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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초기 러시아 피겨스케이팅의 역사적 장소들
분류기타
국가 러시아
날짜2021-03-16
조회수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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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스케이팅 최강국 러시아

피겨스케이팅은 ‘한국 피겨의 아이콘’ 김연아 선수가 각종 세계 대회를 석권한 영향으로 온 국민이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후로 오늘날까지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빙상스포츠 종목이다. 김연아 선수는 올림픽, 4대륙 선수권, 세계선수권, 그랑프리 파이널을 석권하며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 사상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는데, 이로써 그 이전까지 단 한 번도 피겨 스타를 배출해본 적 없는 한국은 느닷없이 ‘피겨 강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국내 피겨계는 김연아의 은퇴 이후 박소연, 김나영, 김예림 등의 유망 선수들을 배출하며 단숨에 얻은 ‘피겨 강국’이라는 이름이 허상이 아님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국내 피겨계가 ‘극소수의 천재’에 기대는 미비한 스포츠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이야기했고, 아직까지 우리나라가 피겨 강국의 대열에 서 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전통적인 피겨 강국은 어디일까? 미국, 캐나다 등 여러 강국들이 존재하지만, 그중 러시아는 동계올림픽 피겨 종목에서 무려 50개의 메달을 획득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1등 국가다. 현재 메달 49개를 차지해 2위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을 능가하는 메달 수만 보더라도, 러시아가 세계 피겨 최강국임은 분명하다. 물론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러시아 피겨스케이팅은 몰락의 길을 걷는 듯 주춤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적이 있었다. 소비에트 시절 확립된 국가 주도의 엘리트 교육시스템이 무너진 한편 국가 경제가 더없이 어려워졌던 까닭이었다. 이 상황을 반영하듯, 러시아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는 데 그쳤고, 2010년 벤쿠버에서 역시 은메달과 동메달 단 두 개만을 획득했다.

그렇게 하락세를 지속할 듯 보였던 러시아 피겨계는 소치올림픽을 계기로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러시아 국가대표 코치로 활약하고 있는 에테리 투트베리제(Э. Тутберидзе)의 등장과 함께 다시금 러시아가 세계 피겨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러시아 선수들이 보여주는 높은 성적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메달을 석권한 알리나 자기토바(А. Загитова),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Е. Медведева)를 비롯해 러시아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피겨스타 3인방 알료나 코스토르나야(А. Косторная), 안나 셰르바코바(А. Щербакова), 알렉산드라 트루소바(А. Трусова) 등도 역시 투트베리제의 제자들이다. 또 가장 최근에는 러시아 은반 위의 요정 카밀라 발리예바(К. Валиева)가 러시아 피겨의 미래를 책임질 최고의 선수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러시아 선수들의 활약과 오늘날 러시아 피겨의 위상은 선수 개인의 희생과 헌신뿐 아니라 탄탄한 선수 육성 시스템을 통해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육성 시스템의 체계화에 성공한 러시아 피겨스케이팅은 어떻게 러시아에 뿌리를 내렸으며, 그 역사를 시작한 상징적 장소는 어떤 곳들이 있을까?


<투트베리제, 2018, 평창(좌) / 2020 피겨스케이팅 러시아컵 우승자 카밀라 발리예바(우)>


네바 강의 아이스링크
 

일반적으로, 러시아 스케이팅 역사의 시작은 표트르 대제의 집권 시기, 유럽에서 이를 경험하고 애호가가 된 그가 네덜란드로부터 스케이트화를 들여오면서 점차 유포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표트르 대제가 네덜란드를 방문하기 약 35년 전인 1663년, 러시아 대사로 파견된 영국 귀족 찰스 하워드 백작(Charles Howard, 1st Earl of Carlisle)은 네바 강변의 풍경을 보고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유럽에 알려진 것과 다르게, 모스크바 사람들은 네덜란드인들과 마찬가지로, 물이 언 얼음판에서 스케이트를 탔다. 그러나 이는 이동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운동과 연습을 위한 것이었으며, 귀족들은 꺼렸으나 평민들은 좋아했다. 이 스케이트화는 나무로 만들어졌고, 바닥에는 길고 좁고 잘 연마되어있는 철제 날이 달려있었으며, 날이 얼음판을 더 잘 가를 수 있도록 전면은 구부러져 있었다.”

이와 같은 하워드 백작의 언급은 초기 러시아 스케이트 역사를 논의함에 있어 매우 유의미한 자료로 간주된다. 그의 말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과거 러시아인들이 신었던 스케이트화의 디자인과 스케이팅 애호가들의 모습 등이다. 우선 그에 의하면, 18세기 러시아에 존재했던 스케이트의 성능과 디자인이 유럽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당시 영국에서 평민들이 널리 신어왔던 스케이트는 러시아의 것에 비해 내구성이 취약했다고 한다. 이는 유럽에서는 그때까지 스케이트화의 날을 제작함에 있어 동물의 뼈를 사용했던 연유였다. 그는 철제 날이 달린 스케이트화가 더욱 빠른 속도로, 보다 멀리 이동할 수 있도록 하며, 이러한 이유로 러시아인들의 스케이팅 능력은 유럽인들을 능가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러시아인들이 스케이트를 건강 증진을 위한 운동용, 체력 단련용으로 타왔다는 하워드의 언급 역시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이를 ‘모스크바인들의 건장한 체격, 올바른 자세, 하체의 유연성 덕분’이라고 강조했는데, 이러한 언급은 러시아 평민들에게 빙상 놀이와 운동이 꽤나 보편화되어 있었음을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에서 아이스 스케이팅을 즐겼던 계층이 주로 평민들이었으며, 귀족들에게는 고상하지 않은 운동으로 간주되었다는 사실 역시 흥미롭다. 그가 본바, 러시아인들이 일찍이 스케이팅을 즐겨왔음에도 당시 유럽인들은 러시아인들이 스케이트에 익숙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며,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는 유럽에서 체류했던 대다수의 러시아인들이 빙상 놀이를 꺼렸던 귀족계층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네바 강에서의 스케이팅Катание на коньках по Неве>. 에멜랸 코르네예프 作, 1812.> 


위의 맥락을 볼 때,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로 스케이팅 종목을 들여왔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그럼에도 아이스 스케이팅 발전에 기여한 바는 매우 크다. 그가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스케이트 날을 부츠에 장착시키는 아이디어를 내놓음으로써 보다 완성된 형태의 스케이트를 탄생시켰다는 점, 지체 높은 신분으로 얼음 놀이를 즐기는 일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었다는 점은 러시아 내 아이스 스케이팅의 확산과 보편화에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표트르 대제가 사망하자 취미활동으로서 아이스 스케이팅을 장려하고자 했던 그의 계획은 흐지부지되는 상황을 맞았다. 그렇게 18세기 동안 빙상 놀이는 러시아 귀족들 사이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했으며, 소수의 귀족이나 평민들만이 이를 즐겼을 뿐이다. 이처럼 평민들에 의해 존속해온 아이스 스케이팅을 러시아 전 계급, 전 지역에 유포하고자 노력한 인물은 페테르부르크 군사교육원의 체조교사로 활동했던 구스타프 마우르 데 파울리(Г.М. Паули)였다. 그는 1838년 <겨울철 놀이와 아이스 스케이팅 예술Зимние забавы и искусство бега на коньках>이라는 책을 출간해 이를 꺼렸던 귀족들을 설득하고자 했다. “겨울철 놀이 중 아이스 스케이팅보다 더 품위 있고 유익한 것은 없다. 이는 건강을 증진시키고, 신체 움직임의 우아함과 힘을 길러주며, 젊은이들에게는 재미를, 성인들에게는 원기를 돋워준다.”라는 책 속의 한 구절을 통해, 우리는 그가 아이스 스케이팅의 긍정적 효과, 즉 운동과 놀이로서 스케이팅의 기능을 강조하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그의 노력으로 페테르부르크 네바 강변에서 스케이팅을 즐기는 사람들의 수가 점차 증가해 갔고, 어린 학생들 역시 애호가의 대열에 합류했다고 하니, 당시 꽁꽁 얼어붙은 네바 강변의 풍경은 오늘날 대규모 아이스링크의 모습을 꼭 빼닮은 광경이었을 것이라 상상된다.


유수포프 정원과 페트로브카 26번지

러시아 피겨스케이팅의 정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은 현대 피겨스케이팅 창시자 잭슨 헤인즈(Jackson Haines)였다. 피겨스케이팅은 선수가 빙상에서 점프, 스핀, 스텝 등 정확한 기술과 예술적 율동을 겨루는 경기다. 1864년 미국 출신 발레리노였던 헤인즈가 스케이트를 신고 발레를 접목한 왈츠를 선보인 것이 그 시초로 알려져 있으며, 그는 스케이팅에 음악과 춤을 결합해 오늘날의 피겨스케이팅 형태를 탄생시켰다. 그는 동년 유럽공연에서 화려하고 유연한 몸짓으로 유럽 예술계와 스포츠계를 휩쓴 이후, 1865년에는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공연을 연달아 이어갔다. 그의 공연장 객석에는 훗날 최초 러시아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된 니콜라이 파닌-콜로멘킨(Н. Панин-Коломенкин)과 그의 스승 알렉세이 레베데프(А. Лебедев), 러시아 스케이팅의 진보를 이끈 뱌체슬라프 스레즈넵스키(В. Срезневскии)̆가 앉아있었다. 스레즈넵스키는 당시 인터뷰에서 “특별한 움직임의 은총이 관객들에게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고 밝힌 바 있으며, 헤인즈를 “현대적 아이스 스케이팅 예술의 창시자”라고 언급한 파닌-콜로멘킨은 “그의 스타일에는 아름다움과 자연의 가벼움, 리듬과 움직임의 음악성에 있어서 다른 선수들과 차별화되는 일종의 독특함이 있다.”고 회상한 바 있다. (첫 방러 당시 헤인즈는 모스크바 공연을 선보인 바 있지만, 오늘날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1872년 2월 동물원 아이스링크에서 펼쳐진 1872년 2월 공연이다. 이에 대해 <러시아 신문Русские ведомости>은 “이곳에서 뉴욕의 유명 스케이터 잭슨 헤인즈”가 여러 차례 공연했으며, 아이스링크의 얼음이 녹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그는 모스크바 대중에게 “전적으로 자유롭고 우아한 스케이팅 예술”을 보여주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잭슨 헤인즈(좌) / 니콜라이 파닌-콜로멘킨(우)>


헤인즈의 공연 이후, 러시아에서 아이스 스케이팅은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고, 스포츠로서 피겨스케이팅이 스피드 스케이팅에 버금갈 만큼 각광받는 종목으로 급부상했다. 덕분에 당시 페테르부르크 사도바야 거리에 위치한 유수포프 정원에 아이스링크가 개장했고, 이곳에는 스케이터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 후에는 페테르부르크 강변 요트클럽이 유수포프 정원을 임대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운동 삼아 피겨스케이팅을 즐겨왔던 사람들은 곧 요트클럽에 모여 그룹을 형성했고, 스피드 스케이터, 피겨 스케이터, 하키 선수들, 무용수들, 심지어 겨울을 즐기려는 어린이들과 도시 주민들까지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한편 모스크바에서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아이스링크는 당시 ‘프랑스식’ 시설로 불렸던 곳이다. 페트로브카 거리 26번지에 위치했던 이곳은 모스크바 최초 스포츠 조직인 모스크바 강변 요트클럽 회원들이 피겨스케이팅을 연습한 장소이자, 1889년 러시아 스피드 스케이팅 역사상 최초의 공식 대회가 개최된 곳이기도 했다. 1867년 설립된 모스크바 요트클럽은, 역사적으로 황실의 소유였던 페트로브카 26번지를 상인 라자릭(Г.П. Лазарик)이 매입했던 1876년부터 아이스링크용으로 내부의 연못을 임대해 왔다. 그리고 1889년 2월 19일, 이 경기장에서 러시아 최초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권대회가 열린 바 있으며, 1891년 2월 3일 최초의 피겨스케이팅 대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 ‘스포츠 종목으로서’ 피겨스케이팅이 공식화된 것은 이 두 아이스링크가 개장한지 30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스레즈넵스키가 헤인즈 공연 직후부터 약 30년간 이끌어온 ‘페트르부르크 스케이트 애호가 협회(СПб ОЛБК)’를 기반으로 1887년에 이르러서야 공식 스포츠로 확립되었다.


<유수포프 정원 아이스링크(좌) / 모스크바 페트로브카 26번지 아이스링크(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1860년대 중반 잭슨 헤인즈가 발레에 기반을 둔 예술적 동작을 고안하면서 현대 피겨스케이팅의 기반이 다져졌다. 그 후 페테르부르크의 유수포프 정원과 모스크바의 페트로브카 26번지에는 두 도시를 대표하는 아이스링크 시설이 개장되었고, 그때부터 러시아 피겨스케이팅은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이렇게 피겨스케이팅이 공식 스포츠로 확립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 이는 러시아 사회 전체 계급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독립적인 동계 스포츠로 자리매김했으며, 1908년 바로 이 두 곳의 아이스링크에서 ‘러시아 최초이자 최고의 올림픽 스타’ 파닌-콜로멘킨이 탄생되었다. 그렇게 올림픽 역사를 쓰기 시작한 러시아 피겨스케이팅은, 어느덧 피겨의 상징적 장소들이 생겨난지 100년이 넘은 오늘날까지도 세계 최강국이라는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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