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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러시아 결혼식 전통 이모저모: ‘신부 찾아오기’에서 ‘꽃비 내리기’까지
분류지역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1-02-01
조회수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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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러시아인들의 결혼식 풍경에는 예로부터 내려온 슬라브인들의 결혼 전통과 소비에트 시대에 형성된 새로운 결혼 의식, 그리고 유럽에서 들여온 의례가 혼재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소비에트 시절에는 각 시대별로 서로 완전히 다른 결혼 문화와 전통이 존재했다. 이미 앞선 글에서 언급한 바처럼 혁명 이후의 러시아, 즉 소련방 내에서 결혼은 ‘사랑’이 아닌 ‘동지애’로 맺어진 언약으로 그 의미가 변질되었고, 기존의 러시아에서 진행되었던 다양한 결혼식 전통 역시 한동안 소멸되었다. 교회를 대신하여 출현한 ‘작스’는 결혼의 의미를 개인과 가족의 ‘작은 축제’에서 일종의 ‘절차’로 바꾸어버렸고,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와의 언약은 채 3분도 걸리지 않는 서류 작성과 낭독으로 대체되며 결혼식은 점점 더 무미건조하게 변해갔다.

소비에트 시절, 결혼식이 절차가 아닌 축제와 행사의 의미를 되찾으며 과거의 모습을 다시 회복하기 시작한 시점은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를 전후해서이다.

이즈음 과거에 잠시 접어두었던 결혼과 관련된 슬라브인들의 전통도 부활하게 되는데, 그중에는 우리나라의 ‘함 들이기’에 맞먹는 일종의 통과 의례가 포함되어 있어서 눈길을 끈다. 함을 신붓집 안으로 들이기 위해 신부 측 지인과 친구들이 고군분투하면서 함잡이와 한바탕 실갱이를 벌이며 밀당을 주고받는 우리나라와 달리, 러시아에서는 반대로 신랑이 신붓집으로 들어가기 위한 눈물겨운 고군분투를 벌이게 된다.

러시아어로 ‘выкуп невесты’로 불리는 이 의식을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아마도 ‘신부 찾아오기’ 정도가 될 것이다. 어여쁜 자신의 신부를 찾아오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본디 이 의식의 목적은 역시 신부의 부모에게 신랑의 재력을 과시하고 확인시켜주는 것에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의 ‘신부 찾아오기’ 전통은 분명 우리나라의 ‘함 들이기’ 전통과 닮은 구석이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신부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 함잡이의 소원 들어주기 미션을 비롯하여 막바지에는 금품(!)을 길에 깔아주며 함잡이를 집으로 끌어오는 것과 달리, 러시아에서는 예비 신랑이 어떻게 해서든 예비 신부의 집 안으로 들어가서 베일을 쓰고 다소곳이 기다리는 신부를 집 밖으로 빼내 오기 위해 노래 부르기, 신부 얼굴 그리기, 퀴즈 풀기, 삼행시 짓기 등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신부 찾아오기’ 미션 수행에 실패하여 신부 몸값을 지불하는 예비 신랑>


‘신부 찾아오기’ 미션은 대부분 신랑과 신랑의 친구들이 신붓집 앞으로 몰려가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신부와 신부의 부모에게 바치는 신랑의 노래는 한편으로는 사랑의 세레나데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 임자 찾으러 왔소!”라는 신랑의 선전포고이기도 하다. 의욕이 넘치는 현대의 신랑은 아예 그룹사운드에 버금가는 악기와 연주 가능한 친구들을 모아서 신붓집 앞을 무대 삼아 공연을 펼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신랑과 친구들이 준비한 소박한 합창 세레나데로 ‘신부 찾아오기’ 의식이 시작된다. 이들의 무대와 노래가 마음에 들 경우, 신부는 양파 또는 빨간 무로 엮어 만든 부케를 창문 밖으로 던져준다.

첫 번째 미션을 통과했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 이제 겨우 첫 번째 단계를 지났을 뿐이다. 예비 신랑을 기다리는 두 번째 미션은 ‘신부의 얼굴 그리기’이다. 솜씨가 좋은 신랑의 경우 큰 문제 없이 두 번째 단계도 무난히 통과하겠지만, 그림에 소질이 없는 불쌍한 예비 신랑은 이 단계가 나름 곤욕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그림을 꽤 잘 그리는 편에 속한다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미리 정보를 입수한 신부측 친구들이 나서서 신랑의 눈을 가려버린 채 그림을 그리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부 얼굴 그리기’ 미션을 수행 중인 예비 신랑> 


요즘에는 신부 얼굴 그리기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미션이 예비 신랑에게 주어지는데, 바로 조각난 사진 속 신부의 얼굴을 찾는 것이다. 물론 신랑에게 주어지는 조각 사진들, 예를 들어 입술, 코, 눈썹, 확대된 눈동자, 목, 손 등의 주인공은 대부분 신부가 아닌 신부 주변 사람들의 얼굴이나 신체의 일부일 가능성이 높기에 예비 신랑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자신의 피앙세를 찾아내야만 한다. 그 외에도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고 도화지에 찍어놓은 다양한 입술 모양을 보고 신부의 입술을 찾아내는 미션, 신부를 비롯한 신부 친지들의 어린 시절 사진을 뒤섞어 놓고 신부를 찾아내는 미션 등 예비 신랑을 기다리는 과제는 참으로 다양하기 그지없다. 


<어린 시절의 사진으로 예비 신부를 찾아내는 미션을 수행 중인 예비 신랑>


두 번째 단계를 무사히 뛰어넘었다면 이번에는 작문 테스트가 예비 신랑을 기다린다. 예비 신랑은 신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한 편의 시로 창작해서 읊어야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만만치 않다. 왜냐면 신랑이 원하는 대로 시를 지어서 읊는다고 통과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예비 신랑을 마중 나온 신부측 지인들이 요구하는 단어를 넣어서 작문해야 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를 읊다가 중간에 흐름이 끊기지 않는 것이다. 중간에 흐름이 끊길 때마다 일종의 벌금 명목으로 ‘신부 몸값’을 지불해야 되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서 시를 읊는 대신 아예 몸짓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해보라는 요구가 들어오기도 한다.

작문 과제를 무사히 마친 예비 신랑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힘든 과제 중 하나인 ‘어째서 예비 신부와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 말로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에 나름 ‘전투태세’를 갖춰야 한다. 신붓집 대문으로 올라가는 계단 곳곳에는 다양한 메모들이 부착되어 있는데, 질문에 가장 부합되는 정확한 답이라 할 수 있는 ‘사랑해서’라는 메모는 대부분 계단의 가장 꼭대기에 걸려있기 마련이다. 계단의 아래쪽을 뒤덮은 메모들은 죄다 ‘수지타산을 맞춰보고’,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미쳤었나 보다’ ‘난 정말 바보스러운 짓을 저질렀네요’, ‘그냥 할 때가 되어서’ 등 신부가 들으면 당장 파혼 선언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문장뿐이다. 덕분에 예비 신랑은 계단 난간에 애처롭게 매달려서 어떻게 해서든지 폭탄 같은 메모를 밟지 않고 ‘사랑해서’라는 문장에 도달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며 신붓집 대문을 향해 나아간다.

‘신부 찾아오기’가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거행되면서 결혼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의미있는 러시아 전통 중 하나라면, 결혼식이 끝난 후 혹은 ‘작스’에서 혼인 신고를 마친 후에 이어지는 의식이자, 동시에 고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가장 의미있는 슬라브인의 결혼식 관련 전통은 바로 ‘카라바이’라는 빵으로 이제 막 결혼한 신랑과 신부를 환대하는 전통과 이들 신혼부부를 향해 곡물을 뿌리는 것으로 다산과 부를 기원하는 것이다.

빵과 소금은 슬라브 민족이 손님을 환대하기 위해 내놓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결혼 의식에서도 역시 ‘빵’을 빼놓을 수 없다. 결혼식 겸 혼인 신고를 마치고 신랑의 부모님 집으로 온 신혼부부를 위해 ‘카라바이(каравай)’라고 불리는 둥근 빵이 준비되는데, 시어머니 될 분이 특별한 수건이나 포에 ‘카라바이’를 싸서 준비해놓는다. 이러한 러시아의 ‘카라바이’ 전통 역시 우리나라의 결혼식 전통과 닮은 구석이 있다. 포에 조심스럽게 싸여 준비된 ‘카라바이’의 모양새는 우리나라에서 함이 들어가는 날 고운 비단보와 노리개로 봉치떡을 싸서 신부의 집까지 가져간 뒤에 현관 문턱에서 보를 열어 함께 나눠 먹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슬라브 전통에 따라 신랑과 신부는 시어머니가 가져온 둥근 빵을 한 입씩 베어 먹어야 하는데, 이 때 둘 중 더 큰 조각을 베어 문 사람이 앞으로 가족을 이끌어나갈 수장 역할을 맡게 된다고 전해진다.


<시어머니가 준비한 ‘카라바이’를 베어 무는 신랑과 신부> 


또한 신랑의 어머니는 집 입구에서 귀리와 기장쌀을 아들과 신부에게 뿌려주는데, 이는 신혼부부의 ‘부’를 기원하는 일종의 의식이었다고 한다. 현대에 접어들면서 귀리와 기장쌀은 다양한 색상의 꽃잎으로 그 모양새를 바꿨고, 신랑 신부가 예식장을 나올 때 이들을 둘러싼 하객들이 축하의 의미로 뿌려주곤 한다. 꽃잎을 뿌리는 의식은 ‘부’를 이루라는 기원과 더불어 다산에 대한 기원의 의미를 지니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다산을 의미하는 것과 연관성을 지닌다. 현대에는 ‘부’와 ‘다산’을 동시에 기원하는 의미에서 신랑 신부에게 곡물이나 꽃잎, 색종이 대신 동전이나 지폐를 뿌려주기도 한다. 


<신랑 신부를 향한 꽃비를 내리며 축하하는 하객들>


한편 소비에트 시대가 열리면서 결혼식 풍경 역시 일종의 ‘표준화’ 양상을 지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아시아 지역의 공화국에서는 자국 민족의 전통을 나름대로 절충하며 고수해 나갔다. 예를 들어, 타지키스탄의 경우, 혁명이 일어난 지 어언 40년이 흐른 1960년대가 넘어서까지도 신랑은 ‘작스’에서 서류 작성이 끝나는 순간까지 자기 신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신부는 두꺼운 천을 베일 삼아 얼굴을 꽁꽁 싸매고 미래의 신랑이 ‘작스’에서 서류 작성을 마칠 때까지 다소곳이 기다리곤 했다. 신부가 자신의 얼굴을 당당히 드러내고 결혼식에 입장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가 끝나갈 무렵이 다 돼서였다. 물론 이는 타지키스탄이 이슬람을 믿는 국가라는 점과도 어느 정도 연관성을 지닌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네 어르신들 역시 신랑 얼굴도 한 번 못 보고 결혼했다는 말을 자주 하시곤 하니, 과거 타지키스탄에서 신랑 신부가 서로의 눈 한 번 마주치지 못하고 결혼했던 것은 그 이유가 꼭 종교적인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닌 듯싶다. 


<‘작스’에서 신랑의 서류 작성을 기다리는 타지키스탄 신부>


또한 과거 그루지야(현재의 조지아)의 신부는 말을 잘 다룰 줄 알아야 했으며, 발틱 연안 지방에서는 신랑이 신부의 발을 씻기며 감동을 줘야만 했다. 이러한 전통 역시 부분적으로는 그루지야가 정교 국가, 즉 기독교를 믿는 국가라는 점과 관련을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는 로마군에게 체포되기 직전 열두 제자의 발을 씻기는 ‘섬김 의식’을 거행하게 되는데, 이런 성서의 한 장면이 결혼 의식에 투영되면서 신부를 아끼고 위하는 신랑의 마음이 일종의 전통처럼 발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신부 족욕식’을 거행 중인 그루지야의 신랑>


생존을 위하여 만들어진 흥미로운 결혼식 전통도 존재한다. 시베리아의 네네츠 부족의 경우, 신부는 결혼식에서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줄넘기를 해야만 한다. 추운 날씨에 두꺼운 옷을 입고 뛰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고, 게다가 결혼식을 앞둔 신부에게 이는 너무나 가혹한 의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춥고 척박한 툰드라 지방에서 사슴을 방목하고 돌보는 일은 그 자체로 생존과 직결된 일이며, 예비 신랑은 자신과 평생을 함께할 신부가 이 일을 해낼 체력과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검증해야만 했을 것이다. 


<결혼 통과의식인 ‘줄넘기’에 열중하는 네네츠 신부의 모습>


이렇게 한바탕 운동을 통해 체력을 검증받은 나쁜 영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해 신랑의 든든한 두 팔에 안긴 채 집까지 모셔다드리는(!) 서비스를 받게 된다. 이런 네네츠인들의 전통은 후일 바이칼 일대 철도 건설노동자들에게도 전수되었는데, 혹자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나쁜 영이 아닌 더러운 진흙에서 신부의 순백색 신을 보호하기 위해 기꺼이 신부를 자신의 팔에 안아 집으로 모셨다고 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 게재된 바이칼 철도노동자 결혼식 장면>


또한 소비에트 시대에 생겨난 새로운 결혼 전통은 바로 당시 크렘린 광장에 세워져 있던 레닌 동상과 ‘꺼지지 않는 불’에 헌화하고 참배하는 것이다. 이 전통 역시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오면서 러시아를 대표하는 결혼 문화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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