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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파국이다!
분류회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1-05-03
조회수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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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연말부터 2017년 겨울까지 대한민국 여심을 녹인 드라마 <도깨비>는 탄탄한 구성과 스토리만큼이나 화려한 라인업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드라마 메인 주인공 못지않게 서브 주인공들 역시 큰 인기를 누리면서 이슈를 몰고 온 바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핏빛이 서리다 못해 아예 흑빛에 가까운 입술로 저주를 퍼붓던 사나이가 눈길을 끌었는데, 바로 시도 때도 없이 “보아라, 결국 파국이다~~!!”를 외쳐대며 간신배 박중헌 역할을 담당했던 김병철 배우가 그 주인공이다. 최근에 종영된 드라마 <시지프스>에서도 김병철은 “선택해, 여자야 세상이야?”라는 독한 질문을 조승우에게 던지면서 세상을 장악하려는 절대 악의 수장 시그마로 분하여 악역의 정석을 연기한 바 있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시작된 김병철의 “파국이다!”라는 대사는 그가 출연했던 다양한 드라마들을 오가는 모종의 상호 텍스트성처럼 작용하면서 꽤 높은 빈도수를 자랑하면서 간접 인용된 바 있다. 그가 출연했던 또 다른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비록 김병철 배우 자신이 스스로 “파국이다!”라는 대사를 외치진 않았지만, 김병철은 드라마 속 캐릭터인 차민혁 교수 대신 ‘차파국’으로 불리면서 깨알같은 인기몰이를 했다. 김병철이 가족에게 버림받고 그가 애정하는 소장품인 피라미드가 아들 손에 의해 박살나는 장면이 나오던 순간 시청자 톡방은 “파국이다~~!!”라는 대사로 도배되면서 드라마와 현실, 발신자와 수신자 간의 자유로운 상호텍스트성이 한바탕 펼쳐진 바 있다.

결혼을 테마로 삼은 회화 작품들의 경우 대부분 미래에 대한 기대와 행복, 그리고 성스러움의 순간을 그려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림을 접하는 순간 드라마 <도깨비> 속 캐릭터로부터 시작된 “보아라, 결국 파국이다~!”라는 대사를 떠올리게 하는 몇몇 작품들이 있는데, 아드리안 볼코프(А. Волков)의 <중단된 약혼식(Прерванное обручение)> 역시 그중 하나에 속한다. 


<중단된 약혼식> (А. Волков 作, 1860)


볼코프의 <중단된 약혼식>을 처음 접한 예술아카데미 위원회의 반응은 싸늘했다. 당시만 해도 여전히 보수적인 성향이 짙었던 예술아카데미에 이러한 세속적인 한편의 막장 드라마와도 같은 그림이 마음에 들 리 만무했다. 하지만 러시아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볼코프의 그림은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예술아카데미의 냉랭한 평가와 무관하게 ‘최고의 표현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으면서 금메달을 수여받게 된다.

볼코프의 작품 속에서 화폭 왼쪽에 쓰러져있는 불쌍한 약혼녀는 부유한 상인 집안의 딸로 추정된다. 쓰러진 약혼녀를 부축하고 있는 중년 여성은 아마도 그녀의 어머니일 것이며, 그녀의 옆에 서서 두 팔을 벌린 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긴 수염의 남성은 아마도 약혼녀의 아버지일 것이다. 19세기 중반 이후 러시아에서 귀족들 간의 결혼식장에는 신랑과 신부의 부모가 참석하지 않고 대신 유모나 신랑신부의 친한 지인들이 들러리로 참석하곤 했다. 하지만 상인들의 경우 양가의 부모가 자유롭게 참석하여 결혼을 축하했다고 한다. 또한 약혼녀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부인의 머리에는 머릿수건이 터번처럼 올라가 있는데, 이 역시 상인 계급에 속하는 여성들에게서 발견되는 전형적인 모습 중 하나였다.

그림 중앙에 위치하여 화면을 분할하고 있는 약혼자는 몰락한 귀족 가문의 청년으로 보이며, 아마도 부유한 상인 집안 딸과 결혼을 통해 나름대로 재기를 꿈꾸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꿈은 약혼식장에 등장한 ‘과거의 여인’으로 인하여 모두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심지어 그녀의 팔에는 과거 두 연인의 사랑의 결실이라 할 수 있는 ‘아기’까지 들려있다. 아기라도 없었으면 모를까, 약혼자는 그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이 상황을 모면하기 힘든 상황이다. 역시 이 결혼을 통해 ‘귀부인’ 대열에 올라서겠다는 또 다른 꿈을 꾸던 약혼녀는 아예 쇼크로 쓰러진 상태이다.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 청년의 미래를 담보해 줄 상인 집안의 딸, 그리고 한때 사랑 그 자체만으로도 밥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던 시절을 보냈던 과거의 여인. 이 두 여인을 놓고 그사이에 서 있는 약혼자의 모습은 마치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를 되뇌이며 번뇌하던 햄릿의 형상을 ‘돈이냐 사랑이냐 이것이 문제로다!’라는 세속적 차원으로 끌어내리면서 패러디한 것이 아닐까 느껴질 정도이다.  


<중단된 약혼식 스케치 버전> (А. Волков 作, 1860)


<중단된 약혼식>의 작품 스케치를 들여다보면, 볼코프가 당초 좀 더 수위가 높은 형태로 파국의 테마를 그려내려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분홍색 드레스를 걸친 약혼녀가 묘사된 원작과 달리, 작품 스케치에는 흰색 드레스를 입은 약혼녀가 묘사되어 있다. 드레스의 색상으로 미루어 볼 때, 작품 스케치에 묘사된 ‘그녀’는 약혼녀가 아니라 신부이다. 아마도 볼코프는 처음부터 약혼식이 아닌 결혼식의 파국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원작을 작업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분위기를 고려하여 나름 테마의 방향을 살짝 수정한 것으로 보여진다.

볼코프의 <중단된 약혼식> 이후, 또 다른 풍속화가 바실리 푸키레프는 파국의 강도를 한 단계 더 높인 그림을 선보인 바 있다. <중단된 결혼식(Прерванное венчание)>가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의 부제로 사용된 <중혼자(Двое женец)>라는 단어는 그림으로 표현된 테마의 중압감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세속적으로 표현하자면 볼코프와 푸키레프의 작품 모두 소위 막장 드라마로 일컬어지는 <사랑과 전쟁>의 한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약혼’과 ‘결혼’ 모두 그 의미와 중요성이 남다르지만, 그래도 ‘결혼’이 최종 관문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푸키레프의 작품이 좀 더 파국의 강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중단된 결혼식> (В. Пукирев 作, 1877)


푸키레프의 <중단된 결혼식> 속에 묘사된 예비 신랑은 얼핏 상당히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속죄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지 모르게 ‘이 순간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마음으로 그저 두 눈을 감은 채 현실을 외면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비춰진다. 아마도 이런 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닌 듯, 상당히 담담해 보이는 그의 표정은 가지런히 앞으로 모은 두 손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어느 순간 매우 뻔뻔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오히려 볼코프의 <중단된 약혼식>에 등장하는 약혼자는 당면한 현실을 뼈아프게 받아들이면서 괴로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고개를 완전히 떨구고 있다. 땅을 향한 그의 얼굴 속 표정을 완전히 읽어내긴 힘들지만, 푸키레프의 다소 ‘뻔뻔스러워’ 보이는 중혼자의 담담한 표정보다 훨씬 현실적인 절망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푸키레프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중혼자’의 부인, 정확하게는 ‘법적으로’ 인정된 본처는 중혼자만큼이나 공손하고 침착한 형상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녀 역시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어본 것이 아닌 듯, 상당히 침착하고 우아한 태도로 결혼식 하객들과 주례를 맡은 주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오늘이 네놈 제삿날이다!”라는 것을 암시하기라도 하듯이, 본처의 복장은 일상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결혼식 하객의 복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장례식 복장에 가깝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을 두른 본처의 형상은 그녀의 옆에 서 있는 뻔뻔한 남편의 의상과 대조되면서 아이러니를 유발시킨다. 본처는 검은색 복장을 통해 이 결혼식의 파국을 선포하고 있지만, 후안무치한 그녀의 남편은 바로 그 검은색 복장을 통해 결혼식의 시작을 알리려 했다. 결국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혼식을 중단하게 된 남편의 의복은 더 이상 결혼식 예복으로 기능하지 않고, 자신의 무덤 앞에 서서 스스로 애도하는 자의 장례식 복장처럼 다가온다.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고개를 숙인 그의 모습마저도, 장례식에서 누군가를, 혹은 스스로를 애도하는 듯한 형상을 떠올리게 만들며 왠지 모를 쓴웃음을 자아낸다.

주례를 맡은 주교 역시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침착함을 유지하며 중혼자의 ‘정실부인’으로부터 사건의 자초지종을 듣고 있긴 하지만, 그 역시 스캔들의 쇼크로부터 자유롭지만은 않다. 그의 뒤에 서 있는 사제 역시 결혼식 주인공들에게 씌워줘야 할 ‘예식용 왕관’을 손에 든 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왕관이 아직 사제의 손에 들려있다는 것은 어쩌면 다행스러운 표식일 수 있다. 신랑과 신부의 머리에 ‘예식용 왕관’이 아직 씌워지지 않았다는 것은 결혼식이 완전히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치르기 전에 예비 신랑이 ‘중혼자’라는 실체가 밝혀진 것은 신부에게 천만다행이지만, 평생 그 상처와 충격으로부터,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는 힘들 것이다. 뻔뻔한 중혼자로 인하여 신부에게 있어서 일생의 가장 기쁘고 축복받아야 할 날 중 하나가 가장 힘들고 기억하기 싫은 날로 변해버리고 만 것이다.

파렴치한 중혼자 한 명으로 인하여 무려 두 여인의 삶이 완전히 엉망이 된 꼴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자신의 약혼자가 중혼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결혼식 당일 밝혀진 사실에 충격을 받고 그대로 쓰러져버린 어린 신부가 아니라, 몇 번이고 반복되는 후안무치한 새신랑 행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품어주려는 조강지처가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경악할 상황을 접한 결혼식 하객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새신부가 아니라 갑자기 등장한 본처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새신부를 챙기는 이들은 결혼식 신랑 측 들러리를 선 남성 2명과 역시 신부 측 들러리로 보이는 여성 2명, 그리고 성모 이콘 바로 앞에 위치한 신사 한 명 뿐이다. 나머지 하객들은 하나같이 본처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유모로 추정되는 나이든 중년 부인은 주교를 향해 이 상황을 어떻게 좀 수습해 보라는 표정으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당황스럽고도 못마땅한 기색을 한껏 드러내 보이고 있다. 결혼식 장소로 사용된 교회에서 일어난 한바탕 스캔들은 교회의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이콘의 존재마저 무색하게 만든다. 심지어 교회 한쪽 벽면을 장식한 이콘 속 성모마리아와 성인들 역시 그 시선이 최종적으로 머무는 위치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하객들과 더불어 이 스캔들을 목도하고 경악한 또 다른 관객처럼 묘사되어 있다.

파국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우아하고 침착하게 현 상황을 수습하는 조강지처의 모습을 부각한 푸키레프의 작품이 아이까지 안은 채 약혼식장에 등장한 옛 연인을 묘사한 볼코프의 그림보다 좀 더 점잖은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비춰진다. 볼코프의 작품은 좀 더 풍속화에 가깝고 더욱 현실적인 장면이 많이 반영되었지만, 다분히 세속적이다. 푸키레프의 작품은 사건의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차분하고 상당히 정적으로 묘사되어 있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하지만 작품 속에 표현된 테마를 천천히 곱씹어보면, 푸키레프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중혼자’는 ‘상습적 결혼병’을 앓고 있는 자로, 지속적으로 동일한 범죄를 저지르면서 자신의 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끊임없이 새로운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죄질이 볼코프의 작품에 등장하는 약혼자의 그것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과연 이 두 가지 경우 중 어떤 장면이 그 파국의 강도가 더 강하다 할 수 있을까...? 판단은 개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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