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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러시아의 국민 동계스포츠: 러시아 아이스하키의 역사
분류기타
국가 러시아
날짜2021-03-02
조회수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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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후,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 스포츠 대회는 미국과 소련의 체제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한 총성없는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이와 더불어 소련은 스포츠 강국의 이미지를 부각시켜 국가이미지 제고를 위해 노력하였다. 따라서 소련은 거의 전 스포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특히 동계스포츠의 강국이다. 동계스포츠 중에서도 아이스하키는 캐나다에서 스포츠로 발전하였기에 캐나다는 종주국으로써 세계 최강임을 자부하고 있지만, 사실 매해 국제 아이스하키 연맹(IIHF)이 주관하는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에서 1,2위를 다투는 것은 러시아와 캐나다일 정도로 러시아의 아이스하키 실력은 소련시기부터 막강하다. 러시아는 1898년 3월 8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첫 아이스하키 경기가 개최된 것을 기점으로 12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아이스하키 강국이다. 그리고 1920년부터 시작되어 매해 개최되는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가장 많이 차지한 나라 또한 러시아이다. 이렇듯 세계에서 인정받은 러시아의 아이스하키 실력이 반증해 주듯 러시아에서 아이스하키는 축구와 더불어 국민스포츠로써 러시아 전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스포츠이다. 물론 아이스하키 스타플레이어는 상상할 수 없는 인기와 영광을 누린다. 2008년 경기도중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알렉세이 체레파노프의 사례를 보면 그 인기와 영광을 짐작할 수 있다.

2008년 10월 13일 옴스크 아방가르드소속 아이스하키 선수 알렉세이 체레파노프(А.А. Черепанов, 1989-2008)는 모스크바 근교 도시 체홉에서 비타지(Витазь)팀과 경기 중 벤치에 앉아 있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경기장에 상주해야할 의사는 자리에 없었고, 급하게 119를 호출했으나 심장박동기는 충전이 되어 있지 않아 사용할 수 없었다. 19세의 라이징스타 체레파노프는 어릴 시절부터 그 능력을 인정받아 유소년 국가 대표팀에서 활동했던 전도유망한 아이스하키 선수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던 시기에 경기 중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의 장례식은 10월 15일 옴스크 아이스하키 경기장에서 작별의식으로 시작되었는데 전 러시아는 국가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그를 추모하는 하키팬들로 경기장의 안과 밖은 가득 메워 인산인해를 이뤘다. 젊은 스포츠 선수의 장례식을 국영방송 뉴스에서 보도하고 이렇게 많은 팬들이 추모의 행렬을 이룬 것은 러시아 사회에서 아이스하키선수들의 위상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언제부터 러시아에서 아이스하키가 인기스포츠가 되었을까?


<알렉세이 체레파노프(좌) / 체레파노프의 옴스크에서의 장례행렬(우)>


러시아제국 시기의 아이스하키
 

고대부터 유럽지역에서 빙판위에서 둥근 물체와 스틱을 가지고 목표물을 맞추는 게임은 인기있는 게임이었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이 게임을 크나틀레켄, 러시아에서는 율라(Юла), 네덜란드에서는 콜브(Кольв)라고 불렀다. 러시아의 기록에 보면, 두 그룹으로 나누어 둥근 물체와 스틱을 가지고 얼음 위에서 펼치는 게임은 매우 즐거운 유희로 묘사되어 있다. 종종 공 대신 둥근 채소를 사용하기도 했다. 러시아 제국의 표트르 대제는 스케이트 다는 것을 매우 즐겼으며 이 경기 또한 좋아하여, 이를 보다 완성도 있게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네덜란드에서 철로 된 스케이트 날을 들여왔다고 한다.

19세기 전반, 얼음위에서 하는 축구와 비슷하게 공을 가지고 하는 스포츠로써의 하키의 전신은 영국에서 발전하였는데 영국에서는 ‘밴디(Bandy)’, 스코틀랜드에서는 ‘신티’, 아일랜드에서는 ‘헐링’으로 불린다. 19세기 중·후반인 1850-70년대에는 벤디(Bandy)의 아마추어 클럽이 조직되었고, 1891년 영국에서 전국벤디협회가 창립되어 경기규칙을 만들어 확립하였다. 당시의 밴디 경기에 참석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풀고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좋은 여가생활 중 하나였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밴디(Bandy)는 러시아를 포함하여 유럽 전역에 퍼졌다. 


<표트르 대제가 네덜란드에서 들여온 스케이트(좌)/ 스케이트를 타는 표트르 대제(우)>


러시아 아이스하키의 아버지, 표트르 모스크빈

표트르 모스크빈(П.П. Москвин, 1871-1948)은 러시아에 육상경기와 공을 가지고 하는 하키의 발전에 초석을 놓은 사람 중 하나이다. 1945년 소련 공훈 스포츠 마스터 칭호를 받았다. 그는 1888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근교 짜를레보(Тярлево)에 있는 다차에서 친구들과 스포츠를 학생 모스크빈은 17세의 나이에 “짜를레보 아마추어 스포츠 동아리”를 조직했는데 이는 러시아 최초 육상 아마추어 동아리로 평가받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돌아와서 계속 스포츠 활동에 매진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 아마추어 스포츠 동아리”활동을 이어나가며 다양한 종류의 스포츠 선수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종목도 확장해 나갔다. 그는 1897년 축구 경기 규칙을 모델로 하여 첫 번째 러시아 하키 경기규칙을 제정하기도 했다. 그가 만든 이 하키 규칙은 약 50년간 바뀌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듬해인 1989년 3월 8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카멘노오스트로프 프로스펙트에 위치한 세베르늬 아이스링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아마추어 스포츠 동아리 주최로 러시아 최초의 아이스하키 경기가 개최되었는데, 러시아 하키역사에서는 이 날을 러시아 아이스하키의 탄생일로 기록하고 있다. 약 10년 후인 1900냔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8개의 하키팀이 활동하게 된다. 1903년에는 처음으로 국제 아이스하키 경기가 개최되어 상트페테르부르크 아마추어 스피드 스케이팅 동아리 회원으로 구성된 아이스하키팀 “유스포프 정원”, “상트페테르부르크 아마추어 스포츠 동아리”와 모스크바에서 온 “영국 스포츠 클럽”이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1907년에 러시아 아이스하키선수들은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등의 국제무대에 진출하기에 이른다. 1914년에는 6개 도시 34개의 클럽이 참여하여 러시아 전국 아이스하키 연맹이 창립되어 본격적인 스포츠로써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기 시작한다.

러시아 최초의 피겨스케이팅 올림픽 우승자 판인-콜로멘킨은 러시아 아이스하키의 아버지 모스크빈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그는 크지 않은 키에 진하고 검은 콧수염과 항상 밝고 검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으며, 활기 있고, 활동적이며,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모든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항상 정중하고 친절하기에 사람들의 깊고 진실한 호감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 콘스탄틴 판인-콜로멘킨 - 


<러시아 아이스하키의 아버지 표트르 모스크빈(좌) / 첫 번째 러시아 아이스하키 팀 “유수포프 정원”(우)>


소비에트 시기의 아이스하키

아이스하키가 지금의 모습처럼 공이 아닌 퍽(Puck, 샤이바 Шайба)을 가지고 경기를 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등장한다. 정확하게 하자면 1932년 독일팀과 퍽을 가지고 하는 아이스하키 경기를 치르긴 했지만, 공식적으로 1946년 12월 22일 제1회 소비에트 아이스하키 챔피언십이 개최되었던 날을 소비에트 시기의 현대 아이스하키 탄생의 기점으로 삼는다. 그전까지 소련의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퍽이 아닌 공을 가지고 경기하는 엄밀히 말하면 ‘밴디’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1년 반 후 1947년 소비에트 국가대표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국제대회에 참가하여 강팀 체코슬로바키아에 맞서 싸웠으나 참패하고 말았다. 그해 체코슬로바키아는 세계 챔피언을 거머쥐었다. 다음해 1948년 3월 체코선수들과 소련선수들은 더욱 강해진 모습을 보여 한 경기는 무승부로 다른 한 경기는 체코를 이겨 그 진가를 보여줬다.

1950년대 소련이 세계대회 우승을 위해 체육에 집중투자하기 시작하며 아이스하키분야도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954년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세계 선수권에서 소비에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은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소련 아이스하키 역사에서도 이때의 국가대표 선수들 브세볼로드 보브로프, 니콜라이 솔로구보프, 이반 트레구보프, 골키퍼 니콜라이 푸치코프는 전설적인 아이스하키 선수들이다. 이 기세를 몰아 소련은 1963년부터 1971년까지 9년간 연속 세계 챔피언 자리를 지키며 그 위력을 과시했다. 1960-70년대 활동했던 브세볼로드 보브로프, 아르카지 테르니쇼프, 아나톨리 타라소프는 소비에트 아이스하키 선수들의 독특한 기술을 만들어 이른바 소비에트 스타일을 구축하였고, 소비에트 아이스하키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1980년대 역시 6번 세계 챔피언자리를 지켜내었다. 그러나 소비에트 붕괴 이후, 소비에트 아이스하키의 화려한 명성도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짧은 침체기를 극복하고 2000년대 이후 러시아의 아이스하키는 그간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다시 세계 정상의 자리를 탈환하고 화려하게 복귀했다. 


<1986년 세계 챔피언 소비에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사진출처] Team Russia(https://teamrussia.pro)
[사진촬영] Сергей Киврин и Андрей Голованов


러시아 아이스하키팀을 세계 최강이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120년이 넘는 아이스하키 역사 속에서 나온 기술과 훈련 노하우, 전략이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로 올림픽 2관왕이며 1986년 세계챔피언의 주인공인 이고리 라리오노프(И. Ларионов, 1960~ )는 소비에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이 전설적인 팀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훈련과 경기를 통해서 우리는 모두 형제가 되었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경기에 임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1년 넘게 코로나 19라는 팬데믹과 싸우며 지쳐가고 있지만 우리도 소비에트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처럼 한마음이 되어 전력을 다해서 극복해 나가야 할 시기가 온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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