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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러시아 문학의 이방인 파질 이스깐제르에 대한 단상 (1)
분류문학
국가 러시아
날짜2021-02-16
조회수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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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부터 30년 동안 러시아 문학은 다른 시대에 비해서 다양한 변화를 겪었는데, 그 변화의 물결 중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1953년 스탈린 사망이후 과도기를 거쳐 1950년대 중반부터 태동된 ‘해빙기 문학’과 소수민족출신의 비러시아계 작가의 러시아 문학 무대로의 등장이었다. 특히 슬라브계가 아닌 다른 민족 출신 혹은 소련 연방에 강제적으로 편입된 다른 공화국 출신들의 작가들이 러시아를 사용하여 작품 활동을 한 것은 ‘러시아문학의 다양성’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현재까지 평가 받고 있다. ‘비러시아계 출신의 작가들은 자신의 고유한 정서와 문화를 바탕으로 독특한 색채의 문학 세계를 전개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다민족 국가인 소련의 사회, 역사적 환경상 필연적으로 발생해야 할 일종의 융합과 만남의 현상이었다.’ 이러한 비러시아계 작가들 중에서 가장 대중성을 획득한 예술가는 친기스 아이뜨마또프(Чингиз Т. Айтматов/1928~2008) 와 파질 이스깐제르였다.


<파질 이스깐제르>


압하지야 공화국 출신 작가 파질 이스깐제르

‘압하지야의 마크 트윈’으로 불리는 파질 이스깐제르(Фазиль Абдулович Искандер/1929~2016)는 소련 및 러시아 작가로 러시아 문학사에서 ‘마술적 사실주의’의 뛰어난 언어 예술가로 평가되고 있다. 산문 작가로 명성을 얻은 파질 이스깐제르는 아직까지 미승인 국가로 남아있는 압하지야 공화국 출신이다. 흑해의 남쪽 연안과 카프카스의 남서쪽에 위치한 압하지야는 조지아의 영토 내에 있어서 1990년 이후로 독립문제로 조지아와 첨예한 대립을 계속하고 있는 아주 규모가 작은 공화국이다.

파질 이스깐제르는 압하지야 출신이지만 압하지야 언어로 창작을 거의하지 않고, 시인으로서 문학에 첫 발을 내디딘 1950년대 이후 줄곧 러시아어로만 작품 활동을 했다. 고향의 언어를 버린(?) 파질 이스깐제르였지만, 역설적이게도 압하지야공화국을 배경으로 하는 시적 경향의 아름다운 산문 작품을 소련 및 러시아 연방에 소개하여, 자신의 고국의 자연과 정체성을 알린 작가이기도 하다. 특히 그의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작품의 무대는 고향인 압하지야이며, 그 속에는 독특한 유머가 이국적 정서와 함께’ 펼쳐지고 있다. 파질 이스깐제르의 대표작은 풍자성이 강한 작품 <염소 별자리>(Созвездие Козлотура)와 <가장 진실한 나의 삼촌>(Мой дядя самых честных правил), 서사소설 <체겜의 산드로>(Сандро из Чегема)이다.

특히 ‘러시아 독자를 위해 작은 압하지야를 열었고, <체겜의 산드로>와 함께 모든 독자를 문학의 집에 초대했다’고 표현할 정도로 <체겜의 산드로>를 통해 러시아어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체겜의 산드로>는 카프카스의 풍습과 민속을 그린 작품으로, 이 작품에서 특정적인 것은 ‘이국적인 정취로 가득한 자연의 묘사이다. 익살어린 문체로 민속적 전통을 서술하다가 본론에서 벗어나 서정적인 어조로 경관을 묘사하지만 관점과 묘사의 전환이 작품의 구성을 흐트러지지 않고, 오히려 플롯의 전개에 밀도를 더하고 있다.’


<압하지야 공화국의 산악마을 체겜>


산악마을 체겜과 문학

1929년 3월 6일 압하지야 자치공화국의 수훔시에서 태어난 파질 이스깐제르의 삶의 여정은 스탈린의 공포정치 시대부터 2010년대 현대 러시아 시기까지 계속 되는데, 그의 전기 중에서 핍박 받은 시기는 없었던 것으로 보면(그를 연구한 문학사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소련 시대에 살다간 반체제 작가와는 다른 시각을 가진 문학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질 이스깐제르의 작가로서의 삶을 포함한 전체 인생 중에서 힘들었던 부분을 언급하자면, 그의 아버지의 소련에서의 추방, 당국의 검열을 피해 불법적으로 출판된 연감의 후폭풍으로 불어 닥친 일시적인 작품의 출판정지 정도이다.

사실 파질 이스깐제르의 개인사 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부분은 그의 아버지와 관련이 있다 파질 이스깐제르의 아버지는 벽돌 공장을 소유하고 있었던 이란 출신 압둘 이브라기모비치 이스칸제르이다. 파질은 9살에 아버지와 생이별을 했는데, 서슬 퍼런 스탈린 압제 시기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그의 아버지는 1938년에 이란으로 추방되어, 그곳의 한 수용소에서 1957년에 사망했다. 아버지 추방 이후, 파질 이스깐제르와 그의 형제들은 어머니의 친척들과 함께 자랐다. 특히 어머니 친척들이 많이 거주하는 압하지야 공화국의 시골 산악 마을 체겜의 자연은 어린 시절 작가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카프카스의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자연은 그의 여러 작품의 공간적인 배경이 되는데, 파질 이스깐제르는 자신의 창작물을 통해서 체겜의 자연의 아름다움을 극찬하고 있다.

파질 이스깐제르의 문학과 관련된 교육은 현재는 국립 모스크바 문화 연구소로 이름이 변경된 모스크바 도서관 연구소(Московский библиотечный институт)에 입학한 이후 편입한 고리키 문학대학교에서 받은 수업이 전부였다. 고리키 문학대학교를 1954년에 졸업한 파질 이스깐제르는 모스크바지역의 신문사 <브란스키 콤스몰레츠>(Брянский комсомолец), <쿠르스나야 프라브다>(Курская правда)에서 일을 했다. 그리고 1956년 고향으로 돌아온 파질 이스깐제르는 소련 국영 출판사 압하지야 지부의 편집장이 되었다. 상기했듯이 파질 이스깐제르의 작가의 경력은 시인으로 시작되었는데, 그의 첫 번째 시집 <산길>(Горные тропы)이 1957년 고국인 압하지야 공화국 국영판사에서 출판되었다. 그리고 1950 년대 후반 ~ 1960 년대 초, 시집 <지상의 선>(Доброта земли), <녹색비>(Зеленый дождь), <흑해의 아이들>(Дети Черноморья) 등이 출판 되었다. 

<파질 이스깐제르의 책 <염소의 별자리>>


파질 이스깐제르 대표작품 <염소의 별자리>

시인으로서 문학적 경력을 시작했지만 파질 이스깐제르의 주 장르는 산문이다. 그의 산문작가로서의 첫 번째 작품은 1956년 문학지 <개척자>(Пионер) 11호에 실린 단편 <첫 번째 행동>(Первое дело)이다. 이어서 두 권의 단편집이 나오는데, 제목은 가각 <금단의 열매>(Запретный плод)와 <헤라클레스의 열세 번째 승리>(Тринадцатый подвиг Геракла)이다.

산문작가로서의 파질 이스깐제르의 최고의 작품은 <염소의 별자리>(Созвездие Козлотура)이다. 이 작품은 시인이자 언론인 알렉산드르 트바르도프스키가 이끄는 자유주의 잡지 <신세계>에 1966년 8월에 실렸는데, 이 풍자적인 이야기로 파질 이스깐제르는 독자들과 문단의 비평가들에게 인정받아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이 작품은 1970년에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염소의 별자리>는 마르티로스 파노이산의 연출로 1989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 작품의 서사는 1960년대에 코카서스 공화국 중 한곳에서 발생한 사건으로서, 소비에트 사회를 조롱하는 풍자, 소비에트시기의 농업생물 학자 트로핌 뤼센코(Трофим Лысенко)의 선택 실험 및 니키타 흐루시초프(Никита Хрущев) 행정부의 농업 캠페인에 관한 경험들에 대한 우화적 비판이 들어있다. 트바르도프스키는 이 작품을 1966년과 1968년, 두 차례에 걸쳐 소련 국가 문학상후보에 올렸지만, 날카로운 정치적 풍자로 가득 찬 이 작품은 당연히 수상에서 제외되었다. 오히려 이작품은 당의 문학 비평가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어, 국가주도 소련문학 경향과는 맞지 않는다는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영화 <염소의 별자리> 포스터>


<염소의 별자리>에서 선보인 문체와 비슷한 색깔을 지닌 파질 이스깐제르 또 다른 작품으로는 <가장 진실한 나의 삼촌>이 있다. 이 작품은 풍자적인 경향과 유머가 공존하는 내용으로, 서사를 이끌어 가는 것은 꼬마 화자이다. 이 작품의 중요한 점은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소련 전체 사회를 평가하는 것으로, 가장 악명 높았던 대규모의 ‘인간 사냥’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소련 시대의 개성의 본질과 당대 사회의 반인륜성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이지만 ‘항상 애국심에 불타서 무언가 조국을 위한 일을 하려고 하는 어린아이의 관점에서 서술되면서, 작가의 유머러스한 글’이 두드러져 스탈린 시대의 향수에 젖은 비평가들의 즉각적이고 비이성적인 감정적인 반발을 초래하지는 않았다.


파질 이스깐제르 대표작품 <체겜의 산드로>

파질 이스깐제르의 창작 목록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은 시리즈 형태로 만들어진 <체겜의 산드로>이다. 이 시리즈 형태의 첫 번째 소설은 1966년에 발표되었는데, 신문 <주>(Неделя)에 실렸다. <체겜의 산드로>의 정식 버전은 미국에서 러시아 문학 작품을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아르지스>에서 1979년과, 1981년에 나왔다. 소련에서 이 작품은 1989년에만 한시적으로 발표되었다.


<파질 이스깐제르의 책 <체겜의 산드로>>


1973년 <신세계>잡지 8호부터 11호까지 <체겜의 산드로>의 단편들이 연재되기 시작하였는데, 단행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잡지 버전조차도 검열에 의해 심하게 왜곡되었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이러한 무개념의 가위질이 ‘민중의 삶을 찬양하는’ 파질 이스깐제르의 서사시의 통찰력 깊은 철학적 표현에 대한 독자의 깊은 인상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드라마, 우화, 동화, 일상의 이야기 형태가 혼합된 <체겜의 산드로>에서 주인공 산드로와 그의 친척들, 그리고 산악마을 체겜의 주민들의 혁명 이전의 과거에서 스탈린의 숙청과 억압, 집단화 시대까지 그들의 역사가 펼쳐진다. 소설의 주요 서사는 비록 가공된 등장인물과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인공적인 민중이 이끌고 있지만, 역사적인 실제 인물들(스탈린,라브렌티 베르시야, 네스토르 라코바)도 소설 속에 등장한다. 소설의 행위는 체겜흐 무후세, 바뚜마 등의 압하지야 공화국의 실제 마을, 그리고 가상의 공간에서 발생한다. 이 소설은 파질 이스깐제르의 예술적 접근 방식을 마크 트윈,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스타일과 비교한 미국 문학 평론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파질 이스깐제르와 연감 <메트로폴>

소설<체겜의 산드로>가 서구에서 출판되었던 그 해, 파질 이스깐제르는 동료 작가 22명과 함께 연감 형태의 출판물 <메트로폴>(Метрополь)을 무수정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메트로폴>에 자신의 작품을 실은 유명한 작가로는 벨라 아흐마두리나(Белла Ахмадулина), 바실리 악세노프(Василий Аксенов), 유즈 알레슈콥스키(Юз Алешковский), 빅토르 예로페예프(Виктор Ерофеев)등이 있다. 사미즈타드 형태로 출판된 <메트로폴>에는 파질 이스깐제르의 두 작품, <큰 섹스와 작은 거인>(Маленький гигант большого секса), <복수>(Возмездие)가 실렸다. 소련 정부를 당혹하게 한 것은 이 <메트로폴>의 사본 중 하나가 소련 외부로 반출되어 미국출판사 <아르지스>에 의해 출판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연감에 참여한 저자는 소련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았는데, 이 연감에 참여한 일부의 작가들은 강제로 국외로 추방되기까지 하였다. 파질 이스깐제르도 소련 정부의 소심한 복수를 피해갈 수가 없었는데, 소련 당국은 파질 이스깐제르를 소련 작가 작가동맹에서 축출하지는 않았지만, ‘블랙리스트’에 포함 시켰다. 그래서 수년 동안 소련 문학잡지의 출판물에서 파질 이스깐제르의 이름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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