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인문한국) 사업단 홈페이지

HK(인문한국) 사업단

웹진 문화로(文化路) 내용 시작

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유라시아를 깨우는 풀뿌리 민주주의!
분류역사
국가 러시아
날짜2020-07-31
조회수524
첨부파일

새뮤얼 헌팅턴은 1970년대 후반 동유럽을 비롯한 아시아와 남유럽 곳곳에서 일어난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의 체제이행’을 <제3의 물결>이라 정의했다. 최근엔 소련 해체 이후 CIS(독립국가연합)와 중동 지역에서 발현되는 권위주의와 독재에 반대하는 새로운 형태의 민주화 과정을 <제4의 물결>이라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소위 ‘색깔 혁명(Colour Revolution)’이라 부르기도 하는 CIS에서의 일련의 민주화 움직임과 그 배경을 살펴보면서 조만간 유라시아에 다가올(어쩌면 이미 다가온) 정치적 미래를 상상해보고자 한다.

과거 동유럽의 자유화·민주화는 흐루쇼프의 영향이 컸던 반면, 소비에트의 자유화·민주화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로부터 형성된 ‘데탕트’에 의해 촉발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결국 소비에트의 여러 공화국이 민족적 혹은 종족적 불만을 드러내는 발판이 되었다. 1989년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을 시작으로 조지아(그루지야)와 몰다비아에서 자치/독립의 요구가 있었고, 우크라이나·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에서는 민족운동이 격화되어 내전과 같은 상태가 조성되기도 했다. 소비에트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소비에트를 구성하던 각 공화국 사이에 동맹이라는 의미는 약화되고 흐려졌다. 지역주의에 대한 필요성이 감소하고 중앙정부의 정통성마저도 느슨해졌으며, 민족주의 경향이 강해지면서 ‘이념’이라는 마지막 유대관계조차 붕괴하기 시작했고, 1991년 말 결국 소비에트는 해체되었다.

소비에트 해체 결과는 먼저 CIS 국가들의 탈소비에트 정책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민족주의와 민족 정체성을 강조하며 독자 노선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전히 1인 독재, 부정선거, 엘리트 중심주의 등의 폐쇄적인 체제에 갇혀 낙후된 과거의 정치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며, 전체주의적 통치 방식과 지배 세력 독식의 보이지 않는 막후 정치가 만연하였다. 이러한 배경하에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소비에트 식의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행정을 근절시키고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한 노력은 21세기가 되어서야 활발해졌는데, 주목할만한 사실은 소위 ‘색깔 혁명’으로 불리는 이 움직임의 중심에는 새로운 질서와 정치에 관심을 두는 청년세력을 중심으로 한 20대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지아 #장미혁명 #2003년

<장미혁명 (左) / 청년 정치운동단체 ‘Kmara’ (右)>

먼저 조지아(그루지야)를 보자. 1991년 초대 대통령인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아(Звиáд Гамсаху́рдия)’가 군사쿠데타로 물러나자 소비에트 외무장관이었던 ‘셰바르드나제(Эдуард Шеварднадзе)’가 1992년 조지아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10년 넘게 이어진 그의 장기집권은 2003년 11월 총선을 계기로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선거 후 중앙선관위가 집권당의 승리를 발표했지만, 불법 정황이 포착되거나 출구조사와는 다른 결과 등으로 인해 야권 세력을 중심으로 부정선거라 주장하며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특히 학생단체인 Kmara(georgian for enough!)의 활동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세르비아의 민주화 혁명을 본받은 이들은 EU 국기와 조지아 국기를 들고 거리에서 반정부 그래피티를 그리며 자유를 외치거나, SNS나 인터넷을 통해 국내외로 혁명의 의지를 다졌다. 수많은 지지자가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시위를 이어갔으나 세바르드나제 정부는 계속 야당의 여론을 축소하려 했고, 결국 조지아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학생, 교사, 교수, 노동자, 노인 등으로 구성된 시민들이 손에 장미 한 송이씩을 들고 세바르드나제의 사임을 요구하며 총궐기에 나선 것이다. 이에 전국민적 저항과 국제적 비판 여론을 견디지 못하고 대통령이 사임하였는데, 이것이 독립국가연합(CIS) 최초의 민주화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장미 혁명’이다.

 
#우크라이나 #오렌지혁명 #2004년

<오렌지혁명 (左) / 청년 정치운동단체 ‘Пора’ (右)>


2004년 11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독립광장 주변에 수만 명의 젊은이가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그들은 오렌지색 옷이나 오렌지색 장갑과 목도리를 하고 오렌지색 깃발을 든 채 거리로 뛰쳐나와 ‘빅토르 유셴코(Виктор Ющенко)’를 외쳤다. 그해 대선에서 친러파인 빅토르 야누코비치(Виктор Янукович)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다수의 국민들, 특히 청년 세대가 부정선거 증거들을 제시하면서 대규모 시위에 나선 것이다. 시위대 규모가 점점 커져 수십만 명에 이르자 국회와 대법원은 결국 선거 무효를 선언하고 재실시를 발표하였다. 마침내 12월 26일 거행된 재선거에서 야당 후보였던 유센코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는데, 이를 ‘오렌지 혁명’이라 부른다.

흥미로운 것은, 조지아와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도 20대를 중심으로 한 청년 정치단체 ‘Пора(It's time)’가 오렌지 혁명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청년 정치단체 ‘Пора’의 활동은 우크라이나에 민주화라는 희망의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청년 세대를 넘어 전 연령대를 아우르는 시민혁명으로의 변화 분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들이 주도했던 대규모 시위가 폭력으로 비화하지 않고 평화적인 정권교체와 이양을 할 수 있게 했다는 사실에서 오렌지 혁명은 우크라이나 민주화의 상징이 된다.
 

#키르기스스탄 #레몬혁명(튤립혁명) #2005년

<튤립혁명 (左) / 청년 정치운동단체 'KelKel' (右)>

한편, 2005년 키르기스스탄은 ‘레몬 혁명’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1991년부터 장기집권 중인 ‘아스카르 아카예프’(Аскар Акаев) 대통령에 반발해 그해 실시된 총선을 계기로 시민들이 더는 참지 못하고 레몬과 튤립을 들고 거리로 나온 것이다. 이를 두고 ‘레몬 혁명’ 또는 ‘튤립 혁명’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키르기스스탄 시민혁명의 중심에도 바로 20대 청년들이 있었다.

소위 'KelKel(Renaissance)’로 불리는 키르기스스탄 청년 정치단체는 앞서 조지아나 우크라이나 등에서 일어난 색깔 혁명을 모티프로 삼아 ‘레몬 혁명’을 적극적으로 주도하였다. 그 결과, 아카예프 대통령은 해외로 도피하여 독재정권이 무너졌으며, 2005년 7월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대통령 선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벨라루스 #데님혁명 #2006년

 <청바지혁명 또는 데님혁명 (左, 中) / 청년정치운동단체 ‘ZUBR' (右)>

2004년 10월 벨라루스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코(Александр Лукашенко)’는 자신의 3연임을 허용하는 헌법 개정안을 발표하였고, 이후 2006년 3선에 성공한다. 친러파 루카셴코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불만을 품은 국민들은 헌법 개정을 통한 그의 3연임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퇴진을 주장하며 거리로 나섰다. 당시 시위대의 중심에는 학생단체 ‘Zubr’(작은 버펄로)가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반정부 데모에 참여했던 Zubr의 리더 중 한 명이 시위 도중 빼앗긴 깃발에 자신의 청바지를 묶었는데, 이 장면이 주목을 받으면서 이후 학생들뿐만 아니라 시민 대부분이 루카셴코의 권위주의 체제와 장기집권에 대한 도전의 상징으로 자유를 상징하는 미국의 ‘청바지’를 입고 나선 것이다. 이로 인해 2004년 벨라루스의 민주화 운동을 ‘청바지 혁명’, ‘데님 혁명’이라 부르기도 한다. 비록 루카셴코 대통령의 퇴진에는 실패했지만, Zubr의 청바지 운동은 벨라루스의 풀뿌리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시민운동이 되었다.

2018년에는 아르메니아에서도 민주화 운동이 전개되었다. ‘세르지 사르키샨(Serzh Sargsyan)’이 2008년부터 10년간 대통령을 중임한 후 내각제 개헌 단행을 통해 2018년에 총리에 오르려고 한 것이 그 계기였다. 많은 시민이 사르키샨 대통령의 독재와 신흥재벌을 비롯한 소수의 권력 독점에 따른 부패와 빈곤을 견디지 못하고 퇴진 시위에 나서 결국 집권 여당 몰락, 새 총리 선출 등을 이루어냈는데, 이를 두고 ‘벨벳혁명’이라고 한다.


#아르메니아 #벨벳 혁명 #2018년

<아르메니아 벨벳혁명 사진 (左) / 시민혁명 승리를 축하하는 아르메니아 시민들 (右)> 


#러시아는? #현재 #블라디미르 푸틴

CIS 지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민주화 운동을 염두에 둔 듯 2014년에 푸틴은 “색깔 혁명이 러시아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자유를 원하는 청년들의 움직임은 러시아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2018년 러시아 대선 당시 모스크바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대선보이콧을 기치로 내세운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이어졌는데, 역시 그 중심에는 청년 정치단체 ‘Oborona’(Оборо́на)가 있었다. 비록 대선에서 푸틴이 높은 지지율로 당선되긴 했지만, Oborona의 활동은 민주화·자유화를 추구하는 러시아 젊은 세대의 의지를 드러내면서 1인 장기집권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경각심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했다.

2020년 현재 러시아에서는 푸틴의 종신집권을 가능케 할 수 있는 ‘대통령 연임 제한 철폐 개헌’ 논의가 한창이다. 이미 하원과 상원의 심의를 통과하였고, 7월 1일 시행된 국민투표에서도 개헌안이 가결되어 개정 절차가 마무리되었다. 핵심은 이번 개정헌법에 ‘현재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거나 이미 수행한 사람의 기존 임기는 고려되지 않는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푸틴이 2024년 다시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6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두 차례 더 연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의 1인 장기집권 또는 종신집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물론 서구 진영의 압박과 견제가 계속되는 작금의 현실에서 러시아의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일부 의견에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이미 러시아 주변 국가에서 벌어진 장미 혁명, 오렌지 혁명, 레몬 혁명, 청바지 혁명, 벨벳 혁명 등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결과가 미래 세대인 청년들의 자유 의지와 열망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이 곧 러시아에 적용될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목록

웹진 문화로(文化路) 내용 끝

TOP

저작권 표시 및 연락처

06974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로 84 법학관(303관) 1420호 / E-mail: fsicau@cau.ac.kr / TEL: 02-820-6355 / FAX: 02-822-0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