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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러시아 에나멜 공예, 피니프티
분류전통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0-12-01
조회수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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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일산 킨텍스에서 국내를 비롯해 세계 시계 애호가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행사가 개최되었다. 스위스 시계제조사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이 2015년 브랜드 탄생 260주년을 기념해 한국문화재재단과 함께 국내 무형문화재 장인의 전통공예를 후원하는 <헤리티지 프로젝트>를 발족한 이후, 2016년 그 두 번째 프로젝트를 공개했던 것이다. 당시 프로젝트에서 가장 주목받은 제품은 1395년 조선의 밤하늘을 다이얼에 담아낸 ‘메티에 다르 트리뷰트 투 더 스카이 오브 1395(Metiers d’Art tribute to thesky of 1395)’였다. 국내 애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진행해야 마땅한 프로젝트를 외국 브랜드가 주도했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해외 애호가들은 이 시계를 브랜드가 독자적으로 보유한 다양한 에나멜 기법들이 총체적으로 적용된 훌륭한 제품으로 꼽으며 열광했다. 실제로 이는 조선시대 천문학의 상징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특별한 에나멜 공예기법으로 제작되었다. 18캐럿 화이트 골드 다이얼에 핸드 기요쉐(Guillocher) 기법이 사용되었고, 그랑 푀(Grand Feu)와 클로와조네(Cloisonne) 에나멜링 기법으로 밤하늘이 표현되었다. 이러한 세 겹의 에나멜 작업을 통해, 별의 밝기에 따라 각각의 크기를 다르게 표현한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섬세함을 구현해 내었으며, 금을 사용하여 하늘을 수놓은 3만 여개 별들의 거리감까지 재현했다. 또한 케이스 백에는 ‘1395년 조선의 밤하늘을 기리며(Hommage au Ciel Nocturne de l’année 1395)’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기도 했다. 당시 이 사실은 러시아 언론에도 보도가 되었는데, 러시아 애호가들은 이 시계에 적용된 에나멜 기법과 러시아식 에나멜 기법의 유사성과 차이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기도 했다.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좌) / <천상열차분야지도>(우)>


금속판이나 점토와 같은 바탕재료 위에 유약을 입히는 기법인 에나멜 공예(칠보공예)는 그 기원을 규정하기 어려울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다. ​에나멜 공예와 관련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2000년 전인 고대 이집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이집트사람들은 모조보석 기술을 발전시켰다고 알려져 있다. 이때, 즉 청금석이라 불리는 라피스라줄리(Lapislazuli)나 터키석(Turquoise) 등의 대체석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에나멜링 기법 또한 등장하게 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이를 에나멜 공예의 기원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후 에나멜 기법은 중동 지역을 거쳐 유럽과 동아시아지역으로 전파되었고, 중세 비잔틴 제국에서는 고위층 인사들이 금속에 칠보를 입힌 장식품을 즐겨 사용하기에 이르자 그 세공 기술도 큰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금속의 얇은 선으로 제품 내부 공간을 구획하는 ‘클로아조네’ 기법이 널리 사용되면서 다양한 색과 복잡한 도안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에나멜은 고대 이집트, 인도, 이란, 중국, 로마, 비잔티움을 거치며 광범위한 역사를 써왔으나, 에나멜 공예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오래도록 주목받은 유일한 나라는 러시아다. 에나멜 공예는 10세기, 비잔틴 제국과 교류를 시작하면서 러시아로 유입되어 피니프티(финифть)라는 이름을 얻었다. 러시아 보석세공사들은 바다를 건너온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 이콘, 교회 용품, 종교 서적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이후 모스크바 장인들은 작은 가정용품을 에나멜로 제작했으며, 각종 인형과 보석함, 펜과 잉크병, 시계, 장신구, 담배파이프 등의 피니프티 제품들이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당시 일반 러시아 대중들은 귀금속에 버금갈 만큼의 밝고 영롱한 빛을 발산하는 피니프티의 주재료를 ‘녹인 보석’으로 믿었던 까닭에 피니프티는 금, 은과 동일한 가치로 평가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시작된 피니프티는 러시아에서 어떤 주제적, 양식적 변화를 맞이했는가, 그리고 어떤 도시에서 번성할 수 있었는가?
 

프랑스 에나멜 공예의 유입과 러시아 피니프티

에나멜 공예 기법은 비잔틴으로부터 전수되었으나, 예술적 가치를 갖는 공예로서 러시아 피니프티는 17세기 프랑스 도시 리모주의 영향으로 형성되었다. 바로크 장신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 공예가 장 투탱(Jean Toutin)이 회화 에나멜을 처음 선보인 이후 프랑스에서 제작 기법이 크게 향상되었고, 비로소 러시아 피니프티 기법 역시 급격히 발전을 이루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면 프랑스식 에나멜 공예 작업과정을 살펴보자. 프랑스 모조 진주 제작자 자캥(Jaquin)과 장 투탱, 그리고 아버지의 장인정신을 이어받은 장 투탱의 두 아들이 오랜 연구와 실험을 이어간 결과 새로운 에나멜 페인팅이 발견되었고, 그 이후로 작업공정은 세 단계로 체계화되었다. 기본 공정은 작가가 흰색 에나멜 베이스를 준비한 다음, 패턴을 그려 넣고, 제품을 프레임에 삽입하는 순서다.

먼저 준비과정에서 베이스 플레이트는 금속 시트를 절단해 마련했으며, 여기에는 주로 구리, 청동, 황동, 금, 은이 사용되었다. 그 후 금속 표면을 평평하게 만든 다음 원하는 형태로 다듬고, 순백색의 표면을 만들기 위해 분쇄된 유리 분말을 입힌다. 그렇게 형태를 갖춘 재료는 불가마 속에서 매끄러운 흰색 표면의 에나멜로 완성된다.

그 이후부터는 예술가의 몫이다. 표면에 유리가루를 혼합한 페인트로 장식하는데, 이는 도자공예에서 그림을 그리는 방식과 유사하다. 작가는 이미지 스케치 작업과 굽고 식히는 과정, 마지막으로 미세한 세부장식을 그려 넣고 채색하는 과정을 거쳐 그림을 완성한다. 그리고 페인트의 각 층은 약 700-800도의 온도에서 템퍼링된다. 일반적으로는 세 차례의 굽기 과정을 거쳐 완성되나, 그림의 소재에 따라 최대 다섯 번의 작업이 요구된다.

에나멜 공예의 재료는 대체로 값비싼 편이었다. 페인트는 금속염(금속을 포함하는 산이 중화 반응하여 물과 함께 생기는 금속 화합물)으로, 구리는 녹색과 빨간색을, 코발트는 파란색을, 여기에 금을 첨가하면 밝은 빛이 감도는 보라색과 루비 색상을 얻을 수 있다. 또한 검정색은 터키석에서 노란색은 은에서 추출했다. 당시 채색 기법은 고도로 숙련된 장인의 기술을 필요로 했다. 에나멜에 적용된 그림은 수정이 불가능했으며, 자칫 브러쉬를 잘못 사용할 때면 전체 작업은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또한 염료 자체는 고온에 노출될 시 색이 변하는 속성을 갖는바, 소성 온도와 시간을 정확히 엄수하는 일은 아티스트의 의도와 계획을 온전히 실현하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되었다.

이렇게 구워진 에나멜은 금속 프레임에 삽입된다.(통상적으로 레이스 패턴) 통상적으로 완성된 에나멜은 습도와 온도에 쉽게 변색되지 않는 장점을 가지나, 충격에 취약한 것이 유일한 단점으로 꼽혔다. 따라서 크기가 작은 제품일수록 내구성이 뛰어난 특징을 가지며, 목걸이 펜던트, 귀걸이와 같은 제품들이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또한 피니프티는 에나멜 표면층이 긁힐 수 있는 경우를 고려해 다른 보석들과 별도로 보관해야만 했다.


<그림 작업 과정>


17세기 우솔리예 피니프티

러시아가 첫 번째 에나멜 공예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17세기다. 그전까지 피니프티는 키예프와 모스크바 작업장에서 제작되었으나, 프랑스 장 투탱에 의해 유색 에나멜이 등장하면서부터 러시아 북부지역으로 퍼져나가 대량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당시 대표적인 에나멜 공예품 생산 도시로는 우솔리예(Усолье)가 손꼽혔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볼로그다(Вологда)로까지 전해졌다.

당시 장인들은 유럽 공예품 및 예술 기법을 심층적으로 연구했다고 하는데, 그 결과 우솔리예 지역 공예가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패턴과 기법을 양식화할 수 있었다. 그들은 흰색 배경에 다채로운 식물들이 조화된 풍경, 새와 동물들이 평화로이 어우러진 자연, 슬라브 민속 설화나 북부지방 전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주로 묘사했다. 우솔리예 피니프티의 색채와 관련해서는, 공예 제작 초기에는 다채롭고 밝은 색상을 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림의 중심 주제 묘사에 주로 사용된 색채로는 빨간색, 노란색, 녹색, 파란색이 있으며, 이에 대한 음영처리는 분홍색, 황토색, 자주색을 사용했다. 이처럼 양식화 된 북부지방 피니프티 예술은 러시아 귀금속 공예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우솔리예 피니프티 예술가들은 모스크바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 초청되어 기법을 전수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18세기 초중반, 밀려드는 작업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화려한 멀티 컬러의 피티프티를 단 두 가지 색상(파란색, 녹색)만을 사용하는 제작 방식으로 바꾸었고, 화려한 색을 잃은 우솔리예 피니프티 산업은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우솔리예 피니프티>


18세기 로스토프 피니프티
 

아직 우솔리예 지역이 피니프티 공예로 명성을 떨치고 있던 18세기 초반, 러시아 피니프티의 명성은 해외로까지 퍼져나갔고, 그에 발맞춰 공예기술 역시 발전을 거듭했으며, 어느덧 에나멜 미니어처는 보석과 동등하게 평가되었다. 그 무렵 우솔리예는 피니프티 공예의 중심지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로스토프(Ростов), 니즈니 노브고로드(Нижний Новгород), 코스트로마(Кострома), 우글리취(Углич)에 내어주었고, 피니프티는 본격적인 번성기를 맞이했다. 미하일 로모노소프(М. Ломоносов)는 이 시기 피니프티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었다. 그의 주도 하에 유리가 페인트의 주된 재료로 사용되었고, 유리 공장이 세워지기도 했다. 또한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에 <피니피츠 페인팅живописи по финифти> 교과목을 개설하기도 했다.

특히 모스크바에서 북서쪽으로 2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로스토프는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의 하나다. 이곳은 우스펜스키 대성당, 네로 호반의 성벽 등 역사적 유적과 유물이 많이 남아 있는 러시아의 영적·종교적 중심지였고, 덕분에 이 지역 피니프티는 더욱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사실 이 시기 피니프티 장인들의 주요 고객은 일반 대중이 아닌 종교기관이었다. 견고하고 밝고 우아한 패턴들이 이콘 프레임과 성직자들의 사제복을 장식했으며, 러시아 각지에서 온 정교회 순례자들은 신성한 성지순례를 기념하기 위해 로스토프 교회나 수도원 상점에서 귀금속에 비해 저렴한 피니프티 기념품을 구입했다.

로스토프가 오랫동안 이콘화로 유명세를 얻었듯, 1760년 이곳에 설립된 첫 번째 피니프티 공방은 교회에 딸린 부속 장업장이었다. 그 규모는 점차 확장되어 로스토프는 러시아 전역 수도원에 피니프티를 공급하기 시작했고, 곧 정교회 상징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피니프티의 부흥은 세속적 주제를 다루는 피니프티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애나멜 장인들은 실생활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쟁반이나 접시 등 각종 생활용품과 귀걸이, 목걸이, 반지와 같은 정신구들을 만들었다. 부유한 집안의 여성들은 보석 대신 피니프티가 달린 팔찌와 반지, 브로치를 착용했고, 남성들은 피니프티 시계, 담배파이프, 담배 보관함 등을 즐겨 구입했다.


<로스토프 피니프티>


19세기, 로스토프 피니프티 장인들의 생계를 책임진 주요 상품은 성인들이 묘사된 이콘과 로스토프 수도원 전경이 그려진 금속상자였다. 많은 공예가들은 저명 이콘 화가들의 작품을 모방했고,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바스네초프(В. Васнецов)와 같은 화가들의 그림을 복제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또한 이 시기 상류층 사람들에게 인기 있었던 제품은 피니프티 기법을 적용한 개인 초상화였다.

그러나 20세기로 접어들 무렵 로스토프 피니프티의 수요는 점차 줄어들었다. 공예품 제작 기술이 새로이 개발됨에 따라 피니프티 생산은 경제적으로 수익성이 떨어졌으며, 공예가들은 하루에 수백 개의 제품을 생산해야했다. 예술가들은 정해진 패턴에 따라 기계적으로 그림을 그려댔고, 자연스레 피니프티 공예의 예술성 문제는 대량 생산 시스템 속에서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소비에트 시대의 피니프티 

로스토프 에나멜은 소비에트 시대에 이르러 세 번째 도약을 이어갔는데, 이는 조스토보나 그젤과 같은 다른 민속공예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던 상황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상류층 사람들의 초상화 제작이 주된 수입원이었던 까닭에 피니프티 공예는 1917년 10월 혁명 이후 새 정부가 요구했던 새로운 요구에 부합할 채비를 이미 마친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1920~30년대 로스토프 피니프티 공예가들은 묘사의 대상을 상류층 인사들에서 전쟁 영웅과 노동영웅으로 빠르게 대체했다. 작품 안에는 전통적인 꽃장식 대신 붉은 별, 망치, 낫 등 소비에트 국가의 슬로건이 등장했고, 성서적 인물 대신 레닌과 스탈린을 비롯해 소비에트 정부 인사들의 초상화가 그려졌다. 그들은 주로 브로치와 보석함을 제작했으며, 예술가들은 역사적 인물과 혁명 영웅, 저명 과학자와 우주 비행사를 묘사하며 그 명맥을 이어갔다.


<소비에트 시대의 피니프티>


오늘날 로스토프의 피니프티 산업은 여전히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소비에트 붕괴 이후에는 성서적 주제의 에나멜 회화가 부활했는가 하면, 과거 인기품목이었던 교회용품들도 다시금 제작되어 여행객들을 위한 기념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현재 로스토프에는 피니프티와 관련한 여러 협회와 공장이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러시아 전역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이콘, 보석류, 식기류, 장식품 등이 생산되고 있다. 러시아 각지의 공예 작업장들이 현대식 대량생산 시스템이 갖추고 있음에도 이곳의 많은 작업자들은 여전히 수작업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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