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인문한국) 사업단 홈페이지

HK(인문한국) 사업단

웹진 문화로(文化路) 내용 시작

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19세기 러시아 귀족 스포츠 사냥에 대하여
분류기타
국가 러시아
날짜2021-05-17
조회수367
첨부파일



레프 톨스토이(Л.Н.Толстой)의 <전쟁과 평화>(Война и мир)를 읽어보면 사냥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종종 발견 할 수 있다. ‘로스토프와 그녀의 오빠 니콜라이가 숲에서의 사냥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사냥을 돕는 하인들, 이른바 사냥 농노의 방에서 발라라이카 선율이 울려 퍼지는 장면도 들어있다. 톨스토이 작품뿐만 아니라 19세기 러시아에서 선보인 여러 사실주의 소설에서 사냥에 대한 일화를 자주 접할 수 있는데, 알렉산드르 푸시킨, 이반 투르게네프 작품에서도 등장한다.  

<이반투르게네프의 작품 『사냥꾼의 수기』>


귀족과 농노의 대화를 통해서 중부 러시아 지주들의 영지생활을 묘사하고 있는 이반 투르게네프(И.С.Тургенев)의 <사냥꾼의 일기>(Записки охотника)에서는 어울릴 수 없는 두 사회계층(지주와 농노)이 ‘농민들의 오두막과 헛간에서 나란히 누워 잠을 자며 사회적 신분을 잠시 잊게 하는 친구’가 되어있다. 올랜드 파이지스는 ‘사냥 개 한 마리와 농노 한 명을 동반하고 도보로 하는 소박한 형태의 사냥’을 이러한 친밀한 관계의 성립 원인으로 <나탸샤 댄스>에서에서 소개하고 있다. 투르게네프의 작품과는 달리, 푸시킨(А.С.Пушкин)의 장편소설 <두브롭스끼>(Дубровский)에서는 대규모로 진행되는 ‘공식적 사냥’을 연상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작가는 대표적인 사냥개 그레이하운드를 포함하여 500마리 이상의 사냥개와 말들을 언급하면서 사냥개를 구입하고 유지하는 데 적지 않는 비용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귀족의 특권-사냥

19세기 대문호들이 사냥을 보는 시각은 달랐지만, 명백한 것은 사냥이 작가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귀족들의 관심의 중심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차르도 즐겼다는 사냥은 러시아에서 여가 생활 형식을 갖춘 귀족계급의 스포츠였다. 제정러시아 귀족들은 여성들에 대한 끈질긴 구애의 성공이나 표트르 대제 이후 도입된 관등에서의 승진보다 사냥의 성공적인 전리품을 더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보통 인간의 욕망은 출세, 부, 이성에 대한 소유에 집중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더욱이 제정러시아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귀족이라면 욕망의 화신일 가능성이 농후한데, 한갓 스포츠인 사냥의 결과에 더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정리해보면, 도대체 왜 ‘사회적 지배집단인 동시에 문화적 엘리트’인 러시아 귀족들이 그들의 삶에서 사냥을 가치 있는 스포츠로 스스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라는 것이다. 여기서 ‘설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제정러시아 귀족들의 수치심과 명예의 심리적 기제에서 태동되어 목숨’을 담보로 하는 용감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그들만의 특권으로 만들어간 ‘결투’처럼 사냥도 귀족만이 누릴 수 있는 황제 스포츠, 즉 특권으로 스스로 키워왔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결투>


‘명예의 의식을 세심하게 따르면서 존중받을 권리를 부여하면서(유리 로트만이 <러시아 문화에 관한 담론>에 서술한 것처럼)’ 귀족의 전유물이 된 결투처럼, 러시아 귀족들은 사냥도 자신의 계층을 특정하는 삶의 방식으로 규정하였다. 귀족들은 젊은 세대들을 사냥에 참여시켜 이 스포츠를 통해서 기강과 기사도를 습득하고, 다른 사회적 계층과 철저히 구별되는 귀족다운 성향을 형성하게 하였다. 또한 사냥의 실제를 통해서 귀족들은 모든 사회적 계층과 차이를 넘어, 감히 어떤 계급도 넘볼 수 없는 초격차를 만들기 위해 집단적으로 사냥을 행했다. 그들은 사냥에서 전쟁에서 행동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하나로 뭉쳐, 마치 용접된 듯한 집단으로 일사불란하게 행동했다. 그리고 사냥이 끝난 후, 회포를 푸는 시간에 귀족들은 함께 포도주를 마시면서 사냥의 세부 사항을 논의하고 ‘분석’까지 실시하면서 결속력을 다졌다. 그래서 귀족들이 ‘결투’처럼 그들의 문화에서 승계되어야 할 특권으로 사냥을 생각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귀족들은 이러한 사냥이라는 문화와 그들의 사냥터를 농노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지키고 싶어 했던 것은 어쩌면 무너져 내려가는 제정러시아의 신분제도를 수호하려는 의지의 또 다른 몸짓이었다.


사냥의 스트레스 해소의 기능

귀족들은 사냥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 할 수 있는 점을 발견해서 더욱 더 이 스포츠를 즐겼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제정러시아 귀족들도 스트레스기 있었을까? 축복 받은 것 같은 그들의 삶속에도 당연히 흠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출세를 위해 관등 속에 들어간 귀족들은 그들대로 과중한 업무에서 오는 긴장과 압박감이 있었을 것이고, <예브게니오네긴>의 오네긴 같은 잉여인간형 귀족들은 그들대로 생활 속에서 권태와 무의미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스트레스를 벗어날 출구로 사냥만한 스포츠는 없었다. 적극적으로 사냥에 임했던 귀족들에게는 광활한 자연에서 목표물을 뒤쫓는 추격의 흥분은 영혼을 즐겁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해방된 영혼은 공허한 귀족의 마음을 어느 정도 따뜻하게 데워주지 않았겠는가! 소심한 귀족들에게는 사냥은 번잡한 세상일을 잊어버리는 여가적인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소확행(小確幸)’으로서, 기분전환용 소박한 스포츠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어느덧 사냥은 귀족의 일상의 의식들에 들어와 있었는데, 제정 러시아 시기의 귀족들의 일상적인 의식은 ‘아침기도, 아침식사, 점심과 저녁, 옷을 입고 벗는 것, 공식적 업무와 사냥, 세면과 잠자리 등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귀족의 평범한 생활에 들어온 사냥에도 당연히 사냥의복이 존재했는데, 보통 사냥꾼들은 넓은 바지와 높은 부츠 및 카프탄을 입어야 했다. 또한 그들은 머리에 이마와 눈을 가려주는 챙이 있는 모자를 착용해야 했다.

러시아에서 사냥하는 최적의 시기는 가을이었는데, 보통 9월부터 11월 중순까지가 사냥의 황금시간이었다. 사냥시기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실은 러시아의 춥고 긴 겨울에도 사냥이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겨울에는 나름 얼음위에서 하는 사냥이 인기였는데, 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시작되는 막바지 겨울에 주로 행해졌다. 겨울철 사냥감은 산토끼였다. 겨울철에 하는 사냥에서 극도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말 걸음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얼음 층을 확인하는 것이다. 만약에 말의 하중을 견딜 수 없는 얼음 층이 균열이 되면, 말의 다리가 부러지는 치명적인 부상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러시아 귀족의 사냥>


그런데 사냥이 귀족문화에서 특권의식을 주입시키고 긴장을 해소하는 긍정적인 작용만 한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갈수록 사냥이 주는 부정적인 요소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장이 포함된 가족들 간의 오붓한 시간을 즐기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과 사냥 중에 농민의 작물을 짓밟아 훼손하는 것은 정말 사소한 부작용이었다. 귀족이 실생활서 체험한 사냥의 심각한 부작용은 사냥에 대한 비용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대다수 귀족들은 사냥이라는 스포츠 활동의 유지를 위해 수십 혹은 수백 마리의 개는 말할 것도 없고 사냥을 위한 많은 말, 그리고 사냥을 시중드는 수행원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영세한 귀족들이 ‘사냥-스포츠’ 여가를 즐기다가 거덜 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이러한 부작용에도 1812년 이후 귀족들이 ‘시골 영지에서의 매력적인 삶’을 재발견한 이후, 19세기 초기는 사냥의 전성기였다. 그래서 공직 생활을 접고 지방으로 은퇴해 ‘사냥-스포츠’ 생활을 즐기는 귀족들도 많이 나왔다. ‘한때 공직에 있었지, 하지만 그만두었단다. 나는 공직에는 맞지 않아 - 공직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구나. 너에게는 어울릴 거야. 나는 머리가 좋지 않아서. 사냥이라면 몰라도 ...’라고 언급하는 레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의 로스토프가 ‘삼촌’은 그러한 ‘사냥-스포츠’를 즐기는 귀족의 전형이었다.
 

최고의 스포츠, 개를 동반한 사냥

이미 알려져 있듯이 인류가 최초로 사육하기 시작한 동물은 개다. 그래서 개를 동반한 사냥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구한 전통으로 남아있는데, 러시아에서도 개를 이용한 사냥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에서 개를 이용한 사냥은 모스크바 공국의 카잔 점령 후 시작되었다. 러시아 봉건귀족들이 타타르 왕자의 사냥을 모방 한 것이었다.

러시아 귀족의 스포츠로 인식된 19세기에 개를 동반한 사냥은 대규모로 진행되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제정 러시아 농노제라는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제도가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 대규모의 사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는데, 보통 ‘수백 명의 사냥꾼과 사냥 농노, 시종들과 사냥개 무리들이 귀족의 영지에서 야영하며 때로 몇 주씩 계속해서 군사작전을 펼치듯 전개’되었다. 그래서 사냥을 즐기는 명망가의 귀족들은 사냥개를 포함해서 사냥 농노들과 사냥용으로 훈련된 아랍 말들로 구성된 엘리트 집단을 항상 보유하고 있었다. 


<페르시노 대공 사냥>


지금까지 러시아 문화사에 알려진 가장 대규모로 진행된 사냥은 <페르시노 대공 사냥>(Першинская великокняжеская охота)이다. 1887년부터 1914년까지 툴라주 알렉신스키 지역의 페르시노 마을에서 운영된 <페르시노 대공 사냥>을 위해 영지내의 동물사육장에 사냥개 250 마리, 말 87 마리는 항상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이곳을 관리하면서 ‘사냥 도움이’ 역할을 하는 사냥 농노만 78명이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 이 사냥의 유지 및 관리 비용은 약 10 만 루블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역사적 기록을 보면 <페르시노 대공 사냥>의 전성기 시절에는 100 마리의 사냥개, 130 마리의 러시아 개, 15마리의 영국산 그레이하운드 등 최대 365 마리의 개가 사냥에 동원되었다. 또 다른 대규모 사냥에 대한 기록을 보면, 랴잔 귀족 의전관인 레프 이즈마일로프는 사냥에 3천 명의 사냥꾼과 2천 마리의 사냥개를 동원했다. 물론 대규모의 사냥과는 대조되는 <사냥꾼의 수기> 속의 소박한 사냥도 존재했다. 소박한 사냥을 할 때 ‘귀족들은 궁정 문명을 뒤로 한 채 농민의 세계로 들어갔다. 지주와 농노는 이런 유형의 스포츠로 유대감을 가졌다. 그들은 같은 옷을 입고 길을 따라 멈춰 설 때는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음료수를 마셨다. 이러한 도보 사냥엔 스포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남성적 유대감보다 훨씬 강한 것이 있었는데, 대지주에게 도보 사냥은 전원 오디세이로 미지의 농민 대지와 만나는 것이었다.’

냄새로 사냥감을 추적하는 사냥개는 여우나 토끼 같은 작은 동물의 사냥에 주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러시아 귀족들의 사냥에서 사냥개는 더욱 선호되었는데, 러시아 귀족들의 사냥의 대상이 주로 여우, 토끼였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귀족들이 사냥할 때 선호하는 견종은 그레이하운드였다. 온순하고 친근해 반려견으로도 사랑받는 그레이하운드는 이집트 고분에서 유사한 종이 발견되었을 정도로 오래된 견종이다. 영국이 원산지인 이 사냥개를 러시아 귀족들이 선호하는 이유는 이 견종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개이기 때문이다. 


<사냥개 그레이하운드>


사냥에서 가장 긴장감이 높은 순간은 사냥 도움이 농노가 짐승의 흔적을 발견하고 목표물을 추적하기 위하여 사냥개를 호출할 때이다. 사냥개들은 막힌 공간인 숲이나 늪 지역으로부터 사냥감들을 밖으로 몰아낸다. 한마디로 먹잇감이 스스로 사냥꾼의 시야가 방해되지 않는 탁 트인 공간으로 피신하도록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곳에는 이미 베테랑 사냥꾼 귀족이 말위에서 여유 있게 기다리고 있는데, 사냥감이 시야에 들어오면 사냥개 무리에서 특별히 그레이하운드를 푼다. 개를 이용한 사냥은 개가 먹이를 잡거나 운이 좋은 사냥감이 아주 드문 일이지만 탈출했다는 것이 분명해질 때까지 계속된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개를 이용한 사냥도 전환의 시기가 도래했는데, 알렉산드르 2세의 농노해방을 기점으로 러시아 전역의 영지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인기를 구가했던 대규모 사냥은 놀랍게도 소수의 지주들 사이에서만 생존 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세기 말을 지나 20세기 초에 접어들면서 사냥개를 이용한 사냥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은 듯 했지만,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을 때의 수준은 아니었다.

 

목록

웹진 문화로(文化路) 내용 끝

TOP

저작권 표시 및 연락처

06974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로 84 법학관(303관) 1420호 / E-mail: fsicau@cau.ac.kr / TEL: 02-820-6355 / FAX: 02-822-0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