전의 러시아적 전통, 역사, 건축, 고고학에 관심이 있었으며, 모스크바의 과거를 부활하여 재현하는 문제에 천착한다. 역사적인 과거를 현대적인 형태로 보여주는 능력이 그가 남긴 ‘옛 모스크바’ 연작을 통해 서사적으로 남아있다. 바실리 수리꼬프, 빅또르 바스네쪼프에 의해 시작된 역사화는 랴부시킨, 네스쩨로프, 뢰리흐 등의 당대 화가들로 이어지며 옛 러시아의 일상생활과 민속 문화의 다양성과 세밀함을 보여준 바 있다. 1894년 《모스크바 크렘린. 대성당》(그림 2-2)은 ‘옛 모스크바’ 연작의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화가는 모스크바의 옛 이미지를 복원하는 작업을 하면서 정확한 재현을 위해 사료와 문헌 정보를 탐색한다. 16세기와 17세기의 외국인 여행자에 의해 만들어진 모스크바에 대한 설명에 익숙해지기 위해 역사적, 문학적 출처를 찾아냈으며, 모스크바를 탐구하기 위해 연대기, 미니어처 및 판화도 연구하였다. 또한 열기구를 타고 모스크바 상공에서 도시의 조감도를 스케치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그는 당대 역사학회 학자인 이반 자베린(Иван Забелин)과 바실리 끌류쳅스키(Василий Ключевский)와 함께 작업을 하였으며, 1906년에는 모스크바 고고학 협회 정회원으로 선출된다. 이와 같은 그의 활동은 역사를 주제로 한 상상화가 아니라, 고대와 중세 모스크바의 역사를 실증적으로 재현한다는 점에서 회화작품 이상의 의미로 평가받는다.

그의 연작에는 모스크바가 수도로서 개발된 단계가 그림을 통해 복원되어 있다. 그의 연작은 1156년 유리 돌고루키에의해 크렘린의 첫 번째 성벽으로 지어지는 요새의 묘사에서부터 《이반 뇌제 시대 모스크바. 붉은 광장》(그림2-3), 《이반 깔리따 시대 모스크바 크렘린》(그림3-2), 그리고 《이반 3세 시대 모스크바 크렘린》(그림3-3)으로 이어지는 크렘린 성벽과 주변 경관을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세밀하게 나타낸다. 《이반 뇌제 시대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는 당시 지어지고 있던 바실리사원에 대한 건축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나무 바닥으로 난 길이 바실리사원까지 뻗어 있고, 크렘린 주변에는 나무 가옥들이 즐비하게 있음을 통해 고증된 붉은 광장을 볼 수 있다. 1925년 《17세기 후반의 붉은 광장(Красная площадь во второй половине XVII века, 1925)》을 통해 다시 한번 붉은 광장이 묘사되는데 여기에는 다 지어진 바실리사원과 크렘린의 변화된 성벽이 그려져 있다. 마치 사진 두 장을 보는 것처럼 시간위의 붉은 광장을 비교해 볼 수 있다.

(그림3-2)에서는 이반 1세인 깔리따 시대 크렘린의 성벽이 나무로 축조되어 있으며, 당시 지어진 사원의 종탑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성문은 모스크바 강 쪽으로 바로 이어져 있다. 반면 (그림3-3)에서는 16세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반 3세 시대의 크렘린의 성벽과 탑이 붉은 벽돌로 증축되고 크렘린 안쪽의 사원광장을 둘러 싼 사원들이 하나둘 위엄을 보이고 있다. 모스크바 강에는 다리가 놓여지고, 성의 출입은 붉은 광장 쪽으로 이동했음을 볼 수 있다.


<그림3-1. 《파발꾼. 크렘린에서 이른 아침. 17세기 초(Гонцы. Ранним утром в Кремле. Начало XVII века, 1913)》/
그림3-2. 이반 깔리따 시대 모스크바 크렘린(Московский Кремль при Иване Калите,1921)》/
그림3-3. 《이반 3세 시대 모스크바 크렘린(Московский Кремль при Иване III, 1921)》>

화가는 12세기부터 17세기까지 고대 러시아 수도의 역사에 대한 그림을 120여점 이상 남겼다. 그 역사적 풍경에는 모스크바의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변화된 도시 이미지, 특히 크렘린, 붉은 광장 그리고 끼따이고로드 지역의 중세가 담겨져 있다. 중세 모스크바에서 삶의 중심은 크렘린에 집중되었다. 크렘린은 이야기, 동화 등의 모든 무형과 유형의 형태로 모여 있는 오래된 민속 예술의 산물이라 특징지울 수 있다. 또한 그것들은 모두 비교할 수 없는 매듭으로 묶여 중세 모스크바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대표한다.

모스크바와 크렘린의 시대적 변화 이외에도 아폴리나리의 ‘옛 모스크바’ 연작에는 역사적 사건의 단면을 묘사한 작품도 있다. 1913년에 그려진 《파발꾼. 크렘린에서 이른 아침. 17세기 초》에는 특별한 전투 장면이나 사건이 묘사되지는 않는다. 17세기 초에 일어난 어떤 역사적 이야기에 대한 구체적인 것은 없지만, 당시 러시아의 내전과 외국의 침략 등에 의한 시대적 불안함의 상황을 파발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포장된 나무 바닥을 따라 어디론가 달려가는 두 명의 파발꾼은 뒤를 돌아보며 말을 재촉한다. 시대적 극적인 분위기는 주변에 늘어선 가옥의 양식으로도 설득력 있게 표현된다. 이와 유사한 작품으로는 러시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끼따이-고로드의 거리. 17세기 초(Улица в Китай-городе. Начало XVII века, 1900)》와 《칸 토흐타믜쉬에 대한 모스크바 방어. 14세기(Оборона Москвы от хана Тохтамыша. XIV век, 1918)》 등이 있다.

아폴리나리의 ‘옛 모스크바’ 연작은 모스크바를 대표하는 크렘린 요새의 전성기를 보여주며, 그 독특한 변화과정에 주목한다. 그에 의해 모스크바는 다면의 시간성을 획득하게 되고, 고전문헌을 통한 지루함은 새로운 시각적 색을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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