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인문한국) 사업단 홈페이지

HK(인문한국) 사업단

웹진 문화로(文化路) 내용 시작

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러시아 직물공예, 전통의 형성과 발전
분류전통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1-01-18
조회수517
첨부파일


고대 러시아의 직물공예

예술비평가 블라디미르 스타소프(В. Стасов)는 “진정한 민속 예술은 모든 아름다운 물건에서 탄생됨”을 이야기한 바 있다. 이는 주변을 둘러싼 평범한 물건들의 미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장식적 요소를 부여하려는 행위는 인간들이 가지는 기본적인 욕구이며, 바로 여기에서 민중들의 영혼이 담긴 민속 예술이 출발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중 ‘손으로 무언가를 짜는 일’은 가장 오래된 인류의 공예 기법이며, 러시아 민속 예술을 보더라도 가장 보편화, 대중화된 유형의 공예 장르다. ‘실이란 곧 삶’이라는 내용의 러시아 격언 <Какова нить, такова и жизнь>이라는 말이 증명하듯이, 직물을 만드는 일은 그들의 삶과 직결된 노동임과 동시에 삶을 지속해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가내 직조의 전통은 20세기까지 러시아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왔으며, 시골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의해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고대로부터 가내 직조 공예는 러시아 농민들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공예가 전적으로 여성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직물의 기본재료가 되는 아마, 대마, 양모 등을 다루는 모든 일들, 즉 ‘재배-가공-염색-방적’을 아우르는 복잡한 모든 과정이 여성들의 오롯이 몫이었다. 사회적 계급이나 부의 정도를 막론하고 어린 시절부터 러시아 여성들은 직조, 방적, 뜨개질, 자수 등의 직물공예를 배웠고, 옷, 벨트, 리본, 수건, 식탁보, 침대보, 커튼, 양탄자 등의 소품들을 만드는 일을 전문적으로 습득했다. 이렇게 삶을 영유하는 데 유용한 제품들을 직접 제작했던 러시아 여성들은 아름다운 물건들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 수 있음에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오히려 ‘직물공예를 못 하는 여성’이라는 별명이 10대 소녀들에게 가장 불쾌감을 주는 말로 여겨졌을 만큼, 그들에게 있어 직물공예는 노동의 영역이라기보다 즐거움의 영역이기도 했다. 그 이유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필수 제품이나 장식품들이 결혼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혼수품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러시아 가정에는 베틀을 포함한 직조 도구들이 구비되어 있었고, 그들은 한편으로 생활에 필요한 제품 개발과 생산을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공예 기량을 높이기 위해 일 년 내내 작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한편, 그들은 공동작업을 하기도 했다. 해가 짧은 겨울 저녁이면 농촌 소녀들은 함께 모여 베틀을 활용해 손수 실을 뽑았고, 봄이 가까워지면 면사에 무늬를 수놓았다. 마을 여성들은 다채로운 색상의 사라판(сарафан), 포뇨바(понёва)를 비롯, 소매와 카라, 밑단에 자수를 놓은 루바하(рубаха), 여름용 겉옷 슈슈판(шушпан) 등을 만들었다. 소품 중 여성과 남성 의상에 모두 적용되는 것은 기하학적 패턴의 벨트 포야스(пояс)였다. 여기에는 보통 제작자가 누구를 위해 만든 옷인지를 밝히기 위해 착용자의 이니셜이 새겨지기도 했으며, 결혼을 앞둔 신부들의 경우, 신랑에 대한 애정을 담아 만들었다는 등의 간단한 문장을 새겨 예비 남편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고대 러시아 여성들의 직물공예 작업 풍경>


러시아 직물공예의 부흥기
 

현재 보존되어있는 자료들을 통해, 16-17세기 모스크바에는 직조 공예가(ткачи)들이 거주했던 특정 지역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모스크바 최대 방직 마을이었던 카다숍스카야(Кадашевская), 당시 활동했던 방직공의 이름을 따 이름 붙여진 하모브니키(Хамовники), 도심에서 조금 멀리 위치해있던 브레이토보(Брейтово)와 체르카소보(Черкасово)가 대표적인 방직 마을이다. 카다솁스카야가 유명했던 이유는 그들이 소위 ‘국가의 백색 자원’으로 일컬어지던 면사를 러시아 황실에 공급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고품질의 린넨 원사가 그곳에서 생산되었으며, 이 직물들은 여러 형태의 패턴 직물로 제작되었다. 이곳 공예가들은 화려한 무늬를 수놓기로 특히나 유명했는데, 황실에서 연회나 행사를 개최할 시 사용되었던 자수 장식식탁보가 이곳에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브레이토보와 체르카소보 지역 역시 황실을 위한 업무를 맡고 있었으나, 이들은 수도원과 보야르 영지에 소속된 시골 마을로, 이곳 주민들은 자수 업무가 아닌, 주로 면사 제작 업무를 담당했다. 이 지역이 러시아 직물공예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은 오늘날 널리 알려져 있음에도, 실제 이 지역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은 보존되지 못했고, 그 흔적만이 기록에 남아 있을 뿐이다.

아름다운 패턴이 적용된 직물공예는 19세기에 이르러 러시아 전역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당시 사용된 재료들은 고대 시대 때와 마찬가지로 아마, 양모, 대마였으며, 이는 모두 농민들의 농장에서 재배, 가공되었다. 아마에서 추출한 린넨의 경우 다채로운 장식이 용이하다는 장점으로 널리 사용되었고, 러시아 가정에서 직접 키우던 양에서 채취한 양모는 기능성의 차원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셔츠, 수건은 비교적 얇은 린넨 원단에 수를 놓아 제작했고, 보톨라(вотола)라고 불렸던 두꺼운 면사는 겨울용 옷에 주로 사용되었다. 또한 거칠거칠한 표면의 양모 야리가(ярига)와 세르먀가(сермяга)는 겉옷과 외투 제작에 적합한 재질이었었다. 그 후, 19세기 말이 되자, 사람들은 ‘목화(бумаг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목화는 열매가 성숙되면 긴 솜털이 달린 종자가 나오는데, 이 털을 모아 솜으로 만들면 훌륭한 면사가 된다. 그때부터는 20세기까지 목화실은 러시아인들의 직물공예에서 가장 널리 사용된 재료로 등극했다.

직물의 장식과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러시아 민속 의상은 밝고 화려한 장식을 특징으로 한다. 예로부터 러시아인들은 각종 의미 있는 날들을 기념해 왔는데, 노동과 관련한 기념일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가축의 첫 방목일первый выгон скота’, ‘첫 풀베기 날первый день сенокоса’ 등이 있다. 이러한 날들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러시아인들이 주로 입었던 의복은 밝은색으로 채색된 직물로 구성되었으며, 여기에는 빨간색을 중심으로 강렬한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 주황색, 자주색 등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강렬한 색채의 의복은 녹색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졌던 야외 행사에서 사람들을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실내에서 이루어지는 집안 행사의 경우에도 직물 공예품들의 역할은 상당하다. 많은 손님을 맞이하는 명절 기간 동안 집안 내부는 그들이 만든 최고의 수공예품으로 장식되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커튼을 창문에 걸어 내부를 화려한 분위기로 연출했고, 또한 테이블은 다채로운 색상의 식탁보로 덮었으며, 벽면은 다양하게 수 놓은 천들을 걸어 장식했다. 이는 집안 여성들의 탁월한 공예 기술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이자 각 가정의 재정적 상황, 즉 삶의 윤택함과 부유함을 드러내는 요소이기도 했다. 따라서 기혼여성뿐 아니라, 미혼의 소녀들까지도 숙련된 장인으로서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전통 무늬와 관련하여 언급하자면, 러시아 전통 직물의 패턴은 개별적인 기하학적 무늬들이 만들어내는 리듬과 균형성, 대칭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동식물과 같은 자연에서 차용한 모티프는 드물게 나타나는 편이며, 대부분의 장식 패턴은 대각선들의 교차, 마름모와 삼각형 무늬의 조밀한 배치를 기반으로 한다. 한편, 러시아인들이 착용했던 의복의 색채 구성을 보면, ‘아름답다красивый, прекрасный’는 의미를 내포하는 ‘빨간색’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하여, 직물 연구자들은 빨간색에 대한 러시아인의 선호 현상이 몽골의 지배를 받기 이전 러시아에서도 드러난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그만큼 빨간색의 사용은 귀족들뿐 아니라, 평범한 농민들의 옷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특히 19세기 러시아 직물에서 빨간색은 대부분의 경우 흰색과 결합되는 경향을 보였다. 전체적으로 빨간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직물에 금빛에 가까운 노란색, 녹색, 검은색, 분홍색, 파란색(수레국화 색васильковый) 등이 곁들여져 자칫 단조롭게 여겨질 수 있는 의복의 형태를 보완했다.

물론 러시아 북부와 남부 지역의 직물 패턴은 조금 다른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북쪽 지방에서는 보통 제품의 가장자리만을 화려한 패턴으로 장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 지역 의복에서는 대체로 색상이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빨간색과 흰색의 조화, 그중 특히 흰색을 많이 사용했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 러시아 남부 지역 사람들은 북부 지역에 비해 밀도 높은 패턴을 주로 사용했으며, 그 종류가 비교적 다양했다. 색채 사용을 보더라도 두 지역 간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다. 물론 그들도 빨간색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노란색, 녹색 등의 밝은 색상을 함께 사용한 한편, 여기에 검은색과 같은 진한 색채의 무늬를 결합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검은색이 사용된 직물은 북쪽 지방 의복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것이었다. 이처럼 색채의 풍부함과 패턴의 무한한 다양성의 세계를 보여주는 러시아 직물공예는 오늘날까지 계승되어 러시아 의복의 예술적 전통으로 이어졌다. 또한 이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민족들의 전통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 


<위. 러시아 북부 지방의 의상 / 아래. 러시아 남부 지방의 의상>


오늘날의 러시아 직물공예
 

오늘날의 직물공예는 어떠한 모습인가?

2011년, 모스크바 짜리쯰노(Царицыно)에 위치한 박물관 홀에서 <평방미터-자신의 공간Квадратный метр–свое пространство>이라는 제목의 제1회 러시아 현대 태피스트리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당시 크릠스카야(И. Крымская)라는 작가의 <집으로 가는 길Дорога домой>(1999)이라는 작품이 대중들에게 큰 관심을 끌었는데, 이 작품에는 러시아 전통 의상에서 마주할 법한 마름모, 정사각형 같은 기하학적 패턴과 장미꽃 무늬들이 오밀조밀 수놓아져 있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제목인 ‘집으로 가는 길’은 ‘전통의 근원’으로, 혹은 과거 ‘러시아 장인들의 정신’으로 되돌아가려는 작가의 의지로 해석되며 언론에 기사화되기도 했다.

오늘날 직물공예는 과거와 같이 일상적인 가사일로 여겨지기보다는 현대인의 취미생활로 각광받고 있는 상황이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기계화의 영향으로 의복과 생활소품이 독창성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사실, 러시아의 전통과 장인들의 정신이 점차 잊혀져 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현대인들의 비판의식은 과거의 것, 전통의 것을 다시금 추구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오랜 시간 동안 산업용 직물이 대체해왔던 카펫, 커튼, 식탁보, 가방 등을 개인의 손으로 직접 만들려는 경향이 러시아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로써 자수, 퀼트, 태피스트리 등의 직물공예가 러시아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제품의 물질적 혹은 기능적 측면보다 정신적, 심리적 가치로 그 비중이 옮겨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러시아인들이 적은 품목의 대량생산이 지배하고 있는 오늘날 ‘많은 품목의 소량생산’을 더욱 가치 있는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말이며, 이러한 가운데 직물공예는 자아실현의 도구이자 ‘나만의’ 제품을 소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나아가서는 러시아의 역사를 아우르는 ‘선조들의 전통’을 잇기 위한 방법론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 러시아 태피스트리 공방>


목록

웹진 문화로(文化路) 내용 끝

TOP

저작권 표시 및 연락처

06974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로 84 법학관(303관) 1420호 / E-mail: fsicau@cau.ac.kr / TEL: 02-820-6355 / FAX: 02-822-0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