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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러시아 점토공예: 민중예술의 진주, 필리모노프 도기인형
분류전통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0-09-16
조회수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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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몬 할아버지 이야기> 축제

사물에 장식적 가치를 부여한 민중미술로서 공예는, 호모 하빌리스로부터 이어온 우리 인류의 삶, 도구와 함께한 우리네 삶과 그 역사를 함께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손을 빌어 인류가 탄생시킨 유형의 유산, 공예를 통해 인간은 기술적 진보를 이루어 왔고 일상 속 삶의 멋을 한껏 만들어 왔다. 이렇게 보면, 공예는 단순히 실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제작하는 실용기술로 인식되기 보다는, 인류의 진보 역사가 담긴 주요한 하나의 문화예술 영역으로 간주될 만하다.

작년 7월, 러시아 툴라 주에 위치한 작은 마을, 오도예프에서 이색적인 축제가 개최됐다. 바로 도기 예술을 주제로 한 지역 축제 <필리몬 할아버지 이야기Сказки Деда Филимона>가 열린 것이다. 형형색색의 다채로운 러시아 도자기 수공예품들이 한 자리에서 선보여졌고, 이를 체험하기 위해 5000여 명의 관광객들이 이 작은 도시로 모여들었다. 당시 이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툴라 문화부 국장 이리나 이바노바(И. Иванова), 오도예프 교육기관장 발레리 크루프닌(В. Крупнин), 러시아 연방 하원의원 나탈리아 필류스(Н.Пилюс), 필리모프 장난감 박물관장 세르게이 쿠즈네쪼프(С. Кузнецов), 러시아 문화발전 통합센터장 엘레나 아르베코바(Е. Арбекова)등의 인사들이 오도예프를 방문했고,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20여개 지역 출신 도예가와 도자인형 제작자들이 모여 다채로운 축하 행사에 참여했다.

이처럼 러시아 장난감 산업의 중심지 오도예프 시 필리모노프 장난감 박물관은 러시아 도예 유산을 홍보하고 대중화하기 위해 툴라 지역 정부와 협력하여 오도예프 축제를 격년으로 개최하고 있다. 이 축제는 2013년을 시작으로 2019년까지 총 네 차례 치러진 바 있으며, 주최 측은 얼마 전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현재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며 2021년 7월 축제 준비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언론사의 보도 내용을 뒤로 하더라도, 사실 2019년 행사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의 명단을 통해 최근 들어 러시아 정부 여러 부처에서 민속공예를 지원하는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러시아인들이 도자공예가 러시아의 전통과 특수성을 설명해주는 공예품으로서 갖는 문화적 가치, 전통의 계승을 통해 창출될 수 있는 예술적, 산업적 가치에 무엇보다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필리모노프 도기인형, 그 역사의 시작

400여 년간 공예와 금속가공의 중심지로 이름을 떨쳐온 툴라 주의 필리모노프 마을에서 도기공예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6세기부터였다.(고고학자들은 러시아 점토공예의 기원에 대해, 오도예프 지역 젬추즈니코보 유적발굴지에서 9-11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공예품이 발굴되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점토 조각에 그림을 그리는 제작기술은 고대 오도예프 지역에서 출발했다고 보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 작은 마을은 다른 지역에 비해 곡물 수확량이 유난히 적어 가난했고, 항아리와 그릇을 제작해 판매하는 것이 마을 사람들의 유일한 수입원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필리모노프 마을 100가구 중 75가구가 도자기 제작을 업으로 삼아 생계를 이어갔다. 필리모노프 마을의 명칭 역시 도예가 필리몬(горшечник Филимон)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는데, 필리몬은 이 지역에서 다양한 도구들을 제작 할 수 있는 부드러운 점토를 발견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 후 이 곳 남성들은 도자기, 벽돌, 굴뚝 등을 제작하게 되었고, 도자기 공예는 수세기 동안 이 마을을 번성토록 했으니, 필리모노프 마을은 예로부터 가히 공예마을이라 불릴 만 했다.

이처럼 마을 주민들은 생계를 위한 항아리와 그릇을 만들었는데, 작업이 끝날 때 즈음에는 언제나 꽤 많은 양의 잉여분 점토가 쌓여있었다. 그들은 남은 진흙을 버리지 않기 위해 크기가 작은 작은 휘파람 악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 작은 점토 조각들은 바로 필리모노프 도자장난감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렇게 피리의 기능을 갖고 있는 도기 인형은 비교적 크기가 큰 품목에 적합하지 않은, 판매 목적을 위한 다른 제품을 만들고 남은 재료로 만들어졌다. 장난감 제작 초기, 앙증맞은 모양의 장난감들은 동네 어린이들의 몫으로 돌아갔고, 시간이 흘러 점차 시장에서 판매되는 지역문화상품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전통적으로 도기인형을 제작한 사람들은 주로 소녀들과 할머니들이었다. 마을 할머니들은 여자 아이가 태어나 일곱 살이 될 무렵부터 손녀들에게 공예품 제작법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이들은 성장기 내내 도자기 굽는 법과 그림 그리기를 위한 비밀노하우를 할머니로부터 전수받았다. 그렇게 도제 피리를 판매하며 벌어들인 돈은 훗날 소녀의 혼인 지참금으로 사용되었으며, 그들은 인근지역에서 ‘свистуличница’로 불렸다.


<필리모노프 도기 장난감>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필리모노프 장난감은 툴라 지방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볼셰비키 혁명 이후 러시아 내 공예산업은 점차 퇴보해 갔고, 필리모노프 공예 역시 같은 운명에 처했다. 그 당시 이 마을에서 꾸준히 도예작업을 이어간 장인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들은 예술사학자들과 수집가들, 그리고 젊은 예술가들에게 민속예술로서 도예를 가르치며 공예기술의 보존과 계승에 힘썼다. (당시 공예품 생산을 포기하지 장인들로는 안토니나 카르포바(А. Карпова), 안나 데르베뇨바(А. Дербенёва), 알렉산드라 마슬렌니코바(А. Масленникова)가 필리모프 도기인형 역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1980년대에 이르러 필리모노프 공예가 마침내 다시금 부활할 조짐을 보였다. 이 시기에 아브람체보 산업미술학교 졸업생과 필리모노프 공예가 후손들이 협력하여 오도예프 지역의 도기공예 창작 그룹이 만들었고, 이 단체는 도기인형의 부활과 부흥에 전념했다.


필리모노프 도기인형의 형태와 색채, 그리고 무늬 

필리모노프 도기 인형은 휘파람 소리를 내는, 일종의 피리의 기능을 갖는 악기로, 오늘날 ‘민중예술의 진주(Жемчужина народного искусства)’로 불린다. 그렇다면 그 형태와 색채, 무늬 등 도기인형의 전체적인 특징을 살펴보자.

대체로 필리모프 도기공예가들은 사람과 동물의 모습을 묘사했으며, 때로는 하나의 작품 안에 여러 인물을 조각하기도 했다. 인형의 형태는 대체로 군더더기 없는 단순한 모양으로 제작되었다. 여성 인형은 러시아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귀부인의 모습으로, 남성 인형은 귀족 신사 또는 군인의 모습으로 제작되었다. 여성과 남성 캐릭터들 모두 작은 몸통에 허리가 매우 가늘며, 대신 볼륨감 있는 하의를 입은 모습이었다. 인형의 머리는 목 부분과 너비차가 크지 않으며, 머리 장식의 경우, 여성 캐릭터는 스카프나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대체로 숙녀의 손에는 아기나 새가, 신사의 손에는 수탉이나 거위가 들려있었다. 동물 모양의 인형도 많이 제작되었는데, 곰, 말, 소 및 사슴이 자주 묘사되었다. 대체로 각 동물들이 갖는 고유한 특징들은 작품 안에 잘 적용되어 있었지만, 거의 동일한 비율을 갖고 있었다. 가느다란 다리, 긴 목, 작은 머리의 길쭉한 몸체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되었는데, 이러한 형태만으로는 동물의 종을 구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도기 인형의 재료로는 부드럽고 유분기 적은 검정색 혹은 진청색 점토가 사용되었다. 지역 주민들은 우파 강 유역 인근에서 진흙을 공수했고, 마련된 재료는 저온 고습한 장소에 며칠 간 저장해 두었다가, 나무 바닥에서 맨발로 밟아 반죽을 완성했다. 이렇게 준비된 점토는 알맞은 크기로 잘라 젖은 천으로 덮어 보관했다. 한 개의 장난감은 작은 점토 조각으로 만들어졌다. 젖은 손으로 거칠거나 금이 간 점토의 부분을 매끄럽게 반죽하고 다듬어 부드러운 곡선의 길쭉한 모양으로 조형한다. 이렇게 형태가 잡힌 인형은 가마에 넣어 소성을 시작하는데, 잘 구워진 점토는 분홍빛이 감도는 흰색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소성작업 이후 검정색 점토가 흰색으로 변하는 것은 필리모프 지역 점토만의 특징이라고 한다.


<필리모토프 도기 인형 제작 과정>

한편 필리모노프 도기 인형의 또 다른 특징은 삼색 무늬이며, 여기에는 필리모프 지역민들의 이교도적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들이 숨겨져 있다. 피리 기능을 갖는 최초의 도기인형이 ‘휘파람 춤свистопляска’이라는 이교도 의식을 위한 것으로 만들어졌듯이, 언뜻 보기에 의미 없는 줄무늬와 원, 점 등이 무작위로 배치된 듯하지만, 여기에는 다양한 상징적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다. 크고 작은 원들은 악한 힘으로부터의 수호를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며, 나무 모양은 생명의 나무로서 비옥한 토양을, 태양의 이미지는 풍족한 수확,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는 무늬들이다.

색채를 보면, 필리모노프 인형에는 노란색, 진홍색, 녹색, 단 세 가지 색상만이 사용된다. 이는 각각의 색채에 부여된 상징적 의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당시 필리모프 사람들은, 노란색은 공기와 태양을, 진홍색은 영혼, 대지, 불, 아름다움을, 녹색은 봄, 젊음, 생명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페인팅은 붓 대신 닭 깃털로 이루어졌는데, 여기에는 엄격한 규칙이 정해져 있었다. 채색 작업은 ‘리몬카(лимонка)’라고 불리는 노란색 채색 작업부터 시작된다. 인형의 바탕은 언제나 노랑색으로 채색되었고, 넓은 줄무늬와 원 등이 우선적으로 그려졌다. 전체 인형에서 언제나 노란색이 사용되는 부분은 여인의 치마와 남성의 바지, 동물의 목, 새의 날개 부분이다. ‘말린카(малинка)’라고 불리는 채색의 다음 단계는 진홍색 페인트를 사용해야 하는 두 번째 단계다. 중앙부터 시작하여 얇은 줄무늬, 원과 점 등 간단한 장식을 그려 넣었다. 모든 인형의 상의는 언제나 진홍색으로 칠해진 다는 것도 하나의 규칙이다. 물감이 마르면 진홍색 무늬 사이에 가장 얇은 붓으로 녹색 선을 칠한다. 작품에 녹색을 사용하는 채색의 마지막 단계를 그들은 ‘질룐카(зеленка)’라고 부른다. 작품 안에 사람의 이목구비는 디테일한 묘사가 적용되지 않으며, 입은 빨간색으로 눈은 녹색으로 마무리된다. 또 다른 채색 원칙으로는, 휘파람을 불기 위해 사람의 입술이 닿은 부분은 채색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도기 인형이 다채로운 색의 옷을 입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70년 전부터였다. 19세기 중반까지 필리모노프 장난감은 지금과 같은 다채로운 색으로 채색되지 않았다. 1850년대에 아닐린 염색재가 개발되면서, 필리모프 장인들은 염료에 계란 흰자나 노른자를 희석해 알록달록하고 밝은 패턴으로 채색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계란을 사용한 채색은 발색력과 지속력이 오래가지 않았고, 1870년대에 들어 계란 대신 아세톤을 용매제로 사용해 코팅효과를 더욱 강화시켰다.


<필리모노프 도기 인형 무늬 패턴>

현재 필리모노프 마을에서 이 휘파람 악기는 여전히 수작업으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나름의 현대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몇 가지 있다면, 우선 오늘날에는 재래식 가마 대신 최고 온도 1000도에 이르는 전기 가마를 사용하여 점토를 소성한다. 또한 염료의 경우, 과거 아닐린 염료와 아세톤의 조합은 보존력이 월등하고 인체에 무해한 아크릴로 대체되었다. 일부 장인들은 과거의 방식으로 무늬를 그려 넣기 위해 닭의 깃털을 여전히 사용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천연 모피 브러시를 사용하게 되었다.


체험 삶의 현장, 필리모노프
 

2009년, 필리모노프 도기인형의 고향 필리모노프 마을에서 멀지 않은 오도예프에 러시아 유일의 필리모노프 도기인형 박물관이 개장했다. 박물관에서는 현지 제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러시아 민속 공예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공예 역사 강연, 마스터 클래스와 같은 문화체험 프로그램도 진행되고 있다. 또한 이미 언급한 대로, 2013년부터는 도자기 예술품과 점토 장난감 <필리몬 할아버지 이야기>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전국 각지의 공예 장인들은 해당 지역의 전통 장난감과 도자기를 선보이고 있으며, 방문객들은 러시아 전국 각지의 점토 제품을 구입할 수도 있다.

종합해보면, 필리모프 도기인형은 장식적 요소와 음악적 기능이 결합된 러시아의 주요 전통 문화 상품이자 러시아 민족의 민중성과 일상성을 포괄하는 민중예술의 한 장르다. 오늘날 필리모노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도기 인형 문화 사업은 필리모프 지역주민들이 지역 문화재를 보존하고자 하는 의지의 산물이며, 필리모프 전통 공예의 예술적 감각과 쓰임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언젠가 이 코로나 위기가 극복되고 러시아로 향할 수 있는 하늘길이 열린다면, 한번 쯤 방문해 그들의 풍습과 문화, 삶과 얼을 체험해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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