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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러시아 민속 공예, 조스토보 페인팅
분류전통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0-08-18
조회수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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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러시아인들이 차를 마시기 시작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최초로 러시아에 차가 유입된 시기는 17세기 미하일 로마노프 황제의 시대였다. 당시 귀족 출신 바실리 스타르코프(В. Старков) 대사가 황제의 명으로 서부 몽골 지역에 다녀왔는데, 그때 알탄 칸(Altan Khan)이 선물한 64kg의 홍차가 러시아에 최초로 들어왔다. 이를 시작으로 1689년 러시아가 중국과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한 이후 차는 정식으로 국내 수입품목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때부터 화려한 귀족문화의 일부가 된 차는 숙취 해소에 효과 좋은 건강음료이자 피를 맑게 해주는 약용음료로 인식되기 시작했으며,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는 하층민에게도 보급되어 대중적인 일상음료로 러시아인들의 일상에 자리를 잡았다. 이처럼 러시아에서 차 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티타임의 분위기를 한껏 고아하게 해주는 다구(茶具)가 등장하기도 했는데, 그러한 대표적인 공예품들로는 사모바르(самовар)와 조스토보 쟁반(жостовский поднос) 등이 있다.

화려한 꽃무늬와 힘 있는 색채가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전달하는 조스토보 쟁반은 러시아인들의 삶과 정서가 묻어나는 민속 공예품이다. 사실 공예란, 순수미술이나 디자인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실용적 기능의 사물을 제작하는 일련의 활동’을 일컫지만, 어느 예술평론가는 조스토보 쟁반을 ‘러시아인들의 땀과 영혼이 녹아있는 예술’이라고 말하며 그 심미적 가치를 더욱 높게 평가한 바 있다. 또한 그는 그러한 이유에 대해, ‘조스토보 공예가 지내온 역사도 제작 기법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볼 때 감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과연 나는 감탄했던가? 감탄했다! 왜 감탄했던가? 아마도 검은 바탕에 수놓인 화려한 꽃, 생기 있는 색감, 온전한 전체가 표출하는 설명 불가한 에너지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실 조스토보 쟁반을 기능성에 중점을 둔 단순한 수공예품으로 분류하기에 그것이 뿜어내는 화려함과 다채로움이 매우 강렬하기 때문일 것이다.

<조스토보 쟁반, Б. 그라포프 作, 1978>



조스토보 페인팅의 탄생
 

17세기, 중국에서 유럽으로 전해진 미니어처 아트와 그 무늬가 조스토보 페인팅의 시초였다고 한다. 지난 2000년, 조스토보 공예 탄생 175주년을 맞아 화려한 기념행사가 치러졌으니, 조스토보 페인팅의 나이는 올해로 195세가 된 셈이다. 그런데 조스토보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있다. 바로 비쉬냐코프 가족이다. 1780년, 세레메츠예프 가문의 농노였던 필립 비슈냐코프(Ф.Н. Вишняков)는 옻칠한 압축 종이판에 무늬를 그려 넣어 접시를 만드는 수공예 클래스를 조스토보 마을에서 개최했다. 당시 그의 수업은 러시아나 유럽 예술가들의 회화, 판화 작품 중 인기 있는 것들을 골라 모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필립 비쉬냐코프는 모스크바 츠베트노이 불바르에 상점을 차리게 되었는데, 그때 자신이 맡아왔던 모든 업무는 남동생에게 넘겨주고 떠나게 된다. 그렇게 소규모 클래스로 운영되던 비슈냐코프 형제의 조스토보 페인팅이 번듯한 작업장과 시설을 갖추고 산업화를 본격화한 것은 1825년, 필립 비쉬냐코프의 아들 오시프 비쉬냐코프(О.Ф. Вишняков)가 오스타슈코보 마을에서 개별적으로 워크숍을 개최하면서부터였다. 조스토보 박물관에 비치된 비쉬냐코프 가족의 소개 글을 보더라도 “아들 비쉬냐코프가 종이 반죽에 페인팅 한 쟁반, 팔레트, 종이 상자, 담배케이스, 티포트, 앨범 등을 상업화하기 위해 설립한 기관은 1825년부터 존재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비쉬냐코프 가족의 노력 덕분에 1830년경부터는 오스타슈코프, 흘레브니코보, 트로이츠코예 등 모스크바 변두리 마을에서 쟁반 생산량이 증가해 갔고, 철강 산업의 중심지 우랄지방에서 조스토보 공예가 번성했을 즈음에는 철제 쟁반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곧 조스토보 마을에도 꽃무늬로 장식된 최초의 철제 트레이가 등장했고, 점차 트로이츠코예 마을 작업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던 종이제품을 철제 제품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수도 모스크바 근교라는 지역의 지리적 조건은 조스토보 공예의 발전과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조스토보 작업자들은 생산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모스크바에서 바로 구입할 수 있었고, 중개상인이 없이도 구매를 원하는 대중들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었다. 즉 도심에 거주하고 있던 구매자들에게 항시적인 판매가 가능한 공간이라는 이점 덕분에 조스토보 공예는 크나큰 상업적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조스토보 쟁반 장식의 주된 모티프는 화려한 꽃과 과일이다. 조스토보 쟁반 안에는 생생한 꽃과 싱그러운 과일의 형태, 그 사실적인 느낌이 러시아 민속적 장식성과 결합되어 있었으니, 당시 공예품이 누렸던 선풍적인 인기는 그리 놀랍지 않다.

1922년에는 노보셀쩨보 마을에 노보셀쩨보 노동조합이 탄생되었고, 그때부터 철제 쟁반 생산이 본격화되었다. 1924년부터 1925년까지는 조스토보 노동조합과 트로이츠코예 노동조합, 수공예단체 스페츠쿠스타리(Спецкустарь)와 라키로브쉭(Лакировщик)이 탄생했다. 이 시기에 설립된 근방의 수공예 단체들은 1928년, 철제쟁반제작 전문단체 메탈로포드노스(Металлоподнос)로 통합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조스토보 공예는 100년 남짓한 시간 동안 비슈냐코프 일가의 소규모 단체에서 출발해 거대 단체로 성장하면서 많은 성과를 이루어냈다.


<1950년대 조스토보 쟁반 작업장>



러시아 포크 아트, 조스토보 페인팅
 

그렇다면 조스토보 쟁반의 다채로운 꽃 그림은 어떻게 제작되는가? 우선 그림 작업은 여러 층의 두꺼운 초벌칠(퍼티작업)로 시작된다. 아마씨에서 추출한 기름을 검은색 물감에 희석해 금속 트레이에 바른다. 보통 그림의 배경색으로는 검은색이 주로 사용되나, 금색, 은색을 사용하는 경우도 더러 있으며, 연기를 피워 그을음을 이용한 무늬들을 사용하기도 한다.(이는 거북 등 무늬, 벌레 무늬 등으로 불린다.) 이렇게 만들어진 배경에 장인들은 그림의 윤곽을 그리고 베이스 코트를 입혀 말린다. 한 차례 건조한 트레이에 본격적으로 꽃과 잎사귀 등을 묘사한 다음 작품에 입체감을 부여하기 위해 음영처리 작업을 한다. 마지막에는 흰색으로 하이라이트를 표현하는데, 이는 자칫 평면적일 수 있는 그림에 볼륨감을 살려주는 조스토보 그림의 특징이라고 한다. 또한 주요 패턴에 입체감과 볼륨감을 구현하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으로 메인 그림의 가장자리에 작은 꽃들을 촘촘히 그려 넣는 방식이 사용되기도 한다. 트레이의 테두리는 금색으로 페인팅 해 화려한 장식미를 더해준다. 이 작업 과정에서 사용되는 붓은 다람쥐꼬리털을 직접 손으로 뽑아 제작하며, 이 털들은 다듬거나 자르지 않은 채 사용하는 것이 그들만의 원칙이라고 한다. 섬세한 작업으로 완성된 그림에는 투명 바니쉬를 세 겹 더 입히고, 최종 마감처리를 위해 반짝이는 윤기가 돌 때까지 광택작업을 진행한다. 조스토보 트레이를 대표하는 그림은 크고 작은 야생화나 과일, 식물 등이지만, 점차 정물화 이외의 역사속의 사건, 설화, 풍경화 등이 다양하게 표현된 제품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조스토보 트레이는 장식성과 예술성을 고루 인정받으며 해당 지역 주민들의 보조수입원으로 이바지해왔다.

접시 안에 그려진 형상은 국내외 수많은 전시회에서 주목받은 바 있는 거장들의 작품들을 통해 한층 더 높은 명성과 인기를 얻었다. 그 역사를 이어온 동안 가정용품 혹은 주방용품으로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조스토보 생활용품은 러시아 민속 공예품의 지위를 획득했다. 그 결과 조스토보 작품은 조스토보 지역 박물관뿐 아니라, 러시아 최대 미술관 에르미타쥬나 러시아 박물관에서 역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오늘날에도 조스토보식 그림은 여러 분야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조스토보 공예는 2006년 7월 페테르부르크에서 개최된 G8 정상회담의 문화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러시아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리기도 했으며, 로라 부쉬(Laura Welch Bush), 자크 쉬락(Jacques Chirac),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와 같은 유명인들이 조스토보 트레이를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어두운 바탕에 밝게 채색된 조스토보 꽃무늬는 현대 유럽 패션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입생 로랑(Yves Saint Laurent), 폴 스미스(Paul Smith), 발렌티노(Valentino), 돌체 앤 가바나(Dolce & Gabbana)와 같은 세계적인 의류 디자이너 및 브랜드들은 조스토보식 디자인을 의상에 접목시켜 런웨이 쇼에 등장시키기도 했다. 무대 위 모델들이 걸친 의상은 꽃무늬가 도드라진 조스토보 패턴의 레트로 감성을 드러내며 시각적 강렬함을 전달했다. 


<폴스미스 2011 S/S 컬렉션(左), 발렌티노 2013 F/W 컬렉션(中), 돌체앤가바나 2014 F/W 컬렉션(右)>



조스토보 페인팅의 위기
 

조스토보 그림이 세계에서 유명세를 타게 된 것과는 별개로, 최근 조스토보 공예 산업시장은 그 존립과 관련한 큰 문제에 봉착했다. 우선, 조스토보 공장들은 대기업 브랜드 식기 제품들이 시장을 장악한 탓에 부도가 나거나 경영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대다수의 가정집 테이블은 대형 마트에서 판매하는 저렴한 플라스틱 그릇나 강력한 브랜드파워, 마케팅 능력을 앞세운 스웨덴산 생활용품이 점령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전통 수공예 식기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가는 현실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조스토보 작업장 측은 판로개척과 수공예품 홍보를 위해 전시회 등이 보다 활성화되어야 하지만 재정적 지원이 부족해 출구 모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는 형편이다. 조스토보 장인들의 입지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시중에 판매되는 조스토보 공예품이 모조품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에 자리를 내어주고 러시아인들의 일상생활에서 밀려나게 된 오늘날 조스토보 공예품들은 주로 외국인 관광 상품으로 제작되곤 한다. 그러나 기념품 전체 매출에서 80% 가량은 마트료쉬카와 모형 발랄라이카가 차지하고 있으며, 조스토보 공예는 여기에서 마저도 인기가 많지 않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의 기념품 매장의 풍경을 보더라도, 조스트보 공예품은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마트료쉬카와 조악한 기념품들 사이에서 구석으로 밀려나 눈에 띠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이 제품들은 모두 작가 서명을 찾아볼 수 없는 저품질 모조품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60년 경력의 조스토보 공예 장인 라리사 블라고바(Р.И. Благова)는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이제 조스토보 작업장은 은행업자에게 넘어갔습니다. 우리는 이제 금전적 이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개인 소유의 기업입니다. 원칙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냉장고, 값 비싼 휴대폰, 와인 병과 와인 잔에 그림을 그리라고 요구합니다.”라고 호소했다. 이와 더불어 과거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이 일하고 있는 작업장에서 290명의 장인들이 활동했지만, 지금은 불과 25명밖에 남지 않았다는 그의 말은 조스토보 페인팅 업계가 처한 오늘날의 어려운 현실을 설명해준다. 


<조스토보 쟁반, П. 플라호프 作, 1950>


그럼에도 오늘날 조스트보 페인팅에 수십 년 간 몸담아온 장인들은 자신들이 축적해온 모든 제작과정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공유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스스로 오랜 시간에 걸쳐 터득한 창작방식, 제작기법, 장인 정신을 고스란히 후대에 전수하는 일이 조스토보 페인팅 아티스트로서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현장에서 일하는 젊은 작업자들은 노련한 거장들의 가르침 속에서 프로페셔널리즘을 배워가고 있으며, 기술의 완성을 위해, 최고의 디자인을 탄생시키기 위해, 그리고 거장들의 유산을 지켜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조스토보 공예는 러시아 민중들의 문화를 바탕으로 발전해온 특수 산업 중 하나다. 러시아인들과 함께 러시아를 사랑하는 우리는 조스토보 페인팅의 미적 가치와 이를 굳건히 지켜내고자 하는 장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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