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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콘스탄틴 멜리니꼬프(К. Мельников)의 차고지와 유대인 박물관(еврейские музей)
분류지역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1-05-17
조회수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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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뜨 거리의 오꾸자바(Булат Окуджава) 동상을 따라 뒤쪽의 주택가 골목으로 향하면 멜리니꼬프의 생가(Дом Мельникова,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музей Константина и Виктора Мельниковых)가 있다.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원통형의 다이아몬드 창이 있는 건물이 눈에 띤다.(사진1-2) 이 건물은 1927-29년에 구축주의 건축가 멜리니꼬프가 지은 그의 아뜰리에이며 말년을 보낸 곳이다. 레닌묘의 유리관(саркофаг)의 설계자이기도 한 그는 그 작업의 보상으로 아르바트의 이 땅을 받았다. 당시는 부분적 사적소유가 가능한 네프(НЭП)시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원통형 건물 두 개가 중첩된 구조는 위에서 보면 숫자 8의 모양이다. 외면에서 보면 콘크리트로 지어진 것 같지만, 육각형으로 된 창문의 간격과 구조를 모두 계산하여 수를 놓듯 2-3중의 붉은 벽돌로 쌓아 작업했다.(사진1-1) 57개의 폐쇄된 육각형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자연 채광은 내부를 흥미롭게 비춘다.(사진1-3) 창문은 전체적으로 규칙적인 패턴으로 되어 있지 않으며, 아방가르드 특유의 역동성이 반영되어 있다. 이곳으로 들어가기 위한 출입문은 앞쪽에 한곳만 있으며, 출입문을 포함한 전면부는 2층까지 창문으로 설계되어 있다.  


<건축당시 모습(사진1-1) / 멜리니꼬프 생가(사진1-2) / 3층 전면부 아뜰리에 (사진1-3)>
 

콘스탄틴 멜리니꼬프(К. Мельников)는 브후테마스(Высшие художественно-технические мастерски, 고등예술-기술 학교(공방))에서 졸똡스키( И. В. Жолтовский)의 제자로, 슈세프(А. В. Щусев)의 인정을 받으며 신고전주의 양식에 영향을 받았지만, 23년에는 라돕스키(Н. Ладовский), ‘새로운 건축가 협회(АСНОВА, Ассоциация новых архитекторов)’와 활동하며 합리주의 건축 양식을 통해 독창적 건축 디자인을 만들어갔다.

그가 활동한 시기는 건축 경연대회를 통해 공공건축의 다양성을 실험하는 때였다. 멜리니꼬프의 아방가르드 시기 건축물을 대표적인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로 대표적인 건축물이 25년 파리국제 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소비에트 파빌리온이다. 두 번째 특징적인 건축물은 노동자를 위한 모임, 교육, 회합 등의 목적의 다기능 클럽으로 건설된 노동자 클럽이다. 멜리니꼬프는 당시 모스크바의 지역 클럽 30개의 계획안 중 10개의 프로젝트에서 수상을 했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유명한 건물로는 극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루사꼬프 노동자 클럽(Клуб Русакова Союза Коммунальников)이 있다.

파빌리온이나 노동자클럽은 앞서 언급한 멜리니꼬프의 생가처럼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구축주의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보존가치를 높이 평가받는다. 그에 비해 세 번째로 언급하는 차고지 설계는 철거의 위기에서 살아남은 건축물이다. 특히 멜리니꼬프가 설계한 3개의 차고지 중에 슈호프(Владимир Шухов)와 함께 한 바흐메찌예프 차고지(Бахметьевский гараж)(사진 2-1)는 건축적 외관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내부를 현대적 박물관으로 활용하여 복합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건물의 내부와 동쪽 외관의 정문은 원래 형태로 보존되었고, 내부의 박물관은 첨단 교육환경을 제공하여 현대적인 감각의 인테리어로 바꾸었다.

차고지의 시작은 1924다차 라인(Дачная линия)’을 정기노선으로 버스를 운행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시내버스 운행에 대한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같은 해 영국의 «레이란드(Лейланд, Leyland Bus)»버스를 처음으로 구입하여 운행 대수를 늘려갔다. 3년 동안 16개의 노선버스와 차량 130대가 증설되었고, 이에 따라 모스크바 교통시스템(ГУП «Мосгортранс»)은 버스 차고지의 필요성을 고려하였다. 첫 번째 버스차고지는 쁘리요믜이쉐프(Михаил Емельянович Приёмышев)에 의해 지어졌는데, 여러 대의 버스차량의 주차가 불편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멜리니꼬프는 파리에서 지은 파빌리온의 인기로 차고지 설계의 제안을 받게 된다. 그는 파리 센강에서의 버스 배차 아이디어를 변형하여 차고지 설계의 아이디어로 사용하였다. 그가 설계한 차고지는 버스의 운행일정을 고려하여 주차할 때 후진하지 않도록 비스듬히 주차하여 편리하다는 장점을 가진다.

1990년 멜리니꼬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노후화된 차고지는 건축 기념물로 등재되었으며, 이에 따라 버스회사(사진 2-2)2001년 까지 이전을 하였다. 모스크바 시청은 바로 옆의 공원부지와 함께 이곳에 공립학교 설립을 위한 재건축을 추진하였다. 그 재개발의 일환으로 차고지를 모스크바 유대인 커뮤니티에 기증하였다. 2007~2008년에 복원되어 20089월에 개관하였으며, 현재 유대 박물관과 톨러런스(관용) 센터(Еврейский музей и центр толерантности, 홈페이지: https://www.jewish-museum.ru/)’로 현대화되어 운영 중에 있다.


<1929년 차고지 내부(사진2-1) / 재건축 이전 버스 차고지(사진2-2) / 현재의 유대박물관(사진2-3)>


개관까지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 2001년 재개발을 담당한 건축가는 채광창의 지붕을 완전히 제거, 12개의 지붕 트러스를 분해하여 건물의 8곳을 파괴하였다. 보존을 위해 추가 분해 작업은 중단되었으며, 원래 건물의 복원을 위한 작업이 다시 시작되었다. 재건축의 조건이었던 공립학교는 옆 부지에 완공되었고, 유대인 공동체는 건물외관을 보존하여 다른 문화기관을 만들 기회를 얻게 된다.

버스 차고지의 재건축은 여러 번 설계가 변경되다가 2007년 하반기에 작업이 가속화되었다. 차고지의 입구 정면에 1920년대 스타일의 글자가 새겨졌으며 2008년 상반기에 복원이 완료 되었다.(사진 2-3) 재건축이 진행되는 동안 박물관에 전시될 유대인 자료와 사료의 수집은 10년 이상 진행되었고, 접근할 수 없었던 소련 기록보관소가 이 시기 열리면서 2000년 초보다 가치 있는 사료가 수집되었다.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유대인 박물관이자 유럽에서 가장 큰 실내 전시 공간으로 2012 1111일에 개관하였다. 유대인 박물관 및 관용 센터는 "edutainment"의 형식으로 기획되어 러시아 유대인의 역사적 사실을 배울 수 있게 구조화되었다. 실재로 박물관에 들어서면 차고지라는 생각을 잊게끔 오픈된 천장 인테리어와 현대적인 레이아웃의 디자인이 눈에 띤다.(사진3-1) 넓은 공간은 관람자의 동선을 고려하여 중앙에 <시작>이라는 이름의 4D 영화상영관(Кинотеатр «Начало»)이 자리 잡고 있다. 영화관 옆으로 건물을 둘러서 배치된 상설 전시는 AD 70년부터 이어온 유대인 방랑의 삶을 보여주는 이주: 유대인 디아스포라-방랑의 삶(Миграции: еврейская диаспора — жизнь в рассеянии)’에서 시작하여 러시아 땅에서 살았던 유대인의 삶의 풍속이 전시되어 있다.

상설전시에는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러시아 유대인의 삶에 대한 문서, 사진,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일상생활의 가옥과 문화를 디지털 게시판에 퀴즈를 통해 체험할 수 있도록 배치해 두었다. 일반적인 박물관의 유물 전시가 아닌 대화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기술이 박물관의 기획의 주요한 주제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뒤쪽으로 진행할수록, 20세기의 시간과 맞닿아 있게끔 한다. 건물의 뒷부분의 ‘2차 세계 대전과 홀로코스트(Великая 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 и Холокост)’를 주제로 하는 전시에 다다르면, T-34 탱크(танк Т-34) U-2 항공기(самолёт У-2)가 전시되어 있고, 대형스크린을 통해 전쟁의 생생함을 느끼도록 당시의 사진과 영상이 흑백화면의 파노라마 영상으로 벽면을 가득 채운다.(사진3-2) 


<박물관 입구(사진3-1) / ‘2차 세계 대전과 홀로코스트전시(사진3-2) / 박물관 내부의 아방가르드 센터의 도서들(사진3-3)>


이와 같은 주제 이외에도
유대교는 살아있는 종교이다(Иудаизм — живая религия)’, ‘쉬쩨뜰: 유대인의 마을(Штетл: Еврейское местечко)’, ‘러시아 유대인의 뿌리(Корни российского еврейства)’의 전시가 시간의 흐름을 따라 관람자들을 마지막 공간인 페리스트로이카에서 현재까지(От перестройки до наших дней)’로 안내한다.

넓은 박물관 공간에는 도서관도 운영하고 있어 유대인에 대한 고서가 약 500여권 소장되어 있으며, 유대의 역사와는 다른 주제인 관용센터아방가르드 센터와 함께 운영되고 있다. 컨퍼런스 공간으로 사용되는 관용센터는 유대인의 삶을 반영하여 센터의 이름을 명명한듯하며, 건물의 원래 용도인 아방가르드 예술에 대한 주제 역시 사장하지 않고 2층에 독자적인 예술 공간을 존속시켰다.

1920년대-30년대 아방가르드 건축물에 대한 답사를 계획했던 필자로서는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된 셈이다. 90년대 모스크바의 미술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는 깐깐한 감시자들이 방마다 배치되어 조심스러웠던 반면, 최근의 박물관은 정보 친화적, 체험적 형식이 많아져 기술의 융합을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최근에 개관한 박물관인 굴락 박물관과 자랴지예 아래쪽에 100루블만 내면 들어가는 작은 역사체험 박물관도 이와 같이 관람자의 접근성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관람은 비교적 가볍고 흥미롭게 체험할 수 있지만, 남아있는 역사에 대한 현재 우리의 책임과 실천의 인식을 확실하게 남긴다는 점에서 외적이며 내적인 박물관의 진화는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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