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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나타샤와 함께 왈츠를: 유라시아 볼룸댄스 문화에 대한 단상(斷想)
분류공연예술
국가 러시아
날짜2021-01-04
조회수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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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잠식한 2020년도 어느덧 2주를 남겨두고 있다. 항상 연말이 되면 가는 해를 아쉬워하지만, 올 해 만큼은 빨리 이 해가 지나갔으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 어떠한 분야도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 없으며 코로나 19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도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연말하면 크리스마스와 연말파티로 들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지만, 올해는 각종 연말모임까지 자제해야 하는 상황이라 더욱이 연말분위기를 느끼기는 힘들다. 역사적으로 러시아뿐만 아니라 유럽의 파티의 꽃은 볼룸댄스이다. 볼룸댄스는 두 사람이 함께 파트너가 되어 춤을 추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그 무엇보다도 큰 타격을 받고 있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볼룸댄스 바꿔 말하면 댄스스포츠일 것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볼룸댄스와 댄스스포츠라는 용어는 구별이 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볼룸댄스는 파티에서 사교와 친목을 위해 추는 사교댄스이고, 댄스스포츠는 영국의 국제댄스스포츠연맹(IDSF)이 사교무용 중 10가지 춤을 선별하여 표준과 규칙을 만들어 스포츠화 시킨 스포츠종목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구소련시기부터 러시아는 오랜 기간 노하우가 축적된 발레 및 공연예술 기법과 스포츠가 결합된 피겨스케이팅, 리듬체조,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등 예술스포츠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것의 연장선상에서 2000년부터 현재까지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출신의 선수들이 세계 탑 10의 대부분을 석권하며 독보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댄스스포츠이다. 댄스스포츠는 올림픽 정식종목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댄스스포츠 종주국인 영국이 무색할 정도로, 댄스스포츠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의 저력은 막강하다. 2020년 코로나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맞아 러시아의 볼룸댄스의 역사와 댄스스포츠를 포함한 구소련의 스타볼룸댄서들의 활동을 통해 잠시나마 연말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바실 고라노프(Васил Горанов)의 작품 ‘신년무도회(Новогодний Бал)’>
출처: https://123ru.net/foto/142382426/

러시아 볼룸댄스의 상징, 나타샤의 왈츠

유럽의 무도회를 러시아로 들여온 인물은 바로 표트르 대제이다. 그는 러시아 사람들의 유럽화를 위해 1718년 무도회 문화를 러시아로 들여왔으나, 초기에는 귀족들로부터 외면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 볼룸댄스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귀족들의 여흥거리로 대유행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 당시의 무도회의 모습을 가장 잘 대변하며 러시아를 대표하는 볼룸댄스는 아마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등장하는 나타샤와 안드레이의 첫 번째 왈츠일 것이다. 물론 당시 귀족문화가 꽃피우던 러시아 제국의 시대상과 문화사적으로 유럽과 차별화되는 러시아 사회에서의 무도회 그리고 소설의 전개에 있어서 나타샤의 왈츠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나타샤의 왈츠는 중요한 장면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춤은 공감각적 종합예술이기에 문자로 접했을 때와 영상으로 볼 때의 임팩트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 나타샤의 첫 번째 왈츠는 1956년 오드리 햅번이 나타샤로 열연한 영화 ‘전쟁과 평화’에서 프랑스 작곡가 폴 모리아(Paul Mauriat, 1925-2006)가 작곡한 ‘나타샤 왈츠’에 오드리 햅번과 핸리 폰다가 왈츠를 추며 전 세계적으로 회자되었다. 그 이후로 ‘나타샤의 왈츠’는 소설 『전쟁과 평화』의 영화화, 무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중요한 명장면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2015년 BBC에서 제작한 6부작 ‘전쟁과 평화’에서도 이 나타샤의 왈츠 장면 또한 현재까지 유튜브에서 높은 조회수를 자랑하며 이슈가 된 바 있다. 나타샤의 왈츠는 2014년 소치 올림픽 개막식에서 러시아를 대표하는 문화의 장면 중 하나로 선보이기도 했다. 


<영화 ‘전쟁과 평화’ 속 나타샤의 왈츠 장면.
1956년(좌) / 2015년(우)>


귀족들의 볼룸댄스에서 대중들의 댄스스포츠로

러시아 제정시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무도회와 볼룸댄스는 소비에트 시기로 넘어가며 퇴출될 위기에 처했으나, 소련시기에도 여전히 무도회, 졸업무도회, 신년무도회는 계속되었기에 대중들의 문화로 그 모습을 바꾸어 볼룸댄스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1930년대 초, 모스크바에서 모던댄스(왈츠, 비엔나 왈츠, 퀵스텝, 탱고, 폭스트롯), 라틴아메리칸 댄스(차차차, 룸바, 파소도블레, 삼바, 자이브) 10종목의 댄스스포츠 트레이너 양성과정이 개설되었다. 그러나 초기에 댄스스포츠는 소련에서 그렇게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1957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 볼룸댄스는 해리와 도린 스미트 햄프셔가 소련 안무가들을 위해 수업을 하며, 댄스스포츠로써 소련시민들에게 소개되었고, 이는 영상으로 모두 기록되었다. 이것이 소련의 댄스스포츠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1962년 모스크바 시민의 집에서 데그차렌코의 노력으로 첫 번째 댄스스포츠 단체가 조직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발트 3국 중 하나인 라트비아의 카우나스에도 ‘호박커플(Янтарная пара)’이라는 댄스스포츠 대회가 개최되었다. 그 이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블라디미르 파블로프, 아나톨리와 라리사 함리텔레븨, 빅토르와 타티야나 졸로토베르호븨, 빅토르와 나제즈다 다비도브스키, 유리와 올가 시모노바 등에 의해 댄스스포츠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97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전연방 댄스스포츠 모던댄스와 라틴아메리칸 댄스 전체 10종목의 대회가 개최될 수 있었는데, 라틴아메리카 댄스 프로그램 중에서 자이브 대신 폴카로 경연이 진행되었다. 1975년 사회주의 국가들 간의 챔피언십 대회, 1979년 소연방 챔피언십이 개최되었다. 1977-80년이 되어서야 댄스스포츠가 스포츠의 영역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국제표준에 맞는 채점 체계, 대회규정이 만들어지게 되면서 국제적인 수준으로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댄스스포츠는 올림픽 정식 종목이 아니므로 소련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기에 괄목할만한 성과는 보이지 못했으나 소련 붕괴 이후, 많은 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하여 초국가적으로 활동하면서 러시아 및 독립국가연합 선수들의 실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댄스스포츠는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채택되지 못하고 있기에 폭발적인 성장은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1973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전연방 댄스스포츠 대회>

우크라이나 댄스스포츠 스타 1세대, 슬라빅 크리클리비

우크라이나 자포로지예에서 태어난 슬라빅 크리클리비(Славик Крыклый, Slavik Kryrkyvyy, 1976~)는 프로 라틴 댄서로서 현재 뉴욕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00년 벨기에 출신 요안나 레니우스(Joanna Lenius, 1981~)와 아마추어 세계 챔피언십 국제 라틴아메리칸 댄스부문, 댄스스포츠의 성지 블랙풀 브리티시 오픈(Blackpool British Open) 등 세계 주요 댄스스포츠 대회를 석권함으로써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며 새로운 밀레니얼 시대의 라틴아메리칸 댄스의 챔피언이자 스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프로 선수로 전향하고, 같은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카리나 스미르노프(Krina Smirnoff, 1978~)와 환상적인 비주얼과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그녀와 유독 대회에서의 운은 따라주지 않았다. 이 둘은 리차드 기어와 제니퍼 로페즈 주연으로 동명의 일본 볼룸댄스영화를 리메이크한 ‘쉘 위 댄스(Shall we Dance)’(2004)에 각각 제니퍼 로페즈의 파트너와 라틴 댄스 강사로 출연하며 더 유명세를 탔다. 


<영화 ‘쉘 위 댄스’에서 제니퍼 로페즈의 파트너로 출연한 슬라빅(좌) / 영화 ‘쉘 위 댄스’ 포스터(우)>

그러나 2006년부터 슬라빅은 파트너를 자주 바꾸게 되었고, 대회에서 큰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슬라빅에게 큰 우승을 안겨주었던 전 파트너 요한나가 2009년부터 대회에서 승승장구하며 큰 슬럼프에 빠진다. 2010년 새로운 파트너 안나 멜니코바를 만나 재기를 꿈꾸지만 그 또한 녹록치 않았다. 2010년 덴마크 감독 크리스티안 본케(Christian Bonke)와 안드레아스 쿠푸드(Andreas Koefoed)는 이러한 슬라빅의 재기 스토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Ballroom Dancer’를 제작하여 2011년 개봉하였다. 그동안 볼룸댄스에 대한 영화는 제작된 바는 있었지만 프로 볼룸댄서에 대한 다큐멘터리로서는 첫 시도였다. 이 영화에서는 파트너와 함께해야 하는 종목이기에 자신에게 맞는 파트너를 찾기까지의 힘든 여정과 파트너와 합을 맞춰가는 연습과정 그리고 개인훈련모습 등 모든 준비과정과 무대 뒤 스토리까지 볼룸댄서들의 실제모습을 여실히 담아냈다. 이 영화는 제9회 EBS 국제 다큐영화제(EIDF2012)의 스포츠 다큐부문에 출품되어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도 소개되었다. 그 이후에도 슬라빅은 슬럼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으나, 2017년부터 다시 카리나와 종종 공연활동을 시작했으며, 뉴욕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며 댄스스포츠를 통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 예전과 같은 명성과 인기는 없지만 그의 과거의 화려한 기교가 난무하던 젊은 시절의 춤보다는 어려운 시기를 겪고 난 후, 불혹을 넘긴 그의 춤은 한층 절제되고 성숙했으며, 풍부한 표현력을 보여준다. 


<카리나와 슬라빅(좌) / 영화 ‘볼룸댄서’ 포스터(우)>

댄스스포츠의 여제, 율리야 자가루이첸코

율리야 자가루이첸코(Юлия Загоруйченко, 1981~)는 러시아 벨고로드에서 태어나 댄스스포츠 활동을 위해 미국으로 이주하여 이탈리아계 미국인 파트너이며 현재의 남편인 리카르도 코키(Riccardo Cocchi)와 2007년부터 현재까지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10년째 부동의 세계 챔피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타공인 라틴아메리칸 댄스분야의 여제이다. 어릴적 부터 춤에 재능을 보여 4살부터 춤을 배우기 시작했고, 9살 때부터 국제수준의 대회에 참가했으며, 11살 때부터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쳐 돈을 벌었다는 후문이 들리는 댄스신동이었다. 2000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파트너 막심과 세계 챔피언을 2회 달성한 이후 그와 결별하고, 현재의 파트너이며 남편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평생을 춤과 함께 살아온 그녀일 테지만 타고난 완벽한 신체조건과 테크닉, 표현력, 쇼맨십 등 댄스스포츠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댄스스포츠 월드챔피언 커플 율리야 자가루이첸코와 리카르도 코키>

러시아는 유럽의 문화를 받아들여 종주국보다 훨씬 더 러시아 고유의 예술적 스타일을 만들어 러시아화하는데 매우 능하다. 프랑스에서 들어온 발레가 그러했고, 피겨 스케이팅 또한 그러했다. 이제는 댄스스포츠도 접수한 듯 보인다. 세계적인 월드클래스 볼룸댄서인 슬라빅과 율리야 이 둘의 공통점은 구 소련시기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태어나 댄스스포츠 활동을 위해 미국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러시아 예술가들이 모국을 떠나 활동하여 전 세계의 예술계의 판도를 바꿨다. 이제는 그들을 러시아 또는 구소련의 볼룸댄서라고 말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연말과 신년은 신나는 음악과 춤이 있는 파티가 있어야 제 맛일 테지만 올 해는 어느 때 보다 조용히 보내야 할 것 같다. 내년의 유럽과 러시아의 신년파티에서는 볼룸댄스를 출 수 있는 시기가 올 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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