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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러시아 문학의 이방인 파질 이스깐제르에 대한 단상 (2)
분류문학
국가 러시아
날짜2021-03-16
조회수431
첨부파일


1개월 전에 파질 이스깐제르의 삶과 그의 문학에 대해서 하나 둘 떠오르는 파편적인 생각들을 나름 정리해서 글을 작성하였다. 파질 이스깐제르에 대한 첫 번째 글이 나온 지 한 달 이라는 비교적 여유 있는 시간적 혜택이 주는 느슨함과 동시에 그 시간적 여유가 보장하는 생산성 지수가 높은 결과를 도출하려는 압박감을 즐기면서 두 번째 글을 작성하고 있다. 첫 번째 글보다는 조금이라도 분석적인 향기를 풍기려고 하는데, 글의 제목처럼 ‘작가에 대한 단상’으로 급 마무리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질 이스깐제르’에 대한 존경과 그의 문학에 대한 애착을 무기삼아 사명의식을 갖고 약간의 비판적인 시각(?)에서 러시아 문학의 이방인을 거듭 소개하려고 한다. 


<파질 이스깐제르>


압하지야, 그리고 러시아어

파질 이스깐제르(Фазиль Абдулович Искандер/1929~2016)에 대하여 이제라도 뭔가를 알고자 하는 소망을 가진 독자가 작가를 대표하는 핵심어 3개를 나에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압하지야, 러시아어, 체겜’을 꼽는다.

지난번에도 언급했듯이, ‘러시아문학의 다양성’에 크게 기여한 비러시아계 출신의 작가들 중에서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뛰어난 언어적 마법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 파질 이스깐제르는 ‘압하지야’ 공화국 출신이다. 문제는 독자들을 매혹시킨 언어가 ‘압하지야어’가 아니라 ‘러시아어’라는 것이다. 파질 이스깐제르의 동시대인들과 그의 연구가들에 따르면 파질 이스깐제르는 압하지야 언어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었다고 한다. 유창하게 구사가능한 모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조국(현재는 미승인국가지만 독립국가임)의 정복자였고 지금도 실효적으로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러시아의 언어’를, 그것도 한 두 작품이 아니라 거의 모든 예술 작품의 창작의 표현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의문점이 강하게 떠오른데, ‘도대체 왜 파질 이스깐제르는 작품들의 창작언어로 러시아어를 사용했을까’라는 것이다.

혹자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작가의 성공을 담보하는 전제조건이고, 작품의 대중성 확보를 위해 당연한 것이 아니겠느냐’라며 이러한 문제제기를 과도한 작가의 흠집 내기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어떤 면에서 타당성 있는 의견이지만, 문제를 좀 더 깊게 파고 들면 작가의 러시아어 사용에 대한 의문제기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다.

파질 이스깐제르의 창작언어와 관련하여 면밀하게 들여다 볼 요소 중의 하나는 압하지야와 러시아의 관계이다. 카프카스에 위치한 압하지야는 조지아로부터 독립하였지만 미승인국가로 남아있는데, 실질적으로는 러시아의 강력한 영향아래에 있다. 일반적으로 압하지야-러시아 사이의 역사적 관계를 말할 때, 카프카스에 위치한 ‘조지아’를 반드시 언급한다. 2008년 러시아와 전쟁까지 한 국가가 ‘조지아’인데, 그 조지아와 독립문제로 분쟁을 겪었던 공화국이 바로 ‘압하지야’이다. 현재 압하지야와 러시아 사이는 비교적 우호적인데, 압하지야-러시아의 좋은 관계가 오래전부터 쌓아온 역사적인 배경이 작용한 것도 있고,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논리가 고스란히 적용되어서 그렇게 된 것일 수 있다. 영토를 접하는 이러한 이웃국가들의 상관관계는 파질 이스깐제르가 작가로서 활동한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면, 변하지 않는 역사적 사실은 러시아는 지배자이고 압하지야는 피지배자라는 정치적-문화적 구도이다. 


<압하지야 공화국 지도>


파질 이스깐제르와 러시아어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작가의 창작언어’에 대한 의문사항은 나뿐만아니라 파질 이스깐제르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적어도 한번은 품었던 것 같다. 이러한 대중들의 의문에 대한 해소차원의 의도를 가지고 그랬던지 아니면 단순한 자신의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한 목적이었던지 동료작가가 언젠가 파질 이스깐제르에게 “파질, 당신은 압하지야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데도 불구하고 작품의 언어는 모국어가 아닌데, 도대체 왜 압하지야 언어로 작품을 창작하지 않습니까?” 라는 질문으로 돌직구를 던진 적이 있었다. 이러한 불편한 질문에 대해서 “정말로 압하지야 언어로 무엇인가를 쓰고 싶지만 편집자가 나의 텍스트를 편집할까 두렵습니다!”라는 대답으로 응수한 파질 이스깐제르! 작가의 대답은 다소 기계적이고 정형화된 모범답안이었다. 창작 수단으로 압하지야 언어사용의 회피를 겸손하게 창작능력의 부재와 연결하면서, 러시아어 사용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 대답이었다. 언뜻 보면, 진솔하면서도 현명한 대답이었는데, 그런데 받아들이는 마음이 영 개운치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갑자기 ‘지구상의 전 인류는 ‘인간’이라고 불리는 단일 국적을 가지고 있고, ‘아나톨리 김’은 바로 그 민족의 작가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아나톨리 김이 사용한 표현 수단이 러시아어였다’라는 자아 정체성의 실존적 문제를 겪은 아나톨리 김에 대한 다소 어색한 평가가 주마등처럼 나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사실 파질 이스깐제르 작품의 창작언어인 ‘러시아어’와 그의 혈통(압하스-페르시아의 혼혈)과의 생뚱맞은 조합은 문학평론가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상기했듯이,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압하지야 언어에 능통했지만 작품 활동을 전적으로 러시아어로 했다’는 것인데, 즉 페르시아-압하지야혈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작언어로 러시아어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러시아와 소련의 영토 지배, 그리고 그 점유기간이 오래 지속되어서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화를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부터 접해서 그 언어를 자연스럽게 선택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파질 이스깐제르의 ‘수사’에서 나타나는 창작언어로 ‘러시아어의 선택’에 대한 해명(?)은 우리를 다소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작가의 ‘안타깝게도 압하지야 언어로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라는 진솔한 고백 속의 단어 ‘안타까움’은 결국 압하지야 민중에게 향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이해 할 수 있다. 당연히 마음속에 품어야 할 생각이고, 어느 정도 압하지야 사람들을 위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또 다른 말, ‘나는 의심할 바 없는 러시아 작가’라는 것은 압하지야 인들을 실망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상충되는 단어들의 언어의 유희성이 드러나면서 ‘일관성 있고 확실하게 나는 러시아 문화를 선택해서 압하지야를 찬양한 작가로, 러시아 문화의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로 평가한 것과 자신을 ‘러시아 문화의 대표자’라고 표현한 것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러시아어로 작품 활동을 할 수는 있지만 모든 작품을 러시아어로 창작 했다는 것에 대하여 압하지야인들은 파질 이스깐제르에게 서운함이 없었을까?


파질 이스깐제르와 압하지야 공간

똑같은 상황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는데, 파질 이스깐제르의 창작수단으로서 러시아어의 선택도 그러하다. 그래서 그의 아름다운 러시아어가 만들어낸 작품의 서사의 공간적인 배경이 거의 대부분 ‘압하지야공화국’이라는 사실을 알고 ‘압하지야 공화국을 찬양한 러시아 작가’라는 말을 들으면, 자화자찬한 파질 이스깐제르의 언어도 그렇게 민망한 수준은 아니다.

파질 이스깐제르의 대표작 <염소 별자리>(Созвездие Козлотура)와 <가장 진실한 나의 삼촌>(Мой дядя самых честных правил), 서사소설 <체겜의 산드로>(Сандро из Чегема)들을 한번 유심히 살펴보면, 주인공들은 항상 압하지야에서 살았던 인물들이다. 그리고 이 압하지야 공간에서 사용되는 그들의 러시아아어는 이국적인 정취로 가득한 카프카스의 자연과 어우러져서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물론 독자들을 꿈길을 거니는 듯 한 황홀한 분위기를 체감하게 하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장은 파질 이스깐제르의 마술적 언어의 유희의 효과이다. 사실 파질 이스깐제르의 작품의 수려한 문장을 찬찬히 음미하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고 할 정도로 러시아어를 잘 사용한다. 또한 단순하고 간결한 문장이 묵직한 철학적 사유를 제공하는 것은 독자들에게 선시하는 또 다른 언어적인 선물이다.


노벨문학상 후보 & 러시아어

‘압하지야 공화국을 상찬한 러시아 언어의 마법사’ 파질 이스깐제르는 현대 문학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가이다. 그의 책은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로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수요가 많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겸비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독자들의 ‘언어향유욕구‘를 충족시켜준 파질 이스깐제르를 두 번의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선정(비록 노벨 문학상 수상은 불발되었지만)한 것도 그의 문학적 헌신에 대한 보답의 차원에서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노벨문학상 후보로 선정된 이유는 문학작품의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압하지야 공화국’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하여 문학지도에 없었던 공간을 새롭게 그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파질 이스깐제르가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소개한 압하지야는 실제로 존재하는 압하지야와는 거리가 먼 형이상학적인 압하지야, 그의 어린 시절 행복의 공간인 압하지야지만....

두 번의 노벨상 후보 선정이라는 영광이외에도, 파질 이스깐제르는 러시아 연방의 최고 권위의 문학상도 여러 번 받았다. 러시아 정부가 작가에게 수여한 문학상 중 대표적 것은 ‘2010년 공로훈장’과 ‘2014년 문학과 예술분야의 러시아 연방 국가상’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2010년 파질 이스깐제르에게 훈장을 직접 달아 주면서 ‘우리 민족 간의 오랜 우정의 전통을 상징하는 예술가’로 평가한 당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연방 대통령의 말이다. ‘민족 간의 우정’은 ‘러시아어와 압하지야 공간의 조합’의 또 다른 표현이다.


<공로훈장 받는 파질 이스깐제르>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파질 이스깐제르의 다수의 문학상의 수상 이유 중의 하나로 ‘이질적인 요소들의 절묘한 결합(러시아어와 압하지야)’의 결과로 보는 시선들도 있다는 것이다. 즉 ‘탁월한 수준의 러시아어를 사용하여 이국적인 압하지야 공간을 아름답게 표현’한 작가의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러시아 정부 입장에서 보면, 러시아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언어적 재능을 소유한 작가, 노벨 문학상 수상에 가장 근접했던 작가가 러시아어로 작품 창작을 했으니, 얼마나 감사하겠는가!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 부어 러시아어로 시그니처 되는 러시아문화를 홍보하는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경제적인 가성비가 높은 예술가였겠는가! 또한 다민족국가 러시아에서 소수민족 출신과 러시아의 화합의 상징으로 파질 이스깐제르를 자리매김할 수도 있었으니 러시아 정부에게는 이 압하지야 출신의 작가는 정말로 ‘복덩어리’였을 것이다.

그런데 압하지야 민족에게 ‘파질 이스깐제르’는 어떤 작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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