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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춤을 위한 변명: 헐리우드 영화배우로 전향한 구소련 발레리노들의 계보
분류공연예술
국가 러시아
날짜2020-11-16
조회수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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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겨울 불금의 밤마다 우리들을 TV 앞으로 소환하게 만들었던 TVN의 <응답하라 1988>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여기에 등장했던 젊은 배우들이 모두 스타덤에 오른 것은 물론이고, 여기에 등장했던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레트로 아이템들과 음악, 광고 등의 레트로 콘텐츠들도 함께 다시 유행을 탔다. 그 중하나가 극 중 등장인물 선우(고경표 분)가 고등학교 시절 교실 뒤에서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한 스포츠 의류 광고의 한 장면인 의자를 타고 넘어가는 장면을 재현하며, 한 때 이 광고를 촬영하며 하루아침에 일약 스타로 떠오른 이종원 배우와 함께 이 광고도 세월이 무색하게 유튜브를 뜨겁게 달궜다. 이 광고가 나왔던 1989년 당시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남학생들이 이 광고를 따라하다가 교실에서 수많은 의자들이 부서져 나갔다는 후문이 들릴 정도로 당시 이 광고의 인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도 소싯적에 이 광고를 따라하다가 의자를 부숴본 적이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장면의 원조배우는 따로 있다. 사실 이 광고는 미국 영화 <백야(White Nights)>(1985)의 인트로 장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의 첫 장면에서 소련출신의 유명한 발레리노였지만, 1974년에 망명하여 미국의 ABT(아메리칸 발레 씨어터)의 수석무용수로, 또 영화배우로 활동했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프랑스의 안무가 롤랑 프티(Roland Petit, 1924-2011)의 1946년 작 단막발레 <젊은이와 죽음(Le Jeune Homme et la Mort)>을 공연하는 장면에서 “의자를 우아하게 타고 넘어가는” 바로 그 문제의 장면이 등장한다. 당시 글로벌 스포츠 의류 브랜드의 광고에서도 영화 <백야>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를 모델로 하여 광고를 만들고 싶었으나 1980년대 말 우리나라의 광고 정책상 외국 모델을 쓸 수 없었기에 우리나라 모델로 촬영했다고 한다.

구소련 남성 무용수들의 망명은 항상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961년 루돌프 누레예프의 망명이 그러했고, 13년 후 바리시니코프의 행보 또한 그러했다. 물론 이들이 소련을 대표하는 발레스타들이기는 했지만, 유독 소련에서 망명한 남성 무용수들의 관심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바리시니코프에 앞서 1970년에 나탈리아 마카로바(Н.Р. Макарова, 1940~ )가 미국으로 망명했지만, 남성무용수들에 비해서 그녀의 행보에 대해서는 이슈화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구소련부터 현재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구소련을 떠나 헐리우드 배우로 전향하여 활동하고 있는 구소련의 발레리노의 계보를 살펴보려고 한다.


<영화 <백야>의 인트로의 바리시티코프 (좌), <응답하라 1988> 중 한 장면(우)>
[출처] TVN(우)

지젤의 영원한 지그프리트 왕자 미하일 바리시니코프(М.Н. Барышников, 1948~ )

1986년 우리나라에 영화 <백야>(1985)가 개봉되면서, 바리시니코프가 우리사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이 영화의 주인공인 소련에서 망명한 발레리노 역을 소련에서 망명한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연기한다는 것이 더 큰 이슈가 되었었다. 당시 우리나라와 소련은 국교수립이 되지 않았기에 가볼 수 없는 나라 소련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호기심은 무궁무진 했을 것이다. 특히 영화에서 보여주는 춤을 위해 자유의 길을 선택한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함께 유명한 미국의 탭댄서 그레고리 하인즈(Gregory Hines, 1946-2003)와 추는 재즈댄스, 총을 사기 위해 피루엣 1바퀴에 1루블씩 걸고, 한번에 11바퀴의 피루엣(Pirouette)을 우아하게 돌아내는 우월한 클래식 발레실력, 그리고 마린스키 극장에서(이곳이 진짜 마린스키 극장의 배경은 아니란 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자신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블라디미르 븨소츠키(В.С. Высоцкий, 1938-1980)의 야생마(Коны привередливые)의 노래에 맞추어 절규하듯이 추는 춤으로 설명하는 장면 등 이 영화에서 관객들이 바리시니코프의 매력에 매료되기에 충분했다. 1992년 우리나라에 븨소츠키의 음반이 발매될 정도로 그의 춤은 인상적이었다. 바리시니코프가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센세이셔널한 춤 실력이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즈음,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미드 (1998~2004)에서 주인공 캐리의 마지막 러시안 남자친구 알렉산더 페트로프스키로 등장하여 그의 존재감을 다시 확인 시켜 주었다. 아마도 젊은(?)세대들에게는 캐리의 남자친구로 설명하는 것이 빠를 것이다. 


<미드 Sex and the City에서 열연 중인 바리시니코프(좌), 
영화 <백야>에서 븨소츠키의 <야생마>에 춤을 추는 바리시니코프(우)>
[출처] The Australian Ballet(좌)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는 1948년 라트비아의 리가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부터 뛰어난 춤실력으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바가노바 발레학교로 스카웃되어, 졸업 후에는 키로프 발레단(현,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하여, 수석무용수로서 지젤의 영원한 지크프리트 왕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정도로 완벽한 연기를 선보였다. 그러던 그가 계속되는 창작의 제약과 검열을 견디지 못하고 7년 간의 키로프 발레단 수석무용수 생활을 마감하며 자유의 길을 선택했다. 미국에서 그는 영화 <백야>를 시작으로 발레영화 <지젤>(1988), <마오의 라스트 댄서>(2009) 등 춤을 주제로 한 영화 작업을 하고 있으며, 미국을 대표하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수석무용수를 거쳐 예술감독을 역임하였고, 2005년 바리시니코프 아트센터(BAC)를 설립하여,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고희(古稀)가 넘은 나이에도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영화, 춤, TV 드라마 등 장르를 불문하고 종횡무진하며 활동하고 있다. 바리시니코프가 망명하지 않고, 소련에 계속 남아있었다면, 세계의 발레계는 어떠했을지 궁금해진다.


<춤을 추는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헐리우드 영화의 악역전문 배우 알렉산드르 고두노프(А.Б. Годунов, 1949-1995)

알렉산더 고두노프는 바리시니코프가 망명 후, 5년 후인 1979년에 미국으로 망명하여, 바리시니코프의 그늘에 가려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아마도 그의 망명은 바리시니코프의 영향이 큰 듯하다. 그는 망명 후 바리시니코프가 ABT에서 예술감독으로 재직 당시, 수석무용수로 활동하던 중, 1982년 바리시니코프와의 불화로 무용단에서 탈퇴하고, 개인무용수로 활동하며, 영화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1985년 피터 위어 감독, 해리슨 포드 주연의 영화 <위트니스(Witness)>의 아미쉬 농부역으로 출연하면서 헐리우드 영화계에 데뷔했다. 1980년대를 풍미한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헐리우드 액션영화 <다이하드(Die Hard)>(1988)에서 독일인 악당 칼 역을 맡으며 배우로서 인지도를 알렸다.

1949년 사할린에서 태어난 알렉산드르 고두노프는 유년시절 그의 어머니는 그가 나쁜 길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발레를 시켰다고 한다. 1958년 리가에서 바리시니코프와 같은 클래스에서 발레를 시작한 고두노프는 1971년 볼쇼이 발레단에 입단하여 수석무용수로 활동하며, 마이야 플리세츠카야(М.М. Плисецкая, 1925~2015) 등 당대 최고의 발레리나와 함께 파트너로 공연하며 소련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 유명세를 날렸다. 1979년 8월 19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공연 다음날 뉴욕포스트에 고두노프의 사진과 함께 “바리시니코프, 누레예프 그리고 마카로바의 뒤를 이어 또 한명의 소련 발레스타가 서방세계에 남았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면서, 그의 미국 망명은 공식화되었다. 그가 사라진 것이 확인되자 그의 부인이며 함께 공연에 참가하고 있던 볼쇼이 발레단 솔리스트 류드밀라 블라소바(Л.И. Власова, 1942~ )는 소련으로 즉각 송환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비행기 이륙 직전, 이륙이 중지되었고, 3일 후 당시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와 소련의 레오니드 브레즈네프의 긴급중재가 이루어졌다. 그녀가 소련으로 돌아가겠다는 자신의 의사를 밝힌 이후에야 그녀는 소련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러한 그의 드라마틱한 망명기는 1986년 영화 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그는 소련에서부터 미국의 문화를 좋아하고 미국적인 삶의 방식을 경외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직면한 미국에서의 삶은 그가 항상 꿈꿔왔던 그 것과는 많은 괴리가 있었던 듯하다. 무용수를 은퇴하고 영화배우로 전향하여 영화 <다이하드>로 어느 정도 인지도는 얻었지만, 배우의 삶도 그렇게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러시아 특유의 발음으로 다양한 배역을 맡기에는 제약이 따랐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과도하게 술을 마셨고, 1995년 45세의 젊은 나이에 만성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간염으로 사망에 이르렀다. 


<영화 <다이하드>에서 브루스 윌리스와 열연 중인 알렉산드르 고두노프(좌),
볼쇼이 발레단 시절의 알렉산드르 고두노프(우)>     
[출처] www.spletnik.ru(우)

누레예프에 대한 오마주 세르게이 폴루닌(С. В. Полунин, 1989~ ), 올렉 이벤코(О.Ивенко, 1996~ )

2018년 우리에게 <쉰들러 리스트>와 <잉글리쉬 페이션트>로 잘 알려진 배우 랄프 파인즈가 감독으로 메가폰을 잡고 소련의 전설적인 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Р.Х. Нуреев, 1938-1993)의 삶을 다룬 작가 줄리 카바나(Julie Kavanagh)의 소설 “누레예프: 그 삶(Nureyev: The Life)”를 바탕으로 영화한 <화이트 크로우(The White Crow)>가 개봉했다. 실제로도 매우 보기 드문 것이 하얀 까마귀이며, 러시아에서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하얀 까마귀(Белная Ворона)”는 누레예프에 대한 오마주라고 볼 수 있다. 1961년 프랑스 파리 공연중 정치적 망명을 선언한 그는 프랑스 파리 오페라의 수석무용수를 거쳐 예술감독까지 역임하고 영국의 발레리나 마고트 폰테인과의 17년간 지속된 환상의 듀엣으로 유명한 소련의 천재적인 발레리노였다. 루돌프 누레예프는 생전에도 전 세계의 발레 팬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지만, 사후에도 그의 예술과 삶을 모티브로 한 영화, 다큐멘터리, 책 등을 통해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공연하는 루돌프 누레예프(좌), 영화 <화이트 크로우> 포스터>

이러한 누레예프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한 이 영화에서 우크라이나 태생의 두 발레리노 출신 배우 올렉 이벤코와 세르게이 폴루닌가 열연을 펼쳤다. 주인공 누레예프역에는 누레예프의 젊은 시절과 높은 싱크로율을 보이는 신예 이벤코가 맡았고, 폴루닌은 누레예프의 바가노바 발레학교 재학 시기 룸메이트였으며, 1960-70년대 키로프 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누레예프, 바리시니코프, 나탈리아 마카로바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유리 솔로비요프(Ю. В. Соловьёв, 1940-1977)를 연기했다. 이벤코와 폴루닌은 2012년 러시아-쿨투라 채널의 TV 발레 콩쿠르 쇼 <볼쇼이 발레> 시즌 1에 함께 출연한 이력이 있고, 6년 후, 영화 <화이트 크로우>에서 다시 만났다.

세르게이 폴루닌은 어린 시절부터 발레 천재로 주목을 받으며, 로얄 발레단의 간판스타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무용인생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영화 <댄서>(2016)에서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짐승”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영화배우로서 화려하게 데뷔하여 이번이 4번째 영화 출연으로 인생의 제2막을 살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주연을 맡은 올렉 이벤코는 이 영화 전에는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벤코의 캐스팅은 이례적이었다. 사실 그는 타타르공화국의 공훈 예술가였다는 것 말고는 앞서 언급한 구소련의 발레리노들에 비하면 춤이력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젊은 나이이기에 앞으로 영화배우로서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이 영화에서 반전 매력을 선보인 사람은 바로 이 영화의 감독이며 누레예프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멘토이자 발레마스터 알렉산드르 푸슈킨역을 맡아 러시아어로 열연했던 랄프 파인즈이다.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라 감독으로서의 연출력도 인정받았다. 


<영화 <화이트 크로우>에서 열연하는 세르게이 폴루닌과 올렉 이벤코>


자유롭게 춤을 추기 위해 목숨을 걸고 서방세계로 뛰어들었던 소련의 발레리노들은 서방세계에서도 그들의 타고난 재능으로 화려한 불꽃과 같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평생을 발레 이외의 삶은 생각할 수도 없었던 소련의 발레리노들의 자유를 찾은 듯 보이는 삶 또한 그리 평탄해 보이지 만은 않았다. 그들의 무대를 이제는 영상으로만 볼 수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2020년 공연예술계는 이데올로기가 아닌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하루 빨리 극장에서 공연을 볼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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