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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접경 도시 븨보르크 대한 소고(小考)
분류지역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0-09-16
조회수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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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테르부르크 유학시절 핀란드의 헬싱키에 자주 갔었다. 깨끗하고 정돈된 헬싱키가 마음에든 이유도 있었지만, 헬싱키를 통해 스웨덴으로 가는 유람선을 타려는 지인들의 도우미 역할을 자주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러시아 여행의 일정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마감하고 북유럽의 관문역할을 하는 헬싱키로 가는 가장 쉽고 편안한 방법은 ‘북방의 베니스’의 핀란드역(러시아역의 이름은 대체로 도착지 명을 따서 만든다) 에서 핀란드 태생 유명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이름을 붙인 기차를 타는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핀란드역>

그러나 북유럽의 독특한 자연과 사우나의 본 고장에서 몸소 ‘핀란드식 사우나’를 직접 체험하고자 하는 진정한 여행객들은(시벨리우스 기차를 타는 것 보다는 엄청 귀찮고 피곤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지만) 완행열차나 버스를 이용하여 러시아에서 핀란드로 이동해야 한다. 이러한 여정의 복병은 바로 국경통과이다. 러시아와 핀란드의 접경지역에서 출입국 허가를 받는 아주 긴 시간을 기다릴 인내만 있다면 이 육로를 통한 여정은 러시아-북유럽 여행의 최상의 프로그램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정은 ‘자일리톨’로 잘 알려진 핀란드 민족의 삶과 호수의 나라의 자연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최상의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꼭 통과해야하는 러시아와 핀란드 국경의 접경도시가 있는데, 그 곳이 븨보르크(Выборг)이다.

핀란드만 북동부의 븨보르크만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븨보르크는 ‘현재’ 러시아 영토이다. ‘현재’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이 도시에서 1290년대 부터부터 1940년대 중반까지, 즉 700여 년 동안 스웨덴-러시아-핀란드가 돌아가면서 주인행세를 하였기 때문이다. 발트해의 영원한 강자였던 스웨덴의 세력을 약화시킨 결과를 가져온 피터대제의 ‘북방전쟁’ 이후,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된 븨보르크는 1917년 혁명으로 잠시 핀란드의 영토로 되었다가, 1944년 붉은 군대의 공격으로 영원히 러시아 품으로 다시 돌아온 다이내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븨보르크 도시 전경>


븨보르크는 아직도 공산주의 시절에 사용한 명칭을 그대로 쓰는 ‘레닌그라드주’를 구성하는 마을들 중에서 가장 낭만적인 도시로서, 러시아의 평범한 도시들과 매우 다르다. 이 도시의 원래 주인은 카렐리아인들이었지만, 중세이후 현대까지 북유럽 민족과 슬라브족이 번갈아 가면서 이 도시의 문화적 환경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구축했기 때문에 어떤 민족이나 어떤 특정 시대의 매트릭스로 이 도시의 성격을 규정할 수가 없다. 이러한 특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소가 바로 도시의 중심에 있는 광장인데, 이 공간에는 13세기 말부터 축조된 고대 건물과 20세기 초・중반에 핀란드인과 러시아인들이 만든 현대식 관청용 건물들이 부조화적으로 섞여있다. 그래서 븨보르크는 북유럽도 러시아도 아니고, 중세도 현대도 아닌 그야말로 딱히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한 개성을 가진 도시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도시가 소유한 고유한 특성에는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가 각각 동동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말 븨보르크를 방문했을 당시, 이 국경에 위치한 도시에 대해서 내가 가진 정보는 ‘러시아 북부의 대규모 산업 중심지인 항구도시로 인기 있는 관광지’라는 정도였다. 그래서 페테르부르크의 모스크바역 광장에서 매일 밤 출발하는 핀란드행 버스를 타고, 헬싱키를 오고가는 러시아 보따리 장수사이에 끼여서 이 도시를 처음으로 보았을 때, 븨보르크를 접경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아담한 시골마을로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적잖이 놀랐다. 왜냐하면 븨보르크의 구시가지의 모습은 러시아와는 다른 이국적이고 서구적인 분위기였고, 러시아식 행정건물 사이로 도시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중세 스웨덴 성의 모습과 독특한 도시 구조에서 섬세하지만 복잡한 문화접변에 대한 강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러시아 도시에 넘쳐나는 핀란드 관광객들을 목도했던 것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븨보르크의 역사와 스웨덴 문화

9세기에 사람이 살만한 도시가 건설된 븨보르크에 스웨덴의 기사들이 등장한 정확한 연도는 1293년경이다. 카렐리아인들이 거주하는 이 지역에 대한 십자군 전쟁 중 스웨덴 왕 토를기스 크누트손의 섭정(1290-1298)의 결정에 따라 아주 거대한 성이 세워졌다. 고대 스칸디나비아어로 ‘성스러운 요새’를 의미하는 ‘븨보르크’ 불린 이 성은 피터대제에 의해서 스웨덴이 북방전쟁에서 패전하기 까지 500여 년 가까이 동으로 세력 확장을 위한 스웨덴의 전초 기지가 되었다. 이 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요새를 따라 성장한 도시가 바로 성과 같은 이름을 가진 븨보르크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토를기스 크누트손이 이 도시 부흥의 역사를 만든 스웨덴왕이다. 그래서 그를 기념하기 위해서 현재 븨보르크 시 청사 앞에 그의 기념비가 전시되어 있다.


<븨보르크 성>

븨보르크에 뚜렷하게 남아 있는 스웨덴 문화유산으로 대표적인 것이 <븨보르크>성이다. 아주 오래전에 세워진 이 성채는 높이가 50미터로서 도심에서 분리된 ‘성 아일랜드’에 솟아 있으며, 성 주위에 있는 모든 방향에서 물로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맑은 날이면 섬 위에 있는 성채가, 마치 아름다운 호수위에 떠다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신비한 마법의 나라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떠오르게 한다. <븨보르크>성은 도시의 상징이면서 도시의 관광 명소이다. 중세시기에 창조된 것으로 서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요새와 성의 아름다운 집합체를 러시아에서 볼 수 있는 공간은 븨보르크가 유일하다. 어떤 면에서 보면 단순하고 소박한 성채가 성 안의 탑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가 러시아의 이웃 나라인 라트비아나 리투아니아 등의 고대 도시를 연상하게 한다. 그래서 이러한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븨보르크>성이 이 도시를 방문하는 러시아 관광객의 필수 관람 순위 1위가 된 것도 당연한 것 같다.

<븨보르크>성의 또 다른 매력은 독창성이 뛰어나면서 실용적인 면에서도 쓰임새가 아주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성을 찬찬히 둘러보면 관람객들은 이 성이 마치 도시의 축소판 같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성 내부에는 무기고, 주거용 건물, 와인 및 식품 저장고, 감옥, 창고 및 대장장이 마당이 위치하고 있어서, 마치 작은 모형 도시를 보는 것 같다. 역사와 건축의 기념비적 유산인 <븨보르크>성은 현재 박물관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이 박물관에는 도시를 점령하기 위한 전쟁에 관한 사료, 카렐리안 지협의 역사적인 성격과 자연적인 특성, 스웨덴 및 핀란드 시대의 도시 역사에 대한 자료 등이 상시 전시되고 있다. 븨보르크성과 함께 스웨덴 문화가 스며있는 도시의 최고 명소중의 하나가 바로 성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성(聖) 올라프 탑’이다. 14세기부터 존재한 이 탑에는 ‘향토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 탑의 고풍스러운 계단을 거쳐, 탑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시내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븨보르크의 역사와 핀란드 문화

1917년 혁명이 일어나면서, 그 시점까지 180여 년 동안 러시아의 압제를 견뎌온 핀란드 에게 기회가 왔는데, 도시 븨보르크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2월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볼셰비키가 큰 영향력을 행사 한 도시에서 븨보르크 군인 및 노동자 대표단이 선출되었다. 1918년 전반기에 븨보르크 운명에 전환점이 왔는데, 1918년 1월 독립 선언 후 핀란드에서 내전이 발발했고 븨보르크는 핀란드 붉은 군대의 주요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와는 달리, 핀란드 붉은 군대는 패배했다. 그 후폭풍은 정말로 강하게 불어와서, 븨보르크는 핀란드 나라 전체와 마찬가지로 공화당의 통치를 받게 되었는데, 븨보르크의 주인이 러시아에서 핀란드로 바뀐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1918년에서 1940년 까지 븨보르크는 핀란드 영토가 되어 ‘비푸리’라고 불렀다. 정치적, 지리적 관계로 인해서 븨보르크의 점령전쟁에 참가했던 세 나라 중 상대적으로 가장 힘이 약한 핀란드가 이 도시를 차지하게 된 것은 약간의 운도 따랐다.

핀란드가 주인이 된 븨보르크에 가장 큰 문화적인 변화는 바로 그 전까지 븨보르크의 특징이었던 국제주의 분위기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핀란드어를 사용하는 인구의 꾸준한 유입으로 핀란드어는 븨보르크의 공식 언어가 되었고, 반대로 러시아어, 독일어 및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마을 사람들의 수가 비례 적으로 크게 감소했다. 당연히 핀란드 문화가 븨보르크 도시 전체에 순식간에 퍼졌는데, 이러한 것이 동력이 되어 핀란드에서 독립적인 위치를 유지한 븨보르크는 규모면에서 핀란드 동부의 두 번째 도시이자 문화 및 사회생활의 중심지로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핀란드 정계의 주요 정당들(사회 민주당, 농업 연맹, 민족주의적 성격의 다양한 정당들)과 정치인들이 이 도시의 지부에서 활동했다. 이러한 도시의 발전에 걸맞게 외교적으로도 핀란드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의 하나로 변모했는데, 븨보르크는 무역 분야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외교의 카운터파트너 도시였다. 당연히 많은 나라들이 븨보르크에 영사관을 건설하였다.


븨보르크의 역사와 러시아 문화

러시아의 서구화를 전격적으로 단행한 피터 대제는 그 당시 스웨덴군이 소유한 발트해의 해상권을 러시아로 가져오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1701년 북방전쟁 일으켜 집요하게 스웨덴을 공격하였는데, 그 군사계획에 븨보르크의 점령도 포함되어 있었다. 1706년에 피터대제는 스웨덴 요새를 점령하고 븨보르크를 포위하려 했지만 그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에 대한 공세는 계속 되었는데, 1710년에야 븨보르크는 러시아 군대와 해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핀란드를 장악한 러시아 군대는 1719년경부터 스웨덴 본토까지 공격하기 시작했다. 바다를 좋아한 피터대제의 극성스러운 해군력 강화 덕분에 러시아군은 그 당시 최강의 해군력을 보유한 스웨덴에 대한 최종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전쟁의 마무리로 1721년 ‘니슈타트 평화 조약’이 체결 되었다. 이 조약에 따라 븨보르크는 공식적으로 러시아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븨보르크를 얻게 된 러시아는, 핀란드가 잠시 점령한 20세기 초반을 제외하고, 1721년 이후 지금까지 실효적으로 븨보르크를 점령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러시아는 이 도시를 유·무형으로 발전시켰고 지금의 븨보르크의 주요 문화가 된 러시아식 문화를 이식했다. 특히 러시아 정부가 주도가 되어 진행한 1993년 8월에 있었던 도시 탄생 700주년 축제는 븨보르크 도시의 일상 속의 러시아 문화를 소개하는 의미 있는 문화 행사였다. 그런데 도시 생일 700주년의 원년으로 삼은 해가 스웨덴의 고성이 축조된 해라고 하니, 이 축제를 통해 븨보르크 도시 문화 및 역사 속에 내재된 러시아 문화와 북유럽 문화와의 문화 접변현상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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