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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문화로(文化路)
제목러시아의 수호성인 안드레아와 부옥사 강에 섬처럼 떠 있는 사도 안드레아 교회
분류지역문화
국가 러시아
날짜2020-07-31
조회수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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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사회 관계망 서비스(이하 SNS)가 사람들 간의 주요 소통의 수단이 된 이후, SNS에 업로드하는 이미지가 중요한 콘텐츠로 주목 받은 지 이미 오래다. 아름다운 명소와 맛 집을 방문하거나 일상의 한 장면을 인증샷(?), 인생샷(?)으로 남기기 위해 오랜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하나의 트랜드가 되었다. 사진을 찍다가 음식이 다 식어 맛없는 음식을 먹고 나왔다는 에피소드도 다반사로 들을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러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위의 두 글로벌 SNS와 더불어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2007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졸업생인 파벨 두로프(Павел Дуров)가 만든 Вконтакте(이하 VK)가 러시아어판 페이스북이라 불릴 만큼 보편화되어있다. VK는 2018년 8월 기준 최소 5억 개의 계정을 보유하고 있으며, 2020년 1월 Similarweb의 조사에 따르면 VK는 전 세계에서 14번째로 자주 방문하는 사이트에 랭크되었다. 한 때 VK에서 안개에 휩싸여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호수에 떠있는 것 같은 러시아의 한 교회사진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모았다. 게시물에는 이 사진을 포함하여 계절의 변화에 따라 마치 동화처럼 다양한 교회의 모습을 담고 있는 사진이 함께 게재되었는데,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은 이 교회의 소재를 수소문하기에 이르렀다. 이 교회는 레닌그라드 주 부옥사(Вуокса)강에 위치한 교회로, 마치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배경으로 나오는 호수 한 가운데 섬처럼 떠있는 절을 연상시킨다. 영화에 나오는 절은 영화촬영을 위해 제작된 절이지만, 이 교회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정식명칭은 첫 번째로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사도 안드레아 교회(Храм апостола Андрея первозванного)이다. 사도 안드레아는 러시아의 수호성인으로 러시아와는 깊은 인연이 있다. 




<여름날 새벽 안개에 쌓인 사도 안드레아 교회 (左) / 가을의 모습 (右)>


첫 번째로 부름을 받은 제자 안드레아
 

예수 그리스도의 12명의 제자들 중 한 명인 안드레아(Ανδρέας, 1세기 초- 기원후 1세기 중순, 말)는 베드로의 형제이며, 어부였다. 안드레아라는 이름은 그리스어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남자다움”, “용기”를 의미하고, 각 언어별로 러시아어_ 안드레이(Андрей), 스페인어_ 안드레아(Andreas), 영어_ 앤드류(Andrew), 프랑스어_ 앙드레(André) 등 다양하게 불린다. 그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로 “나를 따르라. 너희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하겠다”(마태오복음 4장 18-19절)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아 첫 번째로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그래서 동방 정교회의 전통에서는 사도 안드레아의 이름에 첫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Первозвонный)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닌다. 우리나라의 첫 카톨릭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세례명도 안드레아였는데, 그의 세례명이 안드레아인 이유도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로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아 사제가 되었다는 의미가 숨겨진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안드레아는 형 베드로의 후광에 가려져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사도 안드레아는 예수의 12제자 중 유일하게 고대 루시 지역을 방문하여 그리스도교를 선교한 인물로 러시아와는 각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 사람들은 사도 안드레아를 러시아 민족의 특별한 수호자로 생각한다. 전설에 따르면 사도 안드레아는 흑해를 건너와 카프카즈, 타브리아, 드네프르강을 따라 키예프를 방문하고 그 이후 노브고로드, 볼호프강을 따라 라도가 호수에 위치한 발라암 섬까지 슬라브 문화권의 여러 지역으로 선교를 다녔다. 이에 고대 루시에서는 1080년부터 사도 안드레아를 특별히 기념하는 전통이 이어졌다. 1086년 브세볼로드 야로슬라비치(Всеволод Ярославичб 1030-1093) 대공과 그의 아들 야로슬라브 무드릐(Ярослав Мудрый)는 키예프에 첫 번째로 사도 안드레아 교회를 건설했다. 사도 안드레아가 다녀갔다는 레닌그라드 주 라도가호수의 발라암 섬에도 발라암 수도원이 있다. 1698년 표트르 대제는 국가 표창으로 성 안드레아 훈장을 제정하고 러시아 해군의 깃발을 성 안드레아 깃발로 지정하였다. 1998년 러시아에서 성 안드레아 최고훈장은 복귀되었다. 이 훈장에는 러시아의 수호자 성 안드레아라는 의미의 SAPR(Sanctus Andreas Patronus Russiae)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처럼 사도 안드레아는 러시아를 비롯하여 우크라이나, 스코틀랜드, 루마니아, 그리스, 시칠리아, 아말피 그리고 선원들과 어부들의 수호성인이다. 사도 안드레아는 동방 정교를 대표하는 초대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를 역임하였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제도 중 하나로 후대 총대주교들은 모두 사도 안드레아의 후계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이들은 고대시기부터 기독교 전파와 교리논쟁을 해결하는데 조력하였고, 중세시대에는 슬라브족에게 기독교를 선교하기 위해 힘썼다. 이는 초대 총대주교인 사도 안드레아가 고대 루시땅에서 그리스도교를 선교한 것이 그들의 역할과 임무에 방향성을 제시한 인물임을 암시한다.


<사도 안드레이 이콘 (左) / 러시아 성 안드레아 최고 훈장 앞 (中) / 뒤 (右)>
출처: http://www.pravoslavieto.com/life/11.30_sv_ap_Andrey.htm

부옥사 강의 사도 안드레아 교회 

사도 안드레아 교회는 2000년에 건립된 신생교회로 핀란드의 남쪽지역부터 시작하여 러시아 라도가 호수까지 흐르는 부옥사 강에 위치한다. 행정구역상 프리아조르스키 라이온(Приозерский район)의 바실리예보 마을(Посёлка Васильево)에 속한다. 이 지역은 티브라(Тивра)라고 불리며 중세시대부터 스웨덴과 벨리키 노브고로드간의 무역길이었다. 꽤 큰 지역이었기에 고대 문서에 종종 등장했다. 12-14세기에 카렐리야인들이 살았던 지역에 편입되면서 티우리(Тиури)로 불렸다. 스웨덴의 영향으로 동방정교 신자들이 주민의 10%정도였으나 1617년 스톨보프 조약으로 스웨덴의 영향에서 벗어나 동방정교 신자들과 핀란드 남쪽지역으로부터 루터교 신자들이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사회주의 혁명이후, 1948년 소련의 영웅인 중위 바실리예프 마카로비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바실리예보로 명칭을 바꾸었다. 

사도 안드레이가 러시아 선교여행 당시 이 부옥사 강에서 강물로 러시아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동방정교의 전설에 기초하여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사도 안드레아 교회 건립의 발단이 시작되었다. 이 아이디어는 게르첸 대학교 교수가 제기하여 부옥사 근교에 거주하는 안드레이 럄킨(Андрей Лямкин) 자본을 제공하고, 건축가 로티노프 안드레이(Ротинов Андрей)가 부옥사 강 위로 올라온 100㎡의 작은 돌섬에 8자 모양의 작은 교회를 설계하였다.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라도가 지역의 대주교 이오안 스늬쇼프(Иоанн Снычёв, 1927-1995)는 이 제안을 바로 승인하여 교회건립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다. 사실 사도 안드레아가 노브고로드에서 볼호프강을 따라 라도가 호수에 있는 발라암까지 선교여행을 다녔다는 기록은 있지만 가는 길에 부옥사 강지역을 지나쳤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기록은 아직 확인된 바 없다. 이 교회가 건립됨으로 인하여 사도 안드레아의 러시아 지역에서의 활동과 동방정교의 정당성 확립에 힘을 보태어 준 것은 사실이다. 부옥사 강의 사도 안드레아 교회는 작은 섬에 건립된 세계에서 유일한 교회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이 교회는 바로 눈에 보이지만 섬처럼 고립되어 있기에 건립초기에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으나, 5-6년 전쯤 육지와 교회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았다. 


<사도 안드레이의 이동경로 (左) / 다리가 놓인 사도 안드레아 교회 (右)>
출처: ru.wikipedia.org/wiki/Вуокса_(река)

핀란드에서 러시아로 흐르는 부옥사(Вуокса)강 

사도 안드레아 교회가 위치한 부옥사 강은 역사가 깊다. 부옥사라는 말은 “흐르다(протекать)”라는 뜻을 가진 고대 카렐리야어에서 유래했다. 고대 노브고로드 사람들은 이 강을 “새로운 호수”라는 뜻을 가진 카렐리야어에서 차용하여 “우제르바(узерво)”라고 불렀는데 고대 노브고로드 및 러시아의 다른 지역의 역사를 담은 노브고로드 연대기(Новгородская летопись)에 등장하는 우제르바가 바로 이 부옥사 강이다. 20세기 초까지 우제르바라는 명칭을 사용하였고, 20세기 중반에 들어 부옥사라는 옛 이름을 되찾을 수 있었다. 156km에 이르는 부옥사강은 카렐리야 지협 중 가장 큰 강으로 핀란드 호수 사이마부터 시작하여, 러시아로 국경을 넘어 흐르는 강이다. 오랜시간 동안 흐른 만큼 강을 따라 다양한 호수와 섬들이 형성되었다. 강 하구 라도가 호수와 가까워지면 강과 같은 이름을 가진 호수도 존재한다. 부옥사 강 부근에 생겨난 호수들의 물은 멈춰있지 않고 계속 흘러 라도가 호수로 합쳐지기 때문에 물이 깨끗하다. 부옥사는 특유의 깨끗한 물과 조용한 자연환경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민들, 레닌그라드 주의 주민들, 카렐리아 사람들 등이 여름에 즐겨 찾는 휴양지 중 하나이다. 백야가 시작되면 이들 지역 사람들은 주말을 이용하여 이 곳에 캠핑을 와서 낚시와 수영을 즐기고, 샤슬릭을 구워먹으며 재충전을 하는 곳이다.


<겨울의 사도 안드레아 교회>

뱃사람들의 수호성인 사도 안드레아_ 성 안드레아 기(旗) 

사도 안드레아는 로마황제 네로의 그리스도교 박해로 체포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는 형을 선고 받았다. 그는 그리스도의 첫 글자 X자를 상징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세상을 떠났다. 그런 이유로 X자는 사도 안드레아를 상징하는 표식이 되었다. 사도 안드레아를 그린 그림, 조각 또는 성당에는 X자 모양의 십자가가 자주 등장한다. 이와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기 전에 안드레아는 어부였기에 뱃사람들과 어부들의 배에는 종종 뱃사람들의 수호성인 사도 안드레아를 상징하는 안드레아 기가 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표트르 대제의 명으로 17세기 이후부터 1917년까지 러시아 해군을 대표하는 깃발도 이 안드레이 성인을 상징하는 안드레아 기를 사용했다. 안드레아 기는 흰색 바탕에 파란색으로 X자가 그려져 있다. 이 기의 네 곳의 모서리는 현재 러시아 해군이 주둔하고 있는 4개의 바다(흑해, 백해, 카스피해 그리고 아조프 해)를 상징한다. 소련시기에는 종교적인 색깔을 드러낼 수 없었기에 해군기는 흰 바탕에 파란줄을 아래에 한 개만 두고 왼쪽에 별, 그리고 오른쪽에 망치와 낫이 그려져 있었다. 소련 해체 이후, 1992년 과거의 안드레아 깃발이 흰 바탕에 하늘색 X자로 복원되었다가, 2001년에 지금처럼 파란색의 X자로 바뀌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본틀은 흰 바탕에 파란색 X자가 그려져 있지만 지역마다 기관마다 러시아 국장이나 지역의 문장등을 추가하는 등 다양한 버전의 안드레아 기가 존재한다. 이와함께 러시아 선원들과 해군들은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출병 직전, “신과 안드레아 기가 우리와 함께(С нами Бог и Андреевский флаг)”라는 기도와 함께 배에 오른다. 이 기도는 특히 러시아 해군에게 전투에 앞서 행하는 깊이 뿌리내린 전통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해군성 건물에 걸려있는 러시아 국장이 새겨진 안드레아 기 (左), 안드레아 기들 (右_上,下)>


2000년 이후 러시아는 경제적인 안정을 누리며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 문화를 재창조하여 새로운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진 역사는 SNS라는 새로운 기술을 통하여 이미지로 러시아 사람들을 넘어 러시아 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세계인들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이슈화 되고 러시아 문화의 우수성을 새로운 방법으로 각인시키고 있다. 부옥사강에 있는 사도 안드레이 교회는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4차 산업시대에서 무궁무진하게 콘텐츠들의 재료들을 갖고 있는 러시아의 저력을 엿볼 수 있는 선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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